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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공각기동대> 스토리가 세세하게 생각나지 않는 상황에서 이번 실사판 <공각기동대 : 고스트 인 더 쉘>을 접했다. 그러다보니 영화를 보면서 실시간으로 머리 한 쪽으로는 원작을 떠올리며 스토리를 구분해 이어나갔다. 물론 이번 <공각기동대>와 원작은 오프닝부터 달랐다.

 

원작은 쿠사나기 소령이 빌딩에서 떨어지며 시작한다. (유명한 장면이다). 그러나 실사판은 스칼렛 요한슨이 메이저로 변하는 (정확히는 개조되는) 과정을 시작에 내세운다. 루퍼트 샌더스 감독이 시간에 맞춰 친절한 설명을 하고 싶어서인지는 몰라도 원작의 강렬한 오프닝을 기억하는 팬이라면 당황할 수도 있다. 물론 시간 순서대로 흐름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더 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후에는 이런 자잘한 비교를 할 수 없는 수준으로 넘어간다.

 

영화는 즐기면 볼까 아니면 분석하면서 볼까

극장에서 본 첫 영화는 제목은 기억에 남지 않지만, 홍콩영화였다. 부모님 몰래 친구들과 들어간 지정석도 없는 극장 계단에서 난생 처음 본 거대한 화면은 그냥 멍한 기분만을 느끼게 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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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각기동대

 

<공각기동대>는 전 세계 관객들에게 혼란스러운 생각거리를 던진 영화다. 1995년에 만들어진 이후 많은 미래 소재 영화에 영향을 미쳤다. 이번 실사판 제작 소식이 알려진 후, 화제와 논란이 일었던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원작 <공각기동대>가 던진 화두는 존재였다. 물론 인류사 수많은 종교인들과 철학자들이 이 문제를 거론했고, 나름의 답을 내놨다. 그들의 답은 나는 누구이고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인간 중심의 존재론을 전제에 깔고 있다. 1995년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가 전 세계 관객들에게 충격을 줬던 이유는 바로 이 부분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었다.

기계와 네트워크 세상에서 인간의 존재를 묻는다. 인간의 정신과 기계가 결합할 때 그 상태를 인간이라고 볼 수 있을까. 혹은 인간의 정신이 네트워크라는 수많은 전기적 물질 상태와 결합, 연결됐을 때 이를 무엇이라 부를 수 있을까. 인간이 말하는 영혼과 인공지능이 자체적으로 가진 영혼은 뭐가 다를까. 인간의 존엄과 인공지능을 가진 기계의 존엄은 다르게 판단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원작 <공각기동대>에서 인형사는 너는 한낱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는 존재다라는 사람들에게 인간의 DNA라는 것도 자기 보존을 위한 프로그램에 지나지 않지. 생명이라는 건 정보의 흐름 속에서 태어난 돌연변이일 뿐이다라고 반박한다. 영혼을 DNA을 기반으로 한 것이고, DNA를 프로그램으로 재정의한다면, 인공지능의 존재 역시 인간의 존재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지금도 답이 없는 혼란스러움을 주는 문제를 <공각기동대>1995년에 던진 것이다. 어찌 보면 인공지능의 영역이 미래가 아닌 현재형이고, 현실화된 지금은 진지하게 고찰하며 이야기 나눌 수 있지만, 당시에는 어찌보면 두려움의 영역일 수도 있었다. 이게 실시판에 대한 우려의 시작이다.

 

공각기동대

 

 

사실 스칼렛 요한슨이 메이저(모토코)를 어떻게 연기할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미 액션을 비롯해 다양한 연기를 선보인 그녀가 분명 <공각기동대>에서도 할리우드식으로 친절하게 관객들을 위해 충분한 연기를 보여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CG를 통한 화려함 역시 마찬가지다. 적잖은 언론들이 스크린 속 화려함을 극친하면서 미래 세계를 묘하고도 환상적이게 그렸다고 하는데, 이는 현 시대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서울, 홍콩, 도쿄 야경을 보거나 그것을 찍어서 조금 변형시키면 가능하다) 결국은 1995<공각기동대>가 던졌던 철학적 충격을 2017년 실사판에서 어떻게 보여줄 수 있는가가 관건이었다.

 

그러나 결론은 아니다이다. 스칼렛 요한슨이 자신의 존재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도 많이 그려지지 않았지만, 간혼 등장하는 모습도 존재에 대한 고민이라기보다는 여전사로서의 방향 설정같은 느낌이 들었다. 쿠제 역시 뭔가 철학적인 내용을 던지려고 여러 말을 하는데, 감정 이입이 전혀 되지 않는다. 원작이 던진 메시지를 오히려 반감시켰다. 그러다보니 할리우드식 화려함이 필요했던 이유가 이 같은 철학적 사고를 완성시키지 (혹은 지향시키지) 못한 것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만들어진 듯 했다.

 

 

<작별 인사>(김영하)┃‘인간이 존재할 가치가 있는가’의 답은 ‘우리’다.

김영하의 작가 첫 SF 장편소설 를 지인에게 소개했더니 반응이 이랬다. “야 그런 이야기는 이미 일본 애니메이션은 물론 영화에서도 많이 나왔잖아. 뭐가 다른 거지?" 는 자신을 인간으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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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앞서 거론했듯이 1995년과 2017년의 관객들의 경험과 의식은 다르다. 그렇다면 감독은 더 고민했어야 했다. 원작이 던진 메시지를 충실히 전달한다는 것은 사실 1995년의 던져진 메시지를 접한 충격보다 절반, 아니 10분이 1도 안 된다. 그래도 충실도에서는 합격점을 받았을 것이다. 만약 그 당시 충격도와 동일시 하려며 엄청난 재해석에 들어갔어야 했다. 그런데 감독은 이는 아예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러다보니 결국 택한 것은 할리우드식으로 당시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뿐이었고, 포지션은 어중간해졌다.

 

어찌 보면 원작을 안 본 관객들 입장에서는 스칼렛 요한슨으로 시작해 스칼렛 요한슨으로 끝나는 액션 영화로 받아들여도 되고, 여기에 아주 조금 존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즉 덜 진지해지면 <니키타> <5원소> <레지던트 이블> 등의 연이어 떠오르는 영화를 한 편 볼 수 있게 된다는 말이다.

 

아해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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