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은 어른다워야 존경받는다.

일상에서의 생각 2011. 5. 9. 02:05 Posted by 아해소리

'~다워야 한다'는 말은 참 해석하기 어렵다. 너무 틀안에 갇히게 만드는 것 같고, 한편으로는 일종의 규정을 제시해 사람에게 편안함을 주기도 한다. 또 애매한 단어이기도 하다. 도대체 '~다워야'의 기준이 뭔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특정 직업이나 지위가 아닌, 인간이 살아가는 모습에서 찾자면 대다수가 수긍하는 수준의 영역이 있다. 그 중 내가 가장 절실히 느끼는 것이 '어른은 어른다워야 한다'이다. 물론 이도 애매하다. 도대체 어른다워야 하는 것이 무엇일까. 담배 피면서 지나가는 고등학생을 훈계해야 어른일까, 사회에서 막대한 권력을 지녀야 어른일까. 아니면 무조건 앞장서서 달려야 어른일까. 그 기준은 사실상 없다.

하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나이 어린 이들에게 가르치거나 길을 알려주려 한다면 최소한 자신 스스로도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타인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에 대해서도 말이다.

금연구역에서 담배피는 것을 뭐라했다고 "어린 녀석이"라고 반발하거나, 자신은 지하철에서 떠들면서 교복 입은 학생들에게 "조용히 해라"라고 하거나, 부당한 행동을 한 것에 대해 항의하면 "너 몇살이야"라고 대응하는 식의 어른들을 보면 차마 이들이 사회에서 그 나이대로 대우해줘야 하는 생각이 든다.

이는 비단 사회 뿐만 아니라.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다. 요즘은 많이 달라졌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는 능력제가 아니라, 연차 순이었다. 들어온대로 시간 지나면 직위가 올라간다. 문제는 후배를 다룰 능력도 없고, 자신도 못 챙기는 사람들이 상사 혹은 선배라는 이름으로 권력을 휘두를 때다. 선배다워야, 상사다워야 존경을 받고 따르는데, 이에 대한 자신의 모습은 돌아보지도 않고 밑의 사람만 고달프게 만든다.

'~다워야'의 정의는 앞서도 말했지만 없다. 그러나 누가 봐도 인지가 되는 상황이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상황을 자신에게도 적용시킬 줄 안다. 그것도 모른다면? 진짜 '~다워야'의 영역에서 대접 받을 생각을 버려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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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어른, 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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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멍게 2011.05.09 02: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때 이런 생각도 해봤어요. 나이를 살아온 날의 수에 따라 주는 것이 아니라, 그 나이에 맞는 수준이 됐다고 주위에서 인정해줄 때 그 나이를 가지도록 하면 어떩까. 40년을 살았어도 자질이 되지 못하면 40세가 되지 못하고 25세의 나이 밖에 안되는. 블로그에서 말한 것 처럼 40이라는 나이 다울 수 있을 때 그 나이가 되었다고 인정하며 나이가 들도록. 특히 우리나라는 더욱 더 계급이 깽패고, 나이가 깡패인 것 같아요



전에도 간혹 느꼈지만, 최근에 뼈저리게 느끼는 것이 권한이 큰 조직 내 윗자리가 할 일도 없고, 또 본인 스스로가 할일이 뭔지 찾지도 못할 경우 조직이 한심해진다.

할일이 없고 권한만 큰 상사는 사실 불안한 자리다. 할일이 없기에 자신이 인정받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직접적으로 후배들을 통솔할 수 있는 일이 뭔지 모르기에 무시당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그때는 자신에게 있는 커다란 권한만 휘두르려 한다. 후배들이 자신을 인정한다는 것을 늘 확인하려 한다. 후배의 권리 빼앗거나, 말도 안되는 일을 시키면서 끊임없이 괴롭힌다.

괴롭힘을 당하기 싫은 후배들이 선택하는 것은 세가지다. 순순히 그냥 시키는 것을 묵묵히 하던지, 해당 상사의 비위를 맞쳐주는 수 밖에 없다. 아미녀 그 조직을 나와야 한다. 물론 셋 다 쉬운 결정은 아니다. 여기에 단순히 그 상사와 일대일의 관계라면 선택은 의외로 쉬워질 수 있지만, 여러 사람이 복잡하게 엮여져 있다면 그 선택에 변수가 너무 많이 존재한다.

문제는 이게 조직의 흥망까지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권한은 있되, 능력도 할일도 없는 상사의 비위 맞추기에 에너지를 소모한 조직원이 그 조직에 충실할리가 없다. 연이은 회의감만 생길 뿐이다. 묵묵히 일하는 사람조차도 마찬가지다. 실제 필요한 일 대신, 괴롭힘 당하기 싫어 그냥 효율적이지도 않은 일을 한다. 나가는 사람은? 그 사람이 조직에 필요한 사람이라면 어떨 것인가. 이는 사실 흥망에 더 영향을 미친다. 조직에 필요한 사람이 기껏 할일없는 상사의 비위때문에 나간다면, 그 조직의 앞날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물론 할일 없고 권한만 큰 상사가 긍정적으로 가는 조직도 있다. 할일이 없기에 창의적으로 연결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보기 힘들다. 이미 권력을 맛 본 이들이 이를 벗어나려는 행위를 하기는 힘들다.

회사를 이끈다면 밑의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니라, 가끔은 밑의 밑의 밑의 사람 말을 잘 들어야 하지 않을까. 그 중간에서 어떤 이간질이 오갈지는 낮은 곳에서 봐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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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지만, 결국은 승리해야 인정받는 것이 스포츠 경기다. 그런데 8년 만에 또다시 스포츠의 과정이 사람들 마음을 울컥하게 만들 수 있음을 느끼게 해줬다. 그것도 솜털 보송보송한 어린 여학생들이 말이다.

17세 이하 피파(FIFA) 여자월드컵축구대회에 출전한 이 어린 여학생들은 끝까지 감동의 드라마를 한자 한자 적어나갔다. 첫 골을 넣어 기쁨을 주더니, 다시 한 골을 내주고, 또 역전하고 결국은 제대로 달리지도 못하는 연장전까지 들어갔다. 비록 상대가 숙적 일본이지만, 지더라도 그냥 여기서 끝나는 것이 어떨까라는 생각까지 들게 만들었다. 경기를 중계하던 캐스터와 해설자도 지쳐있는 상황이다. 거기에 흐름까지 일본이 쥐고 있는 것이 눈에 보였다.

그리고 접어든 승부차기. 허. 그런데 이 어린 여학생들이 여기서도 대한민국 국민들을 쥐락펴락 가슴 졸이게 만들었다. 첫 키커 이정은이 실패해 조마조마한 마음을 와다의 실수로 원위치가 되자, 필살의 역습에 나섰다. 결국은 다섯명의 키커가 모두 나가 4대4의 상황에서 서든데스. 와카마츠의 크로스바 실축과 장슬기의 깔끔한 슛으로 2시간 30분의 혈투가 끝났다.

성인 축구도, 유럽 축구도 이보다 재미있을 수는 없고, 이보다 감동적일 수 없으며, 이보다 손에 땀을 쥐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누가 이기든 이 경기는 결과보다 과정을 봐야해야 했다. 한국도 일본도 누가 이기든 월드컵 챔피온으로서 금메달을 목에 거는데 부끄럽지 않은 선수들이다. 어쩔 수 없이 누군가가 우승을 하고, 또다른 누군가는 준우승을 해야했지만, 만일 공동우승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이들에게 주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피파 주관 경기에서 우승자에게 트로피를 주는 의식까지 방송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한 여자축구 선수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 아해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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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해소리 부활~~~~~

일상에서의 생각 2010. 9. 12. 00:34 Posted by 아해소리
블로그라는 소통 수단이 언제부터인가 트위터나, 기타 다른 소셜미디어에 밀리기 시작했더군요.

긴 글에 대한 거부감일까. 아니면 늘 새로운 것을 찾는 네티즌들의 속성 때문일까요. 저 역시도 사실 잠시 그 흐름에 몸을 맡겨봤습니다.

그런데 재미난 것은 짧은 단문의 힘은 인정하지만, 그것은 대외적으로 혹은 '영향력' 그 자체로서 논할 수 있지, 제 자신의 발전이나 진지한 논의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블로그가 어느새 무거워지고, 또 무엇인가 꼭 진지해져야 한다는 마음으로 이어지면서 부담감으로 다가오기도 했지요.

그러는 사이 오래 전 글을 읽어봤습니다. 참 자유 분방하더군요. 머리 속에 있는 생각들을 30%의 정제성만 가지고 쏙아내니, 편안하기도 하고 나름 폭 넓은 사고도 읽혔습니다.

제목에 어줍잖게 아해소리의 부활이라고 적어봤습니다. 혹자는 웃을 지도 모르지만, 저를 조금이라도 아시는 분들은 아주 조금은 기대를 하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블로그에 어떤 힘을 싣고자 함은 아닙니다. 그냥 자유롭지 못했던 제가 더 자유롭게 여러 말을 쏟아낼 준비를 다시금 한다는 것이지요...잡다한 생각을 다시한번 쏟아내겠다는..

-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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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일에 한번씩 보는 잡지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시사IN'이다. 1호 때부터 사왔으니 꽤 오래된 듯 싶다. 그렇다고 정기구독을 해서 보지는 않는다. 가판에 나오는 시간보다 늦을 뿐더러, 간혹 출장 등 집에 못 들어오는 경우 늦게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지하철 가판대를 선호한다. 물론 이 때문에 실수도 한다.

지하철이 들어오고 급하게 살 경우 간혹 발간 날짜를 제대로 계산하지 못하고 급하게 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실수가 최근 커다란 지적 자산과 함께 잡지 읽는 습관을 바꿔놓았다. (잡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지는 않는다. 필요한 부분만 읽고, 한 주의 시간을 놓치면 그 잡지는 묵히게 되는 '자료'로 변한다)

지방 선거가 끝나고 '시사IN'에서 판세 분석이 분명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언뜻 지나가서 보니 'MB 추락'이라는 커버스토리 제목을 본 듯 했다. 지하철을 기다리다가 MB의 얼굴이 표지에 있는 '시사IN'을 들고 3천원을 낸 후 급하게 지하철을 탔다. 그런데 '아차'. 사진만 MB로 나왔지, 커버스토리는 '전쟁? 정말?'이었던 142호였다. 이미 사서 한 차례 읽은 잡지였다.

결국 본 내용 중에 혹 놓친 것이 있냐를 생각하면 142호를 다시 읽어보게 됐다. 대부분 읽었지만 4~5꼭지 정도가 익숙하지 않았가. 그 중 하나가 '10kg 넘는 고민뭉치 들고 다닙니다'라는 안철수 교수와 박경철 원장의 강의 글이었다. 왜 안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읽는 내내 똑같은 잡지를 다시 구입했다는 '아차'보다 잡지를 사놓고도 이 글을 읽지 못한 '아차'가 더 크게 머리를 통과했다.

특히 도리어 학생일 때는 자주 행했던 행동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에 나와서는 잊어버린 행동이 기억났다. 안 교수는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으면 바로 메모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적은 메모지를 가방에 넣고 다니다보니까 10kg이 넘고, 그게 자신의 고민의 무게라고 말한다. 과거 반드시 가방 속에 반드시 휴대한 것은 다이어리였다. 그것도 메모지를 가장 많이 끼워놓은 다이어리였다. 그런데 지금은 무엇인가를 끄적이는 것을 잃어버렸다. 가끔 핸드폰에 메모하기는 하지만, 희한하게 이는 '파생 아이디어'를 만들지 못했다. 끄적이다가, 한 단어에 필이 꽂혀 다른 단어로 이어지곤 했는데, 핸드폰은 단편적인 한 방향만 끄적이게 만들었다.

또 하나 안 교수의 말 중 눈길이 간 것은 "급한 일보다 중요한 일을 먼저 하라"였다. 항상 급한 일부터 처리하곤 했던 나에게는 당연한 말이면서도, 쉽게 접근 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중요한 일은 시간을 내서 해야될 것 같고, 급한 일은 지근 이 순간 처리해야 될 것 같은 생각을 늘 가졌다. 이 역시도 희한하게 사회에 나와서 그렇게 된 것 같다. 아마도 바로 지금, 누군가에 평가받고 있다는 생각이 급한 일에 시선을 자꾸 돌리게 하는 것 같았다.

결국 3천원을 다시 투자해 산 '시사IN'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나에게 수 백만원, 수 천만원 이상의 의미를 안겨줬다. 다시 가서 환불해도 되지만, 결국 그 '시사IN'을 회사에 두고 나왔다.

언제부터인가 글 속에서 의미를 찾고, 글 속에서 무엇인가를 찾아가는 느낌을 잃어버린 것 같다. 그리고 오랜만에 3천원을 재투자해 그 기분을 느껐다. 물론 자주 이러면 안되겠지만.

- 아해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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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시대라고 한다. 사람들은 집에서 사무실에서 그리고 걸어다니면서 영화를 보고 방송을 본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이 직접 찍어서 올린다. 넘치고 넘친다. 너무 많아서 이제는 UCC 스타가 나오지도 않는다.........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영상보다 더 넘치는 것이 글인 듯 싶다. 뭔 할말들이 그리 많은지 사람들은 글을 써서 인터넷에 올리고 소비한다. 영상이 3분 내외로 사람들에게 어필하려 하면 글은 점점 더 강화된 논리로 사람들에게 어필한다. 어설픈 감성은 들어가지도 못한다. 과거 90년대 중반까지 존재하던 낙엽 구르는 것만 봐도 까르르 웃던 여학생들은 사라지면서,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감성 글은 어느새 '유치하다'는 타이틀을 달고있다.

인터넷 몇번 클릭하다보면 어느 새 글에 파묻힌다. 수도없이 많은 기자들이 써내는 글도 모자라 싸이월드, 블로그, 트위터까지 정신없다. 걸어가면서도 글을 쓰고 지하철에서도 쓴다. 아니 정확히는 글을 친다. 펜으로 쓰는 모습을 본지 오래되었으니 말이다.

이런 상황인데도 난 글을 쓴다. 직업적으로도 그렇지만 사실 할 수 있는 재주가 없다. 그러다보니 누구나 할 수 있는 재주(?)인 글 쓰는 재주밖에 없다. 그것도 점점 내피는 없고 외피만 긁는다.

선배가 말한다.

"보고 듣고 하는 작업을 멈추고 생각하는 작업을 가질 시간을 가져라"

그러고보면 1시간 30분씩 정기적으로 이동할 때의 글이 제법 괜찮았다. 책 한권에 하루 생각이었는데, 지금은 너무 보고 듣기만 할 뿐 머리 속은 돌아가지 않는가보다. 글 계속 써야하는지도 고민이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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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rightListen 2010.03.12 16: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자전거 타고 빌빌 돌아다닐 때만 해도 괜찮았는데 말이죠.

  2. Ultrablue 2010.08.14 02: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감...



'아해'가 평소 가지고 다니는 물품들 중에 배터리라는 것이 꼭 필요한 제품이 무려 4가지 (싸가지 아니다). 3년 정도 사용한 노트북과 오래된 기종이지만 이제 막 바꾼 휴대폰 그리고 동영상 플레이가 가능한 MP3와 조금 오래된 작티.

뭐 전체적으로 꼭 따져보지는 않았지만, 대개 노트북은 풀로 사용하면 3~4시간 정도 가는 편이고, 휴대폰은 하루에 배터리 한번정도는 갈아준다. MP3는 하루 정도 가는 편이고, 자주 사용하지 않는 작티는 2~3일 사용한다. 문제는 동영상을 플레이했을 때다. 노트북은 2시간 정도에서 끝나고, 휴대폰이나 동영상이 재생되는 MP3는 말할 것도 없다. 여기에 DMB 등을 켜놓으면 배터리가 2개 정도 필요한 상황이다.

기기 별로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꼭 '이거다'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배터리 때문에 신경 쓰는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많은 기능을 보유할수록 배터리는 더 많이 더 빨리 자신의 능력을 저하시킨다. 고유의 기능만을 담당할 시에는 의외로 오랜 시간 목숨을 연명한다. 그런데 이게 참 완전방전에 완전충전을 지향하는 입장에서 3시간짜리 배터리가 1시간만 남은 경우 고민에 빠진다. 충전을 해야하는지, 하지 말아야 하는지 말이다. 노트북 배터리 1시간은 순식간이다.

어느 하루는 우연찮게 노트북, 휴대폰, MP3 모두가 배터리가 방전됐다. 전날 어느 정도 여유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일이 폭주하는 바람에 손쉽게 배터리가 나간 것이다. 결과는 하루 종일 빌빌 댔다. 노트북과 휴대폰, MP3가 거추장스러울 정도였다.

무한 배터리가 존재하기는 힘들지만, 간혹 휴대폰이나 노트북 기능보다는 배터리부터 어느정도는 해결을 해줬으면 하는 바램이 선다. 자신들이 자랑하는 기능을 십분 발휘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내가 '배터리 충전 지향형' 인간으로 바뀌고 있는 것 같다. '배터리 10% 남았습니다'가 어느 새 사람 마음을 뒤숭숭하게 만드니 말이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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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직업의 단점은 나의 글을 쓰기 힘들다는 점이다. 언제부터인가 글을 쓴다는 것이 무겁게 다가왔다.

그냥 일적으로 쓰는 글들은 그럭저럭 쓰겠는ㄷ...그것이 나의 글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글은 부담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특히 내가 아끼는 이 공간은 더더욱 그렇다. 게다가 사회적으로 블로그에 1인 미디어 등 다양한 의미부여를 하는 바람에 더욱더 그러해진 것 같다.

글의 무게를 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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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생은 언제가 끝난다. 이를 거역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불로장생을 꿈꾸던 진시황제 역시 결국은 생을 마감했다. 사람들의 생은 모두 똑같다. 그러나 역시 사회적으로 그 이름을 남기는 이들의 죽음은 대중들에게 충격을 준다.

2009년 대한민국에서는 매월 죽음의 소식을 들어야했다. 매년 자살이나 사망 소식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곤 했지만, 올해처럼 충격적이고 사회적 여파가 큰 죽음의 소식은 없었다. 누구의 탓을 하지는 못한다. (뭐 일부 죽음은 한 인물에게 돌려도 될 듯) 단지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빌 뿐이다.


2009년 2월 16일 김수환 추기경 노환으로 선종

2009년 3월 7일 배우 장자연 자택에서 자살

2009년 4월 27일 배우 우승연 자택에서 자살

2009년 5월 22일 배우 여운계 폐암 사망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2009년 6월 25일 마이클 잭슨 심장마비 사망

2009년 7월 12일 산악인 고미영 히말라야 탈환 후 하산하다 사망

2009년 8월 4일 수영 선수 조오련 심장마비로 사망

2009년 8월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서거

2009년 9월 1일 배우 장진영 위암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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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다는 의미는 뭘까

일상에서의 생각 2009. 8. 12. 12:49 Posted by 아해소리

사실 쉰다는 의미를 모르겠다.

쉰다고 생각하고 몸을 늘어뜨려도 머리는 회전한다.

머리 회전해 먹고사는 내 입장에서는 차라리 몸을 괴롭히고 머리를 쉬게 하고 싶다.

그런데 그게 참 방법을 모르겠다.

세상 일에 관심 끊으면 될까. 그러면 어느 순간 방관자로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나를 발견한다.

어려서 누군가 말했다. 잘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고. 그래야 성공하고 건강하다고.

그런데 그 버리는 것이 참 어렵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지금 내가 가진 것을 놓기 싫어 아둥바둥하는 내 모습에 애처로움마저 느껴진다.

그렇다고 가진 것이 많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 그 조그마한 것을 놓지 못해 쉬지도 못한다.

누가 쉬는 방법 좀 알려줬으면..

- 아해소리 -

TAG 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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