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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보는 와우시민아파트 붕괴사고…'34명 사망' 1970년 대한민국 도시화의 그늘 드러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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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12월 25일, 축복과 기쁨이 가득해야 할 성탄절 아침, 서울의 심장부 충무로에 위치한 대연각(大然閣) 호텔에서 굉음과 함께 검은 연기가 치솟았다. 1969년 완공된 21층 규모의 이 호텔은 당시 서울에서 두 번째로 높은 '마천루'로, 건설비 17억 8천만 원이 투입된 초호화 시설을 자랑했다. 객실마다 텔레비전이 구비되는 등 당대 최고급 시설을 갖췄으며, 9급 공무원 월급이 1만 7천 원이던 시절 하루 숙박비가 2만 원에 달해 일반인들은 쉽게 발을 들일 수 없는 '낭만의 핫플레이스'로 불렸다. 그러나 이 화려한 외관 뒤에는 치명적인 안전 문제가 숨겨져 있었다. 준공 허가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건축법 완화를 통해 간신히 준공 검사를 통과한 지 불과 한 달 만에 비극적인 참사가 발생한 것이다.

 

대연각 화재 사건

 

크리스마스 이브의 야간 통행금지 해제로 밤새 들뜬 분위기였던 호텔은 오전 9시 50분경, 1층 커피숍에서 시작된 화재로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이 화마는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화재 참사로 기록됐으며, 전 세계 호텔 화재 중에서도 단연 최대 규모의 비극으로 남았다. 이 사건으로 총 166명이 사망하고(추락사 38명) 68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25명은 끝내 돌아오지 못하는 실종자로 남았다. 화재는 호텔 전체를 잿더미로 만들며 당시 소방서 추산 약 8억 3,820만 원의 막대한 재산 피해를 남겼다. 사망자 수에 대해선 출처별로 163명에서 실종자를 포함한 191명까지 다양한 수치가 제시되며, 이는 사건의 혼란스럽고 참혹했던 규모를 반증한다.  

 

1. 불길을 부른 구조적 인재(人災)

 

발화의 시작: 1층 커피숍의 시한폭탄

 

대연각호텔 화재의 발화 원인은 1층 커피숍에 설치된 프로판 가스통의 폭발로 밝혀졌다. 이 폭발은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다. 사고의 이면에는 안전을 외면한 여러 구조적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첫째, 화재를 일으킨 20kg짜리 프로판 가스통은 실내에 보관돼 있었다. 둘째, 가스통과 화덕을 연결한 배관은 금속이 아닌 값싼 PVC 재질이었다. 이 PVC 배관은 내구성이 약해 시간이 지나면서 구멍이 났고, 누출된 가스가 바닥에 고였다. 프로판 가스는 공기보다 무거워 누출 시 바닥에 가라앉으며, 무색무취의 특성 때문에 누출 사실을 알아차리기가 어려웠다. 결국 고인 가스가 화덕 불꽃에 착화되면서 대형 폭발을 일으킨 것이다. 낡은 가스통을 내압 검사도 없이 4년간 사용하고, 저렴한 고무호스로 배관을 설치한 사실은 호텔 경영진의 안전 불감증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불쏘시개였던 초호화 인테리어

 

1층에서 시작된 작은 불길이 순식간에 건물 전체를 집어삼킨 데는 호텔 내부의 구조적 문제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호텔 내부는 한지 벽지, 목재 가구, 양탄자 등 불에 쉽게 타는 가연성 물질로 가득 차 있었다. 이러한 초호화 인테리어는 화재가 빠르게 번지는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이와 더불어, 화재 확산을 막는 가장 기본적인 설비인 방화문은 비상계단에 의무적으로 설치되어야 했지만, 대연각호텔은 비용 절감을 이유로 방화문을 설치하지 않았다. 방화문이 없는 개방형 계단과 냉난방 덕트는 화재 발생 시 불길과 유독가스를 마치 굴뚝처럼 수직으로 빠르게 확산시키는 '굴뚝 효과(Stack Effect)'를 일으켰다. 1층에서 시작된 불길은 단 1시간 30분 만에 21층 건물 전체를 활활 타오르는 거대한 횃불로 만들었다. 이는 단순히 LP가스가 폭발한 사고가 아니라, 외형적 성장만을 추구하고 안전을 경시했던 1970년대 한국 사회의 민낯을 드러낸 명백한 '인재(人災)'였다.  

 

2. 절규와 좌절의 7시간, 미완의 구조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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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연각 화재 사건

①  장비의 한계에 막힌 사다리차

 

화재 신고를 접수한 소방 당국은 서울 전역의 소방력을 총동원하여 1,500명이 넘는 구조 인력을 현장에 투입했다. 그러나 불길을 잡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당시 국내에 단 1대뿐인 최신 소방 사다리차는 겨우 7층 높이까지만 닿을 수 있었다. 21층 규모의 호텔 화재 현장에서는 사실상 무용지물이었다. 8층 이상 고층에 갇힌 투숙객들은 창문에 매달려 필사적으로 구조를 기다렸지만, 소방관들은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옥상에 헬기 착륙장(헬리포트)이 없어 출동한 소방 헬기마저도 구조에 실패하며 장비의 열악함이 인명 피해를 더욱 키웠다.  

 

닫힌 옥상문이 부른 비극

 

호텔 내부에 갇혔던 사람들의 마지막 희망은 옥상으로 탈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화재 진압 후, 옥상으로 통하는 출입문 앞에서 23구의 시신이 발견되는 참혹한 사실이 드러났다. 호텔 옥상문은 평상시처럼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었던 것이다. 비상구가 아닌 이윤을 위한 통제 수단이었던 셈이다. 이는 대연각호텔의 안전 불감증이 얼마나 깊게 뿌리 박혀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다. 비상 대피로라는 가장 기본적인 안전 원칙조차 지켜지지 않아 수많은 생명이 헛되이 희생되었다는 점은 화재 확산 원인과 더불어 인명 피해의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된다.  

 

추락, 그리고 처참했던 시신 수습

 

불길과 유독가스를 피해 창문 밖으로 몸을 피했던 많은 사람들은 창문에 매달리거나 매트리스를 끌어안고 뛰어내리는 극단적인 선택을 해야 했다. 그러나 추락을 막아줄 에어매트조차 부족한 상황에서 그들의 필사적인 탈출은 곧 죽음으로 이어졌다. 더 큰 비극은 화재 진압 후에 찾아왔다. 불에 심하게 훼손된 시신들은 신원 확인이 거의 불가능했다. 당시에는 DNA 감식 기술이 발전하지 못해 유가족들은 훼손된 시신을 직접 눈으로 보고, 치아나 골격 등 미미한 특징으로 가족을 찾아야 하는 끔찍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이는 화재라는 직접적인 재난 외에, 현대적 재난 대응 시스템의 부재로 인해 발생하는 2차적 고통이 얼마나 참혹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남았다.  

3. 대재앙이 남긴 교훈과 변화

 

①  전 사회적 경종: 안전불감증의 대가

 

대연각호텔 화재는 단순히 한 건물의 참사를 넘어, 1970년대 급격한 경제성장 뒤에 가려져 있던 한국 사회의 안전 불감증과 허술한 규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당시 TV를 통해 생중계된 화재 현장은 전 국민에게 깊은 충격을 안겼다. 사람들이 불길을 피해 창문 밖으로 매달리거나 떨어지는 장면은 대형 재난이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대연각 화재는 이후에도 계속될 삼풍백화점 붕괴, 세월호 참사 등 수많은 대형 재난의 예고편과 같았으며, 국민의 희생이 있어야만 제도가 개선되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구조적 모순을 짚어내게 했다.  

 

대연각법 제정, 소방 시스템의 재탄생

 

대연각호텔 화재 이후, 정부는 안전 시스템을 제도적으로 정비하는 데 착수했다. 이는 그야말로 '사후약방문'이었지만, 한국 사회의 안전 의식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주요 제도적 변화는 다음과 같다.  

구분 화제 이전 상황 화제 이후 변화
소방 장비 소방 사다리차 7층 한계 23층까지 닿는 고가 사다리차 도입
소방 설비 스프링클러, 화재 경보 설비 미설치 스프링클러 및 화재 경보 설비 의무화
건축 규제 고층 건물 옥상 헬리포트 부재 일정 규모 이상 건물 옥상 헬리포트 의무화
보험 및 관리 화재 보험 의무 규정 부재 일정 규모 대형 건축물 '특수시설' 지정 및 화재 보험 가입 의무화
 

특히, 당시 급격하게 대형 건물이 들어서던 시기에 대연각호텔 화재는 대형 건축물에 대한 안전 대책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이 참사를 계기로 스프링클러, 화재 경보 설비 설치가 의무화되었고, 고층 건물 옥상에는 헬기 착륙장이 반드시 설치되도록 법규가 개정되었다. 또한 일정 규모 이상의 건축물은 '특수시설'로 지정되어 화재 및 손해배상책임보험 가입이 의무화되면서 안전 관리에 대한 책임이 강화됐다. 한편, 화재 참사 이틀 뒤인 1971년 12월 27일에는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통과되기도 했다. 이는 재난을 독재 정권의 통치력 강화에 이용하려는 시도가 있었음을 보여주며, 대형 재난이 사회, 정치적 맥락과 어떻게 결부될 수 있는지를 시사한다.  

 

4. 화재가 현재까지 남긴 영향.

 

대연각호텔 화재는 시간이 흐르며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서서히 잊혀갔다. 그러나 이 사건이 남긴 교훈은 여전히 유효하다. 참사 이후 관련 법규가 대폭 강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발생한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이천 물류창고 화재 등 최근의 사례들은 여전히 현장에서의 안전 관리와 시민들의 안전 의식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대연각호텔 화재는 단순히 166명의 목숨을 앗아간 비극을 넘어, 급속한 경제 성장 뒤에 가려져 있던 한국 사회의 부실한 안전 시스템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었다. 진정한 의미의 '안전'은 법과 제도가 아니라, 현장의 철저한 관리와 모든 이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의식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이 보고서를 마무리한다.  

 

- 아해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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