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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누구나 들어본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 숫자놀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 역시 스스로 인정해야 할 일이다.


직업상 '%'마크가 달린 글이나 "000명" 등의 표시가 된 글들을 자주 읽는 편이다. 여기에는 묘한 매력이 있고, 빠져들지 말아야 할 것을 알면서도 쉽게 내치지 못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 여대생 50% 성경험" 이라는 제목의 자료를 놓치고 싶은 기자는 없다. 또 이러한 기자들에 의해 생산된 기사를 클릭하지 않고 넘어가는 네티즌들도 많지 않다. 50%라는 조사결과에 매몰되어 버리는 것이다. 웃긴 것은 내용을 보면 한 200~300백명 정도 대상으로 했거나, 어디 대학신문사에서 조사한 내용을 참조한 것이다.


한 대학의 여대생만 해도 수천명일 것이고, 대한민국 여대생은 수십만명일 것이다. 표본의 정확성을 논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설사 표본이 정확했다고 해도 저 내용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그냥 수치에 의한 흥미성 내용일 뿐이다.


이는 요즈음 연일 기사가 나오는 괴물의 관객수에도 적용된다. 1천만명이 봤다고 해서 반드시 (절대적으로) 휼룡한 영화는 아니다. 1천만명 모두가 만족했을리 없기 때문이다. 만일 1천만명 중에서 9백만명은 "그 영화가 왜 난리인데"하고 봤다가 "에이 별로네"라고 반응을 보였을는지도 모르지 않는가. 아니면 연인과 다른 영화 보러갔는데, 스크린이 온통 괴물에 점령당해 있어 발길을 돌리지 못한 채 불가피하게 봤을지도 모른다. 즉 괴물의 1천만명 돌파 혹은 최고 관객수 갱신에 큰 의미를 두고 '숫자의 마력'에 빠져 이것저것 희한한 해석과 분석이 뒤따르는 것 역시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 숫자때문에 사실을 보지 못하고 있을 때도 많다고 생각된다. 즉 '내'가 중요하게 여기고 '내'가 필요한 것인지를 따지기 전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중요하게 여기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인식이 그러한지 따지게 된다.


앞서 제기한 내용을 다시 생각해보자. 설사 표본을 1만명으로 잡고 여대생의 성의식을 조사해 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치자. 그리고 재차 유사한 설문결과가 나왔다고 치자. 여기에 사람들의 의식은 조금씩 바뀌어 간다. "여대생은 자유분방하다 -> 내 주변 여대생들도 그러할 것이다"등으로 희한한 사고의 연결고리가 생기는 것이다.


숫자나 통계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은 곧 사고의 변화의 일으킨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본 글은 그냥 많이 본 글일 뿐이고, 볼만한 가치가 '있을 수도' 있는 글이지만, 꼭 나에게 100% 유효한 글은 아니라는 것이다. 문제는 그 글을 본 숫자의 표기는 바로 그 글에 "뭔가가 있다"라는 믿음을 심게 해준다..


100만권이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는 많이 팔린 책일 뿐이지, 나에게 반드시 '읽어야 할 필요성'이 있는 책은 아니다.


평균이라는 수치도 그렇다. 평균은 어디까지나 전체를 쉽게 판단하기 위함이지, 절대적으로 맹신되는 수치가 아니다.


통계학서적에서 잘 인용되는 이야기가 있다. 1920년대 중국내전 당신, 직진으로 진격하려는 군대가 강을 만났다. 부대의 장수가 강의 평균 깊이를 물어봤는데 참모다 1m40cm라고 답했다. 이 부대 병사들의 평균키가 1m65cm이므로 걸어서 도하가 가능하다고 판단한 장수는 군사들을 도하시켰다. 결과는 많은 부하가 죽었다. 1m40cm는 평균이었을 뿐이고 1m65보다 더 깊은 곳도 있었고, 부하들의 키 역시 1m65보다 작은 병사들도 있었던 것이다. 숫자에 매몰되어 판단이 흐려진 경우다.


가끔 선거때 하는 여론조사도 마찬가지다. 여론이 그러기에 결과적 숫자가 나온다기보다는 그 결과로 인해 부동층이 여론조사와 유사하게 나눠진다고 난 생각한다. 숫자로 사람들의 인식을 움직이는 것이다.


벗어나려 지금도 노력하는 있지만, 숫자와 통계에서 갇혀있는 순간 사고의 틀 역시 갇혀있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해소리-



ps.영화 관객숫자로 흥행배우, 비흥행배우를 나누는 철없는 한 인터넷언론 기자의 글을 보다 생각이 나서 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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