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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상의 전환’. 모든 조직에서 구성원들에게 요구하는 사항이다. 동서양에는 이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내려온다. 그 중 고르디우스의 매듭’ ‘쾌도난마’(快刀亂麻) ‘콜롬버스의 달걀은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말이다. 무엇인가 해결되기 어려울 때 단번에 해결하는 혹은 발상의 전환으로 푸는 상황이다. 최근에는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이 “(윤석열기시다) 양측 정상이 만나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푼 직후에 챙겨야 할 현안들을 속도감 있게 다뤄나가는 절차가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지만, 결국 잘렸다. 아무튼 이들 말의 역사를 살펴보자.

 

 

테슬라 주가가 벌써 이렇게?…에디슨에 밀렸던 천재과학자, 일론 머스크가 이용한 테슬라.

일론 머스크(Elon Musk)가 트위터를 인수한 시점 전후로 테슬라의 주가는 줄곧 하향세였다. 1000달러가 넘었던 테슬라는 108달러 등까지 내려가며 한때 100달러 선이 무너진다는 이야기까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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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디우스의 매듭 알렉산더

 

'고르디우스의 매듭'(Gordian Knot)

 

고르디우스의 매답풀지 못하 는 매듭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리스 신화 에서 유래된 이 매듭의 내용은 이렇다. 왕이 없던 고대 소아시아의 프리기아 왕국에 어느 날 신탁을 통해 텔미소스성에 이륜마차를 타고 오는 첫 번째 사람이 왕이 될 것이라는 얘기가 전해졌다. 그리고 얼마 뒤 시골 농부였던 고르디우스가 그의 아들 미다스와 함께 마차를 타고 텔미소스성으로 들어왔다. 그를 본 사람들 은 기뻐하며 고르디우스를 왕으로 추대했다.

 

왕이 된 고르디우스는 타고 온 마차를 신전에 바치면서 굵고 단단한 줄로 아주 복잡한 매듭을 지어 신전 기둥에 묶었다. 그러면서 이 매듭을 푸는 사람이 아시아의 지배자가 되리라라는 예언을 했다. 이후 수백년 동안 수많은 사람이 도전에 나섰지만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고, 이 매듭은 영원히 풀지 못할 고르디우스의 매듭으로 불렸다.

 

 

그러나 마케도니아 알렉산더 대왕이 이를 해결했다. 다른 도전자들처럼 처음에는 매듭을 풀려했지만, 결국 기존의 방법으로 풀지 못하자, 칼로 매듭을 잘라버렸다. 이후 알렉산더 대왕은 인더스강까지 진출해 그리스의 50배가 되는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다. 여기서 엉클어진 실타래를 풀어내는 쉽지 않은 문제를 접했을 때 다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쾌도난마.

 

중국 남북조시대 북제의 창시자 고환은 자신의 아들들을 시험하기 위해 뒤얽힌 실 한 뭉치씩을 나눠주며 이를 풀어보라 했다. 아들들은 실 한올 한올 푸느냐고 진짬을 흘렸는데, 양이란 아들만 달랐다. 그는 칼을 가지고 와 헝클어진 실을 싹둑 자르며 어지러운 것은 한 번에 베어버려야 한다고 고환 앞에서 말했다. 그가 북제의 초대 황제 문선제이다. 여기서 유래한 고사성어가 쾌도난마(快刀亂麻). 잘 드는 칼로 마구 헝클어진 삼실 가닥을 자른다는 뜻으로 어지럽게 뒤얽힌 사물을 강력한 힘으로 명쾌하게 처리함을 이르는 말이다.

 

콜럼버스의 달걀

 

콜럼버스의 달걀.

 

신대륙 항해를 마치고 돌아온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는 자신을 축하해 주는 파티에서 자신을 시기하는 몇몇 사람들에게 조롱을 당한다. 즉 그가 이룬 업적에 대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깎아내린 것이다. 그러자 콜럼버스는 그들에게 제안을 한다. 달걀을 세워보라고 요구한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누구도 달걀을 세우지 못했고, 이는 애초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콜럼버스는 달걀을 살짝 깨뜨려 탁자 위에 세운다.

 

사람들은 어이없어 하면서 그렇게 하면 누구나 할 수 있다며 폄하했다. 그러자 콜롬버스는 누군가를 따라하는 것은 쉬운 일이나 무슨 일이든 처음 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이야기 해서 다른 사람들을 눌러버린다. 그런데 여기서 하나. 사실 달걀은 세운 것은 콜럼버스가 아니라는 이야기가 있다. 즉 이 이야기는 콜럼버스가 아닌 필리포 브루넬레스키라는 이탈리아의 건축가가라는 것이다. 브루넬레스키가 피렌체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의 설계를 공개했던 당시 일어난 일이라는 것. 실제 있었던 일인지는 명확치 않으나 콜럼버스의 달걀을 세운 일화가 와전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어쨌든 현재에 와서는 콜럼버스의 달걀은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는 발상의 전환은 언급할 때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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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론 머스크(Elon Musk)가 트위터를 인수한 시점 전후로 테슬라의 주가는 줄곧 하향세였다. 1000달러가 넘었던 테슬라는 108달러 등까지 내려가며 한때 100달러 선이 무너진다는 이야기까지 있었다. 일론 머스크의 기행이 투자자들을 불안하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 테슬라는 이내 회복하기 시작했고, 현재 200달러를 오가는 상황이다. 그리고 월가에서도 테슬라의 목표주가를 주당 180달러에서 230달러로 높였다.

 

 

가장 막강한 화폐 달러, 그러나 시작은 미국이 아니었다.

환율이 또다시 오르고 있다. 한때 1200원대 중반까지 내렸던 환율이 1300원대를 넘어섰다. 그런데 지금 이 말을 하는 동안 사람들은 그냥 달러로 이해한다. 다른 국가 환율을 떠오르지 않는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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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 에디슨

 

지금이야 사람들이 전기자동차와 주가, 그리고 우주 진출 계획인 스페이스 x로  테슬라를 기억하지만, 테슬라는 에디슨을 이긴 천재과학자다. 전기 자동차 테슬라라는 이름은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라는 이름에 싸온 것이다.

 

테슬라는 1856년 크로아티아 에서 태어난 세르비아인이었다. 젊은 시절 미국으로 이민을 가 에디슨 연구소에 입사한다. 에디슨이 그의 천재적 재능을 알아봤기에 둘은 고용-피고용주 관계이자 동업자였다. 그러나 천재 둘이 만나서 끝까지 동업하기는 어렵다. 결국 그들은 전기를 보내는 방식을 두고 싸우기 시작했다.

 

 

전기를 싼값에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고민하던 에디슨은 그 방법을 찾으면 거액을 주겠다고 테슬라에게 약속한다. 그 약속을 믿은 테슬라는 당시로선 혁신적인 교류 시스템을 발명했다. 바로 교류로 전기를 보내는 것이다. 그러나 직류 방식을 밀었던 에디슨은 테슬라를 무시했다.

 

에디슨이 선호했던 직류는 전기가 항상 같은 방향으로 일정하게 흐르는 하는 반면, 테슬라의 교류는 전기의 방향이 주기적으로 변한다. 전력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전기를 멀리까지 보내려 면 전기의 세기인 전압을 높여야 한다. 하지만 직류 방식은 에너지 손실이 커 수 킬로미터 이 상 떨어진 곳에 전기를 보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당시에는 110볼트를 6000볼트까지 전압을 올리는 기술이 개발되지 않은 탓이다. 이런 단점을 극복하고 전기를 멀리 보내려면 곳곳에 발전소를 설치해야 한다.

 

반면 테슬라가 개발한 교류 방식은 싸고 편리하게 전기를 공급할 수 있었다. 송전 시 에너지 손실도 적어 직류 방식처럼 발전소도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전기가 220볼트 교류 방식인 것도 이런 이점 때문이다.

 

이러자 에디슨은 굉장히 비열한 방법으로 테슬라의 교류를 깎아내리려 한다. 사실 이런 에디슨의 추한 면을 보면, 어릴 적 위인전에서 읽은 에디슨이기에 쉽게 납둑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천재가 천재에게 시샘하는 모습을 본 것이 어디 처음이겠는가. 모차르트를 살리에리가 질투했듯이 말이다.

 

 

약탈은 유럽‧일본이 더 많이 했는데, ‘반달리즘’으로 불려 억울한 반달족

조르지아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최근 이탈리아의 외교시설이 독일과 스페인에서 반달리즘의 타깃이 됐다고 밝혔다. 총리는 베를린에서 외교관의 차량이 불에 탔고, 바르셀로나 주재 이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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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슨은 15000명이 보는 앞에서 교류방식으로 코끼리를 죽이는가 하면, 언론사에 편지를 보내 니콜라 테슬라를 맹비난했다. 그러나 언론의 반응이 에디슨의 뜻대로 되지 않자, 테슬라의 교류 시스템으로 전기 의자를 발명해 교류 전기는 위험하다는 인식을 주려 했다. 그러나 이미 대중적으로 교류 시스템은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미국 굴지의 전기회사인 웨스팅하우 스는 미국 전역에 공급하는 전기 설비를 전부 교류 시스템으로 바꿨다.

 

이에 에디슨은 다양한 발명품으로 전기 전쟁의 패자의 이미지를 없애려했다. 물론 그 의도는 맞아떨어졌다. 전기에 관련해 사람들은 에디슨은 기억하지만, 테슬라는 기억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것을 일론 머스크가 2003년 전기차 회사를 세우면서, 회사명을 테슬라로 지으면서 사람들에게 화려하게 부활했다. 참고로 둘은 1915년 노벨물리학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됐은데, 테슬라가 이를 거부해 둘 다 수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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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이 또다시 오르고 있다. 한때 1200원대 중반까지 내렸던 환율이 1300원대를 넘어섰다. 그런데 지금 이 말을 하는 동안 사람들은 그냥 달러로 이해한다. 다른 국가 환율을 떠오르지 않는다. 그만큰 달러의 힘의 크다. ‘달러’(Dollar)는 전 세계 유일의 기축통화다. 즉 전 세계 결제나 금융거래의 기준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달러는 미국 달러다. 현재 호주, 뉴질랜드, 홍콩 등 20여 개 나라가 자국 통화의 이름을 달러라 부르고 있다. 그러나 보통 달러라 말하면 미국 달러이고, 나머지는 호주 달러’ ‘홍콩 달러등으로 칭한다. 때면 미국 달러는 전 세계 모든 달러의 대표 달러라고도 말한다.

 

 

‘간편한 한 끼’ 대명사 된 샌드위치 백작이 남긴 것.

얇게 썬 2쪽의 빵 사이에 육류나 달걀·채소류를 끼워서 먹는 간편한 대용식 빵.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샌드위치(sandwich)는 ‘간단한 한 끼’를 표현한다. “뭐 간단하게 샌드위치로 끼니 때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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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

 

달러는 보헤미아에서.

 

그런데 이 달러는 사실 미국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현재의 위치로는 체코 서부쯤 위치한 보헤미아 왕국이 달러의 시작을 알린 나라다. 1516년 보헤미아 야히모프 지방의 산자락 요하힘스탈에서 거대한 은화 광산이 발견된다. 영주였던 슐리크 백작은 광산에서 발견된 은으로 은화를 제작해 요아힘 골짜기에서 나온 돈이란 뜻으로 요하힘스탈러 그로센'(Joachimsthaler grochen)이라 이름 붙였다.

 

그러나 이 돈의 명칭이 길어서 탈러 그로센‘ ’요아힘스탈러라고 줄여서 불렀고, 나중에는 그냥 탈러‘(thaler)라 부르게 됐다. 탈러는 품질이 좋았고 점점 유럽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그리고 탈러는 화폐의 대명사가 되어 다른 고가 은화들의 이름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돈의 숫자는 약 9000여개에 이르렀다고 전해진다.

 

 

미국 달러 정착기.

 

미국의 달러는 독립전쟁 이후인 178576일 열린 대륙회의에서 결정됐다. 달러가 생기기 이전에는 미국은 영국이나 에스퍄냐 등에서 발행된 화폐가 혼용되어 사용됐다. 당시 기축통화는 영구 파운드화였고 미국 내 유통량이 가장 많았지만 영국의 지배를 피해 와서 개척한 미국인들이 파운드에 대한 반감을 가지지 않을 리 없다. 결국 에스파냐의 식민지 통화 달러를 골랐다.

 

1785년 미국의 화폐가 된 달러는 1792년 화폐주조법이 제정된 후에야 공식 화폐 단위로 지정됐다. 하지만 달러는 꽤 오랜 시간 미국의 일부에서만 사용됐다. 사람들은 여전히 각 주에서 발행한 자체 화폐 또는 파운드화를 선호했다. 달러가 미국의 실질적인 단일 통화로 온전히 자리잡은 것은 1913년 이후 연방준비제도를 출범시켜 연방 지폐를 제외한 다른 지역의 돈이 발행하는 것을 중단시킨 후였다. 1,2차 세계대전의 영향도 있었다.

 

 

‘더치페이’를 굉장히 싫어하는 나라는?

요즘은 점점 바뀌고 있다고는 하지만, 과거 연인들이 ‘더치페이’하는 것은 금기시됐다. 남자가 내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모습. 요즘에는 여자들도 알아서 나눠 내든지 하는 듯 싶다. 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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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영국이 화폐를 대량 생산하면서 파운드화의 가치가 떨어졌다. 그러나 미국은 대량으로 무기를 판매하면서 막대한 돈을 벌었다. 결국 미국 달러는 1944년 국제통화기금(IMF) 창설과 함께 파운드화를 밀어내고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돈이 됐다.

 

유로화 도전에도 막강.

 

미국 달러는 '헬리콥터 머니'(중앙은행이 경기부양을 위해 국민에게 직접 양적 완화 정책을 펼치는 것)를 뿌려댈 수 있는 안전자산이다. 미국이 실업자들에게 뿌리기 위해 아무리 달러를 찍어내도 두려울 것이 없다. 국제 결제통화나 외환 보유고에 사용되는 통화가 아닌데 돈을 찍어내서 해결하려는 기미를 보이는 순간, 그 돈의 가치 추락 속도는 빨라지고 환율이 급등하며 경제위기가 찾아올 수 있는 것과 대조된다.

 

이 달러와 견줄 수 있는 정도가 유로화와 엔화 정도지만, 비할 바는 못된다. 한때 유로화가 달러를 위협하고 기축통화가 되려는 목표가 있었지만, 유로 이탈 등으로 인해 여전히 달러 밑에 있다. 국제 거래에 사용되는 은행 통장 50%가 달러 통장이고, 무역에 사용되는 통화가 달러이고, 각국 중앙은행들이 외환보유고에 쌓는 돈의 62%가 달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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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명 신청한 단지 속출지방 미분양 쓰나미 / "난방비 폭탄 막으려다 물가 쓰나미 덮친다" / "인도네시아 내 한국 열풍, 한류 넘어 K-쓰나미 수준" / "여중·남고가 남녀공학으로"'저출산 쓰나미'에 남녀공학 무더기 전환 / 앱으로 주문하면 문 앞까지유럽 '마약 쓰나미' 몸살 / '전자폐기물 쓰나미'가 온다"20307500t 육박 예상"

 

쓰나미는 지진, 해저화산 폭발 등 급격한 지각변동의 여파로 바닷물이 사방으로 퍼져나가 해안까지 밀려드는 해일이다. 일본어로 '항구'를 뜻하는 '''파도'를 가리키는 '나미'가 합쳐진 말이다. 글자 그대로 번역하면 '항구의 파도'라는 뜻이다.

 

 

스크린·브라운관에서 공포물이 안 통하는 이유…2009년 vs 2023년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 공포물이 더 이상 대중의 시선을 잡지 못한다. 과거에도. 지금도. 2019년 아래와 같은 글을 쓴 적이 있다.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 공포물이 힘을 못 쓴다는 것이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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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본 대지진

 

그러나 이 쓰나미는 의미가 가지고 있는 그대로 사용되진 않는다. 앞서 거론한 언론 기사들의 제목에서 주로 무엇인가 쓸려오거나 쓸려가는 상황을 압축해서 사용할 때 사용된다. 쓰나미를 언급하려면 쓰나미가 만들어지는 지역에 대해 먼저 언급해야 한다.

 

화산과 지진이 빈번히 발생할 수 있는 곳을 불의 고리’(ring of fire)라고 부른다. 환태평양 조산대를 칭하는 말이다. 태평양을 둥글게 감싼 모양이라고 해서 환태평양배 파이라고 하고, 지진과 화산 발생이 빈번하고 산맥을 형성하고 있다고 해서 조산대(造山帶)라는 말을 썼다. 전 세계 활화산과 휴화산의 75퍼센트가 이 불의 고리 지역에 위치해 있으며 전 세계 지진의 80~90퍼센트가 이곳에서 일어난다. 이 불의 고리로 불리는 환태평양 조산대를 따라 지진이 도미노처럼 이어지면서 곧 초대형 강진이 밀려오는데, 이로 인해 '쓰나미', 즉 지진해일이 발생한다.

 

 

그러면 왜 지진해일을 쓰나미라고 부르게 된 것 일까. 그 유래는 194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4641일 알래스카 근처의 우니마크섬에서 리히터 규모 7.2의 강진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생성된 거대한 해일이 하와이를 덮치면서 165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졌는데, 이 사건을 보도한 현지 일본계 신문이 '쓰나미'라고 쓴 것이 계기가 됐다고 전해진다. 그로부터 2년 후 미국 정부는 하와이에 지진해일 경보 센터를 설립하면서 이 센터의 명칭에 영자로 '쓰나미(Tsunami)를 포함시켰고, 이후 1968년 국제해양회의에서 '쓰나미'를 학술 용어로 정식 채택했다고 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기사는 물론 토론 자리, 그리고 온갖 비유를 할 때 쓰나미라는 말을 아주 자주 사용한다. 그러나 쓰나미는 원 내용으로 사용할 때는 정말 끔찍하다.

 

대표적인 사건이 2011년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이다. 일본 관측 사상 최대인 리히터 규모 9.0의 지진이 발생한 여파로 일본 해안 지역에 최고 높이 20미터가 넘는 쓰나미가 밀려왔다. 이 해일로 후쿠시마현 에 위치한 원전의 가동이 중지되면서 방사능 누출 사고까지 발생했다. 일본 정부가 공식 집계한 사망자는 15899명이다. 여기에 실종자 2529명과 15만 명 이상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앞서 200412월에도 규모 9.1의 대지진으로 인한 대규모 쓰나미가 발생해 인도네시아인 17만 명 등 총 22만 명이 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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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라이팅(gaslighting).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히 조작해 정서적으로 그 사람을 조종하려는 학대 행위를 의미한다. 과거 다소 낯설었던 이 단어는 최근 몇 년 간 이승기, 서예지, 김정현, 이은해 등이 연루된 연예와 사회의 다양한 사건으로 국민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가 됐다. 영화 <가스등>(Gaslight)에서 유래한 이 단어는 이제 김희선이 출연 검토하고 있는 드라마로도 만들어질 예정이다.

 

영화 <가스등>의 줄거리는 이렇다.

 

 

“내 이름과 인생을 걸고 이승기를….”…권진영 대표의 추락과 이선희.

이승기가 18년 동안 후크 엔터테인먼트에서 소속돼 총 137곡을 발표했는데도 불구하고 음원 정산을 한 푼도 받지 못했다는 사실에 업계는 물론 대중들이 경악했다. 이 음원 수익을 올해 9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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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지 이승기 이은해

부유한 상속녀 폴라는 잘생기고 자신감 넘치는 그레고리와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한다. 하지만 그레고리는 폴라의 저택에 숨겨진 보석을 훔치려고 그녀와 위장결혼을 한 범죄자다. 그레고리는 폴라를 정신이상자로 몰아 재산을 가로채려고 갖가지 속임수를 쓴다. 폴라의 지갑 속에다 슬쩍 자신의 시계를 넣어놓고 그녀가 훔친 것이라고 추궁한다. 또 브로치를 몰래 숨겨놓고, 폴라가 찾지 못하면 플라를 타박한다. 결정적으로 폴라가 밤마다 방 안의 가스등이 희미해지는 것 같다고 말하자 그게 바로 폴라의 망상이며, 그녀가 미쳐가는 증거라고 몰아세운다.

 

그러나 가스등이 희미해진 이유는 그레고리가 숨겨진 보석을 찾으려고 다락방에 몰래 들어가 가스등을 켰기에 가스를 나눠 쓰던 폴라 방의 등이 어두워졌던 것이다. 결국 플라는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어지고, 무기력해진다. 남편 그레고리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는 것이다. 1944년 제작된 <가스등>은 여배우 잉그리드 버그만에게 오스카상을 안겨줬다.

 

 

유래는 영화에서 시작했지만, 대중에게 가스라이팅이란 단어가 널리 알려진 것은 미국의 심리 치료사 로빈 스턴이 2007년 펴낸 책 <가스등 효과> (The Gaslight Bffect)이후다.

 

이 책에서 로빈 스턴은 30년간 다양한 여성들의 심리 상담 내용을 담았다. 겉으로는 매력적이고 능력이 있는데, 당사자들은 자신이 무능력하고 부족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여기서 가해자가 있다는 것을 확인한다. 연인이든 직장 상사든, 동료 든 주변에 심리적 학대행위를 하는 이들이 존재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을 가해자-피해자로 단순하게 나눌 수 없다는 것이다. 피해자가 얼마든지 가해자의 범위에서 벗어날 수 있는데도, 이들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이들과 관계를 유지한다.

 

최근 한국에서 이 같은 일은 많이 일어난다. 앞서 언급했듯이 연예계에서는 이승기가 후크엔터테인먼트 권진영 대표에게 18년간 너는 마이너스 가수라고 가스라이팅을 당해 자신의 음원 수익을 제대로 정산 받지 못한 사실이 드러났고, 지금 <꼭두의 계절>에 출연하는 배우 김정현이 서예지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한 의혹이 있다는 것은 이제 전 국민이 알 정도다.

 

 

‘마약 투약’ 한서희, 항소심에서도 실형 선고…‘보복 협박’ YG 양현석과 다른 길.

마약 투약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연습생 출신 한서희가 항소심에서도 1심처럼 징역 6개월을 선고 받았다. 그러나 한서희가 협박을 받았다고 주장해 재판을 받았던 양현석은 앞서 1심에서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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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 살인 사건에서는 가스라이팅이 새로운 범죄 유형으로 인식되며 큰 주목을 받았다. 검찰은 남편을 계곡에 빠뜨려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은해에 대해 가스라이팅에 의한 작위 살인(직접 살인)을 주장한 바 있다. 법원에서는 검찰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또 최근 대구에서는 한 여성이 과거 직장 동료로부터 가스라이팅을 당해 성매매를 하고 강제 결혼까지 한 사건도 벌어졌다.

 

이런 가스라이팅이 이제 너무 일반화되었는지, 심리상담가의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 <가스라이팅>에 제작 중이기까지 하다. 여기에 김희선이 주연을 제안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유명 사전 출판사 미리엄-웹스터는 2022년 올해의 단어에 가스라이팅을 선정했다. 미리엄-웹스터는 자사 홈페이지의 검색 빈도 통계를 기반으로 지난 2003년부터 올해의 단어를 선정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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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지아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최근 이탈리아의 외교시설이 독일과 스페인에서 반달리즘의 타깃이 됐다고 밝혔다. 총리는 베를린에서 외교관의 차량이 불에 탔고, 바르셀로나 주재 이탈리아 영사관은 파손됐다고 전했다.
최근 기후 활동가들의 시위가 점점 과격해 지고 있다. 기후 위기에 대한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서지만, 주요 미술관에 전시된 유명 예술가들의 명화를 표적으로 삼아 반달리즘 시위를 하는 것에 대해 갑론을박이다. 또 세계적인 오페라하우스 등에 대한 페인트 테러도 이어지고 있다. 반달리즘 시위의 확산이다. 기후 위기로 인류가 사라지고 난 뒤에는 예술 작품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명화 같은 예술품을 훼손하는 것이다.

 

 

양현석 징역 3년 구형. 한서희와 함께 연예계 ‘추잡한 상상력’ 불러일으키다

검찰이 아이콘 전 멤버 비아이(본명 김한빈)의 마약 투약 혐의 수사를 무마하려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양현석에게 징역 3년을 구형했다. 마약 투약 에이미 “잃어버린 10년”…그러나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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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리즘 시위
기후 활동가들이 이탈리아 밀라노의 라스칼라 극장에 페인트를 뿌리고 있다.&nbsp;AFP=연합뉴스

러시아군이 19세기 작곡가 표트르 차이콥스키의 우크라이나 영내 별장을 파괴했다. 자국 거장의 유산도 예외로 두지 않을 만큼 우크라이나 안에서 러시아군의 반달리즘이 횡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프가니스탄은 반달리즘의 대표적인 지역이다. 1978년 공산혁명과 이듬 해 소련의 침공과 탈레반 등장으로 많은 유적이 훼손됐다. 아프가니스탄의 국립박물관(카불박물관)에 전시된 문화재의 70%가 1990년 중반에 사라졌다. 2001년에는 탈레반의 최고지도자 뮬라 무하마드 오마르가 아프가니스탄의 모든 상(像)과 非이슬람 종교물을 파괴하라는 포고령을 내렸다. 반달리즘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탈레반 관료가 박물관에 들이닥쳐 진열장을 망치로 부수고 조각상들을 파괴했다. 가장 큰 사건이 2001년 3월에 바미얀 석불 2점(각각 36mㆍ55m)을 폭파한 일이다.

 

반달리즘 (Vandalism). 문화유산이나 예술품, 공공시설 등을 야만적으로 파괴하는 행위를 말한다.

 

 

그런데 이 단어의 시작과 과정을 보면 뭔가 억울한 일이 보인다. 반달리즘은 고대 게르만족의 여러 갈래 중 하나인 반달족(vandals)에서 비롯됐다. 5세기 초 반달족이 로마를 침략해 유적지를 파괴한 데서 유래한 것이다. 하지만 실제 역사는 반달족이 오히려 로마의 문화를 인정해 라틴어 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왜 반달족이 예술품 파괴자라는 누명을 쓰게 된 걸까.

 

반달족은 오늘날 기준으로 독일 북서부 지방인 중부 유럽에 살다 4세기 중반 동방에서 온 훈족의 침입에 밀려 남하해 에스파냐 지방에 정착했던 민족이다. 이들은 바이킹처럼 해상 세력으로 성장해 북아프리카로 진출했고, 439년에는 오늘날 튀니지에 해당하는 카르타고를 수도로 삼아 반달 왕국까지 세웠다. 지중해 섬들을 하나씩 점령하며 세력을 키워간 반달 왕국은 마침내 455년 로마제국을 공격한다. 이들은 약 2주간 도시 곳곳을 약탈한다.

 

이때 로마에 있던 예루살렘 성전의 황금 식탁과 일곱 개의 촛대가 달린 황금 촛대 등 많은 보물이 약탈당했다. 화려한 조각상이나 장식품은 물론 신전 지붕에 입힌 금박까지 벗겨내 북아프리카 카르타고로 실어갔다. 여기세어 반달리즘이 유래된 셈이다.

 

 

촉법소년 만 13세 하향. ‘소년’ vs ‘범죄자’ ‘방점을 어디에 찍을까’는 피해자 시선에서.

촉법소년의 기준 연령이 기존 만 10세 이상에서 14세 미만에서 만 10세 이상에서 13세 미만으로 하향한다고 한다. 우선 개인적인 생각을 풀어놓기 전에 난 촉법소년 제도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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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한번의 약탈로 반달리즘이란 말이 만들어진 것은 반달족에게는 억울한 일이다. 학계에서는 이들이 예술품과 문화재를 약탈했을 뿐, 파괴한 적은 없다고 보고 있다. 당시 가이세리크 왕은 로마 교황인 레오 1세와 협상한 후 열린 성문으로 들어갔는데, 이때 협상 내용은 저항하지 않는 시민은 죽이지 않고, 숨긴 재물을 찾아내려고 고문하지 않으며, 도시에 불을 내지 않겠다는 약속 등이었다. 가이세리크는 반달족 군대에 약속을 지킬 것을 명령했다고 한다.

 

그리고 약탈이라는 것도 지금 시점이 아닌 당시 시점으로 봐야 한다. 반달족 뿐 아니라 모든 국가가 그랬고, 그것을 그들은 약탈품이 아닌 전리품이라 불렀다. 비단 반달족에게 국한된 것이 이상하다.

 

반달리즘이 현재와 같은 의미로 처음 사용된 것은 18세기 프랑스 대혁명 때다. 당시 혁명군이 구체제 의 예술품을 파괴하는 것을 보고 성직자인 앙리 그레구아르가 반달족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즉 유럽의 시선으로 반달리즘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약탈은 영국이나, 프랑스, 스페인, 독일, 네덜란드 등 수많은 유럽 국가들이 해왔던 일이 아닌가. 오히려 반달족의 행위는 더 야만적이고 원시적일 때 일어난 일이다. 오히려 관대하게 봐야할 시기라는 것이다.

 

그에 비해 유럽의 약탈은 얼마 안 된 이야기다. 그 때문에 아직도 같은 민족끼리 서로 죽이고 죽는 상황이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반달리즘이 아니라 유러니즘 또 등으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 또 일본도 마찬가지 아닐까.

 

지금도 세계 각지에는 한국의 문화재 약 21만점이 흩어져 있다. 그 문화재들이 알아서 세계여행을 떠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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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의 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보이콧했다. 윤석열이 해외 순방에서 ‘날리면’ ‘바이든’ 등 비속어 논란은 물론 종북 주사파 발언 등 야당을 무시하는 행동에 대해 사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보이콧은 헌장 사상 최초다.

 

지난해 ‘2022 인권의 날 기념행사에서 유최안 민주노총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은 세계인권선언 낭독을 보이콧했다. 윤석열 대통령 명의로 인권상이 수여되는 데 반발한 것이다.

 

 

‘도박? 마약?’ 김다예‧‘정치적 사기꾼?’ 나경원…교황청이 시작해 현재까지 이어진 ‘마녀

신동엽, 성시경 등이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 때문에 다소 가벼워지긴 했지만, ‘마녀사냥’은 사실 무서운 말이다. 무고한 사람에게 억지 죄를 덮어씌워 죽이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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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최안 인권의 날

 

우크라이나가 내년 파리 올림픽 보이콧을 검토하고 있다. 러시아와 벨라루스 선수들의 출전을 허용한다면 파리 올림픽에 나서지 않겠다는 입장인 것이다.

 

미국 최상위 로스쿨들이 대학 순위 평가를 보이콧한 지 두 달 만에 하버드 의대도 이에 동참하며 보이콧하고 나섰다.

 

‘보이콧’(boycot). 어떤 사람 혹은 대상에 대해 거부하는 것을 말한다. 이 보이콧은 아일랜드 귀족의 재산 관리인이었던 찰스 보이콧 (charles Boycott)에서 유래됐다. 보이콧은 왜 불매 운동과 거부 운동의 대명사가 됐을까.

 

 

영국의 육군 대위 출신인 찰스 보이콧은 아일랜드에서 부재지주인 존 크라이튼 백작의 경작지 관리인으로 근무했다. 1879년 아일랜드 전역에 대기근이 들어 소작농들이 그에게 소작료를 깎아달라고 부탁했지만 거부하고, 오히려 말을 듣지 않으면 영지에서 쫓아내려 했다. 당연히 폭력도 수반됐다.

 

마을 사람들은 분노했고, 상점들은 보이콧에게 그 어떤 것도 판매하지 않았다. 교회마저 그가 나오는 것을 거부했다. 하인들도 보이콧의 집에서 철수하고 우편배달도 거부했다.

 

이 사건은 188011월 타임스에 보도되고, 유럽 전역의 다른 신문들도 기사화하면서 '보이콧'이라는 단어가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이 당시에 기사에 이런 내용을 실었다.

 

 

“윤석열 대통령 성공시켜, 광화문에 동상 서게 할 것”

‘간신의 시대’. 왕이 충신의 말은 듣지 않고, 여자에 빠져 허우적대는 시기에 등장하는 ‘간신’. 이들의 시대가 왔다는 것은 왕이 물러났다는 것을 의미하고, 좀 더 크게 보면 국가의 망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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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팔라스 사람들은 지주나 관리인을 보이콧하기로 결의하고 음식물 제공을 거부했다. 보이콧 대위는 결국 관리인 자리를 그만두고 가족과 함께 잉글랜드로 돌아갔다. 그는 189765세의 나이로 죽었지 만,'보이콧'이라는 말을 만들어냄으로써 영원히 불멸하게 됐다."

 

물론 보이콧이 소작농들과 사람들에게 잘못해 보이콧이 거부운동의 대명사가 되긴 했지만, 보이콧은 좋은 의미, 나쁜 의미에 골고루 사용됐다. 특히 인권에 관련된 내용들이 그것이다.

 

1955121일 흑백 차별로 버스 좌석이 분리돼 있던 미국 남부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시에서 로자 파크스는 백인 승객에게 자리를 내주라는 버스 운전사의 지시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된다. 이 사건은 이후 382일 동안 좌석을 피부색에 따라 구분하는 버스를 타지 말자는 몽고메리 버스 보이콧으로 이어졌고, 인종차별 정당화 법률이 폐기되는 도화선이 됐다.

 

앞서 언급한 윤석열의 경우나 하버드의 경우도 긍정적이라 볼 수 있다. 한 국가의 대통령이 자신의 자존심 때문에 정치를 무력화 시키는 것을 그냥 보고 있다면 오히려 야당의 역할이 없다는 뜻 밖에 안된다. 또 유최안 부지회장의 태도도 그렇다. 인권을 무시하는 대통령 명의의 상이 오가는 인권 행사가 앞뒤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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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K리그 뿐 아니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라리가, 분데스리가를 비롯해 대부분의 축구 구단들은 FC, 유나이티드, 레알 등의 말을 앞에 붙인다. 축구팬들이야 당연히 이 말이 뭔지 알겠지만, 축구라고는 국가대표 경기만 보는 이들에게는 도대체 왜 팀명 앞에서 저런 것들이 붙어야 하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서 간단히 정리 해봤다.

 

 

‘언더도그’, 브라질과 베트남이 축구 경기 누굴 응원할까?

월드컵은 늘 언더도그와 톱도그의 경기 때문에 흥행한다. 손흥민, 김민재, 조규선, 황희찬, 이강인을 내세운 한국 축구대표팀이 카타르 월드컵에서 16강 진출을 했다. 브라질에 4대1로 지긴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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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바르셀로나

 

FC & CF

 

FC‘Football Club’의 약자다. 사실 축구 팀명 앞에 붙는 말로서는 굉장히 직관적이다. FC 바로셀로나는 그냥 축구 클럽 바로셀로나인 셈이다 요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성남시장 당시 수사로 계속 언급되는 성남FC도 같은 말이다.

 

CF는 에스파냐어로 ‘Club de Futbol’인데, 사실상 위치만 바뀐 말이다. 또 독일의 바이에른 뮌헨 같은 경우 FC를 쓰긴 하지만, ‘Fussball Club’으로 읽힌다.

 

 

유나이티드

 

유나이티드(united)를 영어 사전에서 찾아보면 연합된’ ‘통합된’ ‘단결한’ ‘일부 스포츠팀회사 이름에 쓰임이라고 나온다.

 

축구에서는 주로 잉글랜드 시민 구단들에게 붙여지는 말로 창설될 때 다양한 사람, 여러 지역 사람들이 모여서 만들었음을 뜬한다. 예를 들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는 노동자들이 만든 클럽이다. 물론 지금은 부자들의 투자처라는 말을 듣고 있다.

 

국내에서도 인천이 유나이티드라는 이름을 사용하는데, 창설 당시 이 명칭 선정에 대해 인천 유나이티드라는 이름은 인천시와 시민, 기업이 함께 구단을 출범시켰다는 연합의 뜻을 나타내며, 시민구단의 의의와 가장 합치되는 명칭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나는 런던의 에이전트 레이디>(김나나)┃유럽 축구의 뒷모습을, 에이전트라는 직업을 이야기해

업무상 ‘드림’이라고 찍힌 책을 자주 받는다. 그렇다고 모두 읽지는 않는다. 좋아하는 작가이거나, 관심있는 분야를 주로 추린다. 뭐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그럴 것이다. 이를 제외하고는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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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알 마드리드

 

레알

 

레알은 스페인 국왕, 왕실, 왕가에서 인정하여 사용 허가가 내려진 작호로 ‘Royal’이라는 단어에서 따와 ‘Real’로 형태가 변형됐다. 현지에서는 팀 이름이나 조직에 함부로 사용할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레알이 들어가 팀들은 모두 엠블럼에 왕관이 그려져 있다.

 

레알 마드리드가 대표적인데 사실 스페인에서 레알이라는 호칭을 처음 받은 팀은 레알 소시에다드다. 현재 이강인이 뛰고 있는 마요르카도 레알이 붙어 있다. 즉 저 레알은 왕이 존재하는 국가가 아닌 이상에는 사용할 수 없는 명칭인 셈이다.

 

칼초

 

이탈리아에서만 사용되는 칼초(Calcio)는 일종은 원시 축구 종목을 부르는 말이다. 세리에A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지금도 이탈리아 일부 지역에서 계승되고 있는데, 축구와 구분하기 위해 카로 스토리코(calcio storico), 즉 길거리 축구로 불린다.

 

물론 이탈리아가 원래 칼초를 고수한 것은 아니다. 풋볼이란 말을 사용했다. 그러나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이 민족주의를 내세워 칼초를 선호했다. 독재정권에 휘둘린 셈이다.

 

AC‘Associazione Calcio’의 약자이고, AS‘Associazione Sportiva’, SS‘Societa Sportivo’ 등의 약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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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호스피스 병원과 관련해 눈에 띄는 재판 결과가 나왔다. 의사만 발급할 수 있는 사망진단서를 간호사에게 발급하도록 한 혐의로 기소된 호스피스(완화의료) 병원 의사에게 유죄가 확정된 것이다. 대법은 의사와 의료기관에 각각 100만원을 선고했고, 간호사 5명에게는 각각 벌금 30만원의 선고유예을 확정했다.

 

경기도 한 호스피스 병원에서 일한 이 의사는 20141~20155월 입원환자가 본인 부재 중 사망한 경우 간호사들에게 사망진단서를 대신 발급하도록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간호사들도 무면허 의료행위를 한 혐의로 함께 기소됐다.

 

 

<북두신권>에 등장하는 카산드라 감옥. ‘카산드라’가 여기에 왜 등장을?

만화 을 보면 라오우가 자신에게 반항한 이들을 가둔 거대한 감옥 카산드라가 나온다. 라오우는 이곳에서 권법가들의 비전서를 빼앗은 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권법가와 그의 가족들은 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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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전쟁
이탈리아 화가 도메니코 틴토레토의 4차 십자군 콘스탄티노플 침공을 그린 작품

 

사망 선고를 하고, 진단서를 의사만 가능하게 한 것인데, ‘호스피스 병원이라는 점에서 간호사들의 역량을 너무 무시한 거 아닌가라는 생각도 든다. 이 호스피스가 어디서 유래했는지 알면 말이다. 신부와 수녀들로 시작됐기 때문이다. 

 

현대 사회에서 중병을 앓는 환자들이 삶의 끝자락에서 치료 대신 호스피스’(hospice)를 택하는 경우도 늘었다. 완화 의료라고도 하는 호스피스는 무리하게 생명을 연장하는 치료보다는 고통 완화와 돌봄을 주된 목적으로 한다. , 호스피스란 임종을 앞둔 환자가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안식처인 셈이다.

 

 

호스피스라는 단어는 손님이라는 뜻의 라틴어로 호스페스에서 유래했다. 중세 유럽에서는 마을 곳곳의 작은 교회들이 성지순례자들에게 하룻밤 숙박을 제공했다고 한다. 만약 순례자가 병이 나거나 건강이 나빠져 다시 길을 떠날 수 없게 되는 경우에는 교회에 그대로 머무르며 치료와 돌봄을 받았다.

 

이런 장소들은 라틴어로 호스피티움’(hospitium)이라고 불렸는데, '손님을 따뜻하게 맞이하 는 곳'이라는 의미다. 또 교회에서 성직자들이 보여 주는 돌봄과 헌신 등을 호스피탈리티’(hospitalit)라고 했는데, 여기서 오늘날 병원을 일컫는 영어 단어 호스피틀’(hospita)이 나왔다고 한다.

 

'호스피티움이 임종을 앞둔 자들의 안식처인 '호스피스'로 탈바꿈한 시기를 11세기 십자군 원정  당시라는 것이 정설이다. 

 

십자군 원정은 서유럽 그리스도교인들이 이슬람교에게 빼앗긴 예루살렘을 되찾기 위해 1096년부터 1291년 사이 여덟 차례에 걸쳐 감행한 전쟁이다. 당시 이 전쟁에 참가한 기사들이 가슴과 어깨 에 천으로 만든 빨간 십자가를 붙이고 있었다. 그래서 원정대는 십자군(cusades)이라고 불렸다.

 

 

<가이 포크스>는 어떻게 저항의 상징이 되었나

시위 혹은 누군가에게 저항할 때마다 등장하는 가이 포크스 가면. 웃고 있는 눈과 입, 입꼬리와 같은 콧수염이 특징이다. 영국 왕을 암살하려 했던 실존 인물 가이 포크스(Guy Fawkes)의 모습을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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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원정은 시작부터 성지순려자들과 관계가 깊다. 지금이야 그렇지 않지만, 중세 유럽인들은 영혼의 구원을 얻기 위해 성지를 참배하던 순례 의식을 매우 중요시했다. 수많은 순례지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곳은 역시 그리스도의 무덤이 있는 예루살렘이었다. 하지만 예루살렘이 있는 팔레스티나는 11세기부터 셀주크튀르크가 점령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슬람교를 믿는 셀주크튀르크가 기독교 신자들을 핍박했다.

 

소식을 들은 유럽의 교인들은 분노했다. 기사들이 모였고, 1096년 제1차 십자군 원정이 시작됐다. 1차 십자군은 3년에 걸친 고된 행군과 전투 끝에 1099년 예루살렘을 함락한다.  하지만 88년 후인 1187년 이집트와 시리아를 통치하던 술탄 살라딘의 군대가 총공세를 펼쳐 예루살렘을 되찾아간다. 이후 3, 4차 새로운 십자군이 계속 원정을 떠나지만 1291년 아크레가 함락되며 십자군의 역사가 끝날 때까지 기독교인이 다시 예루살렘을 차지하는 일은 없었다. 거의 200년 가까이 십자군 원정이 진행된 것이다. 

 

이 기간 700만 명의 사람들이 동원됐다고 한다. 원정길은 앞서 언급했듯이 3년이나 걸릴 정도로 너무나 멀었고다. 약해진 체력에 전투까지 치러야 했던 수많은 기사가 때때로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다. 이들은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한 채 호스피스에서 죽음을 맞았다. 신부와 수녀들이 이들의 임종을 지켰다. 그렇게 호스피스는 임종을 앞둔 안식처라는 의미를 갖게 됐다

 

특히 최근 잘 죽는 것즉 웰다잉 (Well dying)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호스피스 병원에 대한 관심도 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호스피스 병원들이 영세한 곳이 많다고 한다. 웰다잉도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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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엽, 성시경 등이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 <마녀사냥> 때문에 다소 가벼워지긴 했지만, ‘마녀사냥은 사실 무서운 말이다. 무고한 사람에게 억지 죄를 덮어씌워 죽이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최근에 이와 관련해 두 명의 인물이 언급된다. 첫 번째가 박수홍의 아내 김다예다. 박수홍이 가족들과 갈라져 소송하는 과정이 알려진 가운데 김다예란 존재가 나왔고, 동시에 23살 나이차로 인해 일부 사람들은 김다예와 박수홍의 사랑을 순수하게 보지 않았다.

 

이에 박수홍이 동치미에 나와 이런 말을 했다.

 

 

류이서‧서하얀‧이솔이, 결혼으로 이룬 셀럽 행보인가…김다예도 조짐이.

남편이 연예인이라면 당연히 아내도 관심을 받는다. 특히 어느 정도 외모가 있는 ‘비연예인’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어느 정도 재력이 있고, 인기가 있기에 여자들 입장에서는 부러움의 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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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다예 박수홍

 

제가 못되게 굴었다. 제 곁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마녀사냥을 당했지 않나. 무슨 이 사람이 마약을 하냐. 마트에 가면 뒤에서 마약, 마약그러더라. 마약 아니면 도박이라고 하더라. 정말 들리니까 마트도 못가겠더라. 이 사림이 제 옆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마약쟁이가 되고 내 돈을 노린 사람이 되고 사회적으로 매장 당하는 것을 보며 제가 이기적으로 결혼하자고 했다.”

 

그리고 두 번째 나경원. 그냥 저출산위원회 부위원장과 기후대사나 맡으면서 조용히 있으라는 윤석열의 뜻을 따르지 않고 당대표 선거에 출마를 저울질 하는 모습에 친윤 정치인지자 여당 초선 수십 명이 나경원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이에 나경원 측 김웅이 이런 말을 남긴다.

 

 

“16개월 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내 경선 때, 오세훈 시장에 대해 '민주당의 역선택'이라고 공격하며 나경원 전 대표를 칭송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나 전 대표를 정치적 사기꾼이라고 마녀사냥하고 있다. 천변만화(끝없이 변화함)하는 정치적 소신에 경탄과 찬사를 보낸다. 하지만 크게 신경쓰지는 말라. 6개월 후에는 또 바뀐다

 

마녀사냥. 이 말을 어떤 이들은 단순히 마녀를 잡았다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마녀사냥은 15세기부터 17세기까지 종교계를 중심으로 마녀를 잡는다는 이유로 무고한 사람들을 죽인 일이다. 이 당시 무려 10만명이 마녀로 고발되고, 이중 4만명이 교회 법정을 통해 처형됐다고 추정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화형으로 처해졌다. 그리고 희생자의 90% 가까이가 여성이었다. 프랑스를 구한 여전사 잔 다르크를 화형시킨 죄명 역시 마녀였다.

 

 

나경원의 ‘정신 승리’와 윤석열의 ‘속 좁음’의 대결 (feat 김건희)

국민의힘 당대표 출마를 고민중인 나경원과, 이를 막으려는 윤석열과 대통령실의 싸움이 볼만하다. 여기에 나경원을 현재 국민의힘 주류에서 배제시킨 이유가 김건희 때문이라는 주장도 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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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마녀 구별법은 지금 보면 어이없지만, 여자들에게는 공포 그 자체였다.

 

마녀로 고발당한 여성은 몸에서 악마의 흔적을 찾아낸다며 전신의 체모를 깎이고 은밀한 부분까지 검사했다. 그리고 억지로 악마의 흔적을 찾아내어 바늘을 찔러서 아프지 않고 피가 나지 않으면 마녀라고 했다. 그런데 여기서 마녀 사냥꾼들과 종교계는 어이없는 행동을 한다. 뭉툭한 바늘 끝으로 찌른 것이다. 당연히 피가 나올 리 없다. 그 다음 방법은 손발을 묶고 물 속에 던져 가라앉으면 무죄이고, 떠오르면 유죄라는 것이다. 또 달궈놓은 쇠판을 걷게 하며 사망하면 무죄, 살아나면 마녀이기 때문에 화형에 처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든 죽는다는 이야기다.

 

유럽에서 사람들을 대거 죽인 마녀사냥은 미국으로도 넘어간다.

 

대표적으로 미국 뉴잉글랜드 지방의 매사추세츠주 세일럼 마을에서 17세기에 일어난 일이다. 이 마을 아홉 살 소녀 베티와 열한 살의 애비게일은 몸을 바늘로 찌르고 칼로 베는 것처럼 아프다며 괴성을 지르며 방 안의 물건들을 집어던졌다. 두 소녀는 교구 목사의 딸과 조카였다. 의사가 어떤 병에 걸렸는지 찾을 수가 없다며 초자연적 원인에 의한 발병이라고 진단했다. ‘세일럼 마녀재판은 이렇게 시작됐다. 소녀들이 지목하는 사람들은 모두 마녀로 몰렸다. 마녀가 되지 않으려고 서로를 마녀로 지목했다. 이 때 최소 175명이 감옥에 갇혔고, 이중 20명이 처형되고, 다섯 명이 옥중에서 사망했다.

 

당초 마녀사냥은 13세기 교회를 중심으로 발달해온 서양의학이 민간의 약초 치료사들을 몰아내는 과정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과부가 된 여인들은 생계를 위해 약초 기술을 배워 치료사로 지냈는데, 교황청은 교회 승인 없는 치료 행위를 금했고 이 치료사들에게 마녀라는 굴레를 씌운 것이다. 마녀를 뜻하는 위치’(witch)의 어원인 위커’(wicca)가 원래 약초 지식을 지닌 사람을 뜻했던 것도 그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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