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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에서 본 첫 영화는 제목은 기억에 남지 않지만, 홍콩영화였다. 부모님 몰래 친구들과 들어간 지정석도 없는 극장 계단에서 난생 처음 본 거대한 화면은 그냥 멍한 기분만을 느끼게 했다. 그 후 다시 찾은 극장에서 본 서편제는 내가 접한 현실이 아닌 화면을 통해서도 내가 눈물을 흘릴 수 있음을 알게 해주었다. 그렇다고 무슨 영화배우나 감독을 꿈꾼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렇게 영화를 보는 것이 즐거웠고, 독서실을 간다는 핑계로 역 주변 동시상영극장을 일주일에 한번정도는 꼭 찾아갔다. 지정석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한편을 봤다고 쫓아내는 것도 아니었기에 같은 영화를 하루에 2~3번씩 볼 때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무슨 영화를 본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영화 <공각기동대>┃할리우드가 ‘존재’의 철학을 어설프게 말하다.

사실 스토리가 세세하게 생각나지 않는 상황에서 이번 실사판 을 접했다. 그러다보니 영화를 보면서 실시간으로 머리 한 쪽으로는 원작을 떠올리며 스토리를 구분해 이어나갔다. 물론 이번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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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그때 호기심어린 마음으로 영화를 순수하게 즐겼을 뿐이었다. 그리고 10여년이 지난 지금 난 영화를 보러가기 껄끄러워졌다.

 

어느 때부터인가 영화는 기억의 대상이고 분석의 대상으로 변했다. 어느 감독에 대한 영화류를 따져야 하며, 상업주의 영화가 분명 관객을 끌어들이는 재미가 있음에도 왠지 극장 안에 발을 들여놓는 심정은 씁쓸하다. 길거리 가판대에서 집어든 영화관련 잡지도 손에 쥐기조차 무겁다. 한쪽 손에 든 가방보다도 질량적 무게감은 분명 가벼운데도, 심적 무게감은 이를 훨씬 상회한다.

 

 

“이 영화 정말 재미있지 않냐? 주인공이 그렇게 연기를 잘할 수가 없더라. 화면 역시 이쁘던데. 어쩜 그리 잘 만들었냐” 영화 관람 후 식사라도 하면서 이런 식의 말을 하면 이제는 무식하다는 말을 듣는다.

 

“영화의 콘텍스트의 흐름이 뛰어나던데. 주인공의 감정몰입이나 등장인물들의 시선변화는 특히 더 그렇고. 비주얼은 또 어떻고” 이런 식의 어설픈 단어나열이라도 해야 뭔가 아는 듯한 그리고 느끼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그냥 그렇게 즐겁게 본 영화보다 왠지 해석하려는 이들의 평이 답답하다.

 

그러나 이들의 잘못이라기보다 영화가 개봉하기 전 그 영화를 해석한 수많은 일간지, 잡지, TV들의 문제는 아닐까?

 

“이 영화는 000감독의 작품 세계가 지속적으로 회귀하는 비현실적이고 판타지적인 공간으로 도약해간다.” 어느 잡지에 나온 평론의 일부분이다. 관객들은 이를 따라할 뿐이다.

 

사실 영화는 그냥 즐기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감독들은 그 안에 수많은 메시지를 드러내 보이려 애쓰고, 이를 평론가들은 더 어렵게 해석하고, 관객들은 다시 ‘즐김’의 주체에서 점차 벗어나버린다. 오로지 웃음만을 자아내게 하는 영화는 왠지 모르게 ‘저급’으로 취급되어 무슨 영화잡지에서 보여주듯이 매번 엄지손가락이 아래로 향하게 만든다. 즐기기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일까?

 

 

왜 '터미네이터4'에서 터미네이터가 안 보일까

'터미네이터' 시리즈 중 비주얼로만 따진다면 가장 대작이라고 불리우는 4편 '터미네이터 : 미래 전쟁의 시작'(이하 터미네이터)은 평가가 갈린 것으로 보인다. 11일 언론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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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센스>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공각기동대 후편이다. 조금 오래전 영화다. 전에 같이 본 사람들의 중론은 나오는 대사만 대충 합해도 철학서적 한권은 나온다고 말한다. 영화를 보면 새로운 생각에 대한 몰입이 즐김일 수도 있다. 문제는 다시 그 생각을 풀이하는 과정에서 생긴다. 어찌보면 이노센스나 공각기동대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또한 메시지 역시 간단하다. 인간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다. 매트릭스를 보면서도 역시 같은 생각을 했다. 지금 실재하는 인간의 모습이 진짜 인간의 모습인가라는 질의가 영화의 중심생각이다.

 

<공각기동대>의 소좌가 아무도 자신의 뇌를 본 사람이 없다고 말한 것이나 어느 책에서 언급했듯이 사람이 눈을 통해 비추는 감각의 영상이 아닌 실질적인 인간의 모습은 그 누구도 본 적이 없기에 인간은 허구라는 식의 논리를 지리한 책이 아닌 영화로써 접근한 것은 어찌보면 뛰어난 방법이다. 하지만 관객들 대다수는 그것에 그리 광분하지 않을 것이다. 어찌보면 1990년대 유행하던 홍콩 느와르에서 주윤발이 천천히 등장하는 장면이나 유덕화가 멋지게 카드를 상대에게 던지는 장면이 더 마음에 와닿을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의 영화는 관객에게 계속 알수 없는 질문던지기 놀이를 즐기고 있는 것이다.

 

 

여타 문화도 그러하겠지만 영화는 지금 군림과 무거운 메시지 전달 그리고 사업의 측면에서만 논해지고 있지, 실제 그 영화를 즐기려는 관객의 입장은 돌아보지 않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관객이 영화의 수준을 논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틀에 영화의 수준을 정해놓고, 그에 따라 관객수준까지 결정짓는 시스템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무거운 메시지 전달은 마치 반드시 들어가야 할 옵션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틀 안에서 벗어나거나 어설프게 이 틀에 끼워 맞추려면 곧 사장된다. 물론 살아남는 방법도 있다. 일종의 외부로의 평가. 즉 외국에서 수상하고 들어오면 국내에서의 평가는 180도 달라진다. 이 때부터는 그 영화가 일종의 ‘틀’의 한 부분을 대체하게 된다.

 

현대에 와서 모든 의식과 개체들이 분석의 대상이 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이지만, 무슨 독재시대 사상전파의 나팔수도 아니고 즐김의 대상이 되는 문화의 한 부분을 점차 의식화시키는 것은 되짚어봐야 할 문제다. 물론 특정의식의 전파 - 예를 들어 학교문제를 고발한다던가 하는 -를 위한 작업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아예 초반부터 상업주의적임을 표방하고 나선 영화들조차 기존의 사상적 잣대로 분석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싶다. 그리고 이런 작업에 ‘좀’ 안다는, 그리고 ‘제법’ 영화를 봤다는 사람들이 나서서 관객들의 ‘즐김의 권리’를 박탈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글래디에이터>에서 황제의 손가락의 방향에 따라 한 인간의 목숨이 좌지우지되듯 그들이 주는 별 몇 개와 손가락의 방향이 한 영화를 좌지우지하고, 다양한 관객들의 성향을 몇 개의 층으로 단순화시키는 것은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난 과거 중학교때 본 영화를 계속 떠올리려 노력하지만 내용이 기억이 안난다. 1천원짜리 동시상영극장에서 몇 번에 걸쳐 본 영화들인데도 말이다. 그러나 느낌은 분명 살아있다. 대낮에 몇 명 안되는 사람과 같이 보면서, 혹은 주말에 계단에 앉아서 무엇인지 모지만 다른 세상에 대한 동경으로 저려오는 가슴의 느낌은 손에 잡힐 듯 남아있다. 영화를 보면 어느 새 따지게 되는 지금의 나로서는 다시는 느끼기 힘들 듯 싶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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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새터 (새내기 새로배움터...오리엔테이션이죠.^^)의 시기가 왔다. 새터가 가본지 수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후배들로부터 들려오는 이야기는 꼭 우리때와 비슷하다. 시대가 변하고, 사람이 변해도 선후배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은 비슷한 모양이다.

 

1. 술...

 

이거 빼놓고는 오티 이야기 안 나온다. 지금은 자연스럽게 마시는 학생들도 많아졌다고는 하지만, 역시 대학 입학과 동시에 선배 동기들과 처음 마시는 술이기에 그 의미가 다르다. (90년대 후반까지는 정말 이때 처음 술 제대로 마셔본 신입생들이 많았다). 각 대학 총학생회 등은 혹 술 먹고 학과끼리 싸울까봐 적당히 마시라고 하지만, 교수들도 와서 술잔 돌리는데, 누가 막으랴. 일부 열혈 선배들은 자기 차로 열심히 근처 마트에서 박스째 술을 계속 조달하기도 한다.

선후배끼리 스스럼없이 친해지는 기회가 되기도 하지만, 간혹 아침에 일어나 민망해지는 경우도 생긴다. 또는 오티내내 술때문에 잠만 자고 오는 경우도..^^. 적당히 마시지 않으면 후회가 되기도 했다.

 

2. 오티 CC...

 

CC가 정말 많이 생기는 때다. 지금이야 남녀공학이 많이 생겼지만, 전에는 남고 여고 나온 애들이 한 방에서 놀다가 다시 한방에서 (원래는 안되지만 술먹다 보면 그렇게 된다) 이곳저곳 쓰려져 자고, 또 챙겨주고 하다보면 그 짧은 2박3일 기간에도 많이도 생겨난다. 신입생끼리 되는 경우도 있지만, 아무래도 남자선배와 여자 신입생의 확률이 높다. 때문에 휴가나온 군인선배, 이제 갓 제대한 예비역들의 참여율이 극히 높다. ^^

 

3. 장기자랑

 

신입생에게는 압박이다. 선배들에게 그리고 처음 보는 동기들에게 자기를 보여주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끼가 타고난 애들이야 선배에게 이쁨받으며, 마음껏 발산하지만 내성적인 사람에게는 아주 곤혹이다. 벌로 돌아오는 벌주 마시기에 지쳐 쓰려지는 신입생들도 간혹 있다. 한 해 지나서 자신들도 후배들에게 그렇게 대할 수 있다는 것은 생각안한 채 선배들이 잔인하게만 보인다. ^^

 

4. 왠 짐이 그리고~

 

요즘은 여행도 많이 다니고 인터넷을 통해 정보공유를 통해 어느 정도 사전정보를 알고 가지만, 과거에는 정말 한 짐 가지고 온 신입생들이 많았다. 심지어는 잠옷까지 가지고 와서 두고두고 동기와 선배들에게 이야기꺼리를 제공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어차피 스스로를 챙길 여유가 그다지 많지않은 오티다. 편하게 가면 되는 것을...

 

5. "00학과 화이팅" 하늘을 울려라.

 

몇학년 몇반때도 하나의 커뮤니티였지만, 이제 00학과로 수년차 나는 선배들과 같이 커뮤니티가 형성된다. 그리고 오티때 몇몇 과정에서 그것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학과별 장기자랑부터 시작해 뜬금없이 벌어지는 타학과과의 스포츠(?)시합, 술 경쟁, 노래 경쟁, 즉석 문선경쟁(문화선전)부터 시작해 타학과에 잘생기고 이쁜 신입생 쟁탈전 및 사수전까지....모든 것이 학과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신입생에게는 새롭게도 느껴지지만, 한편으로는 '단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까지 심어줄 수 있다. (지금은 계열로 많이 나뉘었지만, 역시 그것도 하나로 움직이니..^^;;)



6. 늙은 선배들의 일장 연설...

 

06학번이 입학하면 재학생중에서는 가장 늙은 학번이 잘해야 98학번정도..(솔직히 이것도 심하다..00학번도 양심없다고 하던데..^^). 그런데 여기에 96학번이상, 10년차되는 졸업선배들이 등장한다. (물론 술 한 박스씩 사가지고) 그리고 일장연설..우리땐 어쩌고저쩌구...신입생들은 살짝이 긴장..."00학과 화이팅"으로 끝나면 그때부터는 10년차이가 10개월차로 확 줄어든다. 그들이 나중에 나에게 힘이 되어줄 선배인지 아닌지를 떠나, 졸업후에도 후배를 찾는 열정만은 인정해줬다.



요즘은 오티가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일부에서는 모교출신 연예인이 와서 흥을 돋운다고 한다. 그러나 변함없는 것은 오티때 이미지가 참 오래간다는 거다. 그리고 오티때의 인연이 대학내내 질기게도 이어져 가고, 그때 선배들 한마디 한마디가 의외로 후배들에게 깊이 박힌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추진하고 선배들이 만들어주지만, 결국은 신입생들이 주인공인 점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가지. 올해는 오티때 술때문에 사고 없었으면 한다. ^^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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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들이 1인 시위에 한창이다. 워낙 유명한 사람들이다보니 1위시위가 스크린쿼터 축소에 반발하는 모습이라기 보다 스스로를 홍보하는 듯한 이미지로까지 비춰진다. 물론 그들은 진실로 '문화주권'을 지키지 위해 스크린쿼터 축소를 반대하는 것일것이다. 그런데 난 이들의 주장에 대해 왜 쉽게 공감하지 못할까.

 

첫째 이들이 말하는 문화란 무엇일까. 문화적 부분인 영화를 경제적 논리로 따지지 말라고 말하지만, 이들이 말하는 문화와 따지지 말라는 경제적 논리는 무엇인까. 최근 한국영화는 양적으로 발전했지만, 질적으로 발전했다고는 보기 힘들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어쩌면 왕의 남자가 1천만 관객을 넘은 것이 반가운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오렌지가 영어로 뭐지?" "델몬트"라는 식의 억지웃음과 비속어 퍼레이드가 과연 우리의 문화인가?

 

어느 때부터인가 영화가 수십 수백만을 넘어 1천만 관객이 찾는 동안 영화인들은 질적으로 향상하기 위한 노력을 얼마나 했는지 궁금하다. 단순히 스타 몸값 올려주기 위해 제작편수만 늘어난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둘째 경제적 논리로 따지지 말라고 이들은 말해지만, 영화와 그들의 움직임이 가장 경제적 논리에 따라 움직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영화 한편 찍을때 스타들이 곧잘 "시나리오 보고 골라요"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이미지에 안 맞는 배우가 역을 맡아 등장하는 것을 종종 본다. 수억씩 주고 출현해달라고 하는데 거부할 사람 없다. 곧 돈의 논리가 그들의 출연 여부를 결정한다. 그것으로 뜨면 당연히 기업CF 출현이다. 그런데 그 기업들은 어디서 돈을 버는가. 국내뿐만 아니라 수출까지 고려해야하고, 이번 FTA는 그런 기업들에게 이익을 준다. 영화인들이 진정 문화주권을 위해서라면 그들의 이익을 과감히 포기하겠다는 자세를 가져야한다. 이런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왜일까.

 

셋째. 그들은 외국영화가 들어오면 평등치 못한 경쟁이 된다고 말한다. 솔직히 이 이야기 들으면서 왠지 그들이 뻔뻔해보이기까지 했다. 그들의 스타적 위치를 이용한 가식이라고까지 보였다. 이 땅에서 영화는 어차피 불공정 경쟁이였다. 지금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들은 엄청난 제작비와 수억씩 받는 배우들이 출연한다. 이 영화이외에 저예산 (일명 독립영화) 등은 극장에 제대로 걸리지도 못한다. 영화계가 죽는다고 말하는 이들의 그 영화계는 도대체 어떤 부류들일까. 저예산영화를 위한 스크린쿼터를 주장할 생각은 없는가? 그들의 광화문 시위가 밥그릇 챙기기식으로 비춰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강한 자로서 약한 자를 누르고 있다가 더 강한 자가 들어와 밥그릇 뺏으려니 "문화"와 "국익"을 들고 반발하는 것으로밖에 비춰지지 않는 것이다.

 

스크린쿼터 축소에 대해 한편에서는 "왜 미국이 하라는대로 하는가?"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사대주의라는 말도 한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FTA협상의 내용을 보고 평가를 해야한다. 우리에게 이익이 없으면 과감히 거부해야 한다. 찾을 수 있는 이익을 다 찾아야 한다. 그게 안되면 과감히 거부해야 한다. 그런 것을 거부못하는 정부에 대해서는 비난의 화살까지 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부분까지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우리 밥그릇만 챙기자"식의 영화인들의 목소리는 이해하기 어렵다. 내가 뉴스를 꼬박꼬박 다 보지 못해서 그런지 위의 부분들을 언급한 영화인들은 못 본 것 같다.

 

영화인들은 '문화'와 '국익'이란 단어를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시위에 사용할 때는 왜 그러한지 국민들에게 더 설명해야 할 듯 싶다. 아직은 외제차 타고 명품만 찾으며 영화가 망하든 말든 수억의 출연비만 챙기면된다는 식의 태도가 국민들에게 더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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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콘서트, 웃찾사, 웃으면 복이와요, 폭소클럽....... 관객 모셔다 놓고 하는 개그가 몇 년째 유행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나도 이제 식상해지기 시작했다. 특정한 한 코너 정도는 그냥 웃으면 넘어가겠지만, 다른 코너들을 보면 시간이 아까워 채널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요즘 개그를 보며 난 과거 코미디를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참고로 개그는 즉흥성이 강한, 코미디는 하나의 스토리를 갖고 있는 연극이다, 이런 측면에서 과거의 코미디와 현재의 개그를 나누는 것은 쉬워보인다.)

 

유머1번지, 웃으면 복이와요(원조), 쇼 비디오쟈키 등의 웃음은 포인트가 없는 자연스러움이었다. 아예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들은 연관성이 없는 흐름은 집어넣지 않았다. 당시의 코미디언들은 웃기길 원했고, 그러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러나 지금은 웃음을 강요한다.

 

관객이 안 웃으면, 그리고 분위기가 이상하면 웃으라 강요한다. 압박이 가해지는 것이다. 신인들 내보내 놓고 아예 대놓고 말한다. 안 웃기더라도 여러분의 웃음이 이들을 키운다고. 처음에는 나도 고개를 끄덕였지만, 지금은 옆으로 돌아가며 의아해진다. 안 웃기면 웃지 않아도 된다. 그게 관객의 권리이다.

 

비록 돈 내고 보는 것이 아닌 추첨으로 보러 가는 것이지만, 그들 개그맨의 상품성을 높여주는 것은 이들 관객이다. 그것을 알기에 지금도 대학로에서 수많은 무명 개그맨들이 노력한다. 하지만 노력과 결과는 반드시 일치하는 것도 아니고, 그 일치의 과정에 관객들이 억지로 끼여들 필요는 없다.

 

현장에서 직접 개그프로그램을 보고 나오면 사람들의 머리속에 남는 것은 파편화된 기억뿐이다. 순간적인 유행어나 행위만이 남는다. 지속적인 웃음으로 이어지기 힘들고, 단지 못된 습관을 하나 더 추가할 뿐이다.

 

웃는 것은 좋은 것이다. 웃으면 건강에도 좋고, 성격도 유들유들해지며, 다른 사람에게까지 행복을 준다. 하지만 억지 웃음은, 특히 강요당한 웃음은 정신건강에 안좋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강요된 웃음으로 시간을 보낸 공개프로그램 장소에서 나올 때면 이상하게 피곤하다.

 

FD의 사인에 '~' '~'하고 소리지리는 아르바이트 방청객들처럼 일하고 나온 기분이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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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좋아한다. 때문에 어느 정도는 국내 곳곳에 내 발자욱을 남겼다고 생각한다.  떠나기 전에는 이것저것 챙기고 나름대로 들어갈 경비를 고민하다가도, 기차 계단에 한걸음 내딛을 때는 이미 그러한 상황들은 머리속에서 지워버린다. 그냥 즐기는거다. 느끼는 것이고, 빠져보는 것이다.

 

누군가 그랬다. 어차피 인생 자체가 여행이라고. 매일같이 여행하고 있는데, 그깟 짧은 여행 갔다오면서 무슨 준비가 복잡하고 계획이 있으랴. 배고프면 먹고, 졸리면 자고, 쉬고 싶으면 쉬고, 가고 싶으면 가고, 걷고 싶으면 걷고 그런게 여행 아닐까.

 

 

제주 무지개 렌트카 이용하고 후회.

9월 초 제주 가족여행을 갔다. 어느 분의 추천으로 알게된 무지개 렌트카. 그냥 있는 그대로 쓴다. K5를 빌리게 됐는데, 무선으로 여는게 아니라 일일이 키를 꽂고 돌려야 한다. 2004년도에 산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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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누군가 나에게 가장 기억에 남고 추천하고 싶은 여행지를 말하라고 하면...난 주저없이 한 곳을 말한다....

 

완도..

 

지금이야 장보고의 촬영장소로 언론에 자주 오르락내리락거리지만, 내가 완도를 처음 알게된 것은 대학교 2학년 여름, 한 친구가 군대를 가기전에 몇몇 친구끼리 제주도여행을 간 적이 있다. 그때 경로가 광주를 거쳐 완도로 가서 배를 타고 제주도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버스시간과 배시간의 차이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완도에서 하룻밤 지내야했다.

 

 

어쩔 수 없이 하루 머물게 된 완도.....그것은 나에게 잊지못할 추억거리를 제공했고, 동시에 힘들때 머리속에나마 나에게 쉴 곳을 마련해주었다. 완도 구계등에서 하룻밤 자고 완도선착장까지 걸어오면서 친구들과 어울렸던 때.. 대학생활에 그같이 즐거웠던 적도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사실 완도가 나에게 더욱더 그리움과 슬픔, 그리고 편안함과 동경의 대상으로 자리잡게 된 결정적인 것은 서점에서 우연히 집어들은 소설때문이었다.

 

윤대녕의 천지간.....

 

난 완도를 여행지로 추천할 때 꼭 빼먹지 않고 이 말은 한다. "윤대녕의 소설 천지간을 꼭 읽고 가시길 바랍니다. 당신의 완도여행이 바뀌고, 인생이 바뀔지 모릅니다"라고 말이다. 완도를 배경으로 한 죽음에 대한 이야기.그런데 그 여정이 우리와 비슷했다. 만일 완도에 들어가기 전에 이 소설을 읽었다면 더 많은 것은 가슴속에 담아 돌아올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까지 남았다.

 

어느 날 삶에 회의가 느꺼지거나 내 자신에 대한 존재감이 상실되었다고 생각될 때 난 권하고 싶다.

 

늦은 저녁 커피 한잔 하면서 윤대녕의 천지간을 읽고.........................

 

그 기분으로 그 주에 완도로 떠나보라고.....버스터미널에서 구계등까지 걸어보고 자갈 해변을 걸으면서, 여관 주인과 같이 술도 한잔 해보고 오라고......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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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의 남자'. 마치 안 보면 이상한 사람되기 딱 좋은 분위기다. 더불어 연극 '이'까지 보면 매니아 취급받으며 뭔가 아는 사람처럼 대접받는다. 굉장히 보기 좋은 상황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런 영화는 계속 만들어져야 하고, 이런 분위기는 계속 만들어져야 한다. 왜?

 

마파도가 만들어지고 홍보적 성격으로 TV프로그램 이곳저곳에서 한창 띄워줄때 김수미씨가 이런 말을 했다.

 

"마파도는 1천만 관객이 봐야한다. 스타 한명 없이 이런 쭈글탱이 할망구들이 나오는 영화가 성공해야 앞으로 다양한 영화를 관객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 (기억을 더듬다보니 조금 틀릴 수도 있으나 의미 등은 정확히 기재했음.^^)

 

난 이 이야기를 봤을 때 박수를 쳤다. 맞는 말이다. 스토리 탄탄하고, 배우들 연기 탄탄하고 대중과 공감되는 영화가 많이 만들어져야 하고, 그 안에 스타는 없어야 한다. 배우만이 존재해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영화가 성공해 대중들이 인정하는 스타가 만들어져야 한다. 스타 한 두명에 기대서 돈 쏟아부으며 만들어지는 영화는 그만두어야 한다. 영화속에서는 오로지 배우로써, 영화속 인물로 대중에게 다가가야 한다. 그런데 스크린속에서 그들은 스타로서  군림한채 다가온다.

 

'왕의 남자'를 개봉 첫날 보고 마음속 깊이 박수를 쳤다. (소심해서 극장안에서 혼자 박수 칠 용기가 없다 --) 내가 잘못 느꼈는지 모르지만, 그 안에는 배우들이 있었고 (정말 그들은 광대였다) 별(스타)에게서 나는 빛이 주조연할꺼 없이 골고루 뿌려졌기 때문이다. 비록 지금은 다른 사람보다도 이준기라는 신인배우가 급상승하지만, 그것이야 젊은 층의 네티즌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것이고, 정진영, 감우성, 유해진, 장항선 그들 모두에게 빛이 났다. (그렇다고 성공 예감을 느낀 것은 아니였다)

 

'왕의 남자'와 같은 영화는 계속 만들어져야 한다. 스타에 의해 움직여지는 영화가 아닌 스타를 만들어내는 영화말이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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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홈페이지에서...

 

자세한 위치를 알려줄 수 없다고 나온다.



인터넷 검색으로.....

 

친절하게 검색된다. 

또다른 검색으로 찾은 내용..



"국정원은 내곡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3호선 양재역 7번 출구로 나와서 4422번 버스를 타시고 헌인릉에서 하차하시면 됩니다. 물론 성남 가는 방향의 버스가 많으므로 다른 버스도 있답니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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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만에 내 블로그에 14만여명이 들어왔고 조회수는 30여만이 넘었다. 덕분에 최근에 문제가 되는 악플을 내 블로그에서 경험했다.

 

사실 직업상 악플 (혹은 악의적인 메일)에 대해 그다지 신경쓰는 편은 아니다. 도리어 내 글에 대해 조목조목 따지는 글은 흥분까지 해가면서 읽는다. 반론 혹은 동의의 여지가 있는 글이기에, 나를 키워주는 글이기에 그렇다.

 

그런데 어제 내 문제(?)가 된 글밑에 달린 300여개의 댓글을 보고는 흥분대신 편안함을 느꼈다. 솔직히 악플은 몇개 달리지 않았다. "네가 만들어봐라" 수준은 최근 인신모독의 악플에 비해서는 귀여운 수준이다. 뭐 어쩌다가라도 내 글을 본다면 그러한 반응이 보이는 사람이 있을 법하기에 넘어갈 수 있다. 내가 편안함을 느끼는 것은 악플의 난이도(?)가 낮아서가 아니라, 내 악플을 밀어내는 선(善)플이 더 많았다는 것이다.

 

내 글에서 뭐가 문제인지 (오타까지 지적을 --;;) 또 왜 공감하는지, 더불어 악플을 단 사람들에 대한 비판까지 하는 글들을 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글에 적당한 추가글 하나 다는 정도였다.

 

조금 과장일수도 있고 미리 앞서나가는 것일 수도 있지만 난 내 글에서 보여진 댓글의 모습에서 이후 모든 인터넷상의 글에서 그러한 네티즌들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을까 싶었다.

 

인신모독이나 근거없는 주장에 대해 네티즌 스스로 정화작용을 하고 비판을 하며 몰아내기가 이뤄질 것이다. 포털 게시판이 로그인해서 댓글을 남기는 상황에서 악플을 단 사람의 아이디는 곧 '정화대상 아이디(?)'로 선정되어 네티즌들의 호된 질책을 받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말과 글은 총이나 칼보다 무섭다고 들었다. 거꾸로 그 어떤 공간보다 편안함을 제공해 줄 수있다고도 배웠다. 쓰기 나름이고 말하기 나름이다.

 

선(善)플이 악(惡)플을 100% 밀어내기에 성공하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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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세의 문제는 청소년 보호법에서 시작한다. 청소년 기본법에 의하면 만 23세까지 청소년에 포함되기 때문에 19.5세의 문제는 해당되지 않는다. 보호대상으로 그들을 편입시켜놓은, 즉 규제를 위한 법이 혜택을 위한 법보다 상위에 있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주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좀더 근본적으로 들어가보면 19.5세의 문제는 나이가 아닌 대한민국 학제의 문제로 들어가게 된다. 8살 3월에 입학하고 20살 2월에 졸업해 10대를 미성숙 기간으로 규정지어 놓은 학제로 인해 19.5세들은 1년의 시간을 어정쩡한 경계선위에 서 있는 것이다.

 

어제까지 19살이였던 학생이 오늘 20살이 된다고 술과 담배를 피워도 된다는 것은 어디에 근거한 것인가? 고등학생에게는 보호와 규제가, 대학생에게는 자유로운 생활을 보장해주어도 된다는 것의 근거는 무엇인가? 건강에 안 좋으면 안 좋은 것이고, 무분별한 유흥문화로의 몰입은 30~40대가 되어서도 문제인 것이다. 비단 10대들에게 강요할 문제는 아니다.

 

어느 게시판에서 그런 글을 본 것 같다. 어른들이 가장 착각하는 것중에 하나가 10대들은 아무것도 모르며 가치판단이 정립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20세기 이전 철학자들이 만들어놓은 이야기를 도덕책에 써놓고 강요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미 알거 다 아는 애들에게 "산타크로스는 착한 일 해야 온다"나 "아기는 손 꼭 붙잡고 자면 태어난다"라는 이야기를 해주는 식밖에 안된다는 것이다.

 

술집에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고 해서 보호되는 것이 아니다. 유해매체에 대한 접근성을 떨어뜨려놓는다고해서 능사는 아니다.

 

아무리 광활한 사막에 떨어뜨려놓더라도 살아나가는 방법과 길을 알고있다면, 힘이 들더라도 살아갈 확률은 높아진다. 청소년들을 법으로서, 어른들의 기준으로 그들을 규제하려고 강제로 술집을 못가게 하고 담배를 못피게 하며 이성교제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보내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들에게 그게 "왜" 안되고 자제해야 하는지 '삶의 지도'를 어릴 적부터 그려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국어 영어 수학 공부에는 국가적 투자를 하면서 왜 이런 '지도 그려주기'에는 투자를 안하며 이후 말썽이 생기면 '교육'운운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그들은 어쩌면 국영수 공부해서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낼 수 있는 현실에 대해 답답하기 때문에 술과 담배를 찾고, 일탈적 행동을 행하는 것일 수도 있다.

 

19.5세들의 문제는 19.5세뿐만 아니라, 이 땅의 청소년의 문제이기도 하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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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 아직도 하냐? 몇년째 같은 프로잖아"

 

TV를 보던 중 동네 아저씨가 던진 말이다. MBC에서 하는 '무한도전'을 보고 하는 말이다. 솔직히 무슨 도전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누가 말장난을 더 잘하고 다른 사람 험담을 잘하며 이합집산(?)을 잘하는지 평가하는 도전이라는 생각도 드니 정말 '무한 도전'인듯 싶기는 하다.

 

그 아저씨는 몇년전 유재석씨가 타방송국에서 한 프로그램과 혼동한 것 같다. 그러나 그 아저씨뿐만 아니라, 대부분 사람들이 현재 토요일과 일요일에 하는 연예프로그램들에 낯설지 않은 느낌을 가질 수 있겠다. 제목만 살짝 바꾸고 몇 가지 코너만 바꾸면, 큰 틀은 똑같은 하나의 오락프로그램이 태어나는(?) 것이다.

 

강호동, 유재석 등이 진행하는 연예프로그램을 보면 이미 수년전부터 그대로 답습해온 룰대로 한다. 그냥 연예인 섭외하고 좋은 장소 성외해서 놀꺼리 던져놓으면 자기들끼리 농담따먹기하고 웃으며 논다.

 

시청자들은 연예인들이 술자리 농담하는 것을 시청료와 전기료 내가며 보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그러면서 대리만족 느끼고 재미있지않냐고 말하지만, 정말 '재미'를 못 느껴봤기 때문에 그러한 '저급' 농담 따먹기에 몰입한다고 본다.

 

'개그콘서트'나 '웃음을 찾는 사람들'에서의 개그맨들은 그런 면에서 한층 낫다. 관객들에게 그리고 시청자들에게 평가받고, 코너 자체가 퇴출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아이디어를 짜내기 때문이다. 물론 저급발언 등이나 억지웃음을 유도하는 개그도 있지만, 적어도 그들은 그들을 보기위해 온 사람들이나 시청자들에게 '서비스'하는 정신은 잊지 않는다.

 

그런데 '연예편지'나 '무한도전'과 같은 오락프로그램은 시청자들을 아예 무시한다. "그냥 우리 마음대로 할테니 웃든 말든 알아서 해라"라는 식이다. 어차피 시청률때문에 고민하는 것은 방송국이고 그들의 몫은 아니다. 그들은 또 다른 프로그램으로 옮겨 똑같이 농담따먹기를 하면 그만인 것이다.

 

가족을 모이고 하고, 이야기꺼리를 만들고 한편으로 감정의 배설효과를 노리고자 보는 오락프로그램들이 연예인들의 돈벌이를 위한 통로로 이용되고, 이름을 알리기 위한 광고방송으로 이용되는 것에 대해 씁쓸함을 감추기 어렵다.

 

"저런 프로 나도 만들겠다. 그냥 재들 불러다가 놀라고 하면 되잖아"

 

오락프로그램 PD은 들어갈 때만 힘들지, 프로그램 만들때 고민없이 아무나 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 현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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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에 대한 글쓴이 의견..^^

 

많이도 들어오셨네요. 개인적으로 댓글들을 보면서 몇 가지 생각이 나서 글 추가로 올립니다.

 

우선...악플..제가 뭐라 안해도 다른 분들이 악플에 대해 따로 비판해주시니 감사.^^. 글 내용이 이상하거나 "이건 아니다" 싶으면 비판을 해주시는 것이 좋을 듯 싶네요..비난은 어째 눈이 가지도 않고, 저 스스로도 무시가 되니...."그럼 네가 만들어라"라는 것은..음...축구해설자들에게 "그럼 네가 선수로 뛰어라"라고 말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듯 싶네요..또 그런 분들의 논리대로라면 월드컵때 축구선수들의 플레이에 대해 이야기한 대한민국 수백 수천만 국민들 모두 입을 다물었어야 했고요..^^. 연예프로그램 비판할 수 있는 것이 연예프로그램 PD로만 한정될 수는 없잖습니까...(제목때문에 의견과 다르다고 보시는 분들도 있는데, 내용상으로는 그만큼 볼만한 내용이 아니라고 말하고싶었던 건데, 그것을 "그래 만들어봐라"라고 댓글을 다시니..다소 난감해서 글쓴이 의견에 관련 의견 남깁니다. ^^;;..제가 만든 프로그램을 보고싶은 분들은 방송국에 청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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