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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동기가 순수해야하다는 말이 있다. 그냥 그 안에서 지적 자양분을 맛봐야 한다는 말이란다. 솔직히 책을  읽는데 '순수'와 '불순'의 정의를 내리는 것은 웃기는 일이지만, 난 <태백산맥>을 시대와 다르게 정말 '불순'한 의도로 처음 읽기 시작했다.

 

과거 모신문사에서 전국 독후감대회를 개최했는데, 당시 제시된 책중에서 왠지 <태백산맥>을 읽고 써내면 어느정도의 가산이 있을 줄 알았다. 10권에 이르는 대하소설을 읽고 독후감을 제출하는데 설마 그냥 넘기겠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 결과적으로 떨어졌다. 그 후 대학 4년때 다시 심심풀이로 가볍게 읽은 <맞아죽을 각오로 하고 쓴 한국, 한국인 비판>으로 상을 받게 된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겼다.

 

 

<누구나 홀로 선 나무>(조정래)┃글의 무게를 배우다.

난 개인적으로 글에 대한 욕심이 많은 편이다. 다른 사람의 잘 쓴 글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질투심도 갖는다. 내 스스로 아직 한참 모자름을 알면서도 주제넘게 이곳저곳 글을 쓰며 다닌다.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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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조정래 등단 50주년 기념판으로 2020년에 나온 책이다.

 

아무튼 그렇게 읽기 시작한 <태백산맥>은 대하소설의 재미와 우리 말의 아기자기함의 깊은 맛을 알게 해주었다. 더구나가 슬픈 역사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새기는 계기까지 마련하게 되었다. 막연히 알고있던 조정래라는 작가에 대해서도 새삼 다시 알게되었다. 물론 여기에는 시대적인 배경도 있다.

 

내가 <태백산맥>을 읽을 즈음인 당시에는 연세대 한총련사태가 있었고, 갑자기 대학가의 운동권에 대한 통제가 극심해질때였다. 또한 1994년에 조정래 선생이 고소당해 한창 수사중에 있어서 <태백산맥>이 일종의 '잠재적 불온서적'이었다. 불순한 동기와 지적피폐함 그리고 사회적인 주목성을 지닌 책에 대한 호기심이 동시발동해서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게 되었다. - 물론 시작은 앞서 말한대로 불순했다.

 

 

<삼국지>가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와 처세를 알려주는 책이라면 태백산맥은 한국인으로 살아감에 있어 뿌리찾는 방법과 역사에 대한 반성하는 태도를 어떻게 갖는지를 알려주는 듯 하다. 내가 빌려 읽어서 현재 소장하고 있지 않아 아마도 이 '책 말하기'에는 언제 올릴지 모르지만, 만일 <태백산맥>을 읽는 사람이 있다면, 아리랑과 한강도 같이 읽었으면 한다.

 

<지금은 양장형으로 다시 나온 것으로 안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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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개인적으로 글에 대한 욕심이 많은 편이다. 다른 사람의 잘 쓴 글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질투심도 갖는다. 내 스스로 아직 한참 모자름을 알면서도 주제넘게 이곳저곳 글을 쓰며 다닌다. 대학때부터 글을 쉽게 봤다. 신문 8면중에 4면 가까이를 맡으며 매주 수십장 원고지를  3년 가까이 채우다보니,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 인터넷 토론카페 등에서도 다른 이들의 글을 우습게 보고, 나의 글에 대한 무게를 측정하지 못했다. 잘 쓴 글에 대해서는 일부러 머리 쥐어짜며 꼭 '딴지'를 걸어야했다. 그런데 그런 내 생각에 제동을 건 책이 바로 조정래선생의 산문집 <누구나 홀로 선 나무>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조정래선생은 <태백산맥>, <한강>, <아리랑>의 저자이다. 원래 난 산문집을 잘 읽지 않는다. 그냥그런 수필의 너절한 이어짐은 그보다 더 긴박하게 산 주위 사람들의 치열한 삶에 못 미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정래선생의 산문집은 내가 충격과 감동을 느낀 소설의 저자임과 동시에 누구보다도 '글'이라는 것에 무게감을 잘 느끼는 작가란 생각에 책 안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사버렸다. 결과는 한동안 난 글을 못 쓰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한국역사의 슬픔과 뿌리찾기 - 태백산맥.

책을 읽는 동기가 순수해야하다는 말이 있다. 그냥 그 안에서 지적 자양분을 맛봐야 한다는 말이란다. 솔직히 책을 읽는데 '순수'와 '불순'의 정의를 내리는 것은 웃기는 일이지만, 난 태백산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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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홀로 선 나무

 

'글'은 의사소통의 주요수단이자 자신의 주장을 적절히 펼칠 수 있는 도구이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흉기이기도 하고, 살릴 수도 있는 약이기도 하다. 마약과 같은 중독성을 지니기도 했고, 한 사람을 파악하는 데 유효한 기준이기도 하다. 그런 다양성을 지닌 '글'을 난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내 스스로의 현학적 표현을 구사해 다른 사람에게 주입 혹은 내 스스로를 정당화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삼았다. 조정래선생의 산문집은 나에게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나 스스로가 나를 혼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떤 음악가가 자신이 곡을 만드는 이유는 더이상 다른 사람들이 곡을 만들 필요가 없게 만들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나 역시도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다른 사람이 더 이상 글에 대해 느끼는 감정의 다양성을 없애기 위해서라고 거만하게 다른 사람에게 말한 적이 있다. 물론 지금도 이런 거만한 생각이 없지 않지만, 이것이 내 삶의 과정중에 펼쳐질 일이 아닌 인생 끝자락의 목표로 바뀐 것이 조금 달라졌다. 그런데 조정래선생은 자신의 젊은 날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나는 대학시절에 나 이후에 소설이라는 문학형식을 없애버리겠다고 기염을 토했었다. 이 기고만장한 객기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는지를 훈련소에서 LMG를 메고 낑낑대며 걷다고 언뜻 깨달았다. 그 깨달음 이후 나는 내가 소설을 쓸 수 있는지 없는지를 점검하기 위해서 나를 수십 번 분해 결합하는 고역을 치렀던 것이다. 그러나 그 가능성 여부를 확인하지 못한 채로 문단에 데뷔, 오 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소름이 끼친 것은 조정래선생의 현 수준에서도 이러한 겸손함은 바뀌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갓 어설픈 글쓰기를 시작한 나의 사고와 태도는 어떠한가?. 이 책은 비단 글쓰는 이들에게만 고하지 않는다. 조정래선생의 생각과 태도는 바로 일그러진 현대인들에게 '바른' 아니 정확히는 '차분하고 치열한 시각'의 기준을 제시한다.

 

내용 자체는 무겁지 않다. 단지 그와 유사한 행위 혹은 인생의 길을 못찾는 이들에게는 어쩌면 무거운 느낌과 하늘 한번 쳐다보고픈 새로운 마음이 생기리라 본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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