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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빈해원은 다양하게 유명하다. 군산 짬뽕의 선두주자이고, 문화재지정 중화요리집이다. 특히 영화 <타짜> <남자를 사랑할 때> 등을 찍었고, <맛있는 녀석들>를 비롯해 다양한 예능에도 등장한다. 그래서 한번 찾아가 봤다.

 

 

<食> 연남동 골드식당. 약간은 부족하지만 냉삼겹살의 맛은 역시.

맛 기준은 냉삼만 평가하면 10점 만점에 7점. 골드식당은 흔히 사람들이 찾는 연남동 식당들 중에서도 연희동 가는 방향 끝에 위치해 잘 모르는 이들이 많다. 그러다보니 주말에 다른 연남동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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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빈해원
빈해원 입구

 

군산 근대화거리에 있기에 찾아가기는 어렵지 않았지만, 주말에는 확실히 사람이 많다. 입구에 대략 5팀 정도 서 있기에 어 빨리 들어가겠는데했는데 오판이었다. 내부에 줄이 더 길었다. 빈혜원은 밖에 들어가는 문이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계산대 앞에 있는 문이 진짜 식당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즉 밖의 문은 훼이크 느낌이 강하다.

 

어쨌든 이날 앞에서 기다리던 이들이 포기하는 바람에 대략 30분 정도 기다리다가 자리를 잡았다. 방과 홀이 있는데 홀이 특이하다. 카지노 바카라에서 사용하는 듯한 커다란 탁자가 있고, 거기에 쭉 둘러 앉는다. 즉 옆에 앉은 이도, 앞에 바라보는 사람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대략 16명 정도가 둘러앉을 수 있는 자리이다.

 

군산 빈해원
이게 보이는 입구가 진짜 빈해원 입구다.

들어와서 보니 룸도 비어있고, 자리도 제법 있는데도 불구하고 줄이 긴 이유는 일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적었고, 여유있게 움직인 듯 싶었다. 물론 주말에만 바쁘고, 주말에는 한가해서 그러한 인원을 채용한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부가 꽉 차서 외부에 줄을 길거 서는 상황은 아니었다.

 

주문은 종이에 적어서 넘겨주면 된다. 간짜장과 군산짬뽕 그리고 볶음밥을 시켰다. 볶음밥은 특이하게 밥과 짜장소스가 따로 나왔다. 오히려 간짜장은 미리 소스가 부어진 상태로 나왔다.

 

빈해원 볶음밥
빈해원 군산짬뽕

 

볶음밥과 간짜장 그리고 군산짬뽕의 맛을 따로 평가할 필요는 없다.

 

이유는 아주 맛있거나, 아주 맛었거나 하지도 않은 그냥 평범한 수준의 중국집 음식이다. 볶음밥이 다소 고소한 느낌은 있지만, 이 역시도 어느 중국집을 가도 느낄만한 수준이고, 간짜장과 군산짬뽕 역시 보통의 짜장과 짬뽕 맛이다. 간혹 군산짬뽕에 해물이 많이 들어가서 국물이 진하고 풍부하다고 표현하는 이들이 있는데, 무엇을 보고 그렇게 느꼈는지 모르겠다. 물론 개인의 취향이니 비판할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맛있다는 짬뽕집과 짜장면집을 다녀본 결과, 여기는 오히려 타 지역의 유명 중국집보다 맛은 떨어진다. 그냥 보통의 동네 중구집 수준 정도라는 것이다. 오히려 면이 다소 불은 듯한 느낌을 줬다. 소스와 잘 어울리지 못한다는 느낌이다.

 

빈해원 내부
그냥 이거 구경하러 왔다고 생각해라.

 

물론 간짜장과 군산짬뽕, 볶음밥 이 세 가지만을 맛보고 빈해원이 맛집이다 아니다를 이야기할 수는 없다. 다른 음식은 안 먹어봤으니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세 종류는 아주 큰 기대를 하지 않고 가는 것이 좋다.

 

오죽하면 앞자리에 앉은 어느 아저씨는 도대체 블로그에 여기 맛있다고 글을 올리는 놈들은 입맛이 다 X맛인가라고 말해 웃음을 주기도 했다.

 

사실 빈해원은 현재 맛집이라기보다는 군산에 가면 그냥 관광지 정도로만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 영화를 찍은 공간이고, 군산에서 제일 오래됐고, 문화재 지정 중국집 정도로만 인식하면 될 듯 싶다. 그런 측면에서 한번 정도는 갈 만하지만, 줄이 길고 배고프고 맛집을 가고 싶다면 빈해원은 오히려 포기하고 다른 날을 노려보는 것이 좋다. 아니면 줄을 포기하고 그냥 내부 구경만 잠시 하고 나와도 될 듯 싶다. 이날 제 3종류의 음식값은 총 25,500원이다.

 

- 아해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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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지아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최근 이탈리아의 외교시설이 독일과 스페인에서 반달리즘의 타깃이 됐다고 밝혔다. 총리는 베를린에서 외교관의 차량이 불에 탔고, 바르셀로나 주재 이탈리아 영사관은 파손됐다고 전했다.
최근 기후 활동가들의 시위가 점점 과격해 지고 있다. 기후 위기에 대한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해서지만, 주요 미술관에 전시된 유명 예술가들의 명화를 표적으로 삼아 반달리즘 시위를 하는 것에 대해 갑론을박이다. 또 세계적인 오페라하우스 등에 대한 페인트 테러도 이어지고 있다. 반달리즘 시위의 확산이다. 기후 위기로 인류가 사라지고 난 뒤에는 예술 작품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명화 같은 예술품을 훼손하는 것이다.

 

 

양현석 징역 3년 구형. 한서희와 함께 연예계 ‘추잡한 상상력’ 불러일으키다

검찰이 아이콘 전 멤버 비아이(본명 김한빈)의 마약 투약 혐의 수사를 무마하려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양현석에게 징역 3년을 구형했다. 마약 투약 에이미 “잃어버린 10년”…그러나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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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리즘 시위
기후 활동가들이 이탈리아 밀라노의 라스칼라 극장에 페인트를 뿌리고 있다.&nbsp;AFP=연합뉴스

러시아군이 19세기 작곡가 표트르 차이콥스키의 우크라이나 영내 별장을 파괴했다. 자국 거장의 유산도 예외로 두지 않을 만큼 우크라이나 안에서 러시아군의 반달리즘이 횡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프가니스탄은 반달리즘의 대표적인 지역이다. 1978년 공산혁명과 이듬 해 소련의 침공과 탈레반 등장으로 많은 유적이 훼손됐다. 아프가니스탄의 국립박물관(카불박물관)에 전시된 문화재의 70%가 1990년 중반에 사라졌다. 2001년에는 탈레반의 최고지도자 뮬라 무하마드 오마르가 아프가니스탄의 모든 상(像)과 非이슬람 종교물을 파괴하라는 포고령을 내렸다. 반달리즘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탈레반 관료가 박물관에 들이닥쳐 진열장을 망치로 부수고 조각상들을 파괴했다. 가장 큰 사건이 2001년 3월에 바미얀 석불 2점(각각 36mㆍ55m)을 폭파한 일이다.

 

반달리즘 (Vandalism). 문화유산이나 예술품, 공공시설 등을 야만적으로 파괴하는 행위를 말한다.

 

 

그런데 이 단어의 시작과 과정을 보면 뭔가 억울한 일이 보인다. 반달리즘은 고대 게르만족의 여러 갈래 중 하나인 반달족(vandals)에서 비롯됐다. 5세기 초 반달족이 로마를 침략해 유적지를 파괴한 데서 유래한 것이다. 하지만 실제 역사는 반달족이 오히려 로마의 문화를 인정해 라틴어 등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려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왜 반달족이 예술품 파괴자라는 누명을 쓰게 된 걸까.

 

반달족은 오늘날 기준으로 독일 북서부 지방인 중부 유럽에 살다 4세기 중반 동방에서 온 훈족의 침입에 밀려 남하해 에스파냐 지방에 정착했던 민족이다. 이들은 바이킹처럼 해상 세력으로 성장해 북아프리카로 진출했고, 439년에는 오늘날 튀니지에 해당하는 카르타고를 수도로 삼아 반달 왕국까지 세웠다. 지중해 섬들을 하나씩 점령하며 세력을 키워간 반달 왕국은 마침내 455년 로마제국을 공격한다. 이들은 약 2주간 도시 곳곳을 약탈한다.

 

이때 로마에 있던 예루살렘 성전의 황금 식탁과 일곱 개의 촛대가 달린 황금 촛대 등 많은 보물이 약탈당했다. 화려한 조각상이나 장식품은 물론 신전 지붕에 입힌 금박까지 벗겨내 북아프리카 카르타고로 실어갔다. 여기세어 반달리즘이 유래된 셈이다.

 

 

촉법소년 만 13세 하향. ‘소년’ vs ‘범죄자’ ‘방점을 어디에 찍을까’는 피해자 시선에서.

촉법소년의 기준 연령이 기존 만 10세 이상에서 14세 미만에서 만 10세 이상에서 13세 미만으로 하향한다고 한다. 우선 개인적인 생각을 풀어놓기 전에 난 촉법소년 제도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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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한번의 약탈로 반달리즘이란 말이 만들어진 것은 반달족에게는 억울한 일이다. 학계에서는 이들이 예술품과 문화재를 약탈했을 뿐, 파괴한 적은 없다고 보고 있다. 당시 가이세리크 왕은 로마 교황인 레오 1세와 협상한 후 열린 성문으로 들어갔는데, 이때 협상 내용은 저항하지 않는 시민은 죽이지 않고, 숨긴 재물을 찾아내려고 고문하지 않으며, 도시에 불을 내지 않겠다는 약속 등이었다. 가이세리크는 반달족 군대에 약속을 지킬 것을 명령했다고 한다.

 

그리고 약탈이라는 것도 지금 시점이 아닌 당시 시점으로 봐야 한다. 반달족 뿐 아니라 모든 국가가 그랬고, 그것을 그들은 약탈품이 아닌 전리품이라 불렀다. 비단 반달족에게 국한된 것이 이상하다.

 

반달리즘이 현재와 같은 의미로 처음 사용된 것은 18세기 프랑스 대혁명 때다. 당시 혁명군이 구체제 의 예술품을 파괴하는 것을 보고 성직자인 앙리 그레구아르가 반달족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즉 유럽의 시선으로 반달리즘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약탈은 영국이나, 프랑스, 스페인, 독일, 네덜란드 등 수많은 유럽 국가들이 해왔던 일이 아닌가. 오히려 반달족의 행위는 더 야만적이고 원시적일 때 일어난 일이다. 오히려 관대하게 봐야할 시기라는 것이다.

 

그에 비해 유럽의 약탈은 얼마 안 된 이야기다. 그 때문에 아직도 같은 민족끼리 서로 죽이고 죽는 상황이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반달리즘이 아니라 유러니즘 또 등으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 또 일본도 마찬가지 아닐까.

 

지금도 세계 각지에는 한국의 문화재 약 21만점이 흩어져 있다. 그 문화재들이 알아서 세계여행을 떠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 아해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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