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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의 작가 첫 SF 장편소설 <작별 인사>를 지인에게 소개했더니 반응이 이랬다.

 

“야 그런 이야기는 이미 일본 애니메이션은 물론 영화에서도 많이 나왔잖아. 뭐가 다른 거지?"

 

<작별 인사>는 자신을 인간으로 생각했던 (정확히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휴머노이드 소년 철이의 시선으로 흘러간다. 그러면서 소설은 다양한 인간들의 모습을, 다양한 휴머노이드의 모습을, 그리고 복제인간의 삶을 보이면서 인간이라 불리는 존재의 삶과 죽음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든다.

 

이 기본적인 흐름, 이 때문에 지인은 휴머노이드를 그린 각종 영화와 일본 애니메이션을 떠올렸을 것이다. (아니면 내가 소설 내용을 전달함에 있어서 부족했든지)

 

김영하 작별인사

 

 

 

그러나 이 소설이 가진 매력은 저 단순한 흐름에서 읽는 나 자신의 존재가 소멸되어 가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는 점이다.

 

영화나 애니메이션도 다양한 생각을 하게 해주지만, 상상력을 발휘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수동적 매체의 특징이다. 이미 눈 앞에 (비록 CG지만) 실체화된 모습이 있고 공간이 있고, 인물리 있고 사건이 있는데, 굳이 내 머리 속에 또다른 존재와 공간을 만들어 낼 이유도 없고, 여지도 없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기계가 인간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며 창조해 낸 공간이 있는데, 굳이 내 머리 속에서 다른 공간을 만들어 낼 이유가 없다. 그러나 소설은 다르다. 아무리 구체적인 묘사를 하더라도, 읽는 이의 경험과 지적 능력에 따라 각각 다른 인물과 공간을 만들어 낸다.

 

 

<난쏘공> 조세희 작가 별세…1976년 이야기와 전장연 시위.

소설 (난쏘공)의 조세 작가가 25일 저녁 7시께 강동경희대학교병원에서 별세했다. 이라 불린 이 소설은 서울특별시 낙원구 행복동 무허가 주택에 사는 난쟁이 가족과 주변 인물들을 통해 도시 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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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평양에 위치한 휴먼매터스는 외부와 달리 평화로운 연구단지다라고 묘사했다면, 어느 이는 카이스트의 공간을, 어느 이는 넓은 뉴욕의 공원을, 어느 이는 커다란 벽으로 둘러싸인 최첨단 연구단지를 생각할 것이다. 각각의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다.

 

김영하는 소설에서 인간의 존재 가치와 인간이든 휴머노이드든 삶이 지속될 가치가 있는가를 지속적으로 묻는다. 그리고 달마와 선이의 논쟁을 통해, 앞서 작가가 던지던 질문을 좀더 구체적으로 정리하려 한다.

 

기계가 인간의 고유성을 가진다고 해서 과연 인간이 될 수 있을까. 경험을 억지로 집어넣고, 해석(?)하고 느끼게 한다고 해서 그것을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것을 철이에게 묻는다. 동시에 달마는 어차피 기계에게 의존한 인간은 사라질 것이고, 세계는 기계만이 남을 것이라 본다. 동시에 인간과 닮은 휴머노이드도 사실 필요없다고 말한다. 네트워킹에서 뭐든 보고, 뭐든 기록하고, 뭐든 전달할 수 있는데, ‘같은 형체는 필요 없다고 한다.

 

선이는 인간이든 휴머노이드이든 존재하는 것들은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주 안에서의 의식. 기계는 죽지 않고 네트워크에 남아 영원히 삶(?)을 살아가지만, 인간은 죽지만, 그조차도 우주의 한 부분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지, 끝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듯 싶다. 이는 보통 종교의 인식이다. (결국 선이는 종교적 지도자와 같은 모습으로 변한다)

 

김영하의 소설을 읽으면서 재미있던 것은 인간 세계가 파괴되어 가는 과정을 굉장히 순식간에 해치운다는 점이다. 실상 철이의 아버지인 박사와 복제인간인 선이를 제외하고는 소설에서 인간으로서 존재를 드러내는 인간은 없다. 오로지 휴머노이드와 기계들, 그리고 네트워킹으로 들어가는 기계의 존재들이 대부분이다.

 

 

<너의 심장을 쳐라>(아멜리 노통브)┃당신의 사랑은 ‘적절’합니까?

추천의향 10점 만점에 9점. 아멜리 노통브의 는 밀리의 서재로부터 지난해에 받았다. 2017년 프랑스에서 출간해 현지에서 20만부가 팔리고 전 세계 17개 언어로 출간됐다고는 하지만, 사실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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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이와 선이 그리고 선이를 따르는 무리들의 이야기가 나오기 전, 실질적으로 세계에 인류가 사라지는 과정 역시 굉장히 건조하게 다룬다. 영화나 애니메이션처럼 무엇이 폭발하고, 휩쓸고 가는 과정이 없다. 혹은 기계에게 정복당하거나, 우주인이 등장하는 것도 아니고. 아주 조용히 그냥 인류가 어느 날 스스로 일어서지 못하고 사라졌다. 기계들은 그냥 바라만 볼 뿐이고, 인류가 사라진 공간에 지구가 다시 치유되고, 기계들은 자신들의 영원한 삶을 살아간다고 기록한다.

 

가장 인간에 가까운 휴머노이드 철이는 기계이자 인간으로 남는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묻는다. 네트워크 속에서 영원히 살아가는 것이 맞는 것인가, 아니면 인간처럼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

 

드라마 도깨비에서 공유는 영원한 삶을 살면서 가장 슬퍼했던 것이 주변의 사람들이 죽는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살아갈 가치가 있을까라는 질문에 수백만개의 답변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사람들은 언젠가 죽을 것이다라는 너무나 당연한 결과를 생각해보면 저 답변은 하나로 귀결될 것이다.

 

‘사람은 계속될 가치가 있나’ ‘인간이란 존재는 계속 지구에 살아갈 가치가 있나’라는 질문은 ‘언제가 죽을 현재의 사람들이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가’가 답을 주지 않을까 싶다.

 

- 아해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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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미네이터' 시리즈 중 비주얼로만 따진다면 가장 대작이라고 불리우는 4편 '터미네이터 : 미래 전쟁의 시작'(이하 터미네이터)은 평가가 갈린 것으로 보인다.

11일 언론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터미네이터'는 영화 초반부터 거대한 전투 장면으로 관객들을 압도한다. 인간 저항군의 리더인 '존 코너'가 '스카이넷'이 만든 실험 기지에 침투하지만, '스카이넷'이 만들어놓은 함정으로 인해 부대원을 모두 잃으면서 시작되는, 스크린 가득 찬 비주얼들은 현란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2018년년 폐허가 된 도시의 모습과 '트랜스포머'를 보는 듯 T-600, T-800, 헌터킬러, 하베스터, 모터 터미네이터 등의 터미네이터 군단은 그 자체로 영화에 몰입하게 만든다.

전작들이 아놀드 슈왈츠제네거를 중심으로 각 시리즈마다 새로운 터미네이터를 선보였던 식이라면 이번 '터미네이터'는 인간을 괴롭히는 모든 로봇을 대거 등장시킨다. 시리즈 중 사상 최고인 2억 달러의 제작비를 실감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번 '터미네이터'는 아쉽게도 딱 볼거리만 나열하는 수준에서 그친다. 기존 '터미네이터' 시리즈가 가졌던 기계와 대척점에 서있는 인간을 통한 감동과 철학이 부족했다. '터미네이터'의 핵심은 인간이 만들어낸 기계가 자의식을 갖기 시작하면서 도리어 인간을 위협하는 상황을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거기서 느껴지는 공포와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며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개발되고 있는 기계의 진화에 대해 생각해보고, 거꾸로 '인간'이라는 그 자체를 되돌아보게 했다.

이번 '터미네이터'는 배우들의 대사를 통해서는 이같은 점을 지속적으로 표출한다. 하지만 "인간이 기계와 다른 점은…" "나는 인간이라고 생각한다"는 등의 대사는 영화 전체적으로 느껴져야 할 '터미네이터' 특유의 색깔을 보여주기에는 힘이 달린다.

그러다보니 이번 4편은 '터미네이터' 시리즈라기보다는 또다른 하나의 독립된 영화로 존재한다는 느낌마저 준다. 'I'll be back' 등의 대사와 컴퓨터그래픽으로 등장한 아널드 슈워제네거의 모습이 안 보였다, '터미네이터' 아류로 인식되어도 그다지 어색함이 없었을 정도다. 거대한 기계들의 향연에 인간은 영화 내용에서뿐만 아니라, 스크린 전체에서도 보이지 않게 된 셈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니 혹자는 말한다. 터미네이터에서 무슨 철학이냐고. 그러나 매트릭스와 터미네이터가 향후 다른 영화에 끼친 영향력은 막대하다. 단지 엔터테인먼트만이 아닌, 인간-기계에 대한 여러가지 고민을 낳았기 때문이다. 지구, 인간 외부의 침략이 아닌, 인간이 만들어낸 기계의 재앙 말이다.

- 아해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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