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부들이 말하는 미술과 예술. 왜 빠져들까. <광부화가들>이 묻는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인류사 이 문제에 대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논쟁했을까. 그럼 이 논쟁은 누가 할 것인가. 이 문제도 논쟁의 대상이다.
그런데 예술을 행하고 이를 평하며 논쟁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못 배웠다고 말하는 ‘광부’라면?
속칭 예술 좀 한다는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예술의 기준이 세우고, 누군가를 설득하려 할 것이다. 그것이 어떤 작품으로 통해 발현되기도 하지만, 자신의 작품을 해석, 혹은 타인의 작품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예술이란 무엇인가’를 이야기한다. 그러다보니 명언도 많다.
예술이란 자연이 인간에게 비추어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거울을 닦는 일입니다.(오귀스트 르네 로댕)
위대한 예술은 언제나 고귀한 정신을 보여준다.(파블로 피카소)
위대한 예술가는 영혼에 응답하는 영혼의 노래를 듣는다.(오귀스트 르네 로댕)
예술이 만드는 추한 것들은 종종 시간이 흐르면서 아름다워진다.(장 콕토)
내 예술은 사회의 부정, 즉 사회의 모든 규칙과 요구 바깥에 존재하는 개인의 확인이다.(에밀 졸라)
위대한 작가는 그의 나라에서 제2의 정부이다. 그렇기 때문에 별 볼일 없는 작가라면 몰라도 어떤 정권도 위대한 작가를 좋아한 적이 없다.(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약간의 문학을 만들어내기 위해 아주 많은 역사가 필요하다.(헨리 제임스)
예술을 위한 예술이 아름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보를 위한 예술은 더욱 아름답다.(빅토르 위고)
뭔가 어마어마해 보인다. 본론으로 들어가 그렇다면 이런 어마어마한 명언을 남긴 ‘속칭’ 예술을 하는 이들이 아닌, ‘광부’들의 이야기는 어떨까.
연극 <광부화가들>은 영국 작가 리홀의 작품이다. 익숙하지 않다고? ‘빌리 엘리어트’의 작가라면 그래도 ‘아하’ 할 것이다. 그 작가의 작품이 2010년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이상우 연출 하에 초연됐고, 2013년 재연됐으면 10년 만에 다시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무대에 오른 것이다.
<광부화가들>은 영국 북부 탄광촌의 실화가 바탕이다. 영국 작가 윌리엄 피버는 예술애호가의 소장품 전시회 프리뷰에서 광부화가들의 그림을 본 뒤 ‘애싱턴 그룹’이란 책으로 이들을 소개했다. ‘애싱턴 그룹’은 1934년 탄광촌에서 출발한 광부들의 그림 모임을 말한다. 광부가 그림을 그렸다고 해서 이들이 예술사에 이름을 남긴 것이 아니다. 이들은 뛰어난 미술 실력과 유명세 그리고 끊임없는 전업작가 유혹에도 끝까지 ‘광부’로 남았다. 즉 그림을 그리며 광부 일도 했다. 그래서 이들이 행한 예술의 가치가 남다르게 평가 받은 것이다.
“우리는 단 한 번도 상업적인 그룹이 아니었습니다” (애싱턴그룹 올리버)
스토리는 대략 이렇다. 1934년 영국 북부의 탄광촌 애싱턴에서 광부들을 위한 미술 감상 수업이 열린다. 강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 유명 화가의 명화를 보여주며 미술사를 설명하지만, 광부들은 시큰둥하다. 광부들은 강사에게 “그림을 보고 무슨 의미인지만 알려 달라”고 한다. 강사와 광부들은 그 ‘의미’를 두고 논쟁한다.
결국, 강사는 광부들이 직접 그림을 그려볼 것을 제안한다. 처음에 주저하던 광부들은 주변의 것들을 그림으로 옮기고 동료들과 토론하면서 그림에 점차 빠져든다. 어느덧 그림은 그들에게 일상이 돼버린다.
그런 가운데 그룹 활동을 두고 갈등도 일어난다. 또 세계 2차 대전이 일어난 가운데, 그들이 하는 예술이 무슨 소용인지에 대해서도 논쟁을 벌인다. 그러나 그들은 끝까지 ‘예술을 하는 광부’로 남는 것에 대해서는 뜻을 같이한다. 연극은 8년간 이어진 미술 감상 수업과 그 이후 ‘애싱턴 그룹’의 활동 등 총 14년에 걸친 시간을 보여준다.
<광부화가들> 극 중반까지 이들은 여전히 화가다는 광부로서의 위치에 있다. 스스로 그리는 뛰어난 그림을 ‘장난’으로 치부하고, 속칭 ‘예술가’들의 작품을 보면서는 스스로 “무식해서 잘 모르겠지만”이란 전제로 조심히 자신이 느낀 감정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중반으로 갈수록 이들의 미술에 대한 사고는 단단해진다. 자신들이 왜 그림을 그리고, 그 그림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지, 명확하게 표현한다. 애싱턴 그룹이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떤 포지션에 있어야 하는 지도 이즈음 만들어 진다.
한 부자가 올리버에게 주급을 줄테니 전업작가로 활동할 것을 제안받은 것에 대해 이들이 하는 논쟁이나 고민이 그렇다. 미술이라는 예술 앞에 ‘광부’가 놓여져 있었고 ‘친구’ ‘가족’이 존재했다. 예술의 존재가 이들의 가치를 뛰어넘을 수 있을까.
미술을 소재로 한 작품이니 만큼 <광부화가들>은 무대 대형 스크린에는 끊임없이 미술 작품들이 등장한다. 강사가 광부들을 대상으로 강의할 때는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 르네상스 명화들이 등장하고, 이들이 본격적으로 미술을 그리기 시작한 시점에서는 애싱턴 그룹의 작품들이 선보인다. 이들이 어떤 작품을 두고 논쟁을 벌일 땐 그 작품이 스크린에 등장한다.
이번 <광부화가들>은 초연과 재연을 무대에 올린 이상우 연출이 다시 연출을 맡는다. 그리고 그가 창단했고 2019년 해단한 스타 극단 차이무 출신 배우들이 대거 무대에 오른다. 문소리, 강신일, 이대연, 박원상, 정석용, 민성욱, 오용, 송재룡 등 차이무 출신에 송선미, 노수산나, 김한나, 노기용, 김두진, 김중기 등이 함께 무대에 오른다.
<광부화가들> 무대 위 광부들의 상황과 입을 통해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들으면서 예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지만, 동시에 아쉬움도 남는다.
앞서 언급한 미술 작품들의 등장이 중간 중간 거슬릴 때가 있다. 배우들 대사와 상황에 맞춰 올라간 작품들은 극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만, 뜬금없이 지속적으로 깔리는 작품들은 어느 시점에는 피곤함을 느끼게 한다. 배우들의 대사와 상황에 오히려 집중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여기에 배우들이 상대를 설득하기 위한 대사들이 끊임없이 나오는 장면에서는 지루함도 느껴진다. 하나 더 사람마다 호불호가 있겠지만, 사회주의와 관련한 장면들 역시 어느 정도 이들의 역사를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거부감을 일으킬 수 있다.
마지막으로 배우들. 이번 무대에서 배우들은 딱 어느 팀에 들어가서 나눠지진 않는다. 즉 다양한 조합으로 무대를 꾸민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문소리, 강신일, 정석용, 김한나, 오용, 민성욱, 오대석 배우를 추천한다. 누구에게 포인트를 주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몇몇 배우는 대사를 할 때 번잡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뭐 취향은 다르겠지만.
<광부화가들>은 2023년 1월 22일까지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된다.
- 아해소리 -
'대중문화 끄적이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츄 갑질 근거 못 내놓고 이달의 소녀 컴백. 블록베리의 도박? 자존심? 멤버들 분열? (0) | 2022.12.13 |
---|---|
58세 김종서, 나이 무색한 목소리와 무대 매너…‘떼창’으로 답한 중년들. (0) | 2022.12.11 |
‘신화’ 신혜성은 범죄자가 됐지만, ‘신화’ 이민우‧김동완‧전진은 ‘돈벌이’ 나간다. (0) | 2022.12.06 |
시사회부터 붙는 영화 <영웅>과 <아바타: 물의 길>, 극장 양분 시킬 수 있을까. (0) | 2022.12.05 |
이달의 소녀 츄가 ‘갑질’했다는데 연예매체들이 ‘조용한’ 이유. (0) | 2022.11.29 |
법무법인 태평양 최선 내세운 이승기, 권진영 대표 향한 본격적인 반격. (0) | 2022.11.24 |
“내 이름과 인생을 걸고 이승기를….”…권진영 대표의 추락과 이선희. (0) | 2022.11.22 |
양현석 징역 3년 구형. 한서희와 함께 연예계 ‘추잡한 상상력’ 불러일으키다 (0) | 2022.1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