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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서울시를 하나님게 봉헌했다. 서울시민이 뽑아줬더니, 서울시를 사적인 소유로 알았는지 하나님께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께 바친 것이다.

 

게다가 2007년에는 대한민국까지 봉헌한다는 계획까지 세웠으니 대단한 신도다. (대선에 성공한다면 정말 추진할는지도 모른다)

 

불교계는 당연히 반발했고, 지금까지도 이명박시장은 불교계의 마음을 잡지 못한 모양이다.

 

(관련기사 : "이명박시장 "수도 서울 하나님께 봉헌")

 

그런데 제주에서는 이와 반대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제주도청 문화예술과에 불교계 일부 종파의 종무계가 생겼다고 한다. 제주 일각에서는 도지사가 지난 지방선거때 도와준 댓가로 논공해상 차원에서 해준 것이라고 말한다.

 

제주 전체의 문화예술 사업을 추진할 부서가 일개 종교 종파를 위해 움직인다는 것이다.

 

(관련기사 : 문화예술과 컴백 '종교계' 왜 나섰나? )



서울 바친 이명박 전 시장이나 제주 문화계의 향배를 일개 종파에 맡긴 김태환 지사는 오로지 '표'만 보이는 것일까

 

대한민국은 국교가 없는데, 일부 광역자치단체는 국교가 있는 모양이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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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올린 보도자료를 우선 보자

 

□ 최다 판매 휴대폰 / 최단기간 최다판매 상반기 국내 휴대폰 시장에서 가장 많이 팔린 휴대폰은 지난 해 말 출시된 초슬림 슬라이드폰(SCH-V840/SPH-V8400/SPH-V8450)으로, 올해만 약 50만대 이상의 판매를 기록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슬림 슬라이드 디자인 열풍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이 제품은 깔끔한 슬림 디자인과 최첨단 기능이 조화를 이루어 낸 것이 인기비결로 분석된다.

 

한편 이 제품은 '애니 스타일' 광고에서 이효리가 들고 나와 '효리 슬라이드'라는 애칭을 얻기도 했다.상반기 최단기간 최다판매의 진기록은 지난 5월 출시 후 한 달 반 만에 16만대의 판매를 기록한 애니콜 최고 히트 모델 '스킨'이 차지했다.

 

고품격 슬림 디자인을 앞세워 품귀현상까지 빚은 바 있는 '스킨'은 패션과 스타일을 중시하는 신세대층에서 큰 인기를 모으며 마니아 층까지 형성하는 등 새로운 기록을 계속해서 만들어 가고 있다.또한 '스킨'은 해외에서도 출시돼 유럽을 중심으로 판매량이 크게 늘고 있다.

 

슬림폰 뿐만 아니라 DMB폰 시장에서도 삼성전자는 상반기 시장 점유율 73%를 차지하며 다양한 기록을 이어 갔다.

 

스윙 지상파 DMB폰(SPH-2300/SPH-B2350)은 올 상반기에만 23만대의 판매량을 기록하며 최다 판매 DMB폰 자리를 차지했으며, 5월에 출시한 '가로본능 지상파 DMB폰(SCH-B410/CPH-B4100/SPH-B4150)' 또한 출시 한 달 만에 판매량 5만대를 돌파하며 큰 인기를 모으고 있다.

 

□ 차세대 통신 기술 - 세계 최초 HSDPA폰 삼성전자는 올 해 5월 세계 최초로 초고속 영상 전송이 가능한 HSDPA폰(SCH-W200)을 출시한 데 이어, 지난 6월에는 지상파DMB와 HSDPA기술을 결합한 세계최초 '지상파DMB HSDPA폰(SPH-W2100)'을 선보이며 차세대 통신 기술을 이끌어 가는 최고 업체임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3.5G(세대) 통신기술인 HSDPA는 현재 국내를 비롯해 유럽, 미국 등에서 본격적인 서비스에 들어간 상태이다.삼성전자는 올 상반기 국내뿐 아니라 유럽, 미국에서도 최초로 HSDPA폰을 출시했다.

 

□ 다양한 세계 최초/세계최고의 기록

 

올 상반기 삼성전자는 세계에서 가장 얇은 6.9mm 두께의 울트라 슬림폰(SGH-X820)을 개발, 휴대폰 사상 최초로 7mm대 벽을 뛰어넘으며 휴대폰 역사에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슬림(Slim) 디자인, 강한 내구성(Strength), 첨단 기능(Powerful)을 모두 갖춘 이 제품은 7월 중 국내 시장에 출시될 예정이다.

 

또한 삼성전자는 올 상반기 해외 유수의 IT전시회에서 세계 최고 화소수의 '1000만화소 카메라폰(SCH-B600)'과 세계 최대용량의 '8GB 하드디스크폰(SCH-B570)'을 공개했다.

 

전세계 IT 업계를 깜짝 놀라게 한 이 제품들은 올 하반기 중 국내 시장에서 먼저 선보일 예정이다.

 

□ 차세대 무선 인터넷 서비스 와이브로 상용화

 

지난 달 말 국내에서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PCMCIA카드를 이용한 초고속 무선인터넷 서비스 와이브로가 상용서비스에 들어갔다.

 

와이브로는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차세대 이동통신 기술로 60~80Km의 속도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도 언제·어디서나 초고속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삼성전자는 올 하반기 중 휴대폰 타입, PDA타입 등 보다 다양한 타입의 와이브로 단말기를 시장에 출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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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다.ㅣ 최다, 최고, 최초....딱 언론들이 좋아할 단어다. 지금 내가 블로그에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분명 기사는 올라가고 있을 것이고, 내일자 신문들도 경제면에 이 부분이 다뤄질 것이다. 삼성 광고를 따야 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기억을 조금 돌려보자. 지금이야 무수히 많은 포털뉴스에 묻혀져 잊혀지고 있지만, 삼성에 관한 한 가지 사건이 있었다.

 

우선 2005년 8월 22일 기사다.

 

"애니콜 허위 과장광고" 소비자 1만여명 피해구제 요청 [서울경제]삼성전자 휴대폰이 단일 품목으로는 사상 최대 규모의 소비자 피해구제 요청 사태에 휘말리게 됐다. 삼성전자의 휴대폰 V4400 모델(일명 권상우폰)의 리콜을 요구하고 있는 공익제보자모임은 22일 “이번 주안에 소비자보호원에 1만여명의 피해구제를 요청하는 서류를 접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공익제보자 모임이 피해구제 요청에 돌입할 경우 소보원의 소비자피해구제 신청 역사상 단일 제품으로는 사상 최대 규모라는 진기록을 수립하게 된다. 휴대폰의 역사나 다름없는 애니콜이 이번에는 피해구제의 역사까지 새로 작성하는 셈이다.

 

공익제보자모임의 김승민씨는 “V4400모델을 구입한 1만여명으로부터 피해구제를 위한 서류를 받아 정리중”이라며 “조만간 관련 서류를 소보원에 접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공익제보자모임과 ‘소비자의 힘’ 등은 삼성 애니콜 V4400 제품의 허위 과장광고를 문제 삼아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와 검찰에 삼성전자를 고발한 바 있다.

 

한편 지금까지 유례가 없었던 ‘소비자 대반란’에 직면한 삼성전자는 ‘철저하게 법적으로 해결한다’는 원칙을 고수중이다.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공정위에서 이번 사안과 관련해 내부 심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앞으로 심의 결과가 나올 경우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소보원도 대규모의 피해구제 신청서 접수를 앞두고 상당히 긴장하는 눈치다.

 

소보원의 한 관계자는 “한 품목에 대해 1만명에 달하는 소비자 피해 접수를 받게 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신청 접수량이 워낙 방대해 2장 분량의 신청서 양식을 특별히 1장으로 줄여서 작성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한영일 기자

hanul@sed.co.kr

 

다음은 8월 28일 기사다

 

'최고' 삼성전자, 고객 협박도 '최고(?)' (아이뉴스24)

삼성 고발한 정주영 씨, "삼성전자 관계자로부터 협박당했다!"
삼성전자측, "단순히 충고한 것에 불과하다!"


그럼 지금은 어떤 상황인지 보자.

 

위의 이미지는 'V4400 소비자의 힘'(http://cafe.daum.net/v4400user) 카페로 위에서 협박 문제가 거론된 정주영씨가 운영한 공간이다. 지금은 아예 그 존재자체도 희미해져가는 공간이다.

 

삼성이 다양한 기록을 남겼음에도 씁쓸한 이유는 이 부분이다. 네티즌들 사이에 속설로 삼성전자의 휴대폰은 국내에서 시범적으로 팔아보고 문제점 등을 수정해 해외로 수출한다는 말이 있다. (자동차도 그런데 왜 휴대폰깢..--;;) 아마 외국 IT상품 업체들이 한국을 시범시장으로 삼는다는 기사의 원조는 삼성일지도 모른다.


1만명이상의 피해자의 한숨가 어이없음을 기반으로 해서 이뤄낸 것들을 '기록'이라하여 보도자료를 뿌린 모습이, 삼성공화국이란 단어와 연계되는 것은 왜일까.

 

-아해소리-

 

PS..문제는 저 소송을 이끌던 당사자들이다. 현재 그 주축이였던 두 사람은 서로 소송을 걸며 싸우고 있다고 전해진다. (지금쯤 결론이 났을텐데..) 흔히들 대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하면 10에 9.9는 진다고 한다. (0.1은 천우신조의 수치) 기간이 길고, 그 기간동안 이래저래 협박도 받고, 회유도 받으며 경제적 정신적으로 피폐해지기 때문이다. 결국은 백기들고 대기업이 원하는 대로 해주면, 그 이상의 혜택을 받는다고 한다. (위의 기사와 더불어 최근 K모기업도 한 벤처기업과 소송중인데, 기간이나 물량공세가 어이없어서리~).


삼성은 거대하고 치밀하다. 노조를 만들려고 하면, 미리 관계기관에 대기했던 직원들이 서류를 집어넣는 곳이 삼성이다. (물론 몇몇 계열사에도 노조가 있다) '서류노조' '유령노조'의 대표적인 회사다.


삼성의 이익계산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음으로서 나오는 이익이 (생산성이나 시설물 추가 설립) 벌금보다 더 많다는 것은 인지하는 순간 "차라리 벌금내고 말지"라고 결정해버리는 곳이 삼성이다.


삼성이 세계적인 기업임은 인정한다. 그러나 독재개발시대처럼 타인의 눈물과 피를 빨아 세운 세계적 기업이라면 애시당초 세우지 않는 것이 낫다. 아무리 자본주의 사회가 비정하다고 해도, 최소한 '인간'이라는 주체는 존재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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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재산권의 개념에 대한 오해를 불러오고 지적재산권법을 깨뜨리는 것이 정당하다는 인식을 심어줄 것이 우려되는 내용을 담고 있어 선정했습니다.
 
이에 대해 여러분들은 어떤 대응 전략을 마련하시겠습니까?

 

 

우선 위의 질문에 대답을 하죠. 대응 전략은 아주 간단합니다. 왜 그것이 잘못되었는지, 국민에게 알려주면 됩니다. 설득은 그 다음의 문제입니다. 왜 맞고 틀린지 인식을 했다는 전제가 있어야 설득이 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적인 방법은 바로 국정홍보처가 이 글 (트랙백 주소 참고)처럼만 하지 않으면 됩니다.

 

지적재산권법에 대한 상대의 문제제기가 잘못되었다고 이야기는 해놓고, 왜 잘못되었는지 설명은 하지 않은 채, 다시 그 '우려스럽다는' 내용을 버젓이 게시하며 "이것봐라, 오해있는 내용을 이렇게 게시하는 것은 우려스러운 일이다"라고 말한다면, 보는 이들은 일단 고개를 옆으로 돌릴 수 밖에 없습니다.

 

정책을 설명하고, 잘못된 보도에 대해서 반박하려면, 정부측에서 흘러나오는 아무리 짧은 글이라도 "왜!!!' 를 설명해야 합니다.

 

정책보도, 반박보도는 소설이 아닙니다. "자 봐라. 행간을 읽어라.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그 숨은 뜻을 이해하지 못하겠냐"라는 태도로는 곤란합니다. 또한 '그것에 관한 기본지식도 없냐"라는 식의 태도 역시 안됩니다. 그런데 현재 위의 지적재산권만 하나 가지고 본다면 그런 태도가 보입니다.

 

혹 DMCA에 대한 정보(위에서 말한 오해의 부분)를 이미 홍보처측에서 배포했는데, 제가 못 찾았을지도 몰라 국정홍보처 검색창에 쳐봤습니다. (직접 쳐보시길)

 

3건 나옵니다. 위의 글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내용은 없었습니다.

 

분석 1팀이 올린 그 만화에는 원래 본문이 달려 있습니다. (원문 : 기술적 보호조치를 법 위의 법으로 만들려고 하는가? ) 그런데 그에 대한 반박은 하나도 없이 '오해' '우려' 등의 추상적 표현으로 초점을 흐트려 놓고 있습니다.

 

물론 예시로 올렸기에 진지한 응답을 안해도 된다는 생각을 했을 수도 있을 겁니다. 더불어 이미 홍보처내 분석 1팀 사이에서는 충분히 논의되었기에 공감대가 형성되어, 홍보처 외의 사람들도 알고 있다는 일종의 무언의 동질성을 자의적으로 만들어버렸는지도 모르겠지요.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홍보처에서 나온 글이나 말이라며 짧은 에세이 일지언정 충분한 설명과 이해시키려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홍보처가 고민하는 대응전략의 베이스는 바로 그 '문제의 글'에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잘못된 정보가 인터넷공간으로 퍼지는 것은 분명 문제가 있지만, 대응방법을 잘못해서 두고두고 신뢰를 깎아먹는 것은 더 큰 문제입니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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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쌀은 협상대상에 넣자는 미국측의 요구에) '한미FTA를 깨고 싶으면 쌀을 포함시키라'고 얘기했었다"

 

7일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국회 통외통위에 출석해 한 말이라고 한다. 김본부장과 미국측 대표와 이야기를 한 자리를 보지 못했으니, 확신을 가지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지금까지의 전례로 봤을 때 과연 김본부장이 당당하게 저런 이야기를 했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리고 생각난 것은 1993년 김영삼 전 대통령 (솔직히 대통령이라 말하기도 싫다)이 국민에게 고개를 숙이며 한 말이다.

 

"저는 그동안 우리 쌀을 지키기 위해 대통령으로서 최선의 노력을 다해 왔습니다. 그러나 국민에게 한 약속을 끝까지 지키지 못하는 데 대해 책임을 통감하며,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1993년 12월 9일...우루과이 협상단이 '쌀 개방 불가'를 공언하며 스위스 제네바로 떠난 지 7일째 되던 날이었다.

당시에 마지막 협상이 진행될 때, 기자들이 개방 여부를 묻는 질문에 "클린턴과 쌀 이야기를 한 적 없다"라는 엉뚱한 답변만 내놓던 김영삼이었다. 이때 알아봤어야 했다.

 

협상단장인 허신행 농림부 장관은 미국 농림장관에게 농민시위 사진을 보여주며 "미국 농민 1만5000명과 한국 농민 600만 명 중 누가 더 보호돼야 하겠느냐"고 호소했다.

 

그러나 결국 쌀 개방은 '10년간 관세화를 유예하되 국내 소비량의 4%까지 점진적으로 수입을 늘릴 것'으로 타결됐다. 전문가들은 최선의 결과라고 평가했지만, 농민들은 배신감을 감추지 못했다.

 

김현종 본부장의 말을 믿고는 싶다. 그러나 웬지 믿었다가는 그 믿음에 대한 대가로 '배신감'이란 감정만 또 가질 듯 싶다. 쌀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배신감도 있지만, 현실을 진실을 본질을 이야기하지 않아 농민들에게 국민들에게 미리 대응할 수 있는 여지조차 빼앗은 행위는 앞으로 대한민국 정부로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결정지을 것 같다는 생각에 불안하기까지 하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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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이 끝나면 으레 'K리그'를 살려야 월드컵에서 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곤 한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 또 어느 샌가 이러한 논의는 사라지고, 4년 뒤 월드컵 시즌이 돌아와야 다시 되풀이한다.

 

이번에 K리그에 대한 논의를 보면서 어느 기자 말대로 "회사 부도나게 생겼는데, 우리 물건 사달라"라는 식의, 품질은 따지지 말고 일단 애국심에 호소하는 행태가 너무 눈에 선해서 한심해 보이기까지 했다.

 

K리그의 활성화. 좋은 이야기이고, 적극 공감한다. 하지만, 리그 활성화의 주체는 팬들이 아니다. 선수이고, 구단이다. 팬들은 이들의 모습을 보고 움직이며 즐기는 사람들이다. 간혹 어려울 때 같이 하는 것이 진짜 팬이라는 말을 하는 네티즌들이 있다. 그러나 그 어려움은 기대감을 동반한다. 언제가는 자신들에게 휼룡한 플레이를 보여줄 것이라는 기대감 말이다. 그런데 그 기대감을 줄 생각은 없이 무조건 읍소하는 모습은 팬들을 도리어 떠나보내는 작태일 뿐이다.

 

K리그 논의중 한 부분은 영화인들의 스크린쿼터 반대 입장을 연상케 했다. 기회를 달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일부에서는 리그 팬들에게 일단 와서 봐보고 결정해달라고 말한다. 꽉 찬 경기장을 보여주고 그래도 마음에 안들면 비판을 해달라고 요구한다. 스크린쿼터제도를 지켜 한국영화에게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스크린쿼터제가 지켜지지 않으면 한국영화는 발전할 수 없다고 말한다.

 

우리가 K리그에게 기회를 안 주었던가? 아니다 2002년 월드컵이 끝난 후 K리그에는 대표팀 선수들을 보려고 경기장에 팬들이 몰렸다. 서로 서포터즈에 가입하며 월드컵 분위기를 이어나가려 했다. 그들을 내팽겨친 것이 과연 누구인가. 팬들의 냄비속성이라고 말할 것인가. 그렇다면 선수들이나 구단들은 양심이 없다. 팬들을 경기장 밖으로 내몬 것은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

 

영화인들은 죽는 소리를 하며, 한국 영화 부흥을 위해 스크린쿼터가 지켜져야 하며, 이것이 곧 우리 문화를 지키는 것이라 말한다.  일단 문화부분은 한번 논했으니 넘어가자 (내가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에 쉽게 공감하지 못하는 이유 ) 기회를 달라는 부분에서 한국영화가 점유율이 80%를 넘나들며, 사상 최대의 흥행을 누릴 때 그들은 진정 우리에게 질적 발전을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는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런 적은 없는 것 같다. 오로지 스타 개개인의 몸가치만 올리려 노력한 것밖에 기억나지 않는다. 관객들은 자기 돈 써가면서 충분한 기회를 몇년간 줬다. 이를 살리지 못한 것은 영화인, 영화계이다. (마지막 임권택감독님이 1인 시위를 나왔을 때, 그동안 1인 시위를 했던 젊은 스타들은 왜 하나도 안 보였는지..내 눈에는 그들은 어차피 전날 쇼맨십을 펼쳤으니, 이제 기획사의 의도대로 자신들의 돈벌이때문에 바쁜 걸음을 다른 곳으로 돌리지 않았는지..비판하고픈 영화계지만, 이들에게는 비판도 후하다...비난하고픈 생각밖에 안든다)

 

영화계나 K리그는 아직 정신 차리려면 멀었다. 일부에서는 외국영화계에 한국영화가 먹힌다음에 후회해도 소용없다고 말하지만, 그 후회는 영화인들의 몫이다. 관객들은 눈이 높아졌고 냉정해졌다.

 

유럽리그를 새벽마다 시청하는 이들에게 K리그도 무엇을 줄지 고민해야 한다. 늘 '수준'만을 탓한다면 팬들의 외면 역시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낫다. 뭐라 말 하는 것조차 창피해 해야 한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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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소수자는 나눠서 생각해야 한다. 홍석천씨처럼 커밍아웃한 사람과 하리수씨처럼 트랜스젠더로 변신한 사람으로 말이다.

 

전에 어떤 인터넷 신문의 헤드라인처럼, 홍석천씨는 사회적 배신을 했고, 하리수씨는 사회적 변신을 한 것이다. 외모지상주의때문일 수도 있겠다. 또는 거부감의 대상과 호기심의 대상의 차이라고 생각해도 될 것이다.

 

남성이 스스로의 성적 지향이 여성이 아닌 남성을 향해있다는 것은 남여 결합이 인류사 자연스러운 현상임을 베이스에 깐 사회적 인식에서 보자면 '거부감'의 대상이지만, 여성으로 변한 남성의 모습은 일단은 '호기심 + 상품성'의 가치를 지닌다.

 

아마 그래서 상품성을 지닌 이들이 지금도 어두운 클럽과 유흥업에 종사하고, 거부의 대상이 사회의 눈을 피해 그곳을 찾는 현상이 극히 자연스러운 결합으로까지 보인다.

 

6년전 홍석천씨가 커밍아웃을 선언할 때 난 미쳤다고 생각했다. 성적소수자로서의 사회에 대한 절규가 미쳤다는 것이 아니라, 극히 자연스럽지 못한 등장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혹자들은 (이 글을 트랙백을 보낸 글도 포함해서) 그의 선언이 사회적 파장을 낳았다고 하면서, 선구자적 위치를 그에게 선사해주었지만, 나에게 준비되지 않은 많은 이들에게 포용하라고 '억지'를 부리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편견을 없애자는 말은 당연하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 편부편모에 대한 편견, 외모에 대한 편견,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편견 등등 이 세상 수많은 편견들은 사라져야 하고, 하나의 인간으로 모든 것은 평가받고 어울려야 한다는 원론적이고 지극히 당연한 말을 나도 공감한다.

 

하지만 편견은 (그것이 비록 잘못되었더라도) 어떤 경험들이 축적된 산물이다. 충격요법으로 쉽게 해결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껍질을 깨기 위한 홍석천씨의 고통은 이해하지만, 누적된 인식을 향해 파장만 울린다면 그 다음은 대책없이 굴러가기 때문이다.

 

6년전, 홍석천씨의 커밍아웃은 언론에 이슈 '꺼리'로만 적당했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였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에 와 생각해보면 어쩌면 첫 껍질을 깬 그의 행동에 그것 하나로도 충분한 의미를 부여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안타까운 것은 다양성에 대한 혼란스러운 지금, 커밍아웃을 했다면 홍석천씨 스스로에게나 받아들이는 사회나 좀더 무난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그의 외침이 있었던 6년전이나 지금이나 성적소수자에 대한 인식은 그대로라는 것이다.

 

물론 트랜스젠더에 대해서는 조금 관대해 진 것은 사실이지만, 남성의 몸을, 여성의 몸을 지닌채 성 정체성에 혼란스러워 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아직 차갑기만 한 것은 분명 사실이다.

 

아직은 다양하지만 그 다양함에도 분명 선이 그어져 나눠지는 사회라는 것이 새삼 다시 느낀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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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오락성 영화다. 의미를 주고자 하면 한없이 줄 수 있고, 의미따위는 집어던지고 보자면 그냥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좋은 영화다. 초등학교때 종종 책이나 TV에서 보던 권선징악형 만화라고 보면 가장 무난하다.

 

돌연변이 인간들에게 극한 공포감을 느끼는 아주 평범한 인간들. 사실 현실에서도 느끼지 않는가. 미친 도사견 한 마리가 도심 한 가운데 풀려 돌아다닌다면, 총이나 방어할 무기가 없는 한, 사람들은 무한한 공포를 느낀다.

실제 있었던 일이지만, 극장에 뱀 한마리가 풀려있다는 말을 들으면 극장안은 순식간에 공황상태에 빠진다. 뱀 한 마리에 말이다.

 

그런데 그런 류의 인간이 수십명이 나와 아주 평범한, 총밖에 쏠 줄 모르는 인간들과 대치한다. 정말 공포스럽지 않은가.

 

제목을 달때 난 전쟁의 시작이라는 말이 이상하게 머리에 떠올랐다. 영화는 3편으로 끝나고 최후의 전쟁일지 모르지만, 실상은 정말 돌연변이들이 많이 나타날 여지가 있는 세상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우리와 아주 조금 다른(?) 장애를 안고 사는 이들에게도 이질감을 느끼고 사는데, 정말 X맨과 같은 이들이 나타난다면 어떻게 반응할까.

 

조금 더 편하자고 만들어 놓은 모든 것들이 우리를 변화시키고 있으니 말이다.

 

- 아해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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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연이 스타골든벨에 들어온 것을 보고 말들이 많다. 뭐 이미 드라마에 출연하고 있는데 왜 또 시빌까...아마 SBS와 KBS는 크게 다르다는 점을 우선 꼽았을 것이다. 사기업과 공기업의 차이...때문에 이승연이 공기업에 감히 발을 디딘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승연

 

물의를 일으킨 연예인들이 방송에 나올 때마다 머리속에 드는 생각은 방송국이 모든 시청자들을 대변하는 '면죄부 발행기관'역할을 하려한다는 것이다.

 

신정환이 '여걸식스'인가 나올 때 정확하게 기억이 안나지만, 자막이나 분위기가 아래와 같았다.

 

"그동안 정말 고생했던 신정환, 때문에 속죄의 마음으로 시청자들에게 보다 많은 웃음을 주려 하는 신정환. 이들을 따뜻히 안아주는 여결식스. 정말 그리웠습니다"

 

은은한 음악과 더불어 이러한 뉘앙스의 자막이 깔리고, 여걸식스 멤버들이 하나씩 포옹하는 장면이 나가면 신정환은 이제 죄를 용서받게 된다. 이 무슨 어처구니 없는 장면인가.

 

여타 인터넷 언론들도 사진 하나 올려놓고 "힘든 시기를 지나~" "팬들에게 속죄의 마음으로~" "보다 열심히 하는 연예인의 모습으로 태어나길 바라며~" 등등의 헤드라인과 내용을 깔아주고 연예인 되살리기에 열심인 것은 마찬가지다.

 

동방신기의 한 멤버가 최단기 복귀를 했을 때, 비판하려 흉내내는 매체들 역시 동방신기측 입장을 설명하며 '자숙의 기간을 가진~" "화려하게 복귀~" "팬들의 성원에 응답하듯~"등등의 표현을 서슴없이 썼다. 뭐하자는 것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

 

하지만, 장면, 자막, 음향까지 총 동원해서 면죄부를 발행해 주는 곳은 방송국밖에 없다. 그러면 끝이다. 이렇게 한두 프로그램에서 얼굴을 내밀면, 그 다음부터는 언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냐는 듯이 당당히 오락프로그램을 활보한다.

 

방송국 게시판이나 포털 게시판에 난리를 쳐도 소용없다. 이때는 이미 "용서하자"는 팬들까지도 생기기 때문에 (그것이 진심인지, 아니면 언론플레이에 넘어간 것인지 모르지만) 이미 게임은 끝났다.

 

다시 말하지만 방송국은 면죄부 발행기관이 아니다. 여론을 만드는 역할도 하지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여론조성은 하지 말아야 한다. 이는 굳이 정치적, 사회적인 대형 이슈뿐만 아니라, 연예계 등 타 분야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이 계속 면죄부를 발행하는 한, 연예인들은 자신들이 사회에 보여준 추태를 덮을 든든한 배경을 갖게 되며, 이는 곧 이들을 특권층화 시켜버린다. (물론 지금도 유사하게 행동하지만..)

 

-아해소리-

 

ps.글을 끄적이고 뉴스를 봤다......김상혁도 곧 컴백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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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보면 어떤 책인지 알 것이다. 너무나도 유명하니까. 내가 지금까지 읽었던 많은 소설 중에서 초반에 이렇게 흡인력이 강한 책은 드물었다. 흡인력이 강하다는 것은 현실과 어느 정도 부합이 되었다는 것이다. 한때 금서였던 이 책. 그러나 현실이 음울한 상황을 벗어났기 때문에, 그래서 이 책의 내용이 이제는 현실과 동떨어진 '고전'으로 남아야 하기 때문에 해금당한 것이 아니기에 안타까울 뿐이다.

 

오랫만에 다시 책장에서 꺼내면서 이곳에 옮겨본다. 이후는 '꼭' 사서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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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해도는 동으로 황해도에 인접해서 마식령 산맥의 산세에 닿고, 남은 예성강을 지경으로 경기도의 들판과 만나며 북은 대동강을 건너 평안도를 바라보는데 서쪽으로는 바다로  솟아나가 중국의 산동을 마주보고 있다. 들판도 있으나 험한 산에 골짜기도 깊고 ,오랫동안 경부에 가까워서 예부터 관의  혹정에 민감했으며, 도둑이 많아  조정을 괴롭히곤 하였다.  팔대 명산의 하나이며 태곳적 단군의 도읍지인 구월산은 그 줄기가 남서쪽으로 우회하여  추산을 따라 불타산에 이르고, 막바지로 그친 곳에 장산곶이라는 험한 해안 마루턱이 있으니 옛 노래에, 



장산곶 마루에 북소리 나더니, 금일도 상봉에 님 만나보겠네
갈 길은 멀구요 행선은 더디니 늦바람 불라고 서낭님 조른다.


 

하던 곳이 그곳이다. 그곳에 지방민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이 있어 기록하였으되, 기암 절벽이 바다 가운데까지 둘러서 있고 골짜기가 깊게 뚫렸는데 곶은 백여 리에 이르고 수세가 거꾸로 휘돌아서 근처의 임당수는 뱃길이  몹시 험하였다. 금색으로 반짝이는 명주실처럼 가는 모래가 수십리에 깔렸는데 밤새워 불어오는 바닷바람에 해변의  사구가 나날이 이동하는 것이었다.
갯가에 게딱지같은 집들이 모여서 마을을 이루었고 마을마다 아름드리 해송이 몇백  년씩 나이를 먹으며 자라고 있었다.   산세가 험하고 모래가 대부분인 해변에서 농사라야 수수나 기장 따위가 고작인 어촌 사람들은 진작부터 바다로 나가야만 했다. 열흘 길, 보름 길,  어떤 때엔 한달 이상씩 걸리는 긴 뱃길에서 풍어의 기쁨은 쉽게 잊혀지는 대신 수많은 마을 사람들이 풍랑에 삼켜져서 그 슬픔만이 오랫동안 남아 있곤 하였다.

 

마을이 생겨나기 전부터 이곳 바닷가에는 매가 날아와 살았으니,  나라의 응방에서 이 지방 매를 특산품으로 정하여 관가에 바치도록 하였는데, 특히  대청도의 이른바 해동청 보라매는 사람과 쉽게 친해질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건어를 만드느라고 잡힌 고기를  얹은 마을의 지붕마다 잡새가  날아와 피해가 심했으나, 이 마을에 매가 드나들고부터는 얼씬하지 못했으므로 마을 사람들은 더욱더 매를  소중하게 알았다. 그들은 먹이를 주어 매를  돌보고 둥지도 지어주었으며, 고깃배가 출어하기  전날의 풍어제 때에는 매를 가장 귀한 제주로 알게 되었다.
 새벽에 주변의 섬으로 놀러 나갔던 매는 황혼녘이면 돌아왔다.  그리고는 마을 상공을 늠름하게 한바퀴 돌고 나서 당솔나무에 앉아 쉬거나, 마을의 지붕에 내려와 아이들의 찬탄 섞인 웃음소리를 들으며 사귀다 갔다. 고깃배가 출어하면 매는  한나절 거리는 좋이 됨직하게 따라왔다가 해변으로 돌아갔고, 그들이  만선의 북을 두드리며 포구로  돌아오면 벌써 매는 날씬한 날개를 펴고 포의 돛  위에 날아 앉거나, 마을 부녀자들에게  그들의 무사 귀환을 알리기 위해 재빠르게 날아가는 것이었다.

 

어느때 타국의 화선이 지나가다 물을 구하기 위해 포구 앞에 며칠 동안 정박하게 되었는데, 장삿배뿐만 아니라 간혹  다른 나라의 어선들이 연해에까지  침입해서 어장을 유린하곤 했으므로,마을 사람들은 그들이 어서  떠나주기만을 무력하게 기다렸다. 뱃사람들은  식량을 원하고 교역하고자 했으나 원래 곡물이 귀한 마을 사람들은 일절 응하지 않았다.
관리가 나와서 식량을 징발해 주고자 했는데 그때에 그는 매를 보았던 것이다. 관리는 그 매를 화주에게 주어 가물을 얻으리라 작정하게 되었다. 관리가  마을 사람들에게 매를 잡아오도록 명령하였다. 총명한 아이가 있어, 매를 그물에 씌워 다치지 않도록 한 다음에 당집에다 은밀히 숨겨두었다. 당집을 건드리면 동티가 날까 염려한 마을 사람들이 발분하겠으므로, 민원을 살까 두려워한 관리는 그대로 돌아갔다. 식량과 물을  내륙에서 간신히 조달한 타국의 상선도 떠나갔다.
마을 사람들은 빼앗길 뻔한 매를 당집에서 꺼내어 날려주기 전에 의논을 하였다.

 

   이것은 우리 마을의 매요.
   아무렴, 우리 마을을 지키는 매지.
   하마터면 남에게 빼앗길 뻔했소.
   표를 해둡시다.

 

 마을 사람들은 매의 오른발에 붉은 색실로 매듭을 묶어준 다음 놓아주니, 매는 다시 자유롭게 떠올라 마을 상공을 한바퀴 휘돌아보고 나서 바다로 나갔다.   조기떼가 연평을 경유해서 대청 소청 앞 바다를 지나가는 철이 돌아왔다. 벌써부터 먼 곳에서 갈매기들이 모여들고 있는지, 새벽바람을 타고  먼바다에서 울부짖는 갈매기들의 음울한 소리가 들려왔다. 마을 사람들은 어망을 짜고 배를 수선하고 돛을 기웠는데 어계의 총대 되는 사람이 주도하여 별신굿을 벌일 준비를 서둘렀다. 당산나무  밑에 들맞이를 하고 나서 삼신제를 지낸 다음, 바닷가에 각종 제물을 펼쳐놓고 용왕제를 지내고서, 오색 융복에  전립을 쓴 무당이 밤굿을 벌였다. 몰려온 고기는 잡아야 하지만  일기를 헤아릴 수 없으니 살아 돌아오기도 딱히 기약하지 못하는 마을 사람들이었다. 이튿날 새벽에 출어기를 올린 어선들이 바다로 나갔고, 매도 그들의 머리 위를 선회하면서 전송했다.

 

보름 뒤에 배가 만선이 되어 돌아왔으니, 온 마을이 들끊는 듯한 잔치가 벌어졌는데 그것은 험한 바다에서 되살아온 신생을 위해서였다. 한데 그제서야 마을 사람들은 언제부터인가 마을에서 매가 없어진 것을 뒤늦게 알아쳐렸다.
출어할 무렵인지 귀환할 때인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매가 마을에서 사라져버려서 잔치 끝의 마을 사람들은 모두 슬프고 서운하여 사방으로 매를  찾아 나섰다. 아이들의 이야기로는 매가 바다로 날아간 지 사흘이 넘었다는 것이었다.  온종일을 찾아다니다 드디어 땅거미가 내려 덮였는데 한 사람이 소리치며 달려왔다.

 

  뭔지 보인다, 매 같다!

 

모두들 바람이 거세게 불어대는 저녁 바다를 향해 뛰어갔다.   아득한 수평선 위에서 무엇인가 움직이는 게 보였다. 바다와 하늘의 바깥쪽은 우중충하게 어두워지고, 수평선을 중심으로 가느다란 놀의 띠가 겹겹이 드러나 안쪽으로 향할수록 감빛이 짙어질 그런 무렵이었다.
어둠과 빛의 경계를 그 점들은 들락날락하였는데, 재빠르게 위로  아래로 도는 듯이 보였다. 파도와 바람 소리만이 들려왔다.  박명 속에 가느다랗던 놀이 차차 사라져가고 어둠 속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두 점들은 가까워졌는데, 어느 아이가 외쳤다.

 

  둘이다. 싸우고 있다.
  하늘에서 싸운다.
  하나는 우리 매다!



매는 자기보다 몸집이 두어 배는 되어 보이는 날것과 맞붙었다가는 다시 떨어져 돌고, 또 맞붙어 날개를 치는 것이었다. 매는 수리를 피해서 뭍을 향해 물러서려고 애쓰는  중이었다. 하나가 위로 휙 날아오르면 더불어 올랐다가 바다를 향해 떨어지면서 서로 엇갈려 잠깐 멈칫해서 부리와 발톱으로 치고는,  치는 사이에 날개를 푸드득이는  소리가 바람소리 가운데 똑똑히 들렸다. 매는 수리 공격을 막아내면서, 될 수 있으면 모여 있는 마을 사람들의  머리 위로 가까이 날아오려고 애쓰는 것처럼 보였다.

 

  매와 수리는 한 덩어리가 되어 끊임없이 날개를 치면서  뭍으로 다가왔다. 이제까지 보고만 서 있던 마을 사람들의  마음에도 결기가 가득차서 일시에 목청을  합쳐 고함을 질렀다. 매와 수리가 일단 흩어졌는데, 매는  아래로 낮게 날아 사람들의 머리  위로 날개를 치면서 한바퀴 돌고 나서 다시 수리에게로 쫓아  올라갔다. 매가 날개를 퍼덕이며 지나갔을 때,  그 죽지에서 흩뿌려진 피가 잔치옷으로 갈아입은 마을 사람들의 흰옷 위에 점점이 번져갔다.   매가 수리를 향하여 일격을 가하려고 달려들 때에, 사람들은 다시 한번 목청을 합쳐 고함을 질렀다. 허공에서 매와 수리의 깃털이 어지럽게 흩날렸다. 수리는 매의 거세어진  기세에 당하지 못하고 목을 움츠리더니, 상대를 버리고 바다 쪽으로 달아났다. 매가 사람들의  고함 소리에 힘을 얻어 수리 뒤를 바짝  쫓아갔다.. 수리가 중심을 잃고 아래로 방향을  바꾸는데 매는 위로부터 곤두박질치면서 수리의 머리를 쪼았다. 치명타를 받은 수리가 물에 처박혔고, 매는 다시 위로 드높게 날아올랐다. 마을 사람들의 환성이 크게 일어났고, 매는 사람들의 머리 위에서 자랑스럽게 맴돌더니 지친 듯이 마을 어귀의 당솔나무 가지 위에 내려앉았다.

 

마을 사람들은 먹이를 준비하고 풍악을 잡히면서, 매가 그들의  어깨 위에 다정하게 내려앉기를 재촉하였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매는 다른 때처럼  사람들의 팔뚝에도 내려와 앉지 않고 나뭇가지 위에서 날개만 몇 번 퍼덕여 보였을 뿐이었다.
주위가 완전히 캄캄해질 때까지 마을 사람들은 횃불을 밝혀 들고 매가 내려오기만을 기다렸다. 횃불빛에 드러난 해송의 깊숙한 구멍 속에서 이번에는 구렁이가 기어 나왔다.  구렁이는 비늘을 번쩍이며 사리를 풀고는 나무를 타고 꿈틀꿈틀 기어올라갔다.
마을 사람들이 안타깝게 불렀건만, 어둠 속의 매는 움직이는 것 같지 않았다. 구렁이가 나무 꼭대기를 향해 기어올라간 뒤에 한참 동안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더니 이윽고 폭우가 줄기차게 쏟아져 내려왔다. 천둥이 울고 번개가 번쩍였다. 빗소리와 우렛소리 속에서 밤새껏 퍼덕이는 날갯소리가 들려왔다.   동녘이 뿌옇게 밝을 즈음에, 지쳐서 나무둥치 아래 둘러앉은 사람들 앞에 토막 난 구렁이의 시체가 떨어져 내려왔다. 나뭇가지에 걸친 채로 날개와 부리를 땅으로 축 늘어뜨린 매의 형상이 보였다. 마을 사람들은 어째서 매가 나무에서 끝내 내려오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날렵한 아이를  시켜 나무 위에 오르도록 하였다. 올라간  아이가 죽은 매에 손을 대려다가 분한 듯이 외쳤다.

 

  실매듭이 나뭇가지에 걸렸어요.

 

남에게 빼앗길까 하여 매가 마을의 소유임을 표하느라고 매어놓은 오른쪽 발목의 붉은 실매듭이 매를 죽게 했던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매와 맺은  인연을 그저는 믿지 못하여 매듭으로 확인을 해놓아야만 했던 것이다. 그 인연 때문에 매는  밤새 싸웠고 기진하여 죽게 되었으니. 



일찍이 외병이 국토를 점령했을 적에 백성 중에 병을 일으킨 대장이 여럿 있어 그들과 오래 항전했었다. 한 의병장이 허수아비 같은 관군과도 대적해서  싸우다가 어느 싸움에 대패아여 병을 해산하고 민가에 숨어 있었다. 그가 장산곶 어부  집에 숨었다가 매의 죽음에 크게 깨우친 바가 있었다. 그는 밤새껏 잠들지 못해 뒤척이다가, 이 신뢰하지 못하는 마을  사람들의 작은사랑에 대하여 안타까워하고 눈물을  흘렸다. 매가 기세를 펴지  못하고 매듭에 걸린 채 죽어버린 연유와 같게도, 그는 다른 대장들처럼 피살되었다. 그가 장산곶을 떠나 남몰래 귀향했는데 병이 해산된 뒤부터  노리던 자의 눈에 발각된 바  있었고, 포상금을 탐한 동료가 밀고를 했던 것이다. 수심과 괴로움으로  번뇌에 가득 찬 밤을 지새우고, 겨우  곤한 잠에 빠졌을 무렵 힘으로는 대적하지 못하리라 믿은 외병들이 무리지어 급습하여 부락에 불을 질렀다. 달아나지 않고 고감히  단신으로 뛰쳐나오는 의병장을 수십여  인이 장살하였다 한다.


 

어찌 백성의 가엾은 뜻을 위해 죽은 자가 그뿐이었겠는가, 흐르는 물과 같이 연면한 산맥같이 앞뒤로 끊임이 없건마는, 여럿과 맺은 관계가 마치 저  장산곶 매의 발목에 묶인 매듭과도 같았고, 그 장한 뜻의 꺽임은 뒤댈 바탕이 부족하매 분한 노릇이었다. 폭풍이 몰아치는 날 서낭나무는 둥치를 떨고, 내부에서는 구렁이가 꿈틀거리는데 가지에  걸린 매가 날지 못하여 깃을 퍼덕이는 안타까운 여러 밤이 끝도 없이 계속되었다.

 

---------------------------------------------------------- 황석영의 '장길산'중에서 ---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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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여름 제주도자전거 하이킹을 할 때, 자전거 대여점 주인 아주머니 말하기를 ."매일 새로 들어오고 나가는 것까지 계산하면 하루 2~3천명정도 이 제주도를 자전거로 여행할 거야"

 

제주도 자전거 하이킹. 아직 젊다며 시도해 볼 만하다. 많은 이들이 해외로 여행을 가지만, 개인적으로 해외 여행을 가기 전에 반드시 국내에서 해봐야 하는 여행 가운데 반드시 이것을 해봐야 한다고 본다.

 

참고로 개인적 생각...해외 나가기 전 국내에서 해봐야 할 것. 

 

1. 국내 도보여행 -> 정말 힘들지만, 하고나면 뿌듯~~반드시 전국을 다 돌 필요없다. 자기가 사는 도만 돌아도 뭔가 다름을 느낀다

 

2. 지리산 등반 -> 말이 필요없다. '인간'을 알게된다

 

3. 울릉도 여행 -> 이거 의외로 힘들다. 절묘한 날짜맞춤이 중요하다

 

4. 자전거 하이킹 -> 무조건 도전해 볼 만 하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다른 사람에게 자전거 하이킹을 이야기하면 다른 여행과 비슷하게 돈, 일정, 준비물을 물어본다. 이에 대해 연결시켜 따져보면 아래와 같다.

 

1. 자전거를 현지에서 빌릴 것인가 아니면 가져갈 것인가. (가져가도 좋지만, 초보자는 하루 7천원하는 임대를 하는 것이 훨씬 낫다. 이것저것 정보도 얻을 수 있다)

 

2. 비행기를 이용할 것인가 배를 이용할 것인가. (저가 항공의 영향으로 비행기도 배랑 큰 차이가 없다. 단지 수도권에서 사는 사람이 인천에서 배를 이용해 간다면 색다른 맛을 느낄 것이다. 거의 크루즈여행이다. 저녁 7시 출발해서 다음 날 8시에 도착한다)

 

3. 텐트를 가져갈 것인가 민박을 이용할 것인가 (텐트도 재미있지만, 비가 오면 약간 곤란한 경우가 많다. 민박은 무조건 깎다보면 시장처럼 일정한 금액에서 타협이 된다.)

 

4. 혼자 갈것인가 여러 명이 갈 것인가 (제주도여행의 강점은 혼자가도 여럿이 된다는 것이다. 위에서도 말했지만, 수천명이 돌고돈다. 음료수 나눠먹고, 사직 찍어주다보면 바로 일행이 되어버린다. 혼자 제주도 여행을 갔는데, 거의 마칠 즈음에 10명이 되어버렸다.--;;)

 

5. 일정을 어떻게 짤것인가. (며칠에 걸쳐 가느냐에 따라 틀리다)

 

6. 스스로의 체력이 어느 정도 되는가. 혹 일행으로 갈 경우 체력이 조금 약한 사람이 있는가. (이는 5번항과도 밀접하다. 중간에 낙오하는 팀들도 많다)

 

이 6가지는 여행 가기전에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어느 사람은 무조건 떠나보면 된다고 말하지만, 몇번 가본 경험으로는 '아니다'가 정답이다.

 

우선 돈을 아끼겠다고 자전거를 가져갈 경우에는 비행기 이용이 힘들고, 배를 이용해야 한다. 인천에서의 배 이용의 경우, 색다른 재미는 있겠지만, 일정이 조금 빡빡한 사람은 그냥 하루를 보내게 되는 경우다.  체력이 안되는 사람이 갑자기 3박 4일로 완주하겠다는 계획을 짜게 되면 보나마나 중간에 낙오하게 된다. 심하면 움직이지도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편하게 자전거 일주도로로 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삼방산 주변이나 서귀포 진입로 처럼 갑자기 오르막길이 등장하는 곳도 있고, 자칫 비라도 내려 안개가 끼면 내리막길에서는 올라오는 차와 충돌할  수 도 있다.

 

그럼 뭘 어떻게 준비하고 가야 하는가..(처음 가는 사람 기준.^^. 사람마다 조금씩 틀림)

 

1. 비행기편을 이용해라. 체력적으로 도움이 된다. 제주도 자전거하이킹만을 목표로 삼는다면 인천, 목포, 완도 등에서 배를 이용할 경우, 체력 및 시간적 소모가 너무 크다. (물론 호남쪽에 산다면 목포 등서의 배가 더 유리하다)

 

2. 자전거를 빌려라. 하루 7천원정도로 스프링이 달리고 앞뒤 반사등이 달렸으면 음료수 걸이가 있고, 안장이 엉덩이에 딱 맞아야 한다.

 

3. 짐을 최소화 해라. 자전거 뒷자리에 가져가기보다는 짊어지고 가는 것이 낫다. 체력소모도 적고, 자전거를 핸드링하는 면에서도 효율적이다. (파티장을 가거나 하지 않는다면, 옷 갈아입을 일 거의 없다)

 

4. 지도 숙지는 필수다. 해안도로만을 탄다고 하더라도, 지도가 익숙치 않으면 엉뚱한 마을로 들어서게 된다.

 

5. 숙박은 날씨 상황 봐서 선택해라. 돈 아낀다고 무조건 텐트생활을 했다가는 비 온 다음날 더 고생이다.

 

6. 제주도 자전거하이킹 며칠 전에는 최소한의 워밍업을 해둬라. 정말 중요하다. 그냥 어느 날 바람쐬러 나가는 일이 아니다. 위에서 몇번 강조했지만, 중간에 체력 저하되고, 몸 이곳저곳 쑤시고 하면, 이런 생각밖에 안 든다. "내가 여행하는거야 유격훈련하는거야". 체력 좋은 이들도 이틀밤 자고나면 저 생각 든다. ^^;;

 

7. 야간에 움직이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제주도에는 신혼여행이나 기타 여행을 온 사람들중 대다수가 차를 렌트해 이동한다. 즉 그들도 제주 길에 초짜인 사람들도 많고, 자전거 하이킹족은 배려하지 않는 이들도 많다. 해가 떨어진다 싶으면 일정에 안 맞더라도 무조건 하이킹을 중지해라.

 

9. 조금 모자르게 가져가도 된다. 중간중간 편의점도 있고, 또 같은 하이킹족끼리 모자르면 서로 돕기도 한다.


제주도 하이킹은 재미있지만 또한 한편으로 힘들다. 누구는 섬 하나 도는데 뭐가 힘드냐고 말하지만, 제주도의 도는 섬도 (島)가 아닌 길도(道)를 뜻한다. 대학초에 이같은 사실을 망각하고 이틀만에 자전거하이킹을 하겠다는 엄청난(?) 망상에 빠져 도전했다가 기껏 제주시 근처에서 빙빙돌다 온 적이 있다.

 

스스로 시간의 여유와 체력에 대한 자신감이 있다면 (뭐 없으면 만들고 키우고..^^) 제주도 자전거하이킹을 한번 도전해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

 

아래는 가장 괜찮다는 5박 6일 일정을 다른 사이트에서 가져온 것이다. 경험자들의 경우 개인적으로 틀리겠지만, 처음 가는 이들이라면 저 일정이 가장 무난하다고 생각한다.

 

[ 제 1코스(1일) ] 제주시내 ~ 한림공원
타발로하이킹 -> 용두암 -> 해안도로 -> 이호해수욕장 -> 고내해안도로 -> 애월 -> 곽지해수욕장 -> 협제해수욕장 -> 한림공원

 

[ 제 2코스(2일) ] 한림공원 -> 사계해안도로 금릉석물원 -> 해안도로 -> 차귀도포구 -> 수월봉 -> 해안도로 -> 초코렛박물관 -> 모슬포 -> 마라도 -> 송악산 -> 사계해안도로

 

[ 제 3코스(3일) ] 사계해안로로 -> 표선 사계해안도로 -> 산방산 -> 안덕계곡 -> 중문관광단지 -> 월드컵경기장 ->외돌개 -> 서귀포시내,천지연폭포 -> 남원큰엉해안경승지 -> 영화박물관 -> 해안도로 ->제주민속촌

 

[ 제 4코스(4일) ] 표선 -> 우도 표선해수욕장 -> 신산리 해안도로 -> 온평리 혼인지 -> 신양해수욕장, 섭지코지 -> 성산일출봉 -> 우도 -> 우도8경 -> 산호해수욕장 -> 검밀레

 

[ 제 5코스(5일) ] 우도 -> 함덕 우도 -> 성산항 -> 종달리체험어장 -> 해안도로 -> 풍력발전단지(풍차마을) -> 미로공원 -> 만장굴 ->동복리 해안도로 -> 함덕해수욕장  

 

[ 제 6코스(6일) ] 함덕 -> 제주시내
함덕해수욕장 -> 제주민속박물관 -> 국립제주박물관 -> 사라봉 -> 관덕정 -> 타발로하이킹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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