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란.

일상에서의 생각 2017. 1. 10. 11:53 Posted by 아해소리

여러 자리에서 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가 있다. 글을 쓰는 직업인지라 (물론 지금은 내 글을 자주 쓰기보다는 주로 다른 이의 글을 고치고 있다) 종종 내가 있는 자리에서는 글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오곤 한다. 질문의 형식은 다르지만, 내용은 비슷하다.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을까요?”

 

그럼 비슷하게 되묻는다.

 

왜 글을 잘 쓰고 싶은데요?”

 

이 질문에 자기 생각을 담아 대답하는 사람들은 드물다. 무엇을 표현하기 위해 글을 잘 쓰고 싶다기보다는 형식에만 매달린다. 그냥 글 잘 쓰는 사람이 멋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를 탓하고 싶지는 않지만, 글을 어떻게 접근하냐에 따라 그 사람의 글의 무게와 형식이 결정된다고 배워서인지, 고개를 끄덕이긴 어려운 답이다.

 

물론 글을 어떻게써야 잘 쓴다는 것은 답이 없다. 지름길도 없다. 그냥 계속 써야 한다. 어느 소설가의 말처럼 엉덩이 붙이고 계속 쓰는 사람을 이길 글쟁이는 없다. 이는 진짜다. 과거 한동안 다른 일 때문에 글을 쓰지 못한 기간이 꽤 길었다. 물론 이 기간 동안에도 다른 이들의 글을 고쳐주기는 했다.

 

그런데 내 글을 쓰려 노트북을 켜는 순간, 종이를 보는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변함을 느꼈다. 쓰고 싶은 내용은 있는데,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내 글을 잠시 잊었던 것이다. 그 감을 찾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지만, 그 경험은 꽤 충격이었다.

 

글을 잘 쓰고 싶다면 계속 써야 한다는 것은 진리다. 그런데 앞서 언급했듯이 어떻게 접근하냐에 따라서 그 의 방향은 달라진다. 여기서는 글을 잘 쓰는 방법이 아니라, 글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글은 이고 권력이다. 글이 이 자리에서 내려온 것은 인류사 이후 한번도 없었다. 글을 읽고 쓸 수 있다는 것 하나로 사람들은 권력을 가졌고, 변화를 시도했다.

 

과거 글은 권력자의 소유물이었다. 때문에 글은 소수의 사람들만이 소유가 가능했고, 일반 대중들에게는 전달되지 않았다. 중세 서양의 경우 문맹률이 90%를 넘었다. 이 당시 글을 읽고 쓸 수 있는 층은 집권층과 종교인들뿐이었다. 이들은 정보를, 사고를 자신들끼리 공유하고, 전달했다. 그 안에서 개인과 조직을 발전시켰으며, 통치 기반을 공고하게 만들었다.

 

실상 피지배층이 글을 배웠다고 해도 쓸모가 없었다. 배운 글로 읽을 책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배층끼리 공유되고 사유된 책이 피지배층에게까지 갈 통로는 없었다. 때문에 피지배층은 뭔가를 고민하고 논의할 때 오로지 구전으로만 나누고 전달했으니, 탄탄한 이론적 기반이나 통합된 지식이 있을 리 만무했다. 중세시대 종교에 의한 마녀사냥이나, 전쟁이 손쉽게 이뤄질 수 있었던 이유도, 피지배층에게는 반박할, 반대할 이론 체계나 사고가 없었고, 지배층은 자신들만이 할 수 있는 성경에 기반한 신의 목소리라는 말로 정당화 했다. 글을 모르니 읽을 수 없고, 설사 읽을 수 있다 해도 공유할 수 있는 성경과 책이 없으니 피지배층은 짐승과 다를 바 없었다.

 

이는 이 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자는 그 수만 어마어마하기에 생업에 몰두하는 피지배층이 글을 배울 시간도, 사용할 수 있는 시간도 없었다. 그리고 서양과 마찬가지로 읽을 책 역시 턱없이 부족했다. 양반들 사이에서도 누군가 뛰어난 책을 구해오면 필사해 읽을 정도였으니, 피지배층이 이를 소유할 수도 없고, 읽을 방법도 없었다.

 

서양에서는 구텐베르크가 활자기를 만들어낸 이후인 르네상스 시대 이후 변한다. 문맹률 역시 60%로 떨어졌고, 성경을 비롯해 책이 대량으로 인쇄돼 전파되기 시작했다. 종교계의 반발은 당연한 것이다. 성경은 자신들만이 해석할 수 있기에 왜곡 역시 시킬 수 있었는데, 피지배층이 진실을 알기 시작하면서 자신들의 권위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조선에서도 세종이 한글을 만든 이후, 변화가 감지됐다. 한자를 무기로 한 양반들의 권력의 변화가 읽히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이든 서양이든 이가 급격한 변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문제는 글을 읽는다는 것과 이를 활용할 책 즉 전파 수단이 존재한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때문에 종이가 일반화되어 활자로 된 매개체(, 신문)가 일반화되기 전까지도 글을 읽고 쓴다는 것은 권력을 상징했다.

 

그런 권력의 균열이 제대로 일어난 것은 아마 인터넷 때문일 것이다. 누구나 글을 쓰고, 누구나 읽을 수 있으며 온갖 정보를 공유한다. 개인이 한 조직을 넘어서는 권력을 가지기도 하고, 대중에게 막강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것이 동영상이나 사진으로 스펙트럼을 넓히기는 했지만, 그 기반에는 글이다.

 

그러다보니 아이러니하게 누구나 글을 쓰고 읽을 수 있지만, ‘제대로글을 쓰고 읽는 이들이 적어지고 있다. 글을 읽는 이들 대신 보는이들이 늘었다.

 

글이 힘을 가질 때는 그 글이 타인의 사고에 영향을 미칠 때다. 르네상스 시대 이전과 조선 시대의 글은 이 역할을 제대로 수행했다. 사고는 글로 정리됐고, 그 글은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책으로 전파돼 논의와 토론으로 이어졌으며, 결과물인 이론과 정책이 도출되어 피지배층에게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지금의 글은 아니다. 논의와 토론을 이끌어내지 못할뿐더러, 그런 글은 도리어 읽을 수있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글을 보고있으며, 파편화된 짧은 글로 사고를 정립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글은 다시 권력이 되고 있다. 아이러니 하게 누구나 읽고 쓸 수 있는 시대에 글은 다시 권력화의 중심으로 돌아온 것이다. 100년도 안 되는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다시 말하지만, 글은 누구나 쓸 수 있다. 누구나 읽을 수 있다. 그러나 제대로읽고 쓰는 이들은 줄어들고 있다. ‘진짜가 귀한 시대가 온 것이다. 글은 쉽지만, 쉽지만은 아닌 존재인 이유다.

 

아해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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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블로그에 이런 글 잘 안 올리는데...

 

 

이사짓센터인 백년익스프레스 안산점... 이용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대표 번호 : 010 902x 55xx - 일부 번호는 x처리..하지만 저 번호 들어간 이삿집 업체는 비추) 

 

옆집 이사하는데 큰 차량 끌고와서 부모님 집 감나무 가지를 아직냄. 뭐 그럴 수 있다. 제대로 사과하면...그런데 부모님께 제대로 사과도 안함...부모님 112 부름...그런데 112 불렀다고 또 험한 말...결국 내가 나섰는데도, 자기 잘못 없다고....나무 부러진 것에 대해 사과했는데, 부모님이 안 받아줬다고.. 대충 좌석에 앉아 사과하는게 사과?

현장에 있던 다른 직원 이사 끝나고 "죄송하다. 저 직원이 어쩌구저쩌구..."하면서 전화번호 적어가면서 "사장님이 연락드려 사과할꺼다"라고.......어머니께는 "사장이 정중하게 사과하면 정중하게 넘어가자"라고 이야기하고 서울로 올라옴

오늘 오전 연락이 없었다기에 사장에게 전화. 여자가 받더니 자기가 사장이라며 "사과했는데 안 받는데 어쩌라는거냐. 그런데 왜 112 불렀냐"

나 : 현장에 있었냐?

사장 : 있었다. 사과를 안 받는데 어쩌라는거냐.

나 : 그런데 왜 나서지 않았냐. 책임자가 사장 아니냐?

사장 : 나중에 와서 이야기 들었다.

나 : 현장에 있었다고 하지 않았나. 그럼 본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들은 것이 아니냐

사장 : 나중에 와서 봤다. 

나 : 봤다는 거냐, 들었다는 거냐..아무튼 현장에 있었는데 왜 책임지지 않았냐

사장 : 나무가지가 길로 나와 있는데, 그것도 문제 아니냐. 시청에 이야기해서 잘라버리겠다.

나 : 그게 문제라고? 그럼 그렇게 해라. 하지만 잘라진 나무에 대해 손해는 어떻게 할 것이냐

사장 : (끊어버림)

세상에는 제대로 된 사과 하나면 끝날 일을 굉장히 크게 부풀리는 사람들이 참 많다.

 

그리고 백년익스프레스 안산점 사장이 착각하는 게 있다. 사과가 문제가 아니다. 남의 집 나무를 훼손시키고 그대로 갔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후 어떻게 하겠다는 말 조차도 없었다.

 

애초 우리 부모님의 초점은 사과였는데, 그게 이 사장은 뭔가 착각을 했나보다. 그 초점이 전부라고 말이다. 사실 나무를 훼손시킨 것이 초점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줘야겠다.

 

- 아해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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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번 인턴을 뽑다보면 내가 정말 이 시대에 태어나면 취업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종종 든다. 정말 이런 스펙들은 어떻게 쌓았을까.

 

해외연수는 기본이고 유학도 있다. 토익 점수는 고공을 날아다니고 있다. 그리고 뭔 자격증을 이리도 많이 땄는지. 한국어시험, 한자시험 등은 물론이고, 워드프로세서 자격증과 그래픽, 엑셀 등등의 자격증까지........읽다보면 숨 막히는 지원자가 한둘이 아니다. 그냥 대박만 외칠 뿐.

 

그런데 정작 제대로지원하는 사람은 드물다. 스펙을 화려하게 나열할 뿐이지, 쓱 읽고 넘어가게 만든다. 물론 여기서도 취업 힘들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무작정 지원한 것이다.

 

그래서 소소하지만 이력서 몇 개 팁을 적는다. (물론 많이 들어봤겠지만)

 

1. 사진 - 무조건 깔끔하게 찍어서 붙인다. 간혹 셀카나 과도한 포토샵으로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냥 패스다. 이력서는 면접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다. 사진도 일종의 첫 인상이다. 자기가 아무리 말을 잘하고, 실물이 낫다 해도 그 기회를 갖기 위해서는 사진 속 첫 인상이 무시 못한다. 대충 찍지 말고, 대충 붙이지 마라.

 

2.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의 오탈자 - 위험하다.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오탈자가 있으면, 읽기 싫어진다. 자기소개서는 어떻게 하든 읽게 해야 한다. 그런데 처음이나 중간에 오탈자 나오면 끝까지 읽기 싫어진다. 패스다.

 

3. 지원하는 곳을 제대로 알아라 - 이력서나 자기소개서를 보면 자기가 어디에 지원하는지조차 모르는 이들이 많다. 뭔 말이고 하면, 그냥 이력서나 자기소개서를 복사해서 붙이는 것이다. 특히 잡코리아나 사람인처럼 다량으로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에서는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 모두를 바꿀 수 없다면, 첫 문장이나 마지막 문장에 “000에 지원하는~”는 식으로 회사명을 한번쯤 거론하는 것도 좋다.

 

4. 경력도 전략 - 간혹 알바나 어디서 잠시 근무했던 이력을 기재하는 경우가 있다. 이게 무조건 좋은 게 아니다. 차분하게 앉아서 일을 해야 하는 사무직을 뽑는데, 활동성 높은 알바 경력을 넣는 것이 마이너스다. 거꾸로 활동성 높은 영업직 등을 뽑는데, 차분한 경력을 어필하면 어찌하란 말인가. 또 신입이나 인턴을 뽑는데, 직장 경력을 잔뜩 넣으면 역시 마이너스다. 더구나가 현재 지원하고자 하는 회사와 전혀 관계없는 경력 기재는 안 넣는 것이 낫다.

 

5. 뭐든 무조건 잘하겠습니다? - 역시 패스. 자신이 무슨 만능 가제트도 아니고 뭐든 무조건 잘한다는 것이 말이 되나.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정확한 기재가 필요하다. 절실한 것은 알지만, 이런 경우 회사 측에 휘들릴 수 있고, 결국 얼마 못 버텨 나갈 확률이 높다.

 

뭐 이외에도 자잘한 것들도 있지만, 대략 저 정도만 지켜도 이력서나 자기소개서 정도는 어느 정도 읽힐 수있다. 물론 모든 회사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을 뽑는 입장에서 봤을 때, 저조차도 못 지킨다면 어느 회사든 힘들 것이다.

 

- 아해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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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TV 시청을 그다지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 때문에 혹은 솔로 생활이 적적(?)할 때 TV를 켜놓는다. 때문에 하루에 TV 시청이 3~4시간 전후라, 보통의 사람들보다는 다소 많은 편이다. 스마트폰 역시 일 때문에 자주 손에 잡는다. 그러다보니 일 외에도 손에서 떠나지 않는다. 자기 직전까지 만지작 거린다.

 

그래서 한번 끊어봤다. 딱 일주일....늦게 들어와 TV부터 켰던 상황도 없애버렸고, 일 적인 부분도 일단 후배에게 넘겼다.

 

1. 불안 증세가 온다. 너무 적적해진 상황에 뭘 할까 싶기도 하지만, 일단은 멍해진다.

 

2. 음악을 듣게 된다. 잔잔한 것 보다는 조금은 빠른 템포의 음악을 듣게 된다.

 

3. 라디오와 빠른 템포의 음악을 번갈아 가며 듣게 된다.

 

4. 귀에 어느 정도 자극을 주게 되면, 시각적 자극을 찾게 된다.

 

5. 책을 다시 읽기 시작한다. 일단 새로 이해해야 하는 책들이 아닌 과거에 재미있게 읽었던 책을 우선 다시 읽는다.

 

6. 청각과 시각이 만족되면 촉각으로 옮기게 된다. 즉 안하던 청소와 요리를 하게 된다. 집안에서 뭔가 할 수 있들을 찾게 된다.

 

7. 그동안 안 쓰던 감각들을 한꺼번에 자주 쓰면서 피곤해짐을 느낀다.

 

8. 결국 평소보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게 된다.

 

한 세 번째 날부터 이런 패턴이 생기더니, 생각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TV와 스마트폰으로 수동적으로 쌓이던 정보(?)들이 없어지고, 책 한 쪽에 대해 이리저래 복잡한 생각들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의외로 자기 직전에 복잡해질 것 같은 생각들이 사라진다.

 

다시 돌아보면, TV나 스마트폰으로 쓸데없는 정보나 자잘한 영상들을 너무 많이 접한 것이 아닌 가 싶다. 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주 들여다보지만, 한 달 정도 저런 생활에 익숙해 지면 조금은 여유로워지지 않을까 싶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개인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뭐 방법은 TV와 스마트폰을 줄이고, 위의 상황을 억지로라도 자주 만드는 방법 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 아해소리 -

 

사진은 네이버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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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죽음의 해인가.

일상에서의 생각 2014. 12. 3. 17:23 Posted by 아해소리

 

 

 



시작은 경주였다. 신입생 환영회를 간 대학생들이 죽었다.

 

그러더니 세월호 침몰로 인해 수백명의 고등학생들이 목숨을 잃더니, 버스터미널에서 불이 나고, 병원에서 불이 났다. 걸그룹 한번 보자고 환풍구에 올라간 이들도 어이없이 죽었다. 안전지대가 사라졌다.

 

유명인들의 죽음도 이어졌다. 걸그룹 레이디스코드는 교통사고로 두 명이 사망했다. 모두 어린 애들이다. 암으로도 죽고, 사고로도 죽었다. 의료사고로 죽은 신해철은 황당하기까지 하다. 그러더니 오늘은 죠앤이 교통사고로 미국에서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그러나 이런 식의 죽음은 언젠가라는 범주에 넣기에는 어이없다. 누군가의 죽음에 본인이 아닌 다른 이의 책임을 물어야 하는 세상이다. 그런데 책임자가 없다.

 

사회의 시스템 붕괴로 죽어도, 누군가에게 하소연하기 어렵다. 그래서 사람들은 권력을 좋아하나보다.

 

- 아해소리 -

 

 

2014/10/30 - [가요계 끄적이기] - 2014년의 가수들, 신해철의 노래를 보고 뭘 느낄까. 

2014/09/04 - [연예가 끄적이기] - 레이디스코드, 은비 교통사고 사망…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14/08/05 - [일상에서의 생각] - 집안이 힘이 없으면 죽어도 무시당하는 나라인가. 

2014/07/23 - [미디어 끄적이기] - 언론들, 세월호의 모든 책임이 유병언?…정부와 새머리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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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금토 드라마 미생이 주말 내내 화제에 오르더니, 월요일까지 기세가 꺾일 줄 모른다. 포털사이트 검색어 상위권에 차지한 것은 물론, 웹툰과 드라마 속 대사가 SNS에서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다.


영화든 드라마든 대중들의 마음을 얻으려면 공감이라는 키워드가 존재해야 하는데, ‘미생1천만 직장인들의 애환을 가장 확실하게 뚫고 지나갔다. 그리고 그 애환을 그려내는 이들은 2화까지 세 부류로 나뉜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당연히 주인공 장그래(임시완 분)의 모습이다. 인생에 있어서 바둑 밖에 몰랐고, 고졸 검정고시 출신이라는 점이 자신의 모든 스펙인 장그래는 갑자기 뚝 회사이라는 사회에 편입된다. 바둑이든 아르바이트든 홀로 무엇인가를 해내야 했던 장그래에게 조직은 낯설다. 때문에 장그래는 우리라는 단어에 눈물을 흘린다. 아직도 어떤 조직이라도 소속되어 있어야 마음이 편한 현대 직장인들의 모습이다.


그 다음은 동료 인턴들이다. 다양한 스펙을 쌓고, 치열한 경쟁 끝에 입사한 이들에게 낙하산으로 떨어진 장그래는 껄끄러운 존재다. 그러나 동시에 자신들의 정직원 채용을 위한 이용가치높은 존재이기도 하다. 이들의 경쟁은 취업 자체가 경쟁의 끝이 아님을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직장이란 전쟁터에서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를 밟아야 하고, 다시 누군가와는 협력해야 하는 인턴들의 모습은 씁쓸하기 까지 하다.


마지막은 장그래의 상사인 오상식(이성민 분)과 김동식(김대명 분)이다. 사내 정치에는 관심 없고 오로지 일만 아는 오상식은 전형적인 샐러리맨의 모습이다. 그리고 이를 따르는 김동식 역시 마찬가지다. 실상 미생에 공감대를 느끼며, 이들의 삶에 동조하는 이들의 대다수는 오상식과 김동식일 것이다. 장그래와 인턴들의 모습은 자신들의 사회 초년생 당시의 지나간 기억이지만, 오상식과 김동식은 현재이기 때문이다.


미생을 본 이후 일요일이 지난 출근한 월요일 아침. 제복 같은 양복을 입은 이들을 보는 시각이 확실히 달라졌다. 같은 직장인이어도 조금 다른 개념의 직장에 몸 담고 있는 필자로서는 그들의 치열한 삶이 훅 지나가는 듯 했다.


장그래가 이른 아침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다가, 직장인이 되어 그들과 한 방향으로 걷는 것을 조직에 소속되었다고 느꼈을 기분이 어떤 것인지 새삼 알게 됐다. 그러나. 실상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데 말이다.


- 아해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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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참사 때 유가족을 비롯해 대다수의 사람들이 정부 당사자들과 국회의원이라는 놈들에게 울부짖은 내용 중에 하나가 당신 자식이라면 그냥 저렇게 놔두어 겠는가이다. 이는 단순한 울부짖음이 아니다. 이 땅에서는 어떤 형태로든 권력을 지녀야만, 자신의 가족을, 아들 딸들을 보호할 수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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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이지만, 만일 세월호에 박근혜 조카라도 타고 있었다고 하면 어땠을까. 하다못해 정몽준 조카라도 타고 있었다면. 진짜 모든 방법이 총동원 되었을 것이며, 추후 대책 역시 신속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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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병 사건이 터질 때도 마찬가지다. 자세히 확인해보지는 못했지만, 인터넷에서는 윤일병 집안에 의사, 변호사가 있어서 그나마 이 정도로 밝혀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 해 윤일병보다 더 치욕적인 고문 아닌 고문을 받으며 생활하는 군인들이 많지만, 또 이를 못 참고 자살하는 군인들도 적지 않겠지만 평범한 가정의 아들들인 이들의 죽음은 밝혀내기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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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가진 이들의 자신과 가족, 주변사람들을 위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를 질타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권력을 가진 이들은 법으로부터 빠져나가고, 부당한 사회 구조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반면, 권력이 없는 이들은 죽어도 되는, 그래서 겨우겨우 살아나가야 하는 상황은 만들어지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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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국가를 믿지 못하고, 수단방법 가리지 말고 권력만 바라보는 습성이 내면화 된다면 그 사회는 어떠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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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여년 전 한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권력자의 아들들이 한 여자 연예인을 겁탈한다. 범죄를 저질렀지만, 이들에게 죄를 묻지 못한다. 이 여자 연예인의 아버지는 학교 선생이다. 힘이 없는 존재인 셈이다. 이야기의 시작 부분을 읽으면서, 그럴 일은 없겠지만 후에 혹시라도 내 자식이 이런 꼴 안 당하게 만들겠다고 생각 했다. 그런데 지금 보면 참 쉽지 않은 일임을 알게 됐다. 공권력을 가지지 않는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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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이 땅에서는 힘 없는 자들은 죽으라면 죽어야 하는 세상으로 고착됨을 절실히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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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진짜싸움꾼 2014.08.06 13:2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힘이 없어도 존중받는 세상이 올 수 있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시고 1년 후에 나온 노무현 자서전-운명이다를 아는 지인으로부터 선물 받았다. 3년 전에 구입해 읽고 나서, 누구에게 빌려줬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던 차에 새로 선물 받으니 기분이 색달랐다.

 

어설프게 노사모 활동을 하고,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될 때 여의도 당사 앞에서 더 어설프게 좋아하고, 2008년 여름에는 친구들과 어설프게 봉하마을에 내려가서 노 대통령을 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난 노 대통령이 선거 때 무슨 공약을 내세웠는지, 대통령이 되어서 뭘 하겠다는지에는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그냥 노무현이라는 사람이 좋아서 그를 지지했고, 그가 살아왔던 길이 존경스러워서 그에게 한 표를 던졌다. 적어도 노 대통령이 펼치는 정치에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20095, 노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 일을 하면서도 내낸 눈물을 흘렸던 것일지도 모른다.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의원, 안희정 충남도지사 등 이들에게 원했던 것은 진짜 상식이 통하고, 평범한 사람들이 중심이 되는 사회였다.

 

국가는 국민을 보호하고 잘 살 수 있도록 하고, 국민은 그런 국가를 믿고 자신의 일에 충실할 수 있는 사회, 다른 사람의 것을 탐하지 않고 내 일한 몫만큼만 살아도 기본적인 삶이 유지되는 사회, 정당하게 돈을 벌어 부자가 된 이들을 존경하고, 또 존경받는 이들이 새로운 사회의 중심으로 다른 이들의 삶을 챙기는 사회, 범죄를 저지르면 직위고하를 막론하고 처벌을 받으면서도, 없는 자들 억울한 자들에 대해 법의 관용이 있는 사회, 정치인이 소리치는 것이 아닌, 국민이 소리치고 정치인은 듣고 묵묵히 일하는 사회, 아이들에게 떳떳히 어른이다를 말할 수 있는 사회.................

 

이런 사회를 노무현 대통령에게 바랬고, 문재인 의원에게도 바랬다. 물론 저 병신 같은 민주당.......지금은 새정치민주연합으로 바뀐 힘 없고, 무능하고 지들 살기 급급한 인간들 때문에 무너지긴 했지만.......새누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대안이 없어서라는 말이 나오는 저 바보같은 집단 때문이 물 말아먹긴 했지만 말이다.

 

노 대통령이 만든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기반은 아직 유효하다. 문재인이 다시 거기에 기둥을 세우고, 그 뒤를 이어 상식적인 사람들이 지붕을 덮고, 방을 만들고 사람 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으면 한다. ‘친노등의 구호가 아니라, ‘상식이라는 구호가 우선인.....

 

운명이다를 읽으며, 또다시 눈물이 나는 것은 노무현 대통령을 그리워함도 있겠지만, 지금 내가 발 딛고 사는 사회가 과연 제대로 된 사회인지 회의감이 들어서일 것이다.

 

- 아해소리 -

 

PS 1. 사진은 20088월 여름 봉하마을에 친구들과 내려가 뵈었을 때 찍은 것이다. 그로부터 9개월.

 

PS2. 종종 노무현 전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을 섞어 썼다. 생각해보면 노무현 대통령이 맞는 것 같다. 적지 않은 이들이 아직도 내 마음 속 단 하나의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있다. 그 이후 4대강이라는 뻘짓으로 예산 날려먹고도 골프 치며 희희낙락하는 명박이는 물론이고, 소통이라는 단어를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 박근혜을 대통령으로 (헌법상, 국가상이 아닌 마음 속) 인정하지는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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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해운대 2014.08.26 09: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립습니다..요즘에 더욱더 격하게

  2. 운명이다 2017.04.16 09: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의 최대 업적은 국토균형발전 중 세종시 특별시를 만들려는 계획중 가장 큰성과라 할수 있습니다 또한 사람중심 서민의 마음을 이해했던 민주주의 실현이 과 그의 업적은 향후 100년을 봐라보고 실현했다고 할수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 집권으로 대부분 철폐한 업적도 많다고 함

오래전 일이다. 다소 늦은 나이에 군대에 간 까닭에 소대에는 나이 어린 선임들이 있었다. 하루는 이 나이 어린 선임 하나가 중대에서 떨어진 공중전화로 여자친구에게 전화하러 가니 같이 가자고 했다.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탈영 등의 문제로 무조건 21조로 움직여야 한다. 점오를 위한 내무 정리 시간이 다 되어 왔지만, 후임이 거부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갔다. 결국 내무 정리 시간에 늦었다. 하사관 계급의 당직 사관이 우리 둘에게 왜 늦었냐고 추궁했다. 후임인 내가 나설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그런데 그 이후 상황은 정말 활당했다.

 

선임은 말 없이 뒤쪽으로 나를 툭툭 쳤다. 인간의 본성일 수 있지만, 어이없었다. 그런 선임을 바라보자, 당직 사관은 말은 더 어이없었다. “선임은 왜 바라보냐. 넌 책임이 없다는 거냐. 나이가 더 많으면 그에 걸맞게 행동해야 하지 않냐”. 그냥 황당하다는 말 밖에 안 나왔다. 한명은 앞뒤 상관없이 책임만 추궁하고, 다른 한명은 책임지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던 셈이다.

 

세월호 참사와 어제 일어난 지하철 사고 수습과정을 보면서 이 책임이라는 말이 계속 맴돌았다. 한쪽은 무조건 책임만 추궁하고, 다른 한쪽은 책임지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그 사이에 사망자, 실종자, 유가족 등의 단어는 끼어들 여지는 없다.

 

책임 소재를 가리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이 책임이라는 단어가 끼어들 타이밍이 있고, 끼어들지 않을 타이밍이 있다. 그리고 이 책임이라는 단어가 신뢰성 있게 발휘될 수 있는 여건 또한 중요하다.

 

조직의 리더임에도 불구하고 책임지지 않으려 노력하며, 후임에게 책임만 추궁하는 것도 참 못난 짓이지만, 책임의 정확한 소재 역시 가리지 못하는 것도 바보 같은 짓이다. 대통령이 책임지겠다라는 말이 가벼운 이유다. 소재를 가지리 못한 발언이기 때문이다.

 

책임에 대한 언론의 태도 역시 한심하다.

 

사고와 관련된 브리핑과 질의응답을 듣고 있자면, 언론은 그야말로 . 사실 확인해서 알려주겠다는 내용을 그냥 계속 묻는다. 바보도 아니고 말이다. 현장 정리를 해야 할 책임자를 불러내 책임있는 답변을 요구한다. 그러면서 책임자가 제대로 활동하지 못했다고 난리 친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마찬가지다. 며칠 전 후배가 잘못을 했다. 이에 관련된 다른 조직에서 나에게 항의를 했다. 요지는 어떻게 할 것이며, 어떻게 책임을 질 것이냐이다. 당시 출장 때문에 상황 파악이 제대로 안 되어 있었고, 항의 역시 보고 받은 지 20분도 채 안되었을 때다. 우선은 필요한 조치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병신 같은 조직은 그냥 책임지라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일종의 감정 배설이다. 그냥 상대방에게 따지고 책임 운운하면서 몰아부쳐야 자기가 속 시원하기 때문이다. 그런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데 말이다.

 

생각해보면 이는 어릴 적부터 책임을 제대로 배우지 않았고, 어른들에게 책임을 제대로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책임 소재를 가린다는 것이 문제 해결을 위한 것이 아닌, 누구의 목을 자르고 누구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는 것으로만 인식되어 있기 때문이다. 책임을 부여받는 것, 그리고 문제가 생겼을 시 그 책임에 대해 당당하게 인정하고 지속적으로 수정해 나가 어른이 되는 과정이 삭제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위 대가리도 무슨 국가적 사고가 생기면, 누구 하나 자르면 해결되는 줄 알고 있고, 이 외에는 방법을 따로 생각하지도 않는다.

 

누군가가 책임져야 하지 않겠나의 의미가 신속하고 제대로 된 문제 해결이 이뤄지기 위해 누군가가 나서야 하지 않냐는 말이 아닌, “누구 머리부터 잘라야 하냐라는 것이다.

 

책임만 추궁할 줄 알고, 또 책임지지 않기 위해서 행동하는 것이 반복된다면 국가적 재앙은 단순히 매뉴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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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사고에 대해 주저리 주저리 떠들어봐야 무슨 소용 있겠습니까.

 

실종된 200여 명의 사람들이 정말 무사히 돌아왔으면 합니다. 지금은 그 무엇의 말도 소용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일각에서는 희망이 업다고 합니다. 생존 가능성이 낮다고 합니다. 그러나 과거 삼풍백화점 사건 때도 그런 말이 있었지만, 수일이 지난 후 생존자가 있었습니다. 탑승객 한명 한명의 상황이 파악되기 전까지는 무조건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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