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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도 영화 곡성을 두고 난리다. 누가 죽였는가부터 시작해 그들이 왜 어떻게 존재하는가라는 해석까지 나오고 있다. 이해 불가다. 그렇게까지 깊게 들어갈 영화가 아니다.

 

나홍진 감독은 추격자에서 놀라운 연출을 선보였다. ‘하정우가 범인이다를 극 초반부터 대놓고 말했다. 사람들은 당황했다. 나홍진이 관객들에게 안겨준 것은 분노와 답답함이었다. 분명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공포인데, 영화를 보는 시간에는 그 공포는 사라지고 답답함만 남겼다. 그런데 영화가 남긴 잔향은 답답함에서 일상의 공포로 남았다.

 

당시 영화를 본 여자들은 골목길을 무서워했고, 일상의 남자들은 두려워했다. 영화에서 느껴야할 두려움이 일상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했다. 만약 영화가 범인을 추리해 가는 과정이었다면 의외로 이런 일상의 두려움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곡성은 일상의 공포를 주었던 나홍진이 만들었다고 보기에는 의아할 정도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홍진도 자기가 뭔 이야기를 펼치고 싶은지 모르는 상황에서 샤머니즘을 끌고 왔고, 딱 부러지는 결말은 제시하지 않음으로서 관객에게 해석의 여지를 남겨 스스로가 마치 어떤 큰 메시지를 던지는 듯한 뉘앙스를 안겼다고 볼 수 있다.

 

사실 영화는 황정민과 쿠니무라 준이 동일 인물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말해준다. 영화에서 사라진 장면에서도 황정민과 쿠니무라 준이 겹쳐지는 장면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둘의 포지션을 나홍진 감독이 세련되게 배치하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 그 투박함이 관객들의 세련된 해석을 낳은 것이다.

 

혹자는 이런 능력 역시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맞다. 나홍진 감독이 의도하지 않았지만, 감각적으로 펼친 내용일 수 있다. 문제는 그렇게 나온 결과물에 대한 나홍진의 솔직하지 못한 태도다. 여러 인터뷰에서 나홍진은 영화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계속 의문만 남긴다. 관객들에게 해석을 계속 넘긴다. 이는 마치 가운데 점 하나 찍어놓고 대단한 작품이라 떠들고, 해석을 바라는 이들에게 당신 마음 속에 있는 것이 정답이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곡성이 흥행을 하고 있다고 해서 작품성이 뛰어나다고 보지 않는다. ‘곡성에 숨겨진 의미들을 찾겠다고 다시 영화를 보는 관람객을 뭐라 말할 수는 없다. 그리고 지금 나홍진에게 어떤 의미를 묻는 것은 무의미하다. 어찌보면 영화가 첫 선을 보인 직후에 나홍진은 의미를 이야기했어야 했다. 지금은 나홍진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할 수많은 뛰어난 해석들이 난무한다. 나홍진이 제 말이 저거입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말이다.

 

어찌보면 곡성이 관객들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영화 그 자체보다는 해석능력일 수도 있다.

 

- 아해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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