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기자들은 정보를 장악해서 사실에 접근하는 고통스런 훈련을 기피한 채 너도나도 멋쟁이 문장가로 변신해가고 있다.....당대의 사실을 풍문으로 방치하는 것은 기자의 죄악이고 당대의 풍문을 과거의 비화로 팔아먹는 것은 기자의 더욱 큰 죄악이다. 우리는 비화 없고 풍문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그것이 내가 안느 정희상 기자의 꿈이다" - 김훈-


진지함을 잃어버린 세상이라고들 말한다. 난 언제나 그 몫을 언론의 직무유기에서 찾는다. 제대로 돌아가는 세상을 위해 바뀌어야 되는 부분을 처절하게 파헤쳐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세상에 흔치 않다.


검찰과 경찰은 사실을 가지고 논하는 사람들이지, 진실을 정립하고 세상에 알리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법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들이지, 억울함과 슬픔을 논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어쩌면 글쟁이들이 - 기자, 소설가 등 - 바로 이 몫을 해야 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몫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그 일에서 고개를 돌리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은 그 고개를 돌린 문제에 접근하는 한 기자의 수첩속 이야기다.


이야기는 6개다. 김훈중위 의문사 사건, 56년만에 울리는 문경주민 양민 학살 사건, 김형욱 전 중정부장을 죽였다고 밝힌 특수 공작원 천보산의 암살 고백, 히로시마 피폭 2세 김형률씨의 삶과 죽음, 양심선언 현준희씨의 10년 투쟁 기록, 그리고 친일파 후손의 조상땅  찾기 과정..하나의 현대사를 그대로 써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단순히 내용만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 어쩌면 이 스토리를 통해 저자인 정희상 시사저널기자는 후배기자들에게 그리고 기자가 되려는 이들에게 반성을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자는 기록하는 자다. 더불어 그 기록은 진실해야 한다. 서문에서 소설가 김훈 (그도 기자출신이다)이 썼듯이 지금의 기자들은 문장가다.  그러나 사실을 꾸며내는 문장가일 뿐이다. 사실이 곧 진실은 아니다. 진실은 세상을 울리고 변화를 시킨다. 그러나 사실은 그냥 사실일 뿐이다. 교통사고가 났다면 기자는 그 안에서 이야기를 끄집어 내고, 사후를 정립해야 한다. 그 과정은 지리하고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경찰서를 들어가면 사건기록 장부가 있다. 아침에 서울에 있는 경찰서를 돌며 사건을 챙기는 수많은 기자들이 그 장부를 보고, 혹은 담당 형사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사를 쓴다. 일명 사건사고 스트레이트 기사다. 수많은 기자들이 여기서 기사의 마침표를 찍는다. 왜? 를 실종시킨다.


사람들은 말한다. "사건이 터지면 나오는 수많은 분석기사들도 있다. 그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미 터진 사건은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 대부분 밝혀진다. 또한 옳은 것인지 아닌지를 따지지않고 세상의 흐름에 맡겨 그안에서 '꺼리'를 찾으려는 기자의 시각은 한계가 존재한다.


어두운 곳. 그러기에 가슴 아픈 곳. 그러나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곳으로 가야하는 기자들이 밝은 곳, 돈이 모이는 곳으로 가고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세상에 알려야 될 문제는 보지 못하고 스스로의 시각안에서 알리고 싶은 이야기만 찾아 돌아다니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것들 말하고 있다. 저자의 기자수첩을 통해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밝혀야 될 문제를, 그리고 누구나 겪을 수도 있고, 겪었을 지도 모르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정희상 기자의 취재스타일이나 보도 스타일이 교본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이 수준으로도 따라가지 못하는 수많은 기사와 이를 생산해내는 기자들은 꼭 읽어봐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잘났다고 생각되는 대한민국의 어두운 그늘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도 말이다.


책에서 간혹 나오는 이름들로 당혹스러움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민주화의 대표성을 지닌 이들이라 생각되는 사람들이 거꾸로 그 민주적인 모습을 부정하는 내용이 종종 보이기 때문이다.


진실은 받아들이기 힘들고 괴로운 법이지만, 진실을 모른 채로 살아가는 것은 더욱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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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간 것은 지난 해 여름이었지만, 지리산을 진짜로 만난 것은 3년전이다. 지난 해는 비가 많이 와서 제대로 올라가지도 못하고 내려와, 군산 선유도로 발길을 돌렸으니 지리산 끝자락서 인사만 하고 온 셈이다.


3년전 제대로 한번 지리산과 만나보자고 후배와 올라갔다. 이틀 밤을 자고 3일을 올랐다. 이전에 이미 며칠짜리 도보여행도 해봤고, 제주도 자전거 하이킹도 이래저리 5번정도 갔다왔으니, 지리산이라고 별거겠냐 싶었다. 아니 그 전에 뱀사골쪽으로 한번 살짝쿵 올라가 본 것이 화근이었다.


하룻밤을 산장서 지내고 가는 길에 난 지리산에게 가혹한 벌을 받았다. 다리 뒤쪽 근육이 무리하게 사용해서인지 제대로 접혀지지를 않았다. 내려가는 길을 온전히 가지 못하고, 뒤로 돌아서 천천히 내려가야했다. 덕분에 난 후배와 더불어 첫번째 산장서 인사를 나누고 이래저래 동행이 되어버린 사람들에게 미안함을 느껴야했다.


산은 의외로 단순하면서도 가혹하다는 말이 사실임을 깨달았다. 천천히 꾸준히 공경하며 또 믿으며 올라갔어야 했는데, 인간사 되풀이되는 문제인 '정복'의 개념으로 간 것이다. 만나러 가서 발밑에 정복하겠다고 갔으니, 어찌 벌을 안 받겠는가. 그러니 지리산이 나에게 앞으로 똑바로 보고 내려오지 못하고 뒤돌아 한발한발 발 뒷굼치에 힘주어 내려오게 한 것이다.


산 봉우리 봉우리 오를때마다 내가 경솔했음을 다시금 느꼈다. 내가 정복할 산이 아니었고, 내게 정복당할 산이 아니었다. 뒷짐지고 올라가는 뒷산조차도 어느때는 길을 헤매게 만드는데, 세개의 도를 걸쳐 인간사를 내려다보는 산을 발 밑에 두고자 했으니 정말 경솔했고 또 경솔했다.


봉우리 위에서 보니 하나의 봉우리가 다른 봉우리를 이끌고 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또 나를 서있게하는 이 봉우리도 내 뒤쪽의 봉우리를 쫓아 어디론가 힘차게 가는 것 같았다. 그 뒤를 보니 검은 먹구름이 끼어 비가 오는 듯 했고, 오른쪽은 화창해 누워 잠자고픈 마음도 들었다.


자연이 사람에게 벌을 줄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람이 자연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잃어버렸을 때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것이다. 어느 시인이나 소설가처럼 어떤 가르침이나 충격을 받고 온 것은 아니다. 단지 내 머리속에서는 또 가고 싶다는 것과 더불어 친하게 만나고 싶다는 생각뿐이다.


힘들때, 나를 찾고 싶을 가는 곳이 완도라면 지리산은 나를 키우고 싶을 때 가고싶다는 생각을 한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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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책이 조금이라도 더 쉽게 쓰여졌음을 은연중에 내보이는 방법중에 하나가 책명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다 '카페' '산책' '하룻밤에' 등등.. 이 책 역시 그러한 의도일 것이지만, 동시에 그 의도에 가장 잘 부합하게 글을 썼다. 저자 황주홍교수는 가볍게 그러나 나름대로 상세하게 이 책을 써나가고 있다.


책의 내용은 간단하다. 6명의 미래학자들과 그들의 주장을 설명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황교수의 간단간단한 코멘트가 연결되어 있다. 마치 강의를 하는 것처럼..황교수가 소개하는 학자들은 누구나 한번쯤 들어본 앨빈 토플러, 새뮤얼 헌팅턴, 프랜시스 후쿠야마를 비롯해 경영학도들에게는 친숙한 피터 드러커 그리고 다니엘 벨, 폴 케네디가 그 사람들이다. 설사 이들을 몰라도, '제 3의 물결' '문명의 충돌' '단절의 시대' '이데올로기의 종언' '역사의 종언' '강대국의 흥망'등의 책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간단히 말해 이 책들의 저자들이다.


미래라는 것이 학문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과거 점술 등을 통해서도 미래를 점쳤는데 '흐름'을 통한 점쟁이가 되는 것 역시 그다지 나쁜 것은 아닌 듯 싶다. 이들이 말한 미래는 어떻게 보면 당연한 흐름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이미 일반화되어 있기에 우리가 못 느끼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불확실하기에 불안하고 동시에 희망적이며 투자할 가치가 있는 미래에 대해 이들은 '단정적'으로 확신하며 말한다.


사실 이 책은 사기치기 용이한 내용들로 차있다. 어찌면보면 '대학생이 읽어야 하는 필독서 0권' 등에 자주 등장하는 저 위의 책들을 사실 제대로 읽어본 사람들은 드물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런데 어디서 줏어들은 내용들도 읽은 양 - 혹은 너무나 많이 저 책들에 대해 들어서 스스로 착각할런지도 - 다른 사람들에게 말한다. 이런 이들을 위해서는 이 책은 더할 나위 없는 '사기서'다. ^^. 하지만 동시에 친절한 설명서이기도 할 것이다. 저들의 책들을 모두 읽을 필요가 없다고 느끼는 '미래적 감각'을 지닌 이들에게는 말이다.


개인적으로 후쿠야마의 트러스트를 읽을 때, 지리하다는 느낌만 받았을 뿐 이것이 왜 필독서로 되었고, 과거 내 대학때 어느 교수의 침튀기는 극찬을 들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뻔한 이야기를 지리한 설명로 늘어놓고 있으니 말이다. 어쩌면 역사의 종언이후 올라간 후쿠야마의 이름에 그냥 편승되어 나온 책일런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결론적으로 황교수의 '미래학 산책'을 한번쯤은 흟어볼 만한 책이다. 적어도 졸만큼 지루하거하지는 않다. 도리어 옆에 필기도구를 꼭 지참하고 봐야할 책 중에 하나다. - 단 출판사가 마음에 안 들었다. 조선일보사.....사라고 말하기는 어렵고, 서점에서 그냥 보기에 적절하다. 아니면 빌리거나..^^;;)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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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카의 전사들.

기타의 기억들 2005. 6. 23. 01:18 Posted by 아해소리
 

사실 고등학교때 이 책을 읽었을 때는 정말 '재미'있었다. Tom Clancy의 소설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그의 해박한 지식이나 치밀한 구성은 그의 책뿐만 아니라 영화까지도 끌어들인다. 마약전쟁, 패트리어트게임, 붉은 10월 등 그의 소설은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도 어느정도 들어봤을 정도다. (이때 그의 책에 빠져서 베카의 전사들 뿐만 아니라 위의 책들을 모두 구입해버렸다.--;;) 덕분에 주인공 잭 라이언이라는 인물은 한때 007시리즈 이상의 영웅적 추앙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고등학교이후 이 책은 솔직히 별로 권하고 싶지는 않았다. 전통적인 미국적 영웅주의에 철저하게 부시정권의 '악의 축'의 기본 모델인 듯한 느낌마저 주기 때문이다. 선과 악의 대립..그리고 언제나 선은 미국. 모든 문제해결의 중심도 미국. 이때문에 생긴 사고방식이 선하기 때문에 강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강하기 때문에 '선'이라는 가치를 획득할 수 있다는 이상한 논리..


알라후 아크바르! (알라신은 자비로우시다)  아랍권의 부흥적 기대가 잔뜩 담긴 저 말을 미국적 가치관에서는 공공의 적들의 슬로건으로밖에 보지 않는 이 소설은 분명 문제가 있다. 뭐 지금은 이 책을 구입하지는 못한다. 아마도 어느 중고서점에 가서나 힘들게 구할것이다. (때문에 이미지를 올리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읽고싶은 이들이 있다면......^^)


그래도 가슴의 울린 말은 있었다. 이 소설을 내내 읽으면서 내용에 깊이 빠져들고 있었는데 주인공인 라이언이 스스로의 위치를 망각한 채 미대통령의 명령을 거역하고 일을 해결할 때 밑의 부하들이 당황하자 한 마디......


"대령 대통령은 지금 제 정신이 아니오. 대령이 만일 대통령 명령대로 이 일을 중단시킨다면 대령 가족과 내 가족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죽데 될 거요. 대령이 충성 서약을 한 대상은 국가의 헌법이지 대통령이 아니오. 전문들을 다시 한번 훑어보고 내가 잘못되었는지 말하시오!"


멋진 말이다. 가끔 이 나라의 정치인들이 누구를 위해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를 때 간혹 저 말이 생각나기도 한다. 세 권짜리 소설에서 단 한줄의 말이라도 건질 수 있다면 꽤 의미있는 성과가 아닐까.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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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골당.

기타의 기억들 2005. 6. 22. 18:18 Posted by 아해소리
 

대구에서 부산으로 가는 길에 위치한 천태사내 납골당이다. 친구 2명과 여행가다가 들린 곳인데, 저녁때 본 납골당은 그다지 으시시하지는 않았다. 그냥 슬펐다. 도리어 뒤에 배경으로 있는 산을 보는 기분이 더 으시시했다.


사진은 130만화소 폰카...밤에는 확실히 화질이 조금 떨어진다.



 
천태사 경내로 들어가 납골당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납골당내 탑이다. 저 안에도 유골이 모셔져있었다.
 
 

 
 
 
줄 잘 서있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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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 이외수

기타의 기억들 2005. 6. 21. 23:17 Posted by 아해소리
 

실질적으로 내가 마지막으로 구입한 소설이라 할 수 있다. 대학때부터 이상하게 소설이라는 장르와 멀어지기 시작했다. 1년전쯤 솔직히 내가 누군지도 모르겠고 뭘 해야할지도 모를 때, 어디선가부터 자극을 받고 싶었다. 그렇다고 누군가 날 때려줄 사람도 없고 (또한 맞으면 아프다.--) 멀리 여행을 가더라도 이상하게 자극은커녕 또다른 고민거리로 연결되어 돌아오곤 했다. 때문에 정신적 자극을 그 돌파구로 삼았고, 그 때 구입한 책이 이 이외수의 소설 '괴물'이다.


언어의 연금술사로 불리는 이외수인만큼 문장의 아름다움은 보증되어 있었다. 또한 약간의 몽환적 분위기의 구성또한 매력적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제목만큼 자극적이거나 가슴을 울리는 흡입력은 떨어졌다. 때문에 난 내가 그동안 소설을 읽은 감성적 느낌이 사라졌나하고 다시 읽어봤다. 여전히 흡인력은 없었다. 어떻게 보면 대학때 읽은 들개가 더 심장을 울렸던 것 같다.


그러나 소설은 권할 만하다. 이외수라는 이름때문만은 아니다. 중간중간 '인간'이라는 것..그리고 그 이면적 다양성에 대해서는 어쩌면 질리도록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그가 꿈꾸는 이상향에 대해 한번쯤은 심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차피 그가 말 안해도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괴물적인 이면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인정하지 않을 뿐이지..'설마'라고 생각하는 '이상한' 사람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영화 '쓰리몬스터' (어차피 같은 말인데..쩝) 를 권한다.


조금 잔인하기는 하다 (극장안 여성들이 기절했으니) 그러나 박찬욱감독의 첫 몬스터를 보다보면 섬뜩해져 오는 것은 그 장면때문이 아니다. 내가 들켜서일 것이다. 속내가 들켰을 때 벌개져 오는 얼굴의 화끈거림..그것을 소설 괴물에서 직접 찾아내기는 힘들겠지만, 느끼기에는 무리가 없을 것이다.


아무튼 소설 괴물은 나같은 동기에서만 아니라면 읽어볼 만한 내용이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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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미...

기타의 기억들 2005. 6. 1. 23:01 Posted by 아해소리
 

책을 읽다보면 어느 때부터인가 저자들의 필체가 많이 편해졌다는 느낌을 받는다. 즉 문어체가 아닌 구어체로 변해가고 있으며, 이에 한발 더 나가 글속에 마치 대화하듯 중간중간 농담도 섞어가며 편하게 '말'하고 있는 느낌도 준다. 오주석의 한국의 미는 전문적인 내용을 너무나도 편하게 말해준다. 어떻게 보면 유흥준의 나의 문화답사기류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결코 그것과는 다른 편안함을 준다.  솔직히 나의 문화답사기는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졌지만, 편안함보다는 약간의 무게감을 준 듯한 느낌을 준다. 마치 이 땅의 문화를 앎에 있어 적극성을 가져야 된다는 의무감을 말이다. 사람에 따른 정도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듯해서 왠지 무겁다는 느낌을 내내 받았다. - 물론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사람들은 그저 재미있는 책으로 가볍게 읽어나갔지만 - 어쨌든 오주석은 그런 면에서는 의무감은 없다. 단지 '왜' 문화에 대해, 한국의 미에 대해 사람들이 알아야 하는지를 '제시'해 줄 뿐이다.

책표지의 호랑이가 참 마음에 든다. 처음에는 왜 저게 나왔을까? 또 한국인의 기상 어쩌구저쩌구할 작정인가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얼추 맞았지만, 단순한 차원의 기상이 아니었다. 일제때 일제양식의 그림으로 죽은 우리의 기상과 비교해 설명해주면서, 우리 그림과 문화가 '죽은'형태로 후손들에게 물려진 과정을 설명해주었다. 특히 앞서 말한 호랑이의 비교는 '아!!'라는 감탄사가 나올 정도다. 아무튼 한국문화에 대한 내가 본 책중에서는 - 전문성을 담보한 내용을 제외하고는 - 가장 뛰어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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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AN 2011.10.18 04: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저자는
    '유홍준' 교수님입니다.

곽재구의 포구기행

기타의 기억들 2005. 5. 30. 01:29 Posted by 아해소리
 

몸이 구속되어 있는 상태에서 읽는 여행관련 서적은 참으로 사람을 힘들게 함과 동시에 한편으로 기쁨을 준다. 특히 나같이 역마살이 낀 사람은 더더욱 그렇다. 병원에서 우연히 집게된 '곽재구의 포구기행'은 사람마음을 심하게 출렁이게 했다. 멋있는 사진과 몇몇 시적인 표현은 일반적인 기행서적에 많이 나오긴 하지만, 솔직한 자신을 처지를 읽은 이와 동일시시키기에는 굉장히 어렵다. 곽재구 시인은 비틀어진 틈사이를 절묘하게 끼워맞추는 식으로 읽는 이를 푸근하게 만들었다. 책을 집은후 읽을만한지 편 첫 문장은 여행자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입장을 대변해주는 듯 했다.


"조금 외로운 것은 충분히 자유롭기 때문이다"


솔로를 대변하는 말은 아니다. 외로움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고, 단지 그 정도의 차이다. 많은 외로움은 인간이 살아가는 목적을 상실케 하지만, '조금' 자신이 느끼기에 스스로를 되돌아 볼 약간의 외로움은 자유롭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다른 한 편의 구절은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는 이들을 초라하게 만들었다.


"금고에 돈이 쌓여있고 도시에 큰 집이 있고 책갈피속에 연인의 사랑스런 편지가 가득 꽂혀 있다면 그 영혼이 어떻게 가벼워 질 수 있을까요. 족쇄에 채워진 채 자신의 몸 하나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이 어떻게 지상의 풀잎이나 나뭇잎 하나를 들어올릴 수 있을까요"


나도 그랬다. 한번 움직이려면 이리저리 따지다가, 곧 내가 가고자 하는 공간과의 교감을 끊어버렸다. 자유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곽재구시인은 현실을 말하는데 또한 인색하지 않았다.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으면서..


"산다는 것, 밥을 먹고, 시를 쓰고, 노동을 하고 음악을 듣고, 자유와 정의의 획득을 위한 얼마쯤의 투쟁을 하고 주말엔 한 아낙과 새끼들의 손을 잡고 영화관에 가고...왠지 그런 모든 풍경들이 다 쓸쓸하게 다가왔다"


사는 것이 이렇게 몇줄로 처리된다는 것에 허망함조차 느껴졌다. 물론 삶의 세세한 곳에는 복잡한 인간사가 한꺼번에 펼쳐질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 모두가 이 틀을 벗어나지는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누군가가 삶에 대한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저 글이 떠올랐다.


삼천포, 정자항, 구만리, 순천만, 구시포, 우도, 조천, 지심도, 어란포구.......이 땅 곳곳의 아름다움을 한번더 느낄 수 있는, 손안의 여행을 이 책을 통해 충분히 느꼈다. 어쩌면 근일내 이 책을 배낭에 넣고, 이리저리 헤매고 있을런지도...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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