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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노무현이란 한 정치인이 대선에 도전한다. 지지 국회의원 1명만을 데리고 민주당 경선에 나선 정치적으로는 초라한 행보였지만, 그 뒤에는 '국민'과 팬클럽 '노사모'가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노무현은 2002년 12월 '기적'이라는 표현을 낳으며 대한민국 대통령이 된다.

이후 2009년 현재까지 대한민국은 '대통령 노무현'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 재직때에도, 퇴임 후에도, 그리고 죽음을 맞이한 이 순간까지도 대한민국은 '노무현'이라는 이름 안에서 사고와 행동이 갇혀있는 희한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군대라는 조직과 철권통치로 국민을 억눌렀던 전두환-노태우나 정치적으로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던 김영삼-김대중도 재직시는 물론 퇴임후에도 그 공과가 논해지기는 했지만, 그들이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미치지는 못했다. 이들이 정치적 훈수를 하더라도 국민들은 정치권 큰어른의 목소리로 듣기보다는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감'잃은 늙은 정치인의 '쉰' 소리로 치부했을 뿐이다. 그런데 노무현의 발언은 바로 그의 지지층은 물론 많은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것이 때로는 노무현에 대한 지지일 수도 있고 반대일 수도 있지만, 어찌되었든 영향을 미친 것이다.

왜일까. 왜 대한민국은 노 전 대통령에 갇혀있게 된 걸까.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국민은 6년 전부터 노 전 대통령식의 자유와 '국민이 최고 권력'이라는 가치에 몸담게 되었고, 다른 하나는 이명박 정부가 이같은 가치를 무너뜨리려 하는 과정에서 '대통령 노무현'이 살아났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참여정부 시절 '모두 노무현 때문이야'라는 말장난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을 정도로 대통령에 대한, 정부에 대한, 국회의원에 대한, 경찰에 대한, 검찰에 대한, 즉 이전에 국민을 무시하는 잘못된 권력, 권위에 대해 까발리고 비판할 수 있었다. 그것을 수년동안 누리다 보니 당연한 상황이라 생각하게 되었고, 참여정부 말에는 '대통령 노무현'까지 포함한 모든 권위가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국민은 국민이 최상위의 권력임을 실감하게 되었고, 취임 초 권력을 내놓겠다는 대통령은 정말 자신의 권위를 낮추고 또 낮췄다. (이를 일부 군사정부때 활개를 치던 정치인들과 언론은 가볍고 생각없는 대통령으로만 치부하며 비난했다. 권위를 버린다는 것이 얼마나 큰 권위를, 권력을 갖는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다)

퇴임후 1년여가 겨우 지난 즈음, 국민은 참여정부때 대통령이 얼마나 국민을 위했으며, 권력을 놓았는지 알게되었다. 2MB(용량 2메가 바이트)로 놀람감이 되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 덕분이다. 세간의 말처럼 국민들에게 '민주주의''자유''국민'을 '억압'공안''철권''폭력' 등으로 절실하게 느끼게 해준 것이 이명박의 유일한 업적일 수도 있다.

이러다보니 현 정부나 정치권은 노무현의 그림자를 지우지 않으면 자신들 마음대로 할 수 없음을 지난 여름 촛불집회를 통해 느끼게 되었다. 11년전 자신들이 했던 방법대로 추진하면 모든 것이 그대로 이뤄질 수 있는 줄 알았던 한나라당과 정부는 국민들의 행동이 달라졌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통령 노무현'이 남긴 '자유'와 '최고의 권력은 국민'이라는 인식을 지우지 않으면, 자신들의 뜻대로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은 결국 노 전 대통령을 정치적 수사의 한가운데로 끌여들여 '도덕성'을 무너뜨리는 방법을 택했다. 혹자는 노 전 대통령이 박연차로부터 돈을 받은 것이 명명백백 드러나고 있는데, 이것이 무슨 소리냐고 할 것이다. 죄가 있으면 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것은 '죄'라는 것이 성립이 되고 난 뒤이다. 그러나 현 정부와 검찰은 언론재판을 먼저 선택했다. 여당 내부에서조차 '희한한 검찰 수사'라고 할 정도로 매일같이 수사 브리핑을 했고, 검증되지 않은 사안에 대해 수구 언론들은 연일 보도했다.

검찰이 증거를 확보하고 조사해야하는 절차 대신 '노 전 대통령이 이런이런 의혹이 있어 조사를 할 것이다'라고 공표를 먼저 한 것이다. 여론재판은 법정에서 이뤄지는 재판보다 더 영향력을 발휘한다. 실제로 노 전 대통령의 도덕성은 무너졌고, 그의 지지층은 물론 중립에 서있던 국민들조차 노 전 대통령에게 실망스러운 눈빛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 어떤 결론이 나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사실 현정부와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을 구속시키지 않아도 이미 얻어낼 것은 다 얻어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의 자살을 통한 서거는 이 모든 것을 뒤집어놓았음은 물론 현 정부와 검찰의 판단이 잘못되었음을 증명했다.

'대통령 노무현'이라는 실체는 이미 봉하마을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대통령 출신 '인간 노무현'에게서 떨어져 나간 하나의 신화적 의식으로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현 정부와 검찰이 '인간 노무현'을 아무리 지지고 볶고 때리며 밑바닥으로 끌어내리더라도 권위와 권력을 스스로 무너뜨렸던 '대통령 노무현'은 그대로 국민들 안에 살아있었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경찰-검찰 통치에 반발을 하며, '최고의 권력은 국민이다'라는 명제를 지키기 위한 몸부림을 만들어 낸 것은 '인간 노무현'을 넘어 '대통령 노무현'이었다는 것을 이번 일로 인해 새삼 다시 느끼게 해주었다.

한 발 더 나아가 국민들은 '대통령 노무현'과 '인간 노무현'을 다시 하나로 합치는 과정을 밟고 있다. '대통령 노무현'이라는 의식이 머문 머리와 가슴이, '인간 노무현'의 서거로 인해 육체까지 다시 움직이게 하고 있는 것이다.겨우 이틀동안 수십만명의 조문객이 '인간 노무현'을 보기 위해 발을 옮겼고, 수백만명의 네티즌들이 애도의 글을 남기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머리와 가슴과 몸이 하나가 되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여기에 시청광장을 막고, 청계광장을 막으며, 덕수궁 대한문까지 경찰력을 동원해 통제하는 또한번의 패착으로 더욱 '대통령 노무현'과 '인간 노무현'을 국민에게 다가가도록 만들어주고 있다.

현 정부는 국민에게서 '대통령 노무현'을 없애려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인간 노무현'까지 끌어들이는, 자신들에게 불리한 결과를 낳고 만 것이다. 결국 향후 이명박 정권은 노 전 대통령이 만들어놓은 틀 안에서만 행동해야 되는 꼴이 되어버렸다. 또 매년 5월 23일이라는 국민들의 의식이 집결되며 정부에 대한 강한 비판을 가할 수 있는 '기념일'까지 만들어줘 버렸다.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가 극단의 상황에 처하지 않으려면 '대통령 노무현'을 인정해야 한다. 그가 뿌린 씨앗을 인정하고 그가 만들어놓은 틀을 다시 한번 맞춰놔야 한다. 그 안에서 또다른 길을 만들고 씨앗에서 나온 또다른 씨앗을 걷어들여야 한다. 지금처럼 부수고 밟고 할 것이 아니고 말이다. 그러지 않으면, 앞으로도 이 나라 국민의 의식 속에 있는 대통령은 이명박이 아니라 노무현이 될 수 밖에 없다.

- 아해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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