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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면 황우석 지지자들이 무서운 이유는 황우석에 관해서 철저히 이분법에 따른다는 것이다. 그 어떤 결론이 나와도 오로지 우리편 아니면 적으로 구분한다는 점이다.


이성적인 논리는 들어갈 부분이 없다. 그들은 지금 황우석을 지지하느냐 아니면 반대하느냐만 남을 뿐이다.


추적 60분 문형렬피디의 지지게시판에 만들어졌다는 뉴스를 보고 소름이 끼쳤다. 스타를 지지하는 팬클럽도 있고, 사회에 영향을 미친 개인에 대한 지지 카페도 있는데 왜 유난히 저 게시판을 보고 소름이 끼쳤을까.


그건 문피디의 생사여탈권을 마치 황우석 지지자들이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추적 60분의 내용이 황우석 지지자들이 원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하면 (그것이 비록 공정보도였다고 하더라도) 분명 그 순간부터 문피디의 지지 게시판은 저주 게시판으로 바뀔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들이 원하는 수준 (솔직히 이것도 잘 모르겠다. 황우석을 원상복귀시키고 연구의 기회를 주라는 것인지, 아니면 지금 황우석에 대한 모든 조치가 너무나 심하다는 것인지), 바로 그 수준에 맞추지 못하는 순간 '적 아니면 우리편'이라는 이분법이 발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문피디는 분명 어느쪽 편을 들고자 취재를 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미 자신도 모르게 어느쪽 편을 드어야 하는 처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자칫 가족까지 피신시키고 정신적인 고통을 받았던 MBC 피디들과 같은 길을 걸을 수도 있다. 거꾸로 황우석 지지자들에게 영웅으로 등장하며, 황우석과 관련된 몇몇 사실들을 뒤집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선택의 기회가 문피디 본인이 아닌 황우석 지지자들에게 있다는 점이다.


황우석 지지자들의 모습에서 읽힌 매카시즘적 광풍이 언제쯤 가라앉을 지 모르겠다. 지금은 황우석 개인에게 집중할 때가 아니다. 정말 줄기세포 연구를 통해 불치병 환자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한다면, 황우석이라는 '잘못 만들어진' 브랜드에 집착하지 말고, 다른 과학자와 의학자들을 통해 제대로 만들어진 브랜드를 창출해야 한다고 본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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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는 우리를 가르칠 수 있습니다.
계몽하고 영감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려면,
우리가 그런 목적으로 사용해야합니다.
그러진 않는 한,
TV는 바보상자에 불과할 뿐입니다…!
굿 나잇 앤 굿 럭.

- 굿 나잇 앤 굿 럭 中 ‘에드워드 머로우’ -

'굿 나잇 앤 굿 럭'...영화에 대해 잠깐 소개를 해야겠다. 영화의 배경은 1950년대 초반이다. 레드 콤플렉스가 미친 듯이 세상을 뒤집던 시대다. 미국의 조셉 맥카시 상원의원의 어이없는 발언들과 행동으로 사람들은 숨죽이며 살아야했고, 진실을 기록하고 말해야 하는 언론들 역시 자신의 펜대를 부러뜨리고 혹은 목소리를 죽여가며 보도를 했던 시대였다. 이영화는 이때 이런 매카시즘에 맞서 언론의 힘을 보여줬던 에드워드 머로우 뉴스팀의 이야기를 그렸다.


우리는 TV를 바보상자라 부른다. 능동적으로 정보를 습득해야 하는 글쟁이들의 공간인 신문과 잡지와는 다르게 TV는 수동적으로 있어도 모든 정보를 아주 다이나믹하게 사람들에게 주입시켜준다. 때문에 아차하고 스스로의 정신을 놓는순간 시간 가는줄 모르고 빠져들게 된다. 그런데 이런 '바보 상자'인 TV에 대해 머로우는 그것을 탈피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다. 아주 간단하게 말이다. 우리가 바보상자가 아닌, 인간에게 유용하게끔 인간이 그러한 목적을 가지고 사용하면 된다는 말을 하고 있다.


우리는 시청자의 입장에서 TV프로그램을 비판하지만, 실상 그 비판과는 달리 무의식적으로 흥미만을 쫓고 있다. TV에서 우리는 무엇인가를 얻길 바라지만, 그 무엇인가에 대한 선택권을 스스로 가지려 하지 않고, TV프로그램 제작자에게 맡기고, 다시 그것을 비판한다. 철저히 수동적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한 TV의 영향 등이 아닌 '진실을 말하는 용기'와 그에 따른 사회적인 변화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TV저널리즘을 놓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솔직히 영화평을 잘 할 줄 모르는 내가 이 영화의 시사회를 보고와서 이렇게 끄적이고 싶었던 이유는 바로 '1950년 초반'의 논리와 주장이 신기하게도 '2006년'의 상황에 적용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TV저널리즘의 영향력과 폐단에 대해 작년 말과 올해 초에 절실히 접했다. 황우석 교수 사건이 그것이다. PD수첩과 YTN의 보도는 TV가 접근해야 갈 방향과 언론윤리가 어디까지 지켜져야 하는지를 일반인들에게 알려주었고, 그 영향력이 세상을 어떻게 이끌고 가는지도 보았다. 바보상자가 세상을 흔들어 놓은 것이다.


영화가 1950년대 초반에 말한 '진실을 향한 힘'이 2006년에도 유효하다는 것은 바로 이 점이다. 우리가 TV를 어떻게 이용하고, 그 안의 내용을 어떻게 받아들여 해석하는지에 따라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지고, 무의식적으로 그 내용에 이끌려 갈때 자신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상황이 일어나는 것이다. 때문에 TV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이가 진실에 어떻게 접근하고 시청자들에게 어떻게 전달하느냐의 중요성을 과거나 지금이나 무게감을 갖게 된다.


언론의 자유가 그 어느때보다 높아졌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권력으로부터의 자유다. 자본으로부터는 아직 그 자유를 허락받지 못했다. PD수첩때 광고가 떨어져나가는 모습을 보며 MBC가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는 추측까지 나온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거기서 우리 언론들은 진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또 진실을 말하기 더더욱 어려워진 것은 '대중의 평가'다. 아직도 황우석교수 사건은 유효하다.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황교수가 펼쳐놓은 무의식의 굴레는 여전히 위력을 발휘한다. '진실'을 말하더라도 그들에게는 먹히지 않는다. 1%의 거짓이 99%의 진실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진실'에 접근하는 용기에 대한 평가가 필요한 것이다.


'굿 나잇 앤 굿 럭'을 여건이 된다면 볼 필요가 있다. 매카시즘과 유사한 상황이 대한민국에서도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영웅주의적 사상이 세상을 이분시키는 상황도 우리는 접해봤고, 한쪽의 입을 철저히 막는 상황도 접해봤다. 또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국민 전체가 혼돈으로 빠지는 상황까지도 접했다. 바로 1950년대 미국의 모습이고, 2006년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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