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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배울 때 기본. "투표는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다'. 그만큼 투표는 민주국가 국민으로 행할 수 있는 최고의 파워이자, 민주 국가 성숙도의 잣대라고 배웠다.

27일 전국 38개 선거구에서 실시된 재보선 투표를 마감한 결과, 전체 유권자 320만8954명 중 126만4355명이 투표를 마쳐 39.4%의 투표율을 보인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밝혔다. 상ㆍ하반기 동시 재보선이 정례화된 2000년 이후의 평균 투표율 32.8%를 6.6%포인트나 웃돌았고 2001년 10.25 재보선(41.9%)과 2005년 10.26 재보선(40.4%)에 이어 3번째로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고 한다.

성남 분당을과 경남 김해을, 전남 순천 등 국회의원 선거구 3곳만 보면 43.5%로 동시 재보선 사상 역대 최고치였다.

그런데 이런 소식이 알려지자 한나라당이 불안해 한다고 한다. 투표율이 높으면 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아니나다를까, 10시 25분 현재, 분당과 강원도지사 선거에서 민주당이 우세하다. YTN은 아예 분당지역에 손학규가 출구 조사 결과 이겼다고 보도했다.

물론 투표율도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한 전략이긴 하다. 어떻게든 선거에서 이기면 되기 때문에 투표율이든, 돈을 주며 자원봉사를 가장한 알바를 쓰든 난리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선거는 민주주의와 가장 동떨어진 제도일 수도 있다. 그러면 아예 한나라당은 "우리는 민주주의를 부정한다"고 말하면 된다. 그런데 그것은 또 아니다. 뭐 이들에게 그런 것을 바라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말했다. 한나라당이 미운 것은 진실성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거짓말을 제대로 못하기 때문이라고. 맞는 것 같다.

투표율이 높으면 불안한 공당을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이 불행하다.

- 아해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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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긴 말일지 모르지만 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집권 3개월만에 이정도로 민심을 화나게 하는 이명박 정부를 보면 한심하기도 하지만 적절한 타이밍에 들어섰다. 전 세계가 경쟁관계로 들어서고 정부과 국민이 똘똘 뭉쳐야 하는 상황에서 그 동안 사실 우리는 안이했다.

 

평화롭고 자유로움은 늘 즐기면 좋겠지만,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 사람들은 진지함을 잃어버리고 생각하기 귀찮아진다. 정부가 뭘 잘못해서 욕을 해도 잘 들어먹히고 동시에 대통령 이하 정부가 무게만 잡는 권위가 없다보니 편하다. 그런데 이 편안함은 바로 나태함으로 이어지고 내가 무엇인가를 찾아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게 된다.

 

 

MB 보호 급한 '친일 후손' 정진석의 어설픈 '노무현 물타기'.

정진석 자유한국당(이라 쓰고 친일자위당이라 읽는다) 의원이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해하지 못할 개 짖는 소리를 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명박에게 정치 보복을 받아 자살한 것이 아니라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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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김대중-노무현 정부이후 또다시 비슷한 정부가 들어섰다면, 즉 제대로 된 민주주의와 자유를 배우지 못한 상황에서 어질어질한 상태까지 간 국민이 아마 그로기 상태가 되어 국가대 국가의 경쟁에서는 밀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국민의 나태함을 일깨어주고 있다. 아주 제대로 말이다.

 

일단 3개월만에 국민들의 마음을 잘 뭉치게 했다. 그것도 과거처럼 20~30대처럼 젊은 층뿐만 아니라 10대의 어린층까지도 길거리로 나오게 했다. 4년 후, 그리고 5년 후 선거에 참여해 정권을 평가할 세대를 길거리로 끌어낸 것이다. 사회에 대해 정치에 대해 무관심한 세대를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 대해 새롭게 느끼게 해줬고 중국에 대해 더 새롭게 느끼게 해줬으며 국가가 정치를 잘못하면 국민에게 어떻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 제대로 알려주고 있다. '가진 자'들을 위한 정책이 어떻게 나올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으며 대통령의 결정 하나가 국민들을 어떻게 죽일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지도자 하나가 국민들을 어떻게 불안하게 만드는지 제대로 학습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은 대통령이 만만하다보니 이야기를 잘 들어주다보니 넘어갈 일이, 이제는 귀 틀어막은 지도자 만나서 답답한 상황을 배우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이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 되고 나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해 계산을 하게 된다. 내가 잘못 투표하면 어떤 재앙이 일어나는지도 보고 있다.

 

지도자에 대해, 선거에 대해, 자유에 대해, 권위에 대해, 대화에 대해, 사회에 대해, 정치에 대해 국민들에게 제대로 이명박 정부가 공부시켜 주고 있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를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3개월이면 족하다. 앞으로 4년이상을 더 공부시켜주지 않아도 될 듯 싶다. 이제 적당히 하고 공부시킨 것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언제까지 국민들의 한숨을 바탕으로 국가를 이끌어갈 생각인지 궁금하다ㅣ

 

- 아해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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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벌어져서는 안되는 상황이었다. 정치가 국민에게 끼치는 영향이 어떠한지는 국민들 스스로가 더 잘 안다. 그래서 노무현을 욕했고 참여정부를 욕했다. 그런데 실제로는 벌어지고 말았다. 국민들은 정치인을 버렸다. '당락'을 떠나 대한민국 정치인 모두가 국민들에게 버림받은 것이다.

총선 결과에 대해 어떤 이는 '절묘한 민심의 심판'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한나라당에 절대 과반을 주지 않았고, 50석도 불안하다던 민주당에 66석을 주어 비례대표까지 81석을 주었다. 비록 몰락했다고는 하지만 민노당에 2석의 지역구를 주었다. 그러나 이는 절묘한 것이 아니라 버림받은 이들의 초라한 성적표일 뿐이다. 민심의 50%의 마음도 얻지 못한, 또 그것의 다시 반의 마음도 얻지 못한 이들의 자화자찬일 뿐이다.

어떤 이들은 투표율이 낮은 것을 보고 선관위를 탓하기도 한다. 그러나 감동과 기대를 갖게하는 정치인을 제대로 갖지 못한 불쌍한 대한민국 국민들의 마지막 결단이 '최저 투표율'이다. "그 놈이 그 놈이고, 어차피 오늘 지나면 상전 노릇할 놈들이다"라는 인식을 주게 한 것이 현직 정치인들이다. 152석이든, 81석이든, 18석이든, 3석이든...국민들이 보기에는 모두 자기 '직업' 구걸하러 온 놈들일 뿐이다.

국민들은 선거를 축제로 만들어주길 바랬다. 그러나 정작 그 축제를 준비하는 머슴들이 건방지게 주인 운운하며 실제 주인공들을 내쳤다. 축제가 망신창이가 되고 주인공들이 모두 무대를 떠나도 머슴들은 서로 주인이라고 싸우고 있다. 그리고 남아있는 절반도 안되는 주인공들에게 어거지로 자기가 주인인 것을 인정해 달라고 졸라댄다. 사돈의 팔촌도 팔고, 조상도 팔고, 주변 사람도 팔아서 졸라댄다. 마음 약한 주인공들이 남아서 선택한 것을 가지고 드디어 주인 노릇할 수 있다고 자랑스러워 한다. 물론 이후 결과는 뻔하다. 주인공들은 무대에서 내려와야 한다. 머슴들이 무대에서 다시 지들끼리 싸울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 선거때 국민들은 투표를 할까. 물론 투표하지 않은 이들이 정치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하지만 이런 사태를 만든 주인 노릇하는 머슴들이 제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이제는 이래라저래라 하는 이들도 사라지고 '정치인'없는 세상을 바라는 이들이 늘어날 지 모른다.

4월 9일 대한민국 국민들은 절묘한 선택을 한 것이 아니라 '버림의 선택'을 한 것이다.

- 아해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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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누구나 들어본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 숫자놀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 역시 스스로 인정해야 할 일이다.


직업상 '%'마크가 달린 글이나 "000명" 등의 표시가 된 글들을 자주 읽는 편이다. 여기에는 묘한 매력이 있고, 빠져들지 말아야 할 것을 알면서도 쉽게 내치지 못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 여대생 50% 성경험" 이라는 제목의 자료를 놓치고 싶은 기자는 없다. 또 이러한 기자들에 의해 생산된 기사를 클릭하지 않고 넘어가는 네티즌들도 많지 않다. 50%라는 조사결과에 매몰되어 버리는 것이다. 웃긴 것은 내용을 보면 한 200~300백명 정도 대상으로 했거나, 어디 대학신문사에서 조사한 내용을 참조한 것이다.


한 대학의 여대생만 해도 수천명일 것이고, 대한민국 여대생은 수십만명일 것이다. 표본의 정확성을 논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설사 표본이 정확했다고 해도 저 내용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그냥 수치에 의한 흥미성 내용일 뿐이다.


이는 요즈음 연일 기사가 나오는 괴물의 관객수에도 적용된다. 1천만명이 봤다고 해서 반드시 (절대적으로) 휼룡한 영화는 아니다. 1천만명 모두가 만족했을리 없기 때문이다. 만일 1천만명 중에서 9백만명은 "그 영화가 왜 난리인데"하고 봤다가 "에이 별로네"라고 반응을 보였을는지도 모르지 않는가. 아니면 연인과 다른 영화 보러갔는데, 스크린이 온통 괴물에 점령당해 있어 발길을 돌리지 못한 채 불가피하게 봤을지도 모른다. 즉 괴물의 1천만명 돌파 혹은 최고 관객수 갱신에 큰 의미를 두고 '숫자의 마력'에 빠져 이것저것 희한한 해석과 분석이 뒤따르는 것 역시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 숫자때문에 사실을 보지 못하고 있을 때도 많다고 생각된다. 즉 '내'가 중요하게 여기고 '내'가 필요한 것인지를 따지기 전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중요하게 여기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인식이 그러한지 따지게 된다.


앞서 제기한 내용을 다시 생각해보자. 설사 표본을 1만명으로 잡고 여대생의 성의식을 조사해 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치자. 그리고 재차 유사한 설문결과가 나왔다고 치자. 여기에 사람들의 의식은 조금씩 바뀌어 간다. "여대생은 자유분방하다 -> 내 주변 여대생들도 그러할 것이다"등으로 희한한 사고의 연결고리가 생기는 것이다.


숫자나 통계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은 곧 사고의 변화의 일으킨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본 글은 그냥 많이 본 글일 뿐이고, 볼만한 가치가 '있을 수도' 있는 글이지만, 꼭 나에게 100% 유효한 글은 아니라는 것이다. 문제는 그 글을 본 숫자의 표기는 바로 그 글에 "뭔가가 있다"라는 믿음을 심게 해준다..


100만권이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는 많이 팔린 책일 뿐이지, 나에게 반드시 '읽어야 할 필요성'이 있는 책은 아니다.


평균이라는 수치도 그렇다. 평균은 어디까지나 전체를 쉽게 판단하기 위함이지, 절대적으로 맹신되는 수치가 아니다.


통계학서적에서 잘 인용되는 이야기가 있다. 1920년대 중국내전 당신, 직진으로 진격하려는 군대가 강을 만났다. 부대의 장수가 강의 평균 깊이를 물어봤는데 참모다 1m40cm라고 답했다. 이 부대 병사들의 평균키가 1m65cm이므로 걸어서 도하가 가능하다고 판단한 장수는 군사들을 도하시켰다. 결과는 많은 부하가 죽었다. 1m40cm는 평균이었을 뿐이고 1m65보다 더 깊은 곳도 있었고, 부하들의 키 역시 1m65보다 작은 병사들도 있었던 것이다. 숫자에 매몰되어 판단이 흐려진 경우다.


가끔 선거때 하는 여론조사도 마찬가지다. 여론이 그러기에 결과적 숫자가 나온다기보다는 그 결과로 인해 부동층이 여론조사와 유사하게 나눠진다고 난 생각한다. 숫자로 사람들의 인식을 움직이는 것이다.


벗어나려 지금도 노력하는 있지만, 숫자와 통계에서 갇혀있는 순간 사고의 틀 역시 갇혀있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해소리-



ps.영화 관객숫자로 흥행배우, 비흥행배우를 나누는 철없는 한 인터넷언론 기자의 글을 보다 생각이 나서 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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