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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오동전투의 주역 홍범도 장군이 815일 광복절 저녁에 귀향했다. 이역만리 카자흐스탄 크즐오르다에서 19431025일 사망한지 정확히 78년 만이자, 19206월 일어난 봉오동전투 기준으로 101년 만이다.

 

 

그런데 홍범도 장군 유해가 고국에 오는 것을 불편해 하는 이들이 있다. 여전히 친일을 추앙하거나, 일베 수준의 사람들이다. 홍범도 장군 관련 기사에 우루루 몰려가 자유시 참변과 관련된 내용을 복불 수준으로 단다. 주로 내용은 이렇다.

 

자유시에서 소련 편을 들며 같은 동포한 한국 독립군을 몰살한 홍범도를 저렇게 예우하며 국립묘지에 묻히게 할 수 없다. 나중에 레닌에게 권총과 모자를 받을 정도로 공산주의자였다

 

그리고 주로 극우 언론들도 이 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제목만 봐도 이렇다.

 

독립군 유인·학살 '자유시 참변'에 가담… 홍범도 '친소 괴뢰' 논란 (뉴데일리)
자유시참변에서 한국 독립군 몰살 가담한 홍범도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추서? (펜엔드마이크)

 

논란이 되자 연합뉴스가 팩트를 체크했다. 물론 이런 기사가 나오더라도, “저들은 다 거짓말이야라고 말하고 싶은 이들은 분명 있다. 아니나 다를까, 해당 기사에 연합뉴스는 빨갱이냐라는 댓글이 달렸다. 사회는 다양하다.

 

연합뉴스가 부제로 기사를 정리한 내용은.

 

유해 봉환 속 "참변 가담해 反공산주의 계열 독립군 학살" 주장 나와.
"홍 장군, 독립군 신속한 통합에 관심"…'참변 가담' 기록 없어.
참변 후 군사재판 참여 두고 왜곡 주장…'독립군 궤멸' 주장도 과장.

 

그리고 홍범도 장군 관련해 가장 중요한 내용은 이렇다.

 

홍 장군이 자유시 참변 과정에서 고려혁명군 편에서 대한의용군 소속 독립군을 학살했다는 주장도 낭설에 가깝다.

1921년 3월께 자유시에 도착한 홍 장군은 당시 주도권을 쥔 대한의용군 중심의 독립군 통합에 찬성했다가, 이후 주도권이 고려혁명군으로 넘어가자 1921년 5월 기존 태도를 바꿔 고려혁명군 중심의 통합에 힘을 실었다. 양측 모두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던 홍 장군으로서는 통합 주도권의 향방엔 관심이 없었고 하루라도 빨리 통합이 마무리돼 항일무장투쟁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게 역사학계의 해석이다.

공식 사료에도 홍 장군의 부대가 자유시 참변에 가담했다는 기록은 전혀 찾을 수가 없다. 참변 이후 포로로 잡힌 대한의용군 독립군에 대한 군사재판에 재판위원으로 참여한 기록은 있지만, 이는 신속한 사태수습을 원한 고려혁명군 측이 독립군 사이에서 명망이 높은 홍 장군을 재판위원으로 추대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자유시 참변 연구 권위자인 윤상원 전북대 사학과 교수는 연합뉴스에 "홍 장군이 고려혁명군 중심의 독립군 통합에 찬성하고, 참변 이후 벌어진 군사재판에 재판위원으로 참여했다는 이유로 자유시 참변에 가담했다는 왜곡된 주장이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홍 장군의 부대가 자유시 참변에 가담했다는 기록은 전혀 없고, 오히려 참변 당시 홍 장군이 휘하 장교들과 인근 솔밭에 모여 땅을 치며 통곡했다는 증언만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역시 댓글들은 일베 수준이다. 가끔 이런 사람들은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는지 궁금하다.

 

- 아해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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