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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시청 앞 광장과 청계광장에 모여서 정부를 규탄했다. 특히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관한 '장관 고시'가 있던 날이라 더더욱 많은 사람들이 모여 '고시 철회'와 '재협상'을 외치고 있다.

꾸준한 참석은 아니지만 그 현장에 몇 번 참석하면서 난 과거 집회에서 느끼지 못한 느낌을 받았다. 집회를 즐기러 온 사람들에게서 느끼는 에너지다. 이들에게서는 과거 집회와 시위에서 느껴지는 분노의 적의가 없었다.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참석했고, 그 주장은 '활기찬' 느낌을 받았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들은 정부 그 자체에 대한 적의보다는 정부가 수행하는 정책에 대한 불만 표출이기 때문에 '찐한' 분노보다는 더 '찐한' 주장만 있었던 것이다. 과거 시위나 집회의 주 대상은 정부 정책이라기보다는 정부 그 자체였다. 때문에 정책을 비판하는 집회가 어느 순간에 정부 퇴진으로 이어졌다. 대학 내에서 등록금 인상 집회도 어느 순간에 정부 퇴진으로 구호가 바뀌는 일이 왕왕 있었다. 그러다보니 이들에게는 주장보다는 분노가 앞섰다. 앞뒤 계산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앞만 계산했고 그러기 때문에 손에 뭔가가 쥐어져서 앞으로 나아가기만 했다.

재미있는 것은 분노했던 당시 집회보다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지금 집회가 더 무섭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학교에서 배운 민주주의식 토론과 주장을 실천하고 있을 뿐이다. 온라인으로 중심으로 모였던 이들이 과거 2002년때 체화된 느낌으로 다시 광장으로 모였고, 손가락 타이핑으로 논했던 이야기를 '외침'으로서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옆 사람과 동질화된 느낌으로 같이 외치고 같이 노래 부르며 그 안에서 자기 주장을 강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적의'와 '분노'가 자리잡으면 '주장'이 사라지고 본능에 충실해진다. 나와 내 사회가 잘 살기 위해 집회와 시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길거리로 나아간다. 때문에 위험하다. 왜냐하면 이럴 경우 상대에게 '틈'을 내주기 때문이다. 분노한 에너지는 소멸도 쉽고, 방향을 잃기 쉽다.

즐기는 집회와 외침이 무서운 것이 이때문이다. 점점 뭉쳐진 에너지는 더 커갈것이고 방향을 잃을 이유도 없다. 공권력이 개입하기 쉽지가 않다. 길거리로 나아가 소리를 외쳐도 '틈'이 보이기가 어렵고, 설사 개입을 하더라도 고민만 안겨준다. 차라리 분노한 이들은 제압하기 쉽다.

그래서 제안하고 싶다. 집회와 외침을 즐겨라. 집회에서 토론하고 사람들과 소통하며 사회에 대해 갇혀있던 자신을 조금이라도 열어라. 국민들이 정부 정책을 바꾸기 위해 '즐겁게' 모이면 정부도 마냥 같이 웃지는 못할 것이다. 고통스럽고 분노했던 기억에 비해 즐거웠던 기억은 오래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지하게 즐거워야 한다. 내가 참석한 집회와 외침, 소통은 미래 나와 내 후손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며 그 미래가 밝게 만들 수 있는 작업이 '지금'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토요일, 광장이 또 즐겁길 기대해본다.

- 아해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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