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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일이다. 다소 늦은 나이에 군대에 간 까닭에 소대에는 나이 어린 선임들이 있었다. 하루는 이 나이 어린 선임 하나가 중대에서 떨어진 공중전화로 여자친구에게 전화하러 가니 같이 가자고 했다.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탈영 등의 문제로 무조건 21조로 움직여야 한다. 점오를 위한 내무 정리 시간이 다 되어 왔지만, 후임이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갔다. 결국 내무 정리 시간에 늦었다. 하사관 계급의 당직 사관이 우리 둘에게 왜 늦었냐고 추궁했다. 후임인 내가 나설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그런데 그 이후 상황은 정말 활당했다.

 

선임은 말 없이 뒤쪽으로 나를 툭툭 쳤다. 인간의 본성일 수 있지만, 어이없었다. 그런 선임을 바라보자, 당직 사관은 말은 더 어이없었다. “선임은 왜 바라보냐. 넌 책임이 없다는 거냐. 나이가 더 많으면 그에 걸맞게 행동해야 하지 않냐”. 그냥 황당하다는 말 밖에 안 나왔다. 한명은 앞뒤 상관없이 책임만 추궁하고, 다른 한명은 책임지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던 셈이다.

 

세월호 참사와 어제 일어난 지하철 사고 수습과정을 보면서 이 책임이라는 말이 계속 맴돌았다. 한쪽은 무조건 책임만 추궁하고, 다른 한쪽은 책임지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그 사이에 사망자, 실종자, 유가족 등의 단어는 끼어들 여지는 없다.

 

책임 소재를 가리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 책임이라는 단어가 끼어들 타이밍이 있고, 끼어들지 않을 타이밍이 있다. 그리고 이 책임이라는 단어가 신뢰성 있게 발휘될 수 있는 여건 또한 중요하다.

 

조직의 리더임에도 불구하고 책임지지 않으려 노력하며, 후임에게 책임만 추궁하는 것도 참 못난 짓이지만, 책임의 정확한 소재 역시 가리지 못하는 것도 바보 같은 짓이다. 대통령이 책임지겠다라는 말이 가벼운 이유다. 소재를 가지리 못한 발언이기 때문이다.

 

책임에 대한 언론의 태도 역시 한심하다.

 

사고와 관련된 브리핑과 질의응답을 듣고 있자면, 언론은 그야말로 . 사실 확인해서 알려주겠다는 내용을 그냥 계속 묻는다. 바보도 아니고 말이다. 현장 정리를 해야 할 책임자를 불러내 책임있는 답변을 요구한다. 그러면서 책임자가 제대로 활동하지 못했다고 난리 친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마찬가지다. 며칠 전 후배가 잘못을 했다. 이에 관련된 다른 조직에서 나에게 항의를 했다. 요지는 어떻게 할 것이며,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이냐이다. 당시 출장 때문에 상황 파악이 제대로 안 되어 있었고, 항의 역시 보고 받은 지 20분도 채 안되었을 때다. 우선은 필요한 조치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병신 같은 조직은 그냥 책임지라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일종의 감정 배설이다. 그냥 상대방에게 따지고 책임 운운하면서 몰아부쳐야 자기가 속 시원하기 때문이다. 그런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데 말이다.

 

생각해보면 이는 어릴 적부터 책임을 제대로 배우지 않았고, 어른들에게 책임을 제대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임 소재를 가린다는 것이 문제 해결을 위한 것이 아닌, 누구의 목을 자르고 누구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는 것으로만 인식되어 있기 때문이다. 책임을 부여받는 것, 그리고 문제가 생겼을 시 그 책임에 대해 당당하게 인정하고 지속적으로 수정해 나가 어른이 되는 과정이 삭제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위 대가리도 무슨 국가적 사고가 생기면, 누구 하나 자르면 해결되는 줄 알고 있고, 이 외에는 방법을 따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누군가가 책임져야 하지 않겠나의 의미가 신속하고 제대로 된 문제 해결이 이뤄지기 위해 누군가가 나서야 하지 않냐는 말이 아닌, “누구 머리부터 잘라야 하냐라는 것이다.

 

책임만 추궁할 줄 알고, 또 책임지지 않기 위해서 행동하는 것이 반복된다면 국가적 재앙은 단순히 매뉴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 아해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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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해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