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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코드에 국내영화가 밀린다고 말한다. 물론 여기에 빠지지않고 등장하는 것이 스크린쿼터제. 하지만 아무리 봐도 그것과는 무관하다. 관객들의 호기심, 그리고 이미 엄청난 판매량을 자랑한 소설이 있기에, 예상된 일이였을 뿐이다.그 와중에서도 200만명을 돌파한 사생결단은 예고편과 대략의 내용 그리고 출연진만 살펴봐도 일단 구미가 당기는 영화다.


사생결단은 어둡다. 어두운 세상의 어두운 사람들을 그리다보니 밝은 대낮 씬이 나와도 어둡게 보인다. 아니 도리어 밝은 분위기는 영화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선글라스는 어둠속 사내들이 밝은 빛을 피하기 위한 몸부림으로 보인다.


마약을 파는 자와 그 파는 자를 잡는 자. 그 사이에 거래가 이뤄진다. 그 거래가 참 통쾌하다. 겉으로는 그 둘의 거래는 영화속에서 단 두 사람의 거래로 보였지만, 사회에서 무수히 일어나는 조직간, 사람간의 부도덕한 거래를 그대로 옮겨놓고 관객에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통쾌하다. 그 장면을 그렇게 직접적으로 와닿게 보여주는 것이 통쾌했다. 그리고 현실을 생각하면 씁쓸했다.


영화를 보고나서 나오는 길에 어느 한 여자관객이 친구에게 말했다 "마약은 끔찍할 것 같아. 추자현 몸에 벌레 기어가는 것 봐. 그런 느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 끔찍해"


틀렸다. 마약은 달콤하다. 달콤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찾는 것이다. 그보다 더 고달픈, 더 끔찍한 느낌으로 살아가는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찾는 마약은 그 어느 것보다 달콤하다. 마약에 빠진 추자현은 슬픔 몸으로나 살지만, 마약을 팔며 현실에 존재한 사람들은 죽게된다.


누군가 말했다. '사생결단'이라는 제목을 참 잘 지었다고. 아마 그 영화를 보고 그 제목이 정말 잘 지어졌다고 생각한다면, 그도 지금 살아가는 것이 '사생결단'의 의지를 은연중에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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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피습 사건에 대해서 노사모와 박사모의 싸움이 점입가경이다.


노사모내 일부 여당 지지자들은 인터넷상에서 "속 시원하다" "자작극이다"라는 어이없는 발언들을 내놓고 있다. 의혹은 있을지언정 증거가 없으면 말하지 말아야 한다. 한 나라의 야당 대표이기전에, 한 사람이 타인으로부터 테러를 당했다면 우선 위로의 말을 전해야 한다. 지나가던 개가 차에 치어도, 안타까워하는 것이 사람의 심정이다. 그런데 악담부터 시작한다면 그 누가 좋게 볼까.


2002년 노사모는 아름다웠다. 선거를 축제로 승화시켰고, 이후에도 몇몇 말들이 많았지만 나름대로 새로운 정치문화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노무현대통령이 결정되고, 민주당사 앞에서 노란색 지지자들이 기차놀이를 하며 환호하던 모습은 그 이전에 보기 힘들었고, 그 이후 정치지지자들의 교본으로 남게 되었다. 그런 노사모가 지금은 길을 잃은 듯 싶다.


박사모.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치인이 피습을 당했으니 분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 이상의 행동은 도리어 박근혜대표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뿐이다. 일부 언론에서 보니 노혜경 노사모대표의 딸주소가 공개되는 등 사이버 테러 조짐이 보인다고 한다. 또 이번 사태 배후에는 무조건 '친북좌파'가 있다고 주장하거나, 특정지역을 거론하는 등의 지역감정 조장의 기미까지 보이고 있다.  극히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번 사태는 분명 피해자인 박대표에게는 위로의 말을 전할 상황이고, 가해자인 지씨 등은 조사받고 처벌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문제는 추측과 어설픈 단정 그리고 온갖 루머로 오로지 상대를 죽이고자 하는 심리에 이를 이용하려는 일부 지지자들의 모습이다.


노사모나 박사모나 이 나라가 잘 되기를 바란 마음에, 당신들이 옳다고 생각되는 정치인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꼭 상대를 죽여야만 가능하다면, 차라리 지지의 뜻을 접고 조용히 있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든다.


-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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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동기가 순수해야하다는 말이 있다. 그냥 그 안에서 지적 자양분을 맛봐야 한다는 말이란다. 솔직히 책을  읽는데 '순수'와 '불순'의 정의를 내리는 것은 웃기는 일이지만, 난 <태백산맥>을 시대와 다르게 정말 '불순'한 의도로 처음 읽기 시작했다.

 

과거 모신문사에서 전국 독후감대회를 개최했는데, 당시 제시된 책중에서 왠지 <태백산맥>을 읽고 써내면 어느정도의 가산이 있을 줄 알았다. 10권에 이르는 대하소설을 읽고 독후감을 제출하는데 설마 그냥 넘기겠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 결과적으로 떨어졌다. 그 후 대학 4년때 다시 심심풀이로 가볍게 읽은 <맞아죽을 각오로 하고 쓴 한국, 한국인 비판>으로 상을 받게 된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겼다.

 

 

<누구나 홀로 선 나무>(조정래)┃글의 무게를 배우다.

난 개인적으로 글에 대한 욕심이 많은 편이다. 다른 사람의 잘 쓴 글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질투심도 갖는다. 내 스스로 아직 한참 모자름을 알면서도 주제넘게 이곳저곳 글을 쓰며 다닌다. 대학

www.neocross.net

 

사진은 조정래 등단 50주년 기념판으로 2020년에 나온 책이다.

 

아무튼 그렇게 읽기 시작한 <태백산맥>은 대하소설의 재미와 우리 말의 아기자기함의 깊은 맛을 알게 해주었다. 더구나가 슬픈 역사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새기는 계기까지 마련하게 되었다. 막연히 알고있던 조정래라는 작가에 대해서도 새삼 다시 알게되었다. 물론 여기에는 시대적인 배경도 있다.

 

내가 <태백산맥>을 읽을 즈음인 당시에는 연세대 한총련사태가 있었고, 갑자기 대학가의 운동권에 대한 통제가 극심해질때였다. 또한 1994년에 조정래 선생이 고소당해 한창 수사중에 있어서 <태백산맥>이 일종의 '잠재적 불온서적'이었다. 불순한 동기와 지적피폐함 그리고 사회적인 주목성을 지닌 책에 대한 호기심이 동시발동해서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게 되었다. - 물론 시작은 앞서 말한대로 불순했다.

 

 

<삼국지>가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와 처세를 알려주는 책이라면 태백산맥은 한국인으로 살아감에 있어 뿌리찾는 방법과 역사에 대한 반성하는 태도를 어떻게 갖는지를 알려주는 듯 하다. 내가 빌려 읽어서 현재 소장하고 있지 않아 아마도 이 '책 말하기'에는 언제 올릴지 모르지만, 만일 <태백산맥>을 읽는 사람이 있다면, 아리랑과 한강도 같이 읽었으면 한다.

 

<지금은 양장형으로 다시 나온 것으로 안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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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기자들은 정보를 장악해서 사실에 접근하는 고통스런 훈련을 기피한 채 너도나도 멋쟁이 문장가로 변신해가고 있다.....당대의 사실을 풍문으로 방치하는 것은 기자의 죄악이고 당대의 풍문을 과거의 비화로 팔아먹는 것은 기자의 더욱 큰 죄악이다. 우리는 비화 없고 풍문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그것이 내가 안느 정희상 기자의 꿈이다" - 김훈-


진지함을 잃어버린 세상이라고들 말한다. 난 언제나 그 몫을 언론의 직무유기에서 찾는다. 제대로 돌아가는 세상을 위해 바뀌어야 되는 부분을 처절하게 파헤쳐야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세상에 흔치 않다.


검찰과 경찰은 사실을 가지고 논하는 사람들이지, 진실을 정립하고 세상에 알리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법에 의해 움직이는 사람들이지, 억울함과 슬픔을 논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어쩌면 글쟁이들이 - 기자, 소설가 등 - 바로 이 몫을 해야 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 몫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그 일에서 고개를 돌리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은 그 고개를 돌린 문제에 접근하는 한 기자의 수첩속 이야기다.


이야기는 6개다. 김훈중위 의문사 사건, 56년만에 울리는 문경주민 양민 학살 사건, 김형욱 전 중정부장을 죽였다고 밝힌 특수 공작원 천보산의 암살 고백, 히로시마 피폭 2세 김형률씨의 삶과 죽음, 양심선언 현준희씨의 10년 투쟁 기록, 그리고 친일파 후손의 조상땅  찾기 과정..하나의 현대사를 그대로 써내려가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단순히 내용만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 어쩌면 이 스토리를 통해 저자인 정희상 시사저널기자는 후배기자들에게 그리고 기자가 되려는 이들에게 반성을 요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자는 기록하는 자다. 더불어 그 기록은 진실해야 한다. 서문에서 소설가 김훈 (그도 기자출신이다)이 썼듯이 지금의 기자들은 문장가다.  그러나 사실을 꾸며내는 문장가일 뿐이다. 사실이 곧 진실은 아니다. 진실은 세상을 울리고 변화를 시킨다. 그러나 사실은 그냥 사실일 뿐이다. 교통사고가 났다면 기자는 그 안에서 이야기를 끄집어 내고, 사후를 정립해야 한다. 그 과정은 지리하고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경찰서를 들어가면 사건기록 장부가 있다. 아침에 서울에 있는 경찰서를 돌며 사건을 챙기는 수많은 기자들이 그 장부를 보고, 혹은 담당 형사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사를 쓴다. 일명 사건사고 스트레이트 기사다. 수많은 기자들이 여기서 기사의 마침표를 찍는다. 왜? 를 실종시킨다.


사람들은 말한다. "사건이 터지면 나오는 수많은 분석기사들도 있다. 그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미 터진 사건은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 대부분 밝혀진다. 또한 옳은 것인지 아닌지를 따지지않고 세상의 흐름에 맡겨 그안에서 '꺼리'를 찾으려는 기자의 시각은 한계가 존재한다.


어두운 곳. 그러기에 가슴 아픈 곳. 그러나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곳으로 가야하는 기자들이 밝은 곳, 돈이 모이는 곳으로 가고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세상에 알려야 될 문제는 보지 못하고 스스로의 시각안에서 알리고 싶은 이야기만 찾아 돌아다니는 것이다.


이 책은 그러한 것들 말하고 있다. 저자의 기자수첩을 통해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밝혀야 될 문제를, 그리고 누구나 겪을 수도 있고, 겪었을 지도 모르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정희상 기자의 취재스타일이나 보도 스타일이 교본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이 수준으로도 따라가지 못하는 수많은 기사와 이를 생산해내는 기자들은 꼭 읽어봐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잘났다고 생각되는 대한민국의 어두운 그늘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도 말이다.


책에서 간혹 나오는 이름들로 당혹스러움을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민주화의 대표성을 지닌 이들이라 생각되는 사람들이 거꾸로 그 민주적인 모습을 부정하는 내용이 종종 보이기 때문이다.


진실은 받아들이기 힘들고 괴로운 법이지만, 진실을 모른 채로 살아가는 것은 더욱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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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취업을 준비하는 후배 격려차 도서관에 갔다. 커피 한잔을 먹으면서 이력서를 얼마나 집어넣었냐고 물었더니 몇군데 넣지 못했다고 한다. 대부분 대기업이나 공사다. 홍보분야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후배에게 중소기업에는 생각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홍보분야를 뽑는 소규모기업도 알아봤어요. 그런데 몇번 어이없는 경우를 당한 뒤에는 그냥 대기업처럼 대규모 공채를 보는 곳으로 향하려고요"


내막인즉 이렇다. 후배는 잡코리아나 인크루트등서 구인광고를 보고 몇 군데 선택을 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대기업보다는 소규모기업에서 실력을 키우고도 싶었고, 가능성 있는 조그마한 기업을 자신이 기여해 커가는 모습을 보고도 싶다고 했다. 능력있는 후배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신중한 후배가 자신이 생각하는 회사에 '문의메일'이나 '문의전화'를 해본 것이 잘못이였다.


구인구직사이트에 들어가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수시채용 혹은 중소기업이하의 회사들의 경우 연봉이나 복지가 대부분 '면접시 협의' 혹은 대충대충 기재되어 있는 경우가 적지않다. 이에 후배가 문의 메일과 전화를 한 모양이다.


"귀사에 지원코자한데 정보가 너무 부족해 이렇게 문의메일을 보냅니다. 연봉이나 처우, 그 밖의 일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 합니다" 뭐 이런 류의 메일이였다고 한다.


그런데 대답은 실망스러웠다고 한다. 아예 답변메일이 오지 않거나, 전화일 경우에는 "회사 기밀이기때문에 응답해 드릴 수 없습니다"의 경우가 많았고, 혹은 '일단 지원서를 내고 통과하여 면접을 보시면 알게됩니다'라는 응답도 적지않았다고 한다.


후배가 말했다.


"한번은 합격후에 사장과 부장이랑 사람과 다시 연봉이나 처우때문에 협상을 하는데, 너무 어이없는 조건을 제시하더라고요. 제가 수긍하기 어렵다는 말을 하자, 사장은 요즘 젊은 사람들은 너무 연봉이나 처우에만 연연해한다고 하면서 경험을 쌓고 사회초년생으로 겸손함이 있어야 한다나 뭐라나요. 그냥 나왔어요. 그럼 처음부터 그런 정보를 정확히 알려줬으면 서로 좋았을 것 아닙니까. 지원자는 정보를 정확히 알고 그 범위에서 지원할테고, 그렇다면 회사입장에서도 그에 맞춰 뽑은 사람들이니 마음 편할테니까요.'


나도 동의하는 바이다. 서로 이력서내고 면접보는 물질적 정신적 시간적 손실을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확한 정보를 제시하지 않고 '그때그때 협의해서 결정하자'고 하는 회사는 처음부터 구직자들에게 신뢰를 얻기 힘들고, 설사 사람을 구하더라도 곧 금방 새로운 구인광고 준비를 해야 한다.


전에 어떤 글에서 취업준비생들이 대기업이나 공사, 혹은 공무원을 준비하는 이유가 단지 연봉이나 처우보다는 사회초년생으로 사회에 대한 실망감과 불신을 가지지 않으려는 심리적 안정때문이라고 쓴 것을 봤다. 일면 맞다고 본다. 도전의식이라는 것도 그 도전을 충분히 인정하고 받아줄만한 기업이라야 가능하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사람을 뽑을때부터 알아볼 수 있다.


취업률이 낮아지면서 실업률이 높다고 한다. 그런데 중소기업이하의 회사에서는 (주로 생산파트겠지만) 사람 구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 취업사이트에 들어가보면 인사담당자들과 취업준비생들간에 서로 실망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한마디로 사람도 남아돌고 일자리도 남아도는데 서로 다른 곳만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기에 어이없는 회사들의 구인활동은 취업준비생들에게 또다른 지뢰로 인식되지 않을까 싶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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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녀석들도 하고 싶어 했을까. 아마 위에서 시켜서 했겠지?"


군인들이 등장해 꼭짓점댄스을 추는 광고를 보던 친구가 던진 말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는 말에 나에게 들려준 친구의 말이다. (나름대로 기억해서 뉘앙스 살려 쓴 것임)


"아들 녀석이 다니는 체육관에서 월드컵때 출거라면서 꼭짓점댄스를 단체로 가르쳐주었는데 (친구 아들 7살) 이 녀석을 포함해 몇명이 제대로 따라하지 못했다나봐. 그랬더니 혼내면서 집에 가서 연습을 해가지고 오라고 했다나봐. 집에 오자마자 인터넷에 들어가더니 꼭짓점 댄스 동영상을 틀어놓고 연습하더라고. 몸치인 아빠를 둔 탓으로 아들이 고생하는거지. 그래서 나도 그거 보면서 아들 녀석 가르쳐주는데, 그게 참 단순한 거 같으면서도 따라하기 힘들더라. 결국 1시간여가 지나니까 아들녀석이 답답한지 울면서 내일 체육관 안간다고 하더라. 그거 왜 강요하는거야"


친구의 말을 들으면서 얼마전 후배와 했던 대화도 생각이 났다. 나보고 꼭짓점 댄스를 출 수 있냐는 질문에 "보기는 많이 봤는데, 아직 춰보지는 않았다"라고 대답하니 "아니 그것도 못해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던 것이다.


꼭짓점 댄스를 반드시 춰야되는 것은 아니다. 그 춤에 흥을 느끼거나 꼭 필요한 사람들 (정치인들 ^^)만 추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월드컵이 다가오는데 그런 트렌드도 못 따라가냐"는 반응은 당혹스러웠다. 그러나 위의 내 친구와 같은 경우에는 당혹정도가 아니고 '문제'가 있는 것이였다.


집단에 속해있고, 집단으로 움직이는 구성원으로서의 개인이 거부할 수 없도록 만들어진 상황하에서 꼭짓점 댄스와 같은 즐겨야 할 행위가 선택이 아닌 강요로 인해 개인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분명 문제인 것이다.


친구의 입장에서는 체육관측에 "왜 애들을 괴롭히냐"라고 따지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 순간 그 친구 아들은 단체에서 소외되고 이는 월드컵 기간내내 또래들과 어울리지 못한다는 괴로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반드시' 하나의 집단을 이뤄야 하기에 '개인'이 희생되어 끌려다니기 보다는 '개인'이 즐거움과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하나의 '집단'이 형성되어가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원래 꼭짓점 댄스든 월드컵 응원전이든 이렇게 시작했다고 생각되는데, 지금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 아해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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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완 감독이 배우로 출연했기에 화제가 되었던 짝패(감독 류승완, 제작 외유내강)가 그 모습을 보였다. 8일 용산 CGV서 기자시사회를 개최한 짝패는 서울 액션스쿨과의 공동제작으로 현란한 액션을 보여주기를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오로지 류승완을 위한 영화로 멈춰버렸다.


영화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오랜 우정을 쌓아온 친구 왕재(안길강)를 자신의 이익때문에 죽인 필호(이범수)에게 또다른 친구인 태수(정두홍)와 친구 동환의 동생 석환(류승완)이 복수를 하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짝패는 다소 억지스러운 면이 있지만, 어두운 배경과 현란한 액션, 그리고 아름다웠던 과거의 우정을 회상하는 장면이 주를 이룬다.

여기에 정두홍과 류승완을 중심으로 한 현란한 액션이 눈앞에 펼쳐진다. 비보이들을 비롯해 야구부등이 등장해 100대 1로 싸우는 장면이나 고급요정 운당정에서 펼쳐지는 라스트 액션은 일단 눈은 즐겁게 한다. 그리고 이범수의 잔인한 변신 역시 기존의 그가 맡은 역과 대비해 의외의 장면들을 선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배우로서 변신해 능청스러운 연기를 자연스럽게 한 류승완을 빛나게 하기 위한 상황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미 아라한장풍대작전이나 바람의 파이터 등에 배우로서 면모를 보인 정두홍 감독은 액션이외에 감정표출등의 연기에는 쉽게 동화되기 어려웠고, 왕재의 아내로 나오는 김서형은 까메오 수준으로 나와서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조차 짐작하기 어려웠다.


짝패는 순도100%의 아날로그 액션을 주장하지만, 허황된 아날로그 액션은 CG로 그려진 액션과 별 차이가 없다.


기대가 컸었기에 실망도 컸지만, 그만큼 류승완과 정두홍의 만남은 영화광들의 기대를 높혀놨던 것은 사실이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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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이 몸살을 앓고있다. 이유인즉 치위생학과 관련 학생들이 학과 신설 및 증설에 관한 반대 글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발단은 단국대 평생교육원에서 구강보건지도자과정을 신설해 운영하면서이다. 치위생학과 학생들은 자신들이 3~4년동안 배운 과정을 몇개월만 수료한 후 똑같은 대접을 받을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고, 이에 대한 항의로 복지부 홈페이지에 항의글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내용은 거론하지 않겠다. 내가 전문가도 아니고 대립되는 내용에 대해 오랫동안 관심을 가지고 있던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항의형식에 대해서는 생각해봐야 할 듯 싶다.


위의 같은 글이 하루에 수백건씩 똑같은 혹은 유사한 제목으로 공공기관 자유게시판을 도배하고 있는 것에 대해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인터넷 시위문화와 사이버 테러. 딱 어느 쪽이라 선을 그을 수는 없지만, 일단 많은 네티즌들이 이용하는 공공적 성격의 홈페이지에서 특정 이익집단이 자유게시판을 점거하고 있다는 사실로 봐서는 사이버 테러쪽에 무게를 두고 싶다.


형식의 빗나감은 내용까지도 공감하기 어렵게 만든다. 실제 저 글 중간중간에 현재 치위생학과 학생들의 주자을 단순히 밥그릇싸움으로 치부하는 글들이 보였다. 충분한 공감대를 이뤄내지 못하고, 치위생과 신증설이 곧 국민건강을 해친다고만 주장하는 것이 다른 네티즌들에게는 이상하게 들린 것이다. 그리고 이런 비공감적 상황은 도배된 자유게시판의 모습으로 더더욱 고개를 돌리게 만드는 것이다.


아직도 논란이 되고 논의가 되는 것이 네티즌들의 자유와 타인에게 주는 피해간의 점접문제다. 복지부 사이트 관계자가 저 글을 다 지우고 차단한다면 아마 글을 올린 네티즌들은 '통제'의 개념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나 복지부사이트를 이용하는 다른 네티즌들에게는 현재의 모습은 '방관'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오프라인에서의 시위가 일정 수준을 넘을 때, 공감을 얻지 못하고 도리어 비판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온라인상에서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다고 볼때 치위생과 학생들의 복지부 도배 시위(?)와 같은 방법은 자제되어야 되지 않을까?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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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과거 대학에 입학해 학생운동을 하는 선배들이 꼭 추천하는 책중 하나가 '다시쓰는 한국현대사'다. 짧게 다현사로 불리는 이 책은 어찌보면 슬픈 책이다.


대한민국 현대사를 처참하게 분해시켜 놓기 때문이다. 자랑스러워야 할 대한민국 현대사가 지워버리고 싶고 추잡한 현대사로 바뀌어가기 때문이다. 우리의 우방이라 지칭되면서도 여전히 시대적 화두로 남아있는 미국과 주한미군에 대해서도 강하게 메스를 가한다.


이 책이 나온 것이 1988년도였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16년전이다. 지금도 이 책에 대해 강한 반박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내용이 상세하며 전율을 일으킨다. 그런데 웃긴 것은 이 책이 '거짓'이며 '왜곡'이며 '잘못된 미화'라 지칭하는 현대사의 흐름을 우리 후배들은 그대로 초중고때 아직도 배우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반성의 대한민국은 알지 못하고 오로지 자랑스러워야 할 대한민국만 머리속에 각인시킨다.


자랑스러움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반성과 사실에 대한 각인이 없으면 그 자랑스러움은 허상이요, 퇴보의 지름길이다. 더구나가 그러한 자랑스러움은 지배층이 피지배층에 대한 강한 허구적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진실'에 대한 은폐를 통해 피지배층은 오로지 현대사의 지배층의 행동을 정당하게 여기게 된다. 책의 뒷표지에 적힌 짧은 글이 이 책을 가장 잘 설명한다.


"진실은 맨주먹뿐인 우리 민중이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강력한 무기이자 현명한 길잡이입니다. 이제 우리는 현대사의 진실을 밝힘으로써 모든 불행의 원천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그같은 불행을 강요한 자들의 씻을 수 없는 범죄 행위들을 역사의 심판대 위에 올려 놓아야 하겠습니다"


다현사는 아직도 후배들에게 권하는 책중에 하나임과 동시에 토익책보다 먼저 읽어야 할 필독서라 말하고 싶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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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기사를 읽었다.


"학생들을 대표하는 총학이 외부 정치단체 등과 연계해 사회 정치적인 사안을 다루기보다 학생들의 의견을 모아 제대로 전달하는 단체가 됐으면 한다"


이 글을 읽으면서 일종의 허탈감을 느꼈다. 이 말중 후반에 있는  "학생들의~"은 1990년대 중반 고등학교 학생회에서 나온 발언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 앞의 발언에서 나온 사회적인 부분은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에 고등학교 학생회에서 거론되었던 말이다.


최근 고려대에서 교수를 감금(?)한 사태로 인해 학생들을 출교시켰다. 또 다른 대학에서도 이제는 총학생회가 학생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그러기에 사회에 둔감하기를 바라는 발언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90년대 중반 학번인, 그러기에 사회와 개인의 이질적인 부분이 공존했던 어정쩡한 학번인 내가 앞서 말했듯이 허탈감을 느끼며 동시에 어이없음을 느낀 것은 왜일까.


대학은 말 그대로 학문을 배우는 곳이다. 학문은 현실에서 의식을 지배하는 부분을 담당한다. 솔직히 현재 대학에서 이뤄지는 많은 학과들의 교육은 대학과 맞지 않다. 그것은 전문적으로 기술을 가르치는 학교에 위임되어야 할 사항이다. 취업을 위한 대학의 존재는 대학이 아닌 기술학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현실의 상황에, 그에 따른 의식을 배우는 학생들이 현실을 외면하고, 기껏 학내 식당에 관한 불편함이나 스쿨버스 운영등에 대해 논하는 총학생회가 만들어지기를 바라는 주장을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대학에서 배우는 학문이 현실과 괴리될때 그것이 과연 학문이라 칭할 수 있을까.


앞서 제시한 기사의 문구는 고려대의 한 학생의 발언이다. 저 학생의 정확한 의도는 대화를 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사회 정치적인 사안을 배제하자는 주장에서 이미 저 학생은 '대학생'이 아닌 '고등학생'수준의 공부만 하길 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대학을 간판따기로 들어온 (뭐 이미 오래전부터 행해졌던 일이긴하지만) 대학에, 이래저래 참견하는 것 조차도 가식적으로 보였다.


사회와 괴리된 대학.. 이는 존재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이런 대학의 총학생회는 겨우 1990년대 중반의 고등학교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대학은 사회를 읽고, 사회의 변화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다시 변화할때 그 중심에 서야한다. 그래야 대학이다. 만일 취업을 위해, 간판을 위해, 단순히 텍스트를 연구하는 공부를 위해 대학을 들어왔다면, 그는 '고등학교 4학년' 고등학교 5학년'일뿐이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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