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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디셈버의 개봉 전후에 홍보담당자들은 김준수 출연분의 티켓이 모두 매진됐으며, 3000여 관객들이 기립박수로 디셈버를 향해 열광했다고 전했다. 김준수를 띄우고자 함은 아니지만, 이는 뮤지컬의 힘이 아니라, 김준수의 힘이다. 즉 뮤지컬 홍보담당자들 입장에서는 머쓱해야 할 내용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한 셈이다.

 

과거 김준수는 또다른 엉망진창인 뮤지컬 천국의 눈물을 매진시켰었다. ‘이따구 뮤지컬을 어떻게 탄생시켰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처참한 뮤지컬조차 살려낸 셈이다. 때문에 디셈버의 홍보에 김준수의 티켓파워를 거론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런 화려한 홍보문구와 달리 디셈버에 대한 평가는 호불호가 갈렸다. 뮤지컬 관계자들과 언론들은 혹평을 했다. 그러나 개막 초반과 달리, 수정해 나가면서 점점 좋아졌다는 말을 듣고 124일 오후 8시 공연을 보러갔다.

 

어떻게 보면 이전까지 디셈버는 영화에서나 있을 법한 감독판 뮤지컬이다. 시간도 그렇고, 곁가지가 너무 많았다. 마치 편집되지 않은 영화를 상영했다고나 할까. 그러나 서울 마지막 공연까지 얼마 안 남은 시점에서의 디셈버역시 뮤지컬로서는 만족감을 주기 어려웠다.

 

개막 초반에 지적됐던 뻔한 장면에서의 뻔한 노래는 여전히 헛웃음을 안겼다.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를 사용하기 위해 지욱 친구 최훈의 부모이야기가 나오거나, ‘서른 즈음에를 부르기 위해 복학생의 나이를 굳이 끄집어내는 방법들이 그렇다. 장진 감독이 자신의 장기인 뜬금없는 웃음과 아이러니한 상황 연출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을 이해하더라도, 이를 대극장 뮤지컬에 적절히 접목시키는 기술은 현저히 부족하다는 점만 드러낸 셈이다.

 

사실 기존에 잘 알려진 노래를 가지고 만드는 뮤지컬은 배우들이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열연보다는 익숙한 노래들이 주는 청각적 감동과 즐거움이 우선한다. 뮤지컬 광화문연가가 공연 초반 다소 부실한 듯한 짜임새에도 불구하고 호평을 받았던 것은, 대중들에게 익숙한 이문세 노래를 펼쳐 보이는 타이밍 때문이었다. 청각이 시각을 앞서기에 관객들은 전체 스토리보다는 세세하게 노래말이 펼쳐지는 시점을 구분해 들었고 느꼈다.

 

그러나 디셈버의 장진 감독은 익숙한 노래들로 어느 정도 점수를 먹고 갈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각적인 웃음만 주려 하다보니, 전체적인 흐름을 무너뜨린 것은 물론 먹고 갈수 있는 점수마저 깎았다. 동시에 너무도 강한 노래를 적당히 타협하며, 명장면을 만들었어야 했는데 이를 누르고 가려니, 거꾸로 공연 직후 노래만 남는 꼴이 되어 버렸다.

 

공연 초반보다 어느 정도 다듬어졌다고는 하지만, 장진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연출스타일이 변한 것은 아니기에, 이 같은 문제 역시 크게 개선되지는 않았다. 그러다보니 공감도 역시 떨어졌다.

 

그럼 디셈버는 문제만 있는가. 그렇지는 않다. 배우 개개인의 역량은 재확인했으며, 김광석 노래의 뛰어남을 알게 되었다. 어찌보면 즉사할 수 있었던 뮤지컬이 호흡기 없이도 이정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김광석 노래가 공연 내내 울려 퍼졌기 때문이다.

 

장진이 관객들에게 디셈버를 통해 던진 것은 아쉽게도 이정도일 뿐이다.

 

- 아해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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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가수 이문세는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를 그만두면서 울었다. 그리고 그 라디오를 듣던 고등학생 이상의 수많은 청취자들도 울었다. 그때 내가 감사했던 것이 내 나이였다. 이제 갓 20살을 넘긴 나에게 중고등학교 시절 '밤의 문화부장관' 이문세는 밤마다 재미나고도 편안한 이야기를 들려줬기 때문이다. 1996년 이후의 중고등학생들은 오랜 연륜 속에서 친구가 되어주던 이를 만나지 못한 안타까움을 알 수 있을까.

그런 이문세를 최근에 술자리에서 만났다. 콘서트 이야기, 사는 이야기 등 이문세의 이야기를 들어야 정상이지만, 그 자리에서 도리어 난 '이문세 선배님'이라 칭하며 내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떠들고만 있었다. 아니 떠들고 싶었다. 국민학교 시절 (현 초등학교) 앨범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에 실린 '광화문 연가'를 들으며 어린 나이에 감동에 젖었던 나에게 사석에서 술 한잔 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는 그야말로 추억을 말하는 자리였다. 여기에 중고등학교 때 들은 '별이 빛나는 밤에'에 대한 소회는 꼭 전달하고 싶었다.

이문세는 어느 인터뷰에서 "1996년에 11년 동안 진행해온 '별밤'을 그만뒀다. 11년 동안 진행하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교감 선생님이 된 듯 청취자들에게 훈계하고 있더라. '노땅'이 된 기분이었다. '이제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줘야 할 때가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별밤'을 그만두게 된 이유를 밝혔다.

그 자리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이문세는 "주 청취자가 청소년인데, 그들과 교감하기에는 내가 너무 늙어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과 교감할 수 있는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줘야 했다"고 말했다.

더 재미있는 것은 이문세의 매니저의 말이었다. 그는 "문세 형이 어느 날 길을 가다가 담배를 피고 있는 아이들을 보자, 차를 세우고 내려 아이들을 혼내켰다. 그런 모습들을 본인도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라며 에피소드를 이야기했다.

그래도 아쉬웠다고 난 말했다. 물론 마이크를 놓았던 때 내가 대학생이었기 중고등학교 시절처럼 항상 들을 수는 없었던 시절이다. 아마 그 아쉬움은 누가 '별이 빛나는 밤에'를 진행하든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만 인정하고픈 마음이었을 것이다. 
 
- 아해소리 -

PS. 이날 막걸리 병을 들며 이리저리 따라주고, 사람들을 챙기는 이문세는 여전히 30~40대 '청소년'(?)들의 문화부 장관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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