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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새벽 연천내 모부대에서 있었던 총기난사사고의 희생 군인들의 이름이 올라오면서 각 포털사이트를 비롯한 주요 사이트에서 이들에 대한 사이버 추모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다. 누구의 책임인가와 정부의 대처방안에 대한 비판과는 별도로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한 이들에 대한 네티즌들의 목소리는 한결같다.
 
"더 좋은 세상에서 하고싶은 마음껏 하고 젊음을 누리길 바랍니다"
 
특히 이들이 대부분 84~85년생임을 확인한 네티즌들은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일일이 확인하여 찾아내 추모의 글을 올리고 있다. 20일 새벽 0시 10분경. 박의원 상병의 미니홈피 (http://cyworld.com/puwpuw)에는 8만명에 가까운 네티즌들이 찾았고 3천여개의 추모글이 올라왔다. 입대동기인 조정웅 상병의 미니홈피 (http://www.cyworld.com/jwch24) 역시 2만 5천여명이 찾아 1천여개의 추모글을 올렸다. 이들뿐만 아니라 이건욱 상병 (http://www.cyworld.com/kunwook1) 을 비롯한 다른 희생자들의 미니홈피에도 수천에서 수만명의 네티즌들의 찾아 애도의 글을 올리고 있다.
더욱이 이들이 군에 입대하기전 혹은 휴가를 나와서 찍은 사진들은 더더욱 네티즌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자신의 아들, 동생, 친구를 군대에 보낸 사연을 올리며 이들의 희생을 진심으로 슬퍼하고 있다.
 
한편 이들뿐만 아니라 새벽에 총기난사를 한 김모일병의 실명과 미니홈피 주소가 공개되어 네티즌들이 수많은 비난의 글을 올리고 있다. 또한 희생자들과 동명이인인 미니홈피 이용자들은 갑자스런 네티즌들의 방문에 놀라며, 일부 회원은 "저는 이번에 희생당한 000가 아닙니다"라는 글을 아예 메인화면에 올려놓고 있다.
 
- 아해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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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분단된 탓에 험한 의무를 지고 생활하던 8명의 군인이 죽고 2명은 중상으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네티즌들은 또다시 죽은 자와 죽인 자의 편으로 갈라서서 논쟁을 벌이고 있고, 정치권은 각각의 이익에 맞게 논평을 내면서 서로를 공격하려 이빨을 갈고있다.
 
한 집안의 귀한 아들이 이놈의 땅에 태어난 이유로 또래에게 '미친 놈' '개XX'등의 욕을 먹으면서 생활을 하는 것이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다. 그렇다고 그러한 몇 마디에 쉽게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 역시 정상은 아니다. 한편의 비정상을 지속적으로 묵인한 결과가 다른 한편의 비정상을 촉발시켜 이같은 참극을 낳았다. 과연 누구의 잘못일까.
 
한 쪽은 말한다. '욕 몇마디에 쉽게 자신을 포기할 녀석이라면 죽어라. 사회에 나와서도 그러한 사람은 버티지 못하고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
다른 쪽이 말한다 '오죽했으면 사람을 죽일 생각을 했을까. 이번 기회에 군대 인건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총을 쏜 군인도 피해자다'
 
둘 다 정답이고 둘 다 오답이다. 스스로를 쉽게 버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사회에 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인격박탈권이 하루 혹은 일주일 먼저 들어온 선임병에게 있는 군대 환경을 조금은 고려해야 한다. 사람을 죽일 생각을 할 정도로 절박했다면 정말 그 사람을 동정하고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그렇다고 군대 인권 운운하는 것은 문제다. 거의 강제로 끌려오다시피한, 행위에 대한 성과가 전혀 없는 군대사회에서 100% 인격적으로 후임병을 대할 수는 없다. 군대를 갔다온 사람들은 알 것이다. 전쟁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무기를 합법적으로 소지한 군인을 정신적으로 긴장시키지 않으면 더 큰 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은 해답이 없는 쪽으로 간다.
 
이 나라의 상황과 군대라는 특수집단의 폐쇄적 모습을 논외로 칠 경우, 난 개인적으로 수류탄을 던지고 40여발의 총을 난사한 그 군인에게 더 큰 죄를 묻고싶다. 이유는 하나다. 죽일 이유가 없는 사람들을 죽이고, 그 가족은 물론 자신의 가족들에게까지 슬픔을 주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정신적 고통을 해소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늦은 나이로 군대를 갔다와 지금의 군대상황을 어느정도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러한 방법은 여러가지로 보았다. 문제는 그것을 찾을 의지도, 그리고 스스로를 다스릴 생각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고, 그때문에 그 군인의 죄는 무거운 것이다.
 
2004년초에 이런 말이 군대에서 떠돌았다.
 
'어느 부대에서 견장(지휘권을 상징)을 차지않은 한 병장이 이등병에게 심부름을 시키자, 그 이등병이 '0병장님 영창가고 싶으십니까?'라고 응답했다고 한다. 당연 그 병장이 이 이등병에게 취할 수 있는 방법은 그 이등병이 속한 분대장에게 건의하는 것 뿐이다. 그리고....아무것도 못한다'
 
아마도 이번 일이 지나면 군대는 더 좋아질 것이다. 서로 상호간의 존칭을 쓸 지도 모르고, 지휘권을 가진 자 이외의 모든 사람들은 평등하게 군생활을 할지도 모른다. 후임에게 한마디 욕했다가는 그날로 영창이나 군기교육대를 들어갈지 모른다. 선임은 후임의 눈치를 봐야하고 후임은 1년후 자신이 그런 처지가 될지 모르고 후임으로서의 편안함을 누릴지도 모른다.
 
군대에서도 인권은 중요하다. 누가 누구에게 욕하거나 구타하는 것은 분명 비정상적인 일이다. 명령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군대라는 특수사회에서 그렇다고 사회에서처럼 관계를 맺을 수는 없다. 기본적으로 '끌려갔다'라는 생각은 이 비정상을 정상으로 만들었고,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다.
 
또다시 이번 문제를 가지고 여러 학자들과 방송인들은 해답없는 토론을 벌이고, 비판을 하고 논평을 쏟아낼 것이다. 그리고 현직에 있는 군인들은 비아냥거린 태도로 개그프로그램을 대체해 그 모습을 볼 것이다.
 
횡설수설했다.  젊은 나이에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다가 죽은 8명의 병사의 명복을 빈다.
 
PS....한나라당이 이번 사건을 빌미로 군기강이 해이해졌다며 여권을 공격하는데, 뭐 틀리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늘 그렇지만, 한나라당이 자신들의 과거를 되돌아보지 않는 것은 언제나 유감이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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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싱걸이 대세다. MC에 배우에.....카페에 팬이 수천명에서 수만명이다....어느 때부터인가 레이싱장과 모터쇼장에서의 주인공은 레이서도 새로 나온 번쩍번쩍한 차도 아닌 레이싱걸들이 되기 시작했다. 도우미 등등의 다른 용어들은 이제 사라지고 레이싱걸, 레걸이 대표어가 되기 시작했다.
 
레이싱걸을 처음 본 것은 꽤 오래되었다. 레이싱걸이 '히트상품'이 되기 전, 그리고 옷차림이 지금처럼 노출의 극대화를 노리기 전이니까 '오래'되었을 것이다. 그때는 그들은 주인공이 아닌, 잘해야 조연이고 단지 분위기를 띄우는 엑스트라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그들이 지금과 똑같은 것은 당당함이었다. 지금처럼 많은 카메라가 들이댄 것은 아니지만, 카메라앞에서 그렇게 당당할 수 없었다. 게다가 요즘처럼 디카에 폰카에 캠이 난무하던 때가 아니였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했다. 당시에 사진촬영은 (아니 아마도 2000년도 초까지도 그러했을 것이다) 카메라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카메라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였다. 찍히는 이가 주체이긴 했지만, 찍는 이는 그 주체를 움직이는 절대자였다. 그런데 그러한 시절에도 그들은 당당했다.
 
그런 그들을 지난 해 일산 모터쇼에서 다시 봤다. 2001년도인가에 코엑스에서 보고, 4년만이다. 더 화려해졌고, 더 당당해졌다. 이제는 스타 반열이기 때문에 도리어 그들을 보러온 사람들에게 다양한 서비스를 해야 한다는 의무적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카메라 렌즈에 더 가까이 다가가는 모습은 찍는 이가 어색해 할 정도였다.
 
내가 제목에 이쁘다는 말을 쓰고 이렇게 레이싱걸 애찬을 늘어놓는 것은 이유가 있다. 언론에서 자주 거론되는 그들의 모습을 재탕하기 위함도 아니고, 내가 그들 중 누구에게 사랑에 빠졌다는 이야기를 함도 아니다.
당당함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함이다.
 
어느 날 후배와 이야기하면서 요즘 여성들이 참 이뻐졌다는 이야기를 했다. 왜일까. 내가 생각하는 이유는 하나다. 성형의 기술도 아니고 화장의 기술도 아니다. 당당함이다. 스스로에게 투자하는 당당함, 사람들에게 자신을 내보이는 당당함 (아니 내보이고 싶어하는 당당함이 더 어울릴 것이다) 그러한 것들이 어울려져 이쁘고 아름다워진 것이라는 결론을 냈다. 아무리 날씬하고 이목구비가 뚜렷해도 이쁘다는 생각이 안 드는 여성이 있는가하면, 현대적 미의 기준 (다시 정확성을 위해 재차 말하면, 매스컴에서 세워준 기준에 따르면)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뭇남성들을 설레게 하며 아름다움을 뽐내는 여성도 있다.
 
뭐 그렇다고 "못생긴 여자가 당당하면 이쁘고, 내면의 미가 진짜 아름다움이다"라는 앞뒤 상황 잘라낸 주장을 하고 싶은 생각은 아니다. 요는 이쁘면 이쁜대로, 안이쁘면 안이쁜대로 스스로에 대한 투자와 당당함을 만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자랑스럽지 못한 사람이 타인에게 사랑받을 생각을 하면 안된다. 사랑을 받으면 이뻐진다.(사실이다. 주관적일런지 모르지만, 10여년간 봐온 내 후배가 그 증거다) 그러나 그 사랑을 받기위해서는 스스로가 먼저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사실 자세히보면 알겠지만 매스컴이란 미 측정 감독관의 기준에서 보면 레이싱걸들 중에서도 탈락자가 꽤 있다. 기업에서도 이들에게 등급을 매기는 것을 보면 알것이다. 아니 직접 가보면 안다. 남자들이 몰리는 차량이 있고, 안 몰리는 차량이 있다(?). 그런데도 그들 모두가 당당함을 잃지 않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무기로 자신에게 들이대는 수십 수백개의 카메라에 렌즈를 뚜렷하게 응시하고 있는 레이싱걸들이 이쁜 것은 당연할런지 모른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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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이 올해 초 내놓은 구글 지도(http://maps.google.com/)는 기존의 맵퀘스트(http://www.mapquest.com/)와 야후 지도(http://maps.yahoo.com/)와는 다른 신선한 감각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구글은 처음부터 자바스크립트와 XML만으로 경쟁력 있는 지도를 만든다고 공언했는데, 이 중 XML 부분은 제3자가 구글 지도를 이용해 원하는 응용 프로그램을 쉽게 만들 수 있는 기능을 자연스럽게 제공합니다.
 
불과 몇달 사이 미국에 웹사이트에서 구글 지도를 이용한 인터페이스가 대거 등장한 것은 바로 이러한 태생적인 신축성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구글 지도를 이용하면 누구나 깔끔한 인터페이스는 물론이고, 액티브엑스(AtiveX) 등 복잡한 프로그램 없이 자바스크립트만으로도 훌륭한 개인적인 공간이 인터페이스를 구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인권침해 요소를 불러 일으킬 수 사례를 발생 시키고 있습니다.
 
올해 24세 인  애이드리언 홀로버티(Adrian Holovaty)씨는 미국 내 스물아홉 개 도시에 매물로 나온 아파트를 편리하게 찾아볼 수 있는 (http://Housingmaps.com/)지도와 함께 시카고 경찰서에서 내놓은 범죄 관련 데이터베이스를 구글 지도에 이식한 시카고크라임(http://chicagocrime.org/)을  만든어 인터넷에 배포하고 있습니다.
 
이 사이트를 이용하면 시카고 인근에서 집을 구하면서 성범죄가 자주 일어나는 지역이 어디쯤인지 미리 손쉽게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플로리다의 한 사이트(http://Floridasexualpredators.com/)는 아예 성범죄만으로 특화된 지도를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이 사이트는 크랙스리스트(http://www.craigslist.com/)라는 부동산 정보 사이트의 데이터베이스를 구글 지도 위에 이식한 것입니다.
 
여기는 대도시의 실시간 교통 상황과 구글 지도를 결합한 구글 트래픽(http://supergreg.hopto.org/google-traffic.com/)이나 전국 관광지 안내도(http://www.googlesightseeing.com/)까지 등장했습니다.

한 가지 문제점은, 이러한 구글 지도 응용 프로그램들이 구글 측의 정식 허가를 얻고 개발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구글이 소프트웨어 도구나 개발과 관련된 라이선스를 제공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만, XML 기반의 구글 지도 프로그램은 누구나 그 내용을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에, 실력 있는 해커들이 이를 쉽게 수정하여 독특한 프로그램들을 만들고 있습니다.
 
구글은 이들 응용 프로그램에 대한 코멘트는 거부했으며, 최근 구글 월페이퍼라는 사이트(http://gmerge.2ni.net/)에 라이언스 위반을 이유로 폐쇄를 요구함으로써 해커들을 긴장시키고 있습니다.

글 출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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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년도인가 대학 4학년때 우연하게 본 5.18기념 열린음악회를 보고 난 3년만에 눈물을 흘렸다. 안치환씨가 나와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는데, 설정일런지는 모르지만 안치환씨가 독백처럼 잔잔하게 시작을 해서 장엄한 분위기로 전체를 이끌었다. 98년 대선, 김대중 전대통령이 집권을 한 직후인지는 모르겠지만, 광주시민들은 눈물을 흘렸고, 그 장면을 TV로 보는 나도 혼자서 눈물을 흘렸다. 집회에 나가 수없이 많이 부른 '님을 위한 행진곡'이지만 분명 그때 조그마한 화면속에서 불리어지던 그 노래는 정의할 수 없는 뭔가를 남겼다

그리고 오늘 다시 TV를 봤다. 삶에 지쳐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살아가기에 어쩌면 난 광주에서의 열린음악회에 큰 기대를 했는지 모른다. 눈물까지는 아니더라도, 어설프게나마 치열하게 살았던 과거의 내 모습을 조금이나마 기억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거기에는 더 이상 아픔을 간직한 광주도, 시대의 민주화를 이끌었던 광주도 없었다. 그냥 가수들의 노래 한마당이었다.

천지인은 차라리 '청계천 8가'등의 자신들의 노래나 조용히 부르고 나갔으면 좋았을 것이다. 대학때 강한 메시지를 대학인들에게 어필하던 그 천지인이 아니었다. 홍대앞 흔히 볼 수 있는 밴드에 불과했다. 처음부터 '천지인'이 아닌 '천지인밴드'로 소개되었을 때 이미 알아차렸어야 했다. 그들이 부른 '님을 위한 행진곡'이나 '바위처럼'은 광주의 아픈 기억이 몇년도에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중고등학생들의 철없는 말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광주발 열린음악회는 다른 지역에서 해도 상관없을 듯 했다. 광주의 기억을 되짚은 것이 아니라, 그것을 빌미로 하나의 프로그램만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25년이 지난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광주를 이야기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들이 목숨바쳐 이룩한 민주주의 결실을 보았으니, 이제는 조금은 무거운 분위기에서 나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광주의 기억은 여전히 무겁고 또한 계속 무거워야 한다. 그것이 축제로 혹은 경축일로 기억되는 순간 광주는 다시 죽는다. 광주의 기억을 되짚고자 하는, 그리고 그 아픔을 같이 느끼고자하는 모든 행사는 무거워야 한다. 10분짜리 TV프로그램이라고 하더라도 그래야 한다. 그 기억을 가지고 있는, 80년 5월의 광주 거리를 기억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절대로 시대의 가벼움을 보여주어서는 안된다.

오늘 열린음악회는 광주를 선택하지 말았어야 했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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