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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수가 일본 오리콘차트에서 1위하는 것이 이젠 뉴스꺼리가 안된다. (오리콘 차트 자체의 신뢰도 떨어졌지만). 빌보드 200이나 글로벌 차트 진입 혹은 1위해도 사람들은 그게 뭐?’라는 반응이다. 2000HOT의 북경 콘서트 이후 24. 한국의 케이팝이 해외에서 활동하기까지의 9개 장면을 꼽아봤다. (극히 개인적이고, 추후 20개 장면 정도로 확대해볼 생각이다)

 

 

SM 엔터테인먼트 이수만, 자존심 구겼다…방시혁‧탁영준‧이성수, 모두에게 당했나

하이브(HYBE) 방시혁이 결국 SM엔터테인먼트 창업자이자 최대 주주인 이수만의 보유 주식 14.8% 전량을 4228억원에 매수하고 1대 주주로 올라섰다. 방시혁은 동시에 주식 공개 매수에도 나서 SM 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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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T 북경 콘서트

 

1. HOT의 북경 콘서트

 

19969월 데뷔한 HOT는 한국 아이돌의 원조로 본다. 연세가 조금 있는 분들은 소방차나, 서태지와아이돌을 아이돌로 보기도 하지만 이들은 체계적인 시스템이 아니기에 현재의 아이돌 개념에서는 벗어나 있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까지는 사실상 HOT 세상이었다. (젝스키스 등이 언급되기도 하지만, 대체제로서의 이야기다) 그중 한국 가수로는 사상 처음으로 200021일 중국 북경공인체육관에서 개최한 단독 콘서트는 한국 가요계의 한류 시작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 당시 한국 가수를 보호하기 위해 공안이 대거 투입됐고, 중국 CCTV 60여개 매체가 취재했다.

 

 

당시 가장 비싼 티켓값이 한화로 15만원 정도로 중국 직장인 한달 월급과 맞먹었는데, 전석이 매진되어 총 12000여명의 관객이 들어찼다. 이 공연이 끝난 직후 중국 대중매체들이 최초로 한류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이 공연은 중국 내 한국 대중문화를 알리는 역사적인 공연이다. 이후 업계에서는 한류라는 말을 마케팅 차원에서 활용하려 모색했고, 결국 케이팝을 대중적으로 사용하기 전 한류로 아시아 진출을 모색했다.

 

(물론 한류는 1990년대 말 중화권 중심으로 일부 사용되고, 1999년 문화관광부가 한국 대중음악을 해외에 홍보하기 위해 음반의 제목에 한류로 공식 사용했지만, 사람들에게 각인되지 못했다. 정부가 문화에 개입해 움직여서 제대로 기여하는 꼴을 보지 못했다.)

 

보아 일본 오리콘

 

2. ‘천재소녀보아의 일본 개척

 

14살의 나이로 한국에서 데뷔한 보아는 다음 해 일본으로 넘어간다. 보아의 일본 데뷔는 앞서 S.E.S의 일본 진출 실패를 맛본 SM의 주요 프로젝트였지만 초반에는 순탄치 않았다. 일본 대형 음반사 에이벡스와 계약을 맺고 홍보했지만, 반응이 없어 사실상 일본 활동 망했다라는 말까지 나왔다. 그러던 중 NHK가 주관하는 슈퍼 드림 라이브에 초청되어 라이브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데 여기서 댄스와 함께 완벽한 노래를 소화해 내 일본 대중들의 반응을 이끌어낸다.

 

이후 공개한 ‘LISTEN TO MY HEART’가 큰 반응을 얻었는데 오리콘 데일리 차트 3위에 올라가더니, 20023월 발매된 일본 정규 1집인 동명의 'LISTEN TO MY HEART' 앨범으로 한국인 최초로 오리콘차트 1위에 오른다. 또한 90주가 넘게 차트인을 했다.

 

그 이후 일본에서의 기록은 일본 오리콘차트 앨범/싱글/DVD차트 일간/주간/월간 한국인 최초 1, 일본 밀리언앨범 3장 보유, 7앨범(8) 연속 오리콘차트 1위로 일본 역대 여가수 3위 기록 보유 등.

 

보아의 오리콘차트 1위 이후 한국 가수들의 오리콘차트 진입이 이어지기 시작한다. 현재 오리콘 차트는 음원 시장을 반영하지 못하면서 영향력을 잃은 상태지만, 그래도 여기 진입을 많이들 따진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이 한국 가수의 오리콘 차트 1위는 이제 별 의미도 없고, 관심도 없다.

 

 

3. 케이팝 물 길 터준 일본 한류.

 

중국에서 처음으로 사용된 한류라는 말은 HOT 때문에 시작됐지만, 이후 이 흐름은 드라마와 영화가 가져간다. 그 중심에는 2003년 일본에서 방영된 겨울연가. 특히 배용준은 욘사마로 불리며 일본 중장년층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는다. 당시 일본 중장년층은 한국에 부정적인 인식이 있는데, 여성을 중심으로 이 같은 분위기가 희석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이런 드라마나 영화가 일본에서 한류를 이끄는 현상이 케이팝에 중요했던 이유는 일본이 세계에서 갖는 대중문화 영향력과 시장의 규모 때문이다. 영화나 드라마로 한국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한국음악을 받아들이는 통로를 넓혀줬다. 당시 일본은 한국 음악을 자신들의 음악보다 낮춰 봤다. 당연하다. 전 세계 2위의 음악시장을 가졌고, HOT 등 한국에서 활동하던 아이돌을 자신들의 아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중국 시장이 넓다고는 하지만 대중문화 영향력은 아시아에서 일본이 1위였다. 즉 중국에서 언급되는 한류와 일본에서 언급되는 한류의 무게가 다르다. 그런데 그 시장이 뚫렸고, 이는 케이팝 가수들이 들어갈 수 있는 통로를 넓혀준 셈이다.

 

4. SM, LA에서 SMTOWN으로 미국 시장 확대.

 

20109SM엔터테인먼트가 LA 스테이플스센터에서 SMTOWN 콘서트를 개최한다. 당시 SM엔터테이먼트는 40여명의 연예인을 비롯해 기자단, 스태프들과 함께 LA로 가기 위해 전세기를 띄웠다.

 

이 때까지만 해도 케이팝이란 말보다는 한류 음악이라는 말이 더 많이 사용되었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한국 대중음악은 여전히 아시아권을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보아, 동방신기 등이 일본에서 수만에서 수십만명의 관객을 모았지만, 아시아권을 벗어나면 힘을 쓰지 못했다. 설사 아시아권을 벗어나서 콘서트를 개최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좋아하는 한국인이 관객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그러던 중 SM타운의 공연은 미국에서 물량공세로 테스트를 해 본 셈이다. 도전이었다. SM타운이 월드투어라고 이름 짓긴 했지만, 당시 공연이 한국, 미국, 일본, 중국 등으로 꾸며진 것만 봐도 탈아시아가 당시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알 수 있다.

 

LA에서 개최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한인 사회가 가장 탄탄하게 자리잡고 있고, 관객 동원에서 실패 확률이 미국 타 지역보다 낮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관객 중 비한국인이 80%에 이르면서 미국 시장 진출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5. 동반신기 논란과 JYJ의 탄생.

 

2009년 동방신기 멤버 3명인 영웅재중, 믹키유천, 시아준수 3명이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를 상대로 전속계약 효력정기 가처분신청을 냈다. 이후 이들은 씨제스 엔터테인먼트를 만들고 JYJ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한다. 이들의 소송 등의 논란은 201211SMJYJ 양측의 합의로 종결됐다. (SMJYJ 활동 방해 등은 논외로)

 

이 사건이 케이팝 역사에서 왜 중요하냐면 JYJ가 국내 활동이 막히고, 일본(에이벡스와 계약 해지)에서의 활동이 어려워지면서 엉뚱하게 해외 콘서트에 주력하게 됐고, 이것인 케이팝의 활동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됐다. 즉 태국, 대만, 중국 등 아시아 뿐 아니라, 미국, 캐나다 등 기존 SM 팬들이 있던 북미 공략으로 탈아시아를 시작했다.

 

이후 2011년 스페인 바로셀로나, 독일 베를린 공연을 개최하며 국내 가수 최초 유럽 공연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2012년에는 케이팝 그룹 최초로 칠레 산티아고, 페루 리마 등 남미에서 공연을 개최했다. 2012년 국내 최초의 대규모 팬박람회를 개최해 당시 단일 행사로는 최대 규모 외국인 관광객 유치라는 기록도 세웠다.

 

싸이 빌보드 유튜브

 

6. ‘돌연변이싸이의 등장.

 

20127월에 퍼포먼스형 가수 싸이는 6번째 정규 앨범을 발매하고 타이틀곡 강남스타일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빌보드 차트 2위까지 올라갔으며, 유튜브 조회수는 현재 50억을 넘었다.

 

사실 강남스타일이 왜 해외에서 인기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확실하게 이야기하지 못하지만, 단순한 음악 패턴과 따라하기 재미있는 퍼포먼스 그리고 유쾌한 뮤직비디오로 정의하는 사람들이 많다. 즉 음악적 성과라기보다는 퍼포먼스 등의 보여주는 형태가 더 우선했다는 의견이다. 그렇다고 음악적으로 무시할 노래는 아니다. 단지 가사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는 외국인들이 좋아한 이유의 측면에서 보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강남스타일이 케이팝에서 갖는 가장 큰 의미는 빌보드 2위와 케이팝의 다양성 인지 그리고 유튜브를 활용한 케이팝 시장의 가능성 캐치라고 볼 수 있다. ‘강남스타일의 빌보드 차트 2위 진입은 보아의 오리콘차트 1위 당시와 비교하는 이들이 많다. 준비 상황, 음악적 스타일 등을 논외로 하고 우리가 들어가기 힘든 차트를 뚫었다라는 차원에서 보자면 이러한 비교도 얼추 이해가 된다.

 

 

물론 이전에도 보아, 원더걸스 등이 빌보드에 입성했지만, 2위는 당시로서는 한국 가요계에 어마어마한 충격이었다. 모든 분야가 그렇지만, 뚫기가 힘들지 한번 뚤어내면 어 저것도 할 수 있네라는 생각을 주게 된다. 칸국제영화제가 그렇고, 아카데미가 그렇고, 멀리 보면 박세리의 LPGA 우승이 그렇다.

 

동시에 케이팝은 아이돌만 있다는 선입견을 깨버렸다. 비록 아시아 중심의 케이팝이지만, 해외에서의 관심도 여전히 아이돌=케이팝이란 등식이 컸다. 이를 댄스 가수 한명이 깨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전에 공연과 음반만 내면 된다는 한국 시장에 유튜브가 갖는 잠재성을 인지하도록 했다. 이후 뮤직비디오나 영상을 만들 때 유튜브를 고려해서 만들고 마케팅이 이뤄지기 시작한다.

 

7. 유튜브 그리고 SNS, 한국 가요계의 글로벌 플랫폼으로.

 

싸이 강남스타일에서 확인한 유튜브 파워는 고스란히 한국 가요계 마케팅 방법을 바꿔놨다. 과거 방송에서 우선 공개한 뮤직비디오가 유튜브에 선공개했는데, 이는 이제는 가요계가 한국 대중을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닌 외국 대중을 타깃으로 전체적인 시스템이 전환됐기 때문이다.

 

물론 그 바탕에는 한국의 어마어마하고 편리한 인터넷망과 모바일 시장이다. 어딜 가든 와이파이 접속이 가능하고 그 속도는 사실상 세계 최고 수준이기 때문에 빠른 제작과 업로드, 다양한 콘텐츠로 분화해 올리는 상황이 그 어느 나라보다 빠른 상황이었다.

 

그러다 보니 현재 조회수 1억이 넘는 뮤직비디오가 343. 1억 이하 8천만 이상이 57개곡. 싸이의 강남스타일 51, 블랙핑크 뚜두뚜두 21, 킬디스러브 19, 붐바야 16, 하우유라이크댓 15, 방탄소년단 다이나마이트 18, 작은 것들을 위한 시 17, DNA 15, 아이돌 12억 등이다.

 

틱톡을 중심으로 한 SNS 전략 역시 마찬가지다. 전 세계 음악 시장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틱톡은 2023년 세계 3대 트렌드를 발표했는데 그 중 하나가 K콘텐츠 강세다. 가장 주목 받는 TOP10에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엔하이픈, 르세라핌, 뉴진스 등 케이팝 아이돌 그룹 5팀이 포함됐다. 여기서도 조회수 1억 단위로 나오고 있다.

 

그리고 이는 비단 유명한 가수가 아니더라도 케이팝이라는 장르를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8. ‘흙수저방탄소년단(BTS) 의 등장.

 

2013년 데뷔. 2017년 빌보드 핫100에 첫 진입 후 2020년 다이너마이트로 빌보드 1위 차지. ‘2의 비틀즈로 불리며, 미국에서는 비틀즈 상륙과 비슷하다고 평가. 매년 한국에 5조 이상의 경제 효과를 가져다주며, 한국의 해외 이미지 상승 창출은 숫자로 환원하기 어렵다고 평가 받는 그룹. 이들의 영향력은 한국 배우기로 빠지고, 한글 전파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멤버 지민이 자작곡에 소복소복이란 단어를 썼는데, 이를 두고 해외 팬들 사이에 난리. 한국 팬들이 이를 소복소복'(falling falling, soboksobok)은 커다란 눈송이가 아주 온화하게 아름다운 눈 침대를 만들며 바닥에 내려 앉는 것을 묘사하는 단어라고 자세히 설명했지만, 어려움이 발생. 이에 해외 팬들은 한국어의 다양한 표현력에 비해 영어의 표현이 제한적이라는 아쉬움을 토로”. (실제 한국이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로, 번역문학이 발달하지 않은 상황이기도 함)

 

사실 방탄소년단의 이야기는 굳이 여기서 길게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긴 하지만. 한가지 짚고 넘어갈 상황은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 등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지를 모르는 사람들은 한국인 뿐이라는 말이 있다.

 

 

9. ‘코로나19’ 케이팝을 위기에서 기회로.

 

20201월부터 전 세계를 마비시킨 코로나19 사태. 케이팝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공연 중심으로 흘러가던 한국 가요계는 모든 게 중단되었기에 중소 회사들의 폐업까지도 잇따랐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유튜브와 SNS를 통해 부활. 그리고 비대면 콘서트와 팬미팅은 오히려 음원과 음반 판매량을 증가시켰고, 일정 지역에서 콘서트를 하면 모을 수 있는 관객수의 한계를 초과해 전 세계 관객을 대상으로 콘서트를 개최하게 했다. 이는 지금까지도 온-오프라인 콘서트로 이어지게 했다.

 

YG가 블랙핑크 첫 라이브스트림 콘서트를 열 당시 전 세계 28만명이 관람. 방탄소년단의 비대면 콘서트인 맵 오브 더 소울 원은 전 세게 191개 국가 993천명이 시청. 실시간 라이브 공연 방방콘107개 지역 756600명이 시청.

 

실제로 코로나19 시작 해이던 2020년 케이팝은 역대 최고 수출 기록을 썼다. 당시 1~11월까지 음반 수출 금액이 2019년 대비 94.9% 증가한 2030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이후 꾸준히 상승하게 됐다.

 

- 아해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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