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 아직도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4가지 (+박정희 +문세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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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8월 15일,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발생한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잊을 수 없는 비극으로 남아있다. 재일교포 문세광의 총탄에 육영수 여사가 사망하면서, 사건은 단순한 암살 사건을 넘어 정치적, 외교적 파장을 일으켰다. 그러나 5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현재까지도 명확히 해소되지 않은 의혹과 미스터리가 남아 끊임없이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1. 사건 개요
1974년 8월 15일 오전 10시 23분,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열린 제29회 광복절 기념식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경축사를 낭독하던 중, 객석에 앉아 있던 문세광이 박정희를 향해 총을 발사했다. 문세광의 총탄은 박정희를 빗나갔지만, 영부인 육영수 여사가 머리에 총을 맞고 쓰러졌다. 육 여사는 즉시 서울대학교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받았으나, 같은 날 오후 7시경 사망했다.
문세광은 현장에서 체포되었으며, 조사 결과 위조 여권을 이용해 일본에서 밀입국한 뒤 일본 경찰서에서 탈취한 권총을 범행에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는 문세광의 배후에 조총련(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과 북한의 지령이 있었다고 발표했으며, 문세광은 반공법,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되어 같은 해 12월 사형이 집행됐다.
2.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① 육영수 여사를 쏜 사람은 누구인가?
가장 핵심적인 의문은 과연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의 총에 맞아 사망했는지 여부다. 공식 수사 결과는 문세광의 네 번째 총탄이 육 여사의 머리에 명중했다는 것이지만, 현장 검증에 참여했던 경찰 감식계장 이건우는 문세광이 쏜 총알은 육 여사에게 닿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건우는 문세광의 총알은 오발, 연단, 태극기, 천장으로 향했으며, 사라진 한 발의 총알이 육 여사를 맞혔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일부에서는 경호원의 오발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당시 현장에서는 7발의 총성이 울렸는데, 문세광이 4발을 쏘고 경호원이 3발을 쐈다는 것이다. 경호원의 총탄 중 한 발은 엉뚱하게도 합창단 여고생 장봉화 양을 사망하게 했고, 나머지 두 발 중 하나가 육 여사를 맞혔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도 사격 실험을 통해 육 여사가 경호원의 총에 맞았을 가능성을 제기한 바 있다.
'서울의 봄' 때문에 '한국 현대 이 영화 보면 된다'로 정리.
영화 '서울븨 봄'을 보면서 영화가 현대사를 어떻게 정리했는지 궁금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영화의 흐름대로 보면 현재 국민의힘은 많이 당황스러울 것이다. 국민을 죽이고, 억압하고, 북한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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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총상 위치와 탄도
육영수 여사의 총상 위치 또한 의혹을 증폭시키는 요인이다. 문세광은 연단의 왼쪽에서 총을 쐈고, 육 여사는 연단의 오른쪽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총알이 육 여사의 머리 정면이나 오른쪽을 맞혔어야 한다. 그러나 당시 외신 보도 등을 보면 육 여사의 머리가 오른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져 있었다. 이는 총알이 뒤쪽에서 날아왔을 가능성을 시사하며, 제3의 인물에 의한 저격설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되기도 한다.
③ 문세광은 어떻게 삼엄한 경비를 뚫었나?
대통령이 참석하는 공식 행사장에는 철저한 경비가 이루어지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문세광은 비표도 없이, 권총을 소지한 채로 행사장에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이는 당시 경호 시스템에 심각한 허점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건 이후 일부 경호 관계자들은 묵비권을 행사하거나 해외로 도피하여 의혹을 더욱 증폭시켰다.
④ 한국과 일본의 수사 결과 차이
문세광 사건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수사 결과가 상이하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한국 정부는 문세광의 배후에 조총련과 북한이 있다고 발표했지만, 일본 측은 뚜렷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입장을 보였다. 또한, 문세광에게 위조 여권을 만들어 준 일본 여성 요시이 미키코에 대한 처벌 수위도 한국과 일본이 달랐다.
3. 끝나지 않은 논쟁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은 5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수많은 의혹과 미스터리를 남긴 채 현재진행형의 사건으로 남아있다. 진실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으며, 관련된 논쟁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이 사건은 단순한 암살 사건을 넘어, 권력 암투, 국제 관계, 이념 갈등 등 복잡한 요소들이 얽혀있는 현대사의 비극적인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로 남아 있다.
- 아해소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