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글을 쓰기 힘들어진 이유.

일상에서의 생각 2014. 1. 23. 10:07 Posted by 아해소리

 

 

 

내가 제대로 블로그에 글을 올린 것이 2005년이었다. 횟수로 따지면 9년째다. 블로그 초반에는 매우 활발히 글을 올렸던 것으로 기억난다. 당시 네이트 미니홈피를 제외하고, SNS라는 것이 있지도 않았고, 주의주장을 펴는 이들이 많아서 블로그는 꽤 유용한 매체로 사람들과 만났다.

 

과거의 글들을 다시 찾아보니 참 잡다했다. 꼴에 패션 이야기도 있고, 연예인 이야기도 있었으며 여행 이야기도 담았다. 소소한 생활에서 일어나는 일부터 시작해, 제법 근사한 정치 평론도 곁들었다. 영화, 뮤지컬 이야기도 쭉 나열했고, 사진도 제법 올렸다. 그러다보니, 블로그 컨셉이 정말 애초 잡은대로 '잡다해'졌다.

 

그러는 사이 제법 사람들도 많이 들어왔다. 다음블로그에서 출발해서 티스토리로 넘어왔는데, 다음블로그 당시에도 120만이 넘는 사람들이 들어왔고, 티스토리도 얼추 300만 가까이 됐다. 420만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내 블로그에 들어와 내 글을 읽고 댓글도 남기고 했던 것이다. 9년간 420만명이면 매년 46만명이 들어온 셈이다.

 

그런데 실상 내가 약 3~4년 전부터 블로그에 잘 글을 올리지 않고 있다. 아니 못 올리고 있다는 것을 봤다. 종종 '뻘' 글을 올리긴 했지만, 그전에 보여줬던 꾸준함은 사라졌고 관심사 역시 큰 폭으로 좁아졌다.

 

왜일까라고 생각했다.

 

결론은 간단했다. 언제부터인가 글을 무겁게 쓰려고 했던 것이다. 이 블로그가 무게감을 갖는 공간이 아닌데도, 내가 그렇게 만들지 않았음에도 언제부터인가 무겁게 변했다.

 

특히 블로그 시작 후에 이런저런 상도 받고, 관심도 받으면서 뭔가 '전문화'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겼다. 직업이 글쟁이이기에 직업적으로 쓰는, 써야할 글들을 쓰고 주저리 주저리 내 생각을 써내려가는 공간이 이 블로그라는 것을 망각했다.

 

기분 나빠도 끄적이고, 좋아도 끄적이며 세상 사람들에게, 단 한두명이 보더라도 내 생각을 알리는 공간이라는 점을 잊어버린 것이다.

 

여기에는 직업으로 생긴 트래픽이라는 개념도 한몫 했다. 무조건 많은 사람들이 봐야 그것이 힘이라고 생각했다. '어느' 사람이 '왜' 보는가에는 관심을 갖지 않고, 그냥 '다수'의 사람들이 봐야 한다고 틀 안에 갇은 것이다.

 

'주제'가 없는 '글'을 올리는 공간이고, 그것이 이 공간의 '콘셉'임이 새삼 떠올랐다. 카테고리도 사실 쓸모 없는 셈이다. 보이기 위한 글은 직업적으로도 충분하다. 삶에 대해, 직업에 대해, 생활에 대해 내가 털어놓을 수 있는 공간으로 되살리고자 한다.

 

이 공간에서는 맞춤법 좀 틀려도 된다는 것, 그게 제일 좋다.

 

- 아해소리 -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해플 2014.02.21 15: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전 얼마전부터 블로그를 시작했는데요. 저도 왠지 블로그에는 의미 있는 내용을 써야만 할것 같은 생각이 들긴 했었어요 ^^

넌 학교폭력 피해자 아니라고?

일상에서의 생각 2012. 1. 6. 12:56 Posted by 아해소리



언론에서 연일 학교폭력에 관해 다루면서 호들갑을 떨고 있다. 사실 학교폭력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수십년전에도 일어났고, 지금도 일어나고 있으며, 아마 앞으로도 일어날 것이다. 이는 강압적으로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애시당초 이 나라의 교육 체계 자체가 '인성'보다는 '주입식 교육'을 강요당하면서, 예상됐던 일이다. 사람을 존중하는 것보다 국영수를 존중하는 마음을 먼저 배웠는데, 옆의 친구가 친구처럼 보이겠는가.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교육 현장은 굴러가고 있다.

사실 학교폭력은 드라마와 영화, 소설 등을 통해 수없이 많이 묘사되어 왔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도 그렇고, '친구' '말죽거리 잔혹사' 등등 사람들은 학교폭력의 잔인함을 수없이 느꼈다. 하지만 느끼기만 할 뿐, 그것은 다른 나라 이야기처럼 말한다. 뭐 지금도 마찬가지다. 언론에서의 일은 다른 사람의 일일 뿐, 내 자신에게 다가오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아니 오히려 저런 영화를 보면서 당시의 추억을 회상한다. 고등학교대 17대 1로 싸웠다는 허풍은 둘째로 치더라도,  모두 피해자가 된 적은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정말일까. 피해자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직접적으로 당하는 자와 간접적으로 억압되는 자.

직접적으로 당하는 자는 신체적으로 폭력을 당하거나,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는 학생이다. 지금이야 일진 어쩌구 하지만, 과거에는 어쨌든 학교짱이라는 이름아래 모인 일종의 클럽 형태다. 그들의 타깃은 자신보다 약했고 만만해 보였으며 건드려도 해 될 것 없는 친구들이었다. 이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학생들의 캐릭터는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그런데 이들보다 더 심각한 것은 간접적으로 억압되는 자이다. 아마 대다수라고 볼 수 있다. 건달끼 넘치는 가해자가 직접적으로 피해자를 억압할 때, 그 기에 눌려 침묵하는 자들. 싸움을 말리기보다는 '내'가 우선시되야 하기 때문에, 은연 중에 가해자와 피해자의 선을 긋고, 제3자 입장에서 바라보는 자들. 이들은 스스로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 않았기에 피해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말 그럴까.

조그마한 교실에서 가해자가 피해자를 괴롭힐 때, 그 기에 눌려 조용히 있는 상황 역시 이미 피해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채, 자신은 제3자 혹은 가해자가 자신을 건드리지 못하는 존재로 스스로 이미지화 시키버렸음은 깨닫지 못한다. 더욱이 이런 간접적으로 억압되는 자는 피해자임 동시에 가해자로 둔갑한다. 가해자의 횡포를 묵인해주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한번 눌려본 사람들, 그리고 그것이 반복되어 느낀 사람들은, 사회에서도 똑같이 행동한다. 억압하는 자에 대한 굴종을 배우고, 직접 피해가 아닌 상황에서, 직접 피해를 입는 사람들에 대한 우월감마저 느끼게 된다.

이 이야기를 하는 나는 어떠냐고?. 나 역시 마찬가지다.  그때는 그것을 느끼지 못했으니까. 문제는 그 감정을 사회에까지 가져와 처세의 형태로 변환시키느냐, 타파하느냐 일 것이다.

사회에 나온 이들, 그리고 현재의 학교폭력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이 다시 사회에 나와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구성원이 될 것이고, 그 학교폭력의 기억은 유무형적으로 같은 구성원이 나에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그게 가해자든, 피해자든, 혹은 심정적으로 억압된 자이든 말이다.

- 아해소리 -

댓글을 달아 주세요



2011년 12월 31일은 토요일, 2012년 1월 1일은 일요일. 그리고 2일 월요일은 일상으로 컴백. 이런 패턴때문일까, 참으로 연말연시 같지 않은 시기다. 여기에 국내외가 뒤숭숭한 것도 연말 분위기를 망치는 데 한 몫했다.

원래 연말에는 개인적인 모든 일을 한번 되돌아보고, 새해를 설계하는 등 모든 생각과 행동이 '나'와 내 지근거리 인물들에 한정되어야 한다. 그런데 시대가 그렇지 못하다. 김정일 사망이라는 대박 사건도 그렇지만, 다들 아는 BBK 결론을 사법계만 모르는 현실, 정봉주 전 의원의 수감, 선관위 디도스 공격에 대한 어물쩡한 흐름, 국회의 날치기 법안 통과, 한미FTA를 반대하는 국민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정부와 정치권, 그리고 김근태 전 민주당 상임고문의 별세 등 연말에 이렇게 나에게 집중되지 못한 때도 처음인 것 같다.

이런 국내외 혼란을 뉴스로 보면서 한숨쉬고 어이없어 하고 슬픔에 빠질 때, 어느 순간 12월 31일 왔고, 바로 1월 1일이 찾아왔다. 새해같은 느낌이 들면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그런데 묘한 두근거림은 존재한다. 비록 결과는 알 수 없지만, 승부가 날 경우 그 어느 때보다 대단한 흥분을 안겨주는, 그리고 그 흥분이 나와 내 주변사람으로부터 시작하는 선거가 두 차례 있기 때문이다.

2002년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이 될 당시, 여의도에 있었다. 노란색 물결이 여의도 민주당사 앞을 가득 채울 때 정치라는 것이, 선거라는 것이 사람에게 기쁨을 줄 수도 있는 것이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비록 한국에는 없었지만, 2011년 박원순 후보가 딴나라당 나경원 후보를 이겼다는 소식을 모바일 뉴스로 들었을 때도 제자리에서 뛰고 싶었다. 서울광장에 같이 있지 못했다는 것이 억울했다. 비행기에서 내려 해외에서 사람들은 모두 한마디씩 했다. "서울에 있는 사람들은 좋겠다"라고.

이 두 차례의 승부는 2002년 월드컵에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월드컵은 가슴을 움직였지만, 선거는 머리와 가슴을 동시에 움직여줬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2012년의 선거에 대한 기대감은 그 어느 때보다 높다. 상식과 기본이 완전히 무시되는 5년을 보낸 마침표를 찍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모른다' '상관없다'는 말이 마치 모든 것을 대변하는 듯한 말로, 그리고 그것에 대한 그 어떤 항의도 못하는 암흑의 5년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인터넷의 힘을 바탕으로 해 거대한 물결을 만들었다. 2012년 SNS의 힘이 다시 새로운 역사를 쓸 것을 기대한다. 정치의 과정을 통해 다시한번 두근거림을 느낄 수 있도록.

- 아해소리 -

댓글을 달아 주세요

넌 네 삶이 아름답냐?

일상에서의 생각 2011. 5. 28. 10:12 Posted by 아해소리



송지선 아나운서와 SG워너비 출신 채동하가 잇따라 자살하면서 사람들이 삶에 대해 생각하는 모양이다. 누구는 정말 살고 싶어하는 이 상황에서 당신들은 왜 자살하냐는 다그침도 있고, 그들을 이해할 수 밖에 없는 사회가 안타깝다고 말한다.

언론은 원인 찾기에 나섰다. 우울증이라는 기본적인 내용을 두고 온갖 들춰내기를 해댄다. 헛짓하는 언론은 채동하의 노래 '글루미 선데이'를 들춰내기도 한다. 죽은 자이기 때문에 왜 죽었는지에 대해서는 사실 누구도 모른다. 그냥 죽음만 기록해야할 사람들이 죽음을 분석한다.

한 누리꾼이 말한다. 이들의 죽음을 기리고 있는 당신들의 삶은 아름답냐고. 그런데, 그 댓글을 볼 때, 난 MBC '위대한 탄생'을 봤다. 프로그램의 완성도를 떠나서, 연변 클럽에서 노래부르던 이가 한국에서 당당히 한 프로그램의 1위를 차지했다. 극적으로만 보자면 허각보다 한 수 위다. (이를 살리지 못한 MBC가 한심할 뿐).

누구나 삶이 아름답지는 않다. 나도 내 삶이 아름답다고 생각해본 적이 많지 않다. 기준 찾기에 급급했다.

"난 누구보다는 낫다" "난 누구보다는 못하다" "나 누구랑 비슷하다"는 등의 기준 찾기 말이다. 결국은 "난 나야"라는 위로식의 결론을 내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나인줄은 알면서도 그 안에 뭔가 행복을 찾는 길을 스스로 제시하지 못했다.

소소한 것에 행복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게 인생의 길을 제시하지는 않을 듯 싶다. 그러나 자살한 이들은 이 소소한 것조차 찾지 못했던 것일까.

다시 나에게 묻고 싶다. 내 삶은 아름다운가..

- 아해소리 -

댓글을 달아 주세요

어른은 어른다워야 존경받는다.

일상에서의 생각 2011. 5. 9. 02:05 Posted by 아해소리

'~다워야 한다'는 말은 참 해석하기 어렵다. 너무 틀안에 갇히게 만드는 것 같고, 한편으로는 일종의 규정을 제시해 사람에게 편안함을 주기도 한다. 또 애매한 단어이기도 하다. 도대체 '~다워야'의 기준이 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정 직업이나 지위가 아닌,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에서 찾자면 대다수가 수긍하는 수준의 영역이 있다. 그 중 내가 가장 절실히 느끼는 것이 '어른은 어른다워야 한다'이다. 물론 이도 애매하다. 도대체 어른다워야 하는 것이 무엇일까. 담배 피면서 지나가는 고등학생을 훈계해야 어른일까, 사회에서 막대한 권력을 지녀야 어른일까. 아니면 무조건 앞장서서 달려야 어른일까. 그 기준은 사실상 없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나이 어린 이들에게 가르치거나 길을 알려주려 한다면 최소한 자신 스스로도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타인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에 대해서도 말이다.

금연구역에서 담배피는 것을 뭐라했다고 "어린 녀석이"라고 반발하거나, 자신은 지하철에서 떠들면서 교복 입은 학생들에게 "조용히 해라"라고 하거나, 부당한 행동을 한 것에 대해 항의하면 "너 몇살이야"라고 대응하는 식의 어른들을 보면 차마 이들이 사회에서 그 나이대로 대우해줘야 하는 생각이 든다.

이는 비단 사회 뿐만 아니라.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다. 요즘은 많이 달라졌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는 능력제가 아니라, 연차 순이었다. 들어온대로 시간 지나면 직위가 올라간다. 문제는 후배를 다룰 능력도 없고, 자신도 못 챙기는 사람들이 상사 혹은 선배라는 이름으로 권력을 휘두를 때다. 선배다워야, 상사다워야 존경을 받고 따르는데, 이에 대한 자신의 모습은 돌아보지도 않고 밑의 사람만 고달프게 만든다.

'~다워야'의 정의는 앞서도 말했지만 없다. 그러나 누가 봐도 인지가 되는 상황이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상황을 자신에게도 적용시킬 줄 안다. 그것도 모른다면? 진짜 '~다워야'의 영역에서 대접 받을 생각을 버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 아해소리 -

TAG 어른, 존경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멍게 2011.05.09 02: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때 이런 생각도 해봤어요. 나이를 살아온 날의 수에 따라 주는 것이 아니라, 그 나이에 맞는 수준이 됐다고 주위에서 인정해줄 때 그 나이를 가지도록 하면 어떩까. 40년을 살았어도 자질이 되지 못하면 40세가 되지 못하고 25세의 나이 밖에 안되는. 블로그에서 말한 것 처럼 40이라는 나이 다울 수 있을 때 그 나이가 되었다고 인정하며 나이가 들도록. 특히 우리나라는 더욱 더 계급이 깽패고, 나이가 깡패인 것 같아요



전에도 간혹 느꼈지만, 최근에 뼈저리게 느끼는 것이 권한이 큰 조직 내 윗자리가 할 일도 없고, 또 본인 스스로가 할일이 뭔지 찾지도 못할 경우 조직이 한심해진다.

할일이 없고 권한만 큰 상사는 사실 불안한 자리다. 할일이 없기에 자신이 인정받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직접적으로 후배들을 통솔할 수 있는 일이 뭔지 모르기에 무시당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그때는 자신에게 있는 커다란 권한만 휘두르려 한다. 후배들이 자신을 인정한다는 것을 늘 확인하려 한다. 후배의 권리 빼앗거나, 말도 안되는 일을 시키면서 끊임없이 괴롭힌다.

괴롭힘을 당하기 싫은 후배들이 선택하는 것은 세가지다. 순순히 그냥 시키는 것을 묵묵히 하던지, 해당 상사의 비위를 맞쳐주는 수 밖에 없다. 아미녀 그 조직을 나와야 한다. 물론 셋 다 쉬운 결정은 아니다. 여기에 단순히 그 상사와 일대일의 관계라면 선택은 의외로 쉬워질 수 있지만, 여러 사람이 복잡하게 엮여져 있다면 그 선택에 변수가 너무 많이 존재한다.

문제는 이게 조직의 흥망까지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권한은 있되, 능력도 할일도 없는 상사의 비위 맞추기에 에너지를 소모한 조직원이 그 조직에 충실할리가 없다. 연이은 회의감만 생길 뿐이다. 묵묵히 일하는 사람조차도 마찬가지다. 실제 필요한 일 대신, 괴롭힘 당하기 싫어 그냥 효율적이지도 않은 일을 한다. 나가는 사람은? 그 사람이 조직에 필요한 사람이라면 어떨 것인가. 이는 사실 흥망에 더 영향을 미친다. 조직에 필요한 사람이 기껏 할일없는 상사의 비위때문에 나간다면, 그 조직의 앞날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물론 할일 없고 권한만 큰 상사가 긍정적으로 가는 조직도 있다. 할일이 없기에 창의적으로 연결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보기 힘들다. 이미 권력을 맛 본 이들이 이를 벗어나려는 행위를 하기는 힘들다.

회사를 이끈다면 밑의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가끔은 밑의 밑의 밑의 사람 말을 잘 들어야 하지 않을까. 그 중간에서 어떤 이간질이 오갈지는 낮은 곳에서 봐야하기 때문이다.

- 아해소리 -

댓글을 달아 주세요



과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지만, 결국은 승리해야 인정받는 것이 스포츠 경기다. 그런데 8년 만에 또다시 스포츠의 과정이 사람들 마음을 울컥하게 만들 수 있음을 느끼게 해줬다. 그것도 솜털 보송보송한 어린 여학생들이 말이다.

17세 이하 피파(FIFA) 여자월드컵축구대회에 출전한 이 어린 여학생들은 끝까지 감동의 드라마를 한자 한자 적어나갔다. 첫 골을 넣어 기쁨을 주더니, 다시 한 골을 내주고, 또 역전하고 결국은 제대로 달리지도 못하는 연장전까지 들어갔다. 비록 상대가 숙적 일본이지만, 지더라도 그냥 여기서 끝나는 것이 어떨까라는 생각까지 들게 만들었다. 경기를 중계하던 캐스터와 해설자도 지쳐있는 상황이다. 거기에 흐름까지 일본이 쥐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리고 접어든 승부차기. 허. 그런데 이 어린 여학생들이 여기서도 대한민국 국민들을 쥐락펴락 가슴 졸이게 만들었다. 첫 키커 이정은이 실패해 조마조마한 마음을 와다의 실수로 원위치가 되자, 필살의 역습에 나섰다. 결국은 다섯명의 키커가 모두 나가 4대4의 상황에서 서든데스. 와카마츠의 크로스바 실축과 장슬기의 깔끔한 슛으로 2시간 30분의 혈투가 끝났다.

성인 축구도, 유럽 축구도 이보다 재미있을 수는 없고, 이보다 감동적일 수 없으며, 이보다 손에 땀을 쥐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누가 이기든 이 경기는 결과보다 과정을 봐야해야 했다. 한국도 일본도 누가 이기든 월드컵 챔피온으로서 금메달을 목에 거는데 부끄럽지 않은 선수들이다. 어쩔 수 없이 누군가가 우승을 하고, 또다른 누군가는 준우승을 해야했지만, 만일 공동우승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이들에게 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피파 주관 경기에서 우승자에게 트로피를 주는 의식까지 방송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한 여자축구 선수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 아해소리 -

댓글을 달아 주세요

아해소리 부활~~~~~

일상에서의 생각 2010. 9. 12. 00:34 Posted by 아해소리
블로그라는 소통 수단이 언제부터인가 트위터나, 기타 다른 소셜미디어에 밀리기 시작했더군요.

긴 글에 대한 거부감일까. 아니면 늘 새로운 것을 찾는 네티즌들의 속성 때문일까요. 저 역시도 사실 잠시 그 흐름에 몸을 맡겨봤습니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짧은 단문의 힘은 인정하지만, 그것은 대외적으로 혹은 '영향력' 그 자체로서 논할 수 있지, 제 자신의 발전이나 진지한 논의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블로그가 어느새 무거워지고, 또 무엇인가 꼭 진지해져야 한다는 마음으로 이어지면서 부담감으로 다가오기도 했지요.

그러는 사이 오래 전 글을 읽어봤습니다. 참 자유 분방하더군요. 머리 속에 있는 생각들을 30%의 정제성만 가지고 쏙아내니, 편안하기도 하고 나름 폭 넓은 사고도 읽혔습니다.

제목에 어줍잖게 아해소리의 부활이라고 적어봤습니다. 혹자는 웃을 지도 모르지만, 저를 조금이라도 아시는 분들은 아주 조금은 기대를 하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블로그에 어떤 힘을 싣고자 함은 아닙니다. 그냥 자유롭지 못했던 제가 더 자유롭게 여러 말을 쏟아낼 준비를 다시금 한다는 것이지요...잡다한 생각을 다시한번 쏟아내겠다는..

- 아해소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주일에 한번씩 보는 잡지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시사IN'이다. 1호 때부터 사왔으니 꽤 오래된 듯 싶다. 그렇다고 정기구독을 해서 보지는 않는다. 가판에 나오는 시간보다 늦을 뿐더러, 간혹 출장 등 집에 못 들어오는 경우 늦게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지하철 가판대를 선호한다. 물론 이 때문에 실수도 한다.

지하철이 들어오고 급하게 살 경우 간혹 발간 날짜를 제대로 계산하지 못하고 급하게 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실수가 최근 커다란 지적 자산과 함께 잡지 읽는 습관을 바꿔놓았다. (잡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지는 않는다. 필요한 부분만 읽고, 한 주의 시간을 놓치면 그 잡지는 묵히게 되는 '자료'로 변한다)

지방 선거가 끝나고 '시사IN'에서 판세 분석이 분명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언뜻 지나가서 보니 'MB 추락'이라는 커버스토리 제목을 본 듯 했다. 지하철을 기다리다가 MB의 얼굴이 표지에 있는 '시사IN'을 들고 3천원을 낸 후 급하게 지하철을 탔다. 그런데 '아차'. 사진만 MB로 나왔지, 커버스토리는 '전쟁? 정말?'이었던 142호였다. 이미 사서 한 차례 읽은 잡지였다.

결국 본 내용 중에 혹 놓친 것이 있냐를 생각하면 142호를 다시 읽어보게 됐다. 대부분 읽었지만 4~5꼭지 정도가 익숙하지 않았가. 그 중 하나가 '10kg 넘는 고민뭉치 들고 다닙니다'라는 안철수 교수와 박경철 원장의 강의 글이었다. 왜 안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읽는 내내 똑같은 잡지를 다시 구입했다는 '아차'보다 잡지를 사놓고도 이 글을 읽지 못한 '아차'가 더 크게 머리를 통과했다.

특히 도리어 학생일 때는 자주 행했던 행동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에 나와서는 잊어버린 행동이 기억났다. 안 교수는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으면 바로 메모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적은 메모지를 가방에 넣고 다니다보니까 10kg이 넘고, 그게 자신의 고민의 무게라고 말한다. 과거 반드시 가방 속에 반드시 휴대한 것은 다이어리였다. 그것도 메모지를 가장 많이 끼워놓은 다이어리였다. 그런데 지금은 무엇인가를 끄적이는 것을 잃어버렸다. 가끔 핸드폰에 메모하기는 하지만, 희한하게 이는 '파생 아이디어'를 만들지 못했다. 끄적이다가, 한 단어에 필이 꽂혀 다른 단어로 이어지곤 했는데, 핸드폰은 단편적인 한 방향만 끄적이게 만들었다.

또 하나 안 교수의 말 중 눈길이 간 것은 "급한 일보다 중요한 일을 먼저 하라"였다. 항상 급한 일부터 처리하곤 했던 나에게는 당연한 말이면서도, 쉽게 접근 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중요한 일은 시간을 내서 해야될 것 같고, 급한 일은 지근 이 순간 처리해야 될 것 같은 생각을 늘 가졌다. 이 역시도 희한하게 사회에 나와서 그렇게 된 것 같다. 아마도 바로 지금, 누군가에 평가받고 있다는 생각이 급한 일에 시선을 자꾸 돌리게 하는 것 같았다.

결국 3천원을 다시 투자해 산 '시사IN'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나에게 수 백만원, 수 천만원 이상의 의미를 안겨줬다. 다시 가서 환불해도 되지만, 결국 그 '시사IN'을 회사에 두고 나왔다.

언제부터인가 글 속에서 의미를 찾고, 글 속에서 무엇인가를 찾아가는 느낌을 잃어버린 것 같다. 그리고 오랜만에 3천원을 재투자해 그 기분을 느껐다. 물론 자주 이러면 안되겠지만.

- 아해소리 -

 

댓글을 달아 주세요


영상시대라고 한다. 사람들은 집에서 사무실에서 그리고 걸어다니면서 영화를 보고 방송을 본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이 직접 찍어서 올린다. 넘치고 넘친다. 너무 많아서 이제는 UCC 스타가 나오지도 않는다.........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영상보다 더 넘치는 것이 글인 듯 싶다. 뭔 할말들이 그리 많은지 사람들은 글을 써서 인터넷에 올리고 소비한다. 영상이 3분 내외로 사람들에게 어필하려 하면 글은 점점 더 강화된 논리로 사람들에게 어필한다. 어설픈 감성은 들어가지도 못한다. 과거 90년대 중반까지 존재하던 낙엽 구르는 것만 봐도 까르르 웃던 여학생들은 사라지면서,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감성 글은 어느새 '유치하다'는 타이틀을 달고있다.

인터넷 몇번 클릭하다보면 어느 새 글에 파묻힌다. 수도없이 많은 기자들이 써내는 글도 모자라 싸이월드, 블로그, 트위터까지 정신없다. 걸어가면서도 글을 쓰고 지하철에서도 쓴다. 아니 정확히는 글을 친다. 펜으로 쓰는 모습을 본지 오래되었으니 말이다.

이런 상황인데도 난 글을 쓴다. 직업적으로도 그렇지만 사실 할 수 있는 재주가 없다. 그러다보니 누구나 할 수 있는 재주(?)인 글 쓰는 재주밖에 없다. 그것도 점점 내피는 없고 외피만 긁는다.

선배가 말한다.

"보고 듣고 하는 작업을 멈추고 생각하는 작업을 가질 시간을 가져라"

그러고보면 1시간 30분씩 정기적으로 이동할 때의 글이 제법 괜찮았다. 책 한권에 하루 생각이었는데, 지금은 너무 보고 듣기만 할 뿐 머리 속은 돌아가지 않는가보다. 글 계속 써야하는지도 고민이다.

-아해소리-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rightListen 2010.03.12 16: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자전거 타고 빌빌 돌아다닐 때만 해도 괜찮았는데 말이죠.

  2. Ultrablue 2010.08.14 02: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