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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 페라리팀 이적 이후 5년 연속 대표 드라이버이자  페라리팀 사상 최다 승리를 거둔 드라이버.그의 존재 없이는 지금의 F1을 말할 수 없다.
그 경이적인 드라이빙 테크닉, 레이스를 꿰뚫어 보는 냉정한 판단력,어떤 차를 타더라도 빠른 속도를 내는 천재성, 승리에 대한 질리지 않는 집념. 게다가 하늘이 내린 운까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천재의 재능을 가졌으면서도 승리를 위한 부단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 스타일. 노력하는 천재인 그는 작년 페라리팀에 16년만의 컨스트럭터 타이틀을 안겨 주고, 드디어 올해는 드라이버 타이틀 획득을 노리고 있다
 
"슈마허는 아직 걸음마도 배우기 전부터 수영을 아주 잘하는 아기였어요. 처음 카트를 탔을 때는 내가 줄로 묶어 끌고 다녔었는데, 너무 재밌어 해서 엔진을 단 카트를 선물했더니 전혀 무서워 하지도 않고 행복해 하더라구요. 슈마허가 4살때의 얘기죠"
어린 시절 슈마허는 독일의 만하임 케어핀으로 이사를 가, 그곳에서 카트와 첫 인연을 맺게 된다. 그의 아버지가 회상하는 대로 슈마허가 4살 때 받은 엔진 달린 카트 선물은, 슈마허가 장차 세계 모터 스포츠의 영웅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된다.


그 시절, 슈마허의 부친은 손재주가 좋아 고카트(Go Kart) 정비사로 일하게 되는데 덕분에 슈마허와 그의 가족들은 카트의 세계를 처음 접하게 되고 그 매력에 흠뻑 빠져 든다.
1980년, 슈마허는 벨기에 니벨레스(Nivelles)에서 열린 세계 카트 선수권 대회를 관전하면서 당시 최고의 레이서였던 아이르톤 세나(Ayrton Senna)의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는다.


그 때부터 레이서의 꿈을 꾸게 된 슈마허는 1984년 15살의 나이로 독일 쥬니어 카트 선수권에 출전해 당당히 우승을 차지함으로써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또한 1987년에는 유러피언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하기도 한다. 그는 독일의 포뮬러 포드에 입문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카 레이싱의 길로 접어든다. 몇몇의 스폰서가 대회마다 우승을 거두는 젊고 가능성있는 그를 주목해 슈마허는 좋은 조건으로 스폰서를 얻게 된다. 선수로서 풀 시리즈를 뛴 첫 해에는 10전 중에서 9승을 따내는 쾌거를 올린다.
이를 눈여겨 본, 빌리 베버(당시 F3 팀을 운영하고 있었으며, 훗날 슈마허의 매니저가 됨)는 슈마허에게 F3 머신 테스트를 제안하게 된다.


이 테스트에서 슈마허는 7, 8 랩을 주행할 때 이미 베버팀의 정규 드라이버보다 1.5초 이상 빠른 기록을 내어 이를 지켜보던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F3 진출 첫해 가장 강력한 라이벌은 칼 벤들링거와 하인즈 프렌첸이었다. 하지만 다음 해에 슈마허는 시리즈를 모두 평정한다. 이들은 모두 훗날 F1 드라이버로 진출하여 또다시 만나게 된다. 베버는 슈마허를 F1으로 가는 통상적 관문인 F3000에 진출시키지 않는 대신에, 메르세데스 쥬니어 팀(스폰서)에 배치하여 소버(Sauber)팀의 스포츠카를 몰고 F3 시절의 라이벌들과 경쟁하도록 했다.


여기서 슈마허는 니어스 파크와 마스에 의해 레이스카 운전에 대한 집중적인 교육을 받게 된다. 특히 이 기간 중 슈마허는 훗날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는 부드러운 스타일의 드라이빙 기술을 익힌다. 조단(Jordan)팀의 드라이버인 버트란트 가쇼(Bertrand Gachot)가 수감되는 사건으로 슈마허는 조단팀에 입단하는 기회를 잡는데 테스트에서 슈마허의 랩타임 기록은 매우 뛰어났다고 한다


조단 팀은 3년간의 계약을 원했다. 그러나 슈마허 측은 아주 신중하게 계약에 임해 결국 임시 계약을 했다. 그는 조단 팀의 유니폼을 입고 벨기에의 스파에서 화려하게 데뷔한다. 경험 많은 팀 메이트보다 7그리드나 앞서며 예선을 마친 것이다.

다음 해에는 스파에서 우승을 낚았다. 1994년 세계 챔피언에 등극한 슈마허는 1995년에도 또 한번 챔피언에 올라 세계선수권 2연패를 이룬 최연소 선수가 되었다.
1996년 슈마허는 페라리 팀으로 이적하게 된다. 아이르튼 세나의 비극적인 죽음 이후 슈마허는 F1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굳힌다.

화려한 명성을 증명해주듯 1997년에는 경제전문 포브스지가 발표한 97년 고액 소득 운동선수 40인 중 4위에 오르기도 한다. 1위는 농구의 황제 마이클 조던(총7천8백30만달러)이었으며, 슈마허는 3천5백만달러(한화 약 4백억)이었다. 

슈마허가 가장 좋아하는 그의 애마는 세계 최고의 스포츠카 페라리의 360 모데나. 올해 5월 우리나라에서 열린 수입차 모터쇼에 선보이기도 한 페라리 360 모데나는 3600cc, 4백마력의 엔진에 최고시속은 2백 95km로 시속 100km까지 가속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4.5초. 주문 계약한 뒤 1년을 기다려야 출고될 정도로 인기있는 모델이라고 한다.


독일이 고향인 슈마허에게 독일의 대표적인 기업인 메르세데스팀이 현재의 페라리 팀보다도 고액의 오퍼를 내고 있지만, 슈마허는 페라리에서 오랫동안 달성하지 못한 드라이버 챔피언 획득을 목표로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이적은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단순히 서킷을 일주하는 속도 뿐만 아니라 기후, 코스의 상황,자신과 상대 차량의 상태를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

이 모든 것이 다른 드라이버를 훨씬 능가하고 있는 슈마허이지만, 아이르튼 세나 이후 강력한 경쟁자의 부재는 재능이 뛰어난 그에게도 이로운 것만은 아닐 것이다. 슈마허는 과연 최고의 드라이버인가?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그의 왕좌를 노리는 경쟁자들도 날로 늘어나고 있다. 여기에 그가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그의 커리어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생년월일 : 1969년 1월 3일
 
출신 : 독일
 
현주소 : 스위스 로잔느
 
혈액형 : O형
 
신장 : 174Cm
 
체중 : 74.5Kg
 
가족관계 : 처 Corinna, 장녀 Gina-Marie(97년생),장남 Mick(99년생)
 
취미 : 고카트 , 휴양
 
스포츠 : 축구, 달리기, 마운틴 바이크
 
음악 : 락(Rock), 댄스 음악
 
좋아하는 가수 : 마이클 잭슨, 티나터너, 휘트니 휴스톤
 
좋아하는 음식 : 이탈리아 요리
 


주요경력


1984년  -  독일 카트 쥬니어 챔피언
 
1987년  -  독일, 유럽 카트 챔피언
 
1988년  -  독일, 포뮬러 챔피언
 
1989년  -  독일 F3 선수권 시리즈 3위
           -  마카오 F3 선수권 챔피언
 
1990년  -  메르세데스 쥬니어 팀 참가
           -  독일 F3 선수권 챔피언
 
1991년  -  전일본 F3000선수권 스포트참전 2위
           -  F1데뷔(벨기에 GP/조단)
           -  베네통으로 이적(이탈리아 GP/5위)
 
1992년  -  벨기에 GP에 첫 우승
        -  1승/시리즈 3위(베네통)
 
1993년  -  1승/시리즈 4위(베네통)
 
1994년  -  8승/시리즈 1위 월드 챔피언(베네통/사상최연소기록 : 25세)
 
1995년  -  9승(사상최다기록)/시리즈1위 월드 챔피언(베네통)
 
1996년  -  3승/시리즈 3위(페라리)
 
1997년  -  5승 / 시리즈 순위없음(시리즈 2위 기록말소/페라리)
 
1998년  -  6승/ 시리즈 2위(페라리)
 
1999년  -  2승/시리즈 5위(7전 결장/페라리)
 
2000년  -  1996년 페라리팀 계약 이후 5년째(2002년까지 페라리팀 계약)
 
/자료 : 삼성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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