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 10일 저녁 국보인 숭례문이 화재로 소실됐다. 범인은 60대 후반 남성 채종기. 이 당시 숭례문 문루 2층의 90%, 1층의 10%가 소실됐다. 지금은 지칭되지 않지만, 당시 국보 1호였던 숭례문의 화재는 국민에게 충격을 안겼다. 지금은 더욱 견고해졌지만, 당시에도 문화재는 나름 국민에게 ‘역사적 자부심’을 안겨주며, 이 땅의 뿌리를 확인시켜 주는 존재였다. 우리 부모님, 조부모님, 증조부모님, 그 위의 조상님과 우리를 연결시켜주는 존재였다.
1. 사건 발생과 진화 상황.
2008년 2월 10일 오후 8시 50분 즈음 원인 모를 불이 흰 연기와 함께 숭례문 2층에서 발생해 소방차 32대, 소방관 128명이 현장에 출동했다. 화재 진압에 총력을 다했지만, 화재 발생 4시간 만인 11일 오전 0시 58분쯤 지붕 뒷면을 시작으로 2층이 붕괴됐다. 그리고 1시간 여가 지나 기본 뼈대와 석반을 남긴 채 모두 붕괴됐다. 시간별로 아래와 같다.
20:45 방화범이 사다리를 이용해 숭례문으로 진입
20:47 KT 텔레캅이 남대문에 설치한 센서에 뭔가 반응. 경찰서 및 소방서에 연락하지 않음.
20:50 화재 신고
20:53 중부소방서 회현 소방파출소 도착. 화재 진압의 FM대로 해체하며 진화하기로 계획
20:57 텔레캅 직원 도착. 현장에서는 진화 작업 중
20:59 문화재청에 화재 통보. 국보가 훼손될 수 있으니 신중하게 진화하라고 답변함
21:30 화재 진압된 것으로 결정. 잔화 처리. 발화점 미확인
21:35 문화재청, '화재진압이 우선' 일부 훼손 승인
21:55 화재 비상 2호
22:32 화재 비상 3호 - 서울 소방재난 본부장 지휘
23:10 숭례문 현판 회수
23:20 화학식 소화제[8] 사용
23:50 지붕 해체 개시
00:25 2층 누각 전체 발화
00:58 2층 붕괴 시작
01:55 2층 90% 1층 10% 소실
2. 방화점 채종기는 누구이고 왜 불을 질렀나.
방화범인 채종기는 당시 철학관을 운영하던 68세 남성으로 택지개발에 따른 자신의 토지에 대한 보상액에 불만을 가진 사람이었다. 당시 보상액에 대해 건설사와 합의했지만, 이를 뒤집고 항의했지만 건물이 결국 강제 철거됐고 이에 앙심을 품었다. 원래 종묘에 불을 지르려 했는데 경비가 삼엄하여 표적을 숭례문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채종기의 문화재 방화는 처음이 아니다. 2006년 4월 26일에는 같은 이유로 창경궁에 불을 질러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추징금 1300원이 선고됐다. 문화재를 계속해서 방화한 까닭은에 대해 채종기는 경비가 허술해 접근하기 쉽고 인명 피해가 나지 않으며 상징성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숭례문 방화 후 채종기는 문화재보호법 위반으로 징역 12년형이 구형되었으며 1심 판결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형이 과중함을 들어 항소했으나, 2009년 8월 31일, 서울고등법원은 항소를 기각하며 징역 10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하여 복역하게 되었다. 2018년 2월에 만기출소했다.
채종기 개인에 관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사회적 범죄, 판사에 대한 불만 등을 뉴스에서 다룰 때 채종기는 빠지지 않고 나오고 있다.
3. 복구는 어떻게 진행됐나.
숭례문 복구는 2008년 5월 20일 숭례문 복구의 기본방향, 추진계획 등을 담은 ‘숭례문 복구 기본원칙’을 발표하면서 본격화했다. 이후 문화재청은 2008년 8월 15일 복구현장을 공개했고, 2009년에는 복귀에 참여할 중요무형문화재 각 분야의 장인을 선정했다. 2013년 4월 29일 복원 사업을 마쳤으며, 2013년 5월 4일에 완공식과 함께 복원된 숭례문을 일반 시민들에게 공개했다.
아예 사라지다시피 한 2층과 달리 1층 누각은 전부 불탔을지언정 상당 부분이 구조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점과 숭례문 안에 있던 가치 있는 문화재의 상당수는 1960년대에 해체, 보수할 때 꺼내서 누각 안에 보관하고 있다가 몇 년 전에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옮겨서 무사하다는 점에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반응도 나왔다.
복귀가 생각보다 오래 걸린 이유는 목재로 사용 가능한 정도의 수령이 된 여분의 한국산 소나무가 존재하지 않아서였다. 게다가 해당 나무를 벌목한 후에도 수년동안 건조를 시켜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미 앞서 목재는 광화문 보수에 사용되기 위해 배당됐고, 이 때문에 이 목재들을 돌려서 썼다고 한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태조 이성계의 5대조가 안장된 준경묘(濬慶墓) 경역의 금강송 20그루를 숭례문과 광화문 복원에 사용하는데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에서 동의해 이를 벌채한 것을 비롯하여 곳곳에서 소나무를 기증하겠다는 시민들 때문에 복원을 진행할 수 있었다고 한다.
- 아해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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