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심의 : 심사하고 토의함.

개인적으로 심의라는 단어에 거부반응이 심한 편이다. 원 뜻은 '심사하고 토의함'이라고 말하지만, 검열과 그다지 큰 차이없이 사용된 것이 우리 사회이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당시 동아리에 관련된 무엇인가를 만들려고 해도 '등록제'냐 '허가제'냐를 두고 치열하게 논쟁했던 것을 떠올랐다. 학생들이 무엇인가를 하고 싶어서 몇 명이 모여 단체를 만들고 움직이는 것에 대해 학교측에 일방적으로 등록만 하고 추후 판단은 그 모임과 그 모임을 바라보는 다른 학생들에게 맡기느냐, 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학교의 판단에 맞기느냐는 굉장히 중요한 일이였기 때문이다. 물론 결론은 누구나 예상하듯이 '허가제'로 끝났다. 아직 고등학생이란 신분은 미성숙하고 가치 판단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고등학교 당국의 '동아리 심의'는 동아리 사이에서도 공인동아리/비공인동아리로 나뉘었고, 지원부터 차이가 달랐다.

그런데 15년이 넘게 지난 지금 아해는 오랜만에 다시 '심의'라는 단어를 유심히 보게 됐다. 물론 대학에서도 이후 사회에 나와서도 '심의'라는 말은 여전히 아해와 부딪치는 경우가 생겼지만, 그때 느낌 '심의'는 사회적인 영향보다는 개인적인 영향이 더 많았고, 의외로 여러가지 대화를 통해 넘어갈 수 있었기에 머리 속 깊이 '검열'이란 단어와 연관시키지는 못했다. (특히 2000년을 넘어가면서는 군대를 제외한 모든 공간에서 '심의'와 마주하는 일은 드물었다). 정권이 바뀌어서일까. 이제는 그러했던 '심의'가 본격적으로 사회와 나의 인생에 침범하기 시작했다.

우선 가요계를 보자. 갑자기 노랫 가사에 심의 결과 방송 불가 판정을 받는 곡들이 늘어나고 있다. 아예 노래를 부르지 못하는 것도 있고, 뮤직비디오가 문제가 있어서 상영을 못하는 것도 있다. 청소년들이 많이 사간 동방신기 '미로틱'은 뒷북을 치며 청소년 유해매체물이라고 판정을 하고, 다 듣고 안무까지 따라하는 비의 '레이니즘'은 가사가 야하다고 한다. 이미 다 벗고 나오는 방송, 영화, 공연, 잡지물이 넘쳐나는데 기준도 없이 노출이 다소 있다고 테이의 '새벽 3시' 뮤직비디오를 공중파에서 내보내지 못한다고 한다. (물론 KBS와 MBC에서는 15세 이상 판정이고 케이블은 그대로 나간다. 이게 더 웃긴다) 빅뱅의 멤버 승리의 솔로곡에서 크랙이라는 단어가 마약을 의미할 수 있다고 KBS에서는 방송부적합 판정을 내렸다. (이 심의 내용보고 알았다. 난 크랙을 속어로만 해석하는 심의위원들이 더 문제라고 보는데..) 그런데 어이없는 것은 백지영의 '총맞은것처럼'은 통과했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기준이 뭘까. 총은 되고 마약은 안된다는 것일까.

사람들 입장에서는 "노래말이 이상해서 바꾸라고 심의결과를 내놓는 것이 무엇이 문제냐"라고 말할 수 있겠다. 무의식중에 '딴따라 노랫말이 바뀌든 안바뀌든 내 삶과 무슨 상관이냐'라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대중 문화계가 어떻게 바뀌냐에 따라서 청소년들의 의식과 사회가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대해서는 과거 독재정권이 더 뼈저리게 느꼈다. 대중들이 가장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가요에 억압이 들어가고 기준없는 심의가 이뤄지면 결국 이는 다른 문화계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심의'라는 말이 빈번하게 나올 수록 음악을 만드는 이들은 '자기 검열'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 다른 곳으로 넘어가보자. 이번에는 게임이다. 스타크래프트2에서 전투병용 갑옷 및 헬멧을 장착한 근육질의 사나이인 마린이 시가를 삐딱하게 물고 등장하는 것이 보건복지가족부가 추진하고 있는 청소년보호법 개정안때문에 보기 힘들 듯 싶다고 한다. 청소년 보호법 개정안에 따르면 '누구든지 아동·청소년의 접근 및 이용이 허용되는 매체물을 통해 음주 및 흡연 장면을 노출시켜서는 안된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내용을 보는 순간 머리속에서는 "차라리 청소년에게 컴퓨터를 사용하지 말고 방송도 보지 말 것이며 담배 포스터가 붙어있는 길거리는 다니지 말고, 하지원이나 송혜고, 이효리가 소주 광고를 하는 지하철 역사는 물론, 버스 정거장, 길거리는 다닐 생각도 하지 말게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임에서 담배 피우는 장면 하나 나온다고 전 청소년이 담배에 맛들일 것이라는 사고방식이 어디에서 나오는지 한심했다. 그것보다는 "청소년에게 유해한 국회의원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방송사들은 징계에 처한다"라는 심의규정이 낫지 않을까.

이번에는 다른 내용이다. 방송통신 심의위원회가 2일 MBC '뉴스데스크'의 방송법 관련 보도의 위법성 심의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심의의 근거는 우익수구언론단체인 '공정언론시민연대'가 제기했다고 한다. 이후에는 뉴스데스크 뿐만 아니라 '시사매거진 2580' 'PD수첩' '뉴스후'에 대해서도 심의규정 위반 여부를 심의하기로 했다. 위의 글을 쓴 아해의 성향대로라면 이 부분에서 무슨 말 할지 뻔히 알 것이다. 하도 말해서 귀찮을 정도다. MB정권이 10년 경제도 말아먹다 못해 이제는 10년 민주주의까지 퇴보시키려는 이유를 정말 알고 싶다. 이명박이 한국의 대통령이라면 말이다.

아무튼 '심의'라는 말이 이 정권에 들어와 유독 거스리는 이유는 기준도 없고 말바꾸기는 기본이며, 무조건 억압하고 누르려 하며 입 막으려는 모습이 너무도 생생히 눈에 보여서, 이후 단순히 언론과 문화에만이 아닌 사회, 교육은 물론 국민의 삶 자체에 '심의'를 들이댈 것만 같다는 소름끼치는 느낌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심의'가 국민 전체게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 아닌, 강부자 정권에서 안락한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비껴나갈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다. 실제 부자들의 세금은 낮춰주고, 서민들의 세금과 생필품 가격은 더 올려 어찌되었든 '있는 자들의 세상'을 만들려고 정부가 아둥바둥하는 것이 보인다. '심의'가 없는 세상이 아니라, '심의'라는 단어가 정확하고 공정하게 사용되는 사회에서 살고 싶다.

- 아해소리 -

PS. 사진은 전에 누군가 메신저로 넘겨주었는데 기억이 안나네요. 혹 저작권의 문제로 내려야 한다면 방명록에 남겨주시길. (남겨주시는 이의 미니홈피나 블로그 등 신원도)

728x9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