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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나쁘게도 내 주위에는 인기가 좋으면서도 늘 외롭게 사는 바람남, 바람녀들이 몇몇 있다.

 

입에는 늘 외롭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면서도 정말 외로운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정신적으로는 정말 사랑을 못해봐서 그런지 몰라도, 적어도 주위 상황은 외로운 것 같지는 않다.

 

그들에게 '사랑'은 거리다.

 

0m -> 애인사이.

 

100m -> 타인.



여자의 경우.

 

몇명의 케이스를 유심히 봤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관심있어 하는 남자를 언제나 50m에 둔다. 그리고 시시때때로 30m로 끌고오기도 하고, 70m로 잠시 내몰기도 한다. 하지만 절대 애인의 개념을 둔 0m로 끌고오지는 않는다. 타인의 거리인인 100m로도 절대 내보내지도 않는다. 언제 그 사이에 이들을 위치시킨다.

 

남자들은 자신이 30m쯤 들어오면 생각한다. "이제 이 여자와 사귈 수 있다"라고 그리고 0m를 향해 돌진한다. 그 순간 그 남자는 80m로 밀려난다. (100m로는 절대 안 내보낸다.)

 

이때 쓰이는 멘트다. "우리 그냥 좋은 친구사이를 유지하자 " "좋은 오빠로 남으면 안돼?" 등등이다.

 

간혹 남자들이 30m에서 착각하는 것은 자신이 그나마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이들은 앞의 여자만 보지, 옆라인에 자신과 같이 30m 선에 서 있는 다른 남자들을 보지 못한다. 물론 50m에 대기상태로 있는 남자들도 있지만.



남자의 경우.

 

위의 경우와 비슷하지만 조금 다르다. 남자들의 경우에는 여자들에게 실질적인 위치는 30m 혹은 50m인데, 정신적인 위치로는 0m다.

 

자신이 아는 여자들에게 은연중에 "너는 0m 즉 내 여자친구야"라는 인식을 시킨다. 하지만, 역시 30m에서 80m사이에서 그때그때 조절할 뿐이다.

 

이성관계에서 좋은 친구, 좋은 선후배는 존재하지만, 가끔은 자신이 상대에게 어떤 존재감으로 있는지 확인하는 것도 필요한 듯 싶다. 특히 자신이 조금이라도 관심있어 하는 상대라면 말이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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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도발을 할 때마다 아쉬운 것이 있다. 일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세칭 한류스타들이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주장을 내세워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배용준은 독도문제에 대해 자신의 홈페이지 "독도는 대한민국 영토이다"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지만, 일본 언론들은 "욘사마 양국에 냉정한 대처 요구"에 초점을 맞춰 보도했었다. 그 이후 이세은이 일본 방문때 "독도는 한국땅"이라는 발언을 했고, 그 이후에는 내가 관련 뉴스를 제대로 봤는지 모르겠지만,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일본에 영화 혹은 드라마를 홍보하러 가는 길에 뜬금없이 태극기 흔들고 "독도는 한국땅"이라고 하는 것도 이상하다. 하지만, 자신의 홈페이지를 비롯해 비공개 채널로라도 충분히 "한국의 스타인 우리들은 이러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라고 밝혀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들이 한마디 한다고 해서 갑자기 일본이 독도에 대한 미련을 버릴 것도 아닐 것이다. 도리어 전체주의 국가로 다시 변해가는 일본이 한류를 끊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 문제로 주변사람과 이야기를 해봤는데 대충 아래와 같은 결론이 나온 듯 싶다.

 

"일본이 한국의 영토를 계속 넘보는 이유는 한국민이 자신의 영토라고 '지속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이 한번씩 발을 내딛을 때마다 '단기적'으로 우리 영토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일본이 넘봄으로써 독도는 한국땅이라는 것이 한국민들에게 각인되는 듯 싶다. 일본의 독도에 대한 헛짓꺼리는 근본적으로 한국민의 의식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한류스타의 적극적 태도에 대한 것은 단지 아쉬움이라면, 한국민의 단기적 관심은 안타까움일 것이다.

 

- 아해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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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야기다. 올 세계문학상을 받은 이 책은 내용에 대해 의견이 분분할 수는 있어도 가독성 하나는 뛰어나다. 그리고 축구에 대해 의외로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어 부가적인 즐거움도 준다. 아침부터 뜬금없이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이유는 어제 밤에 다 읽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내용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내용은 간단하다. 서로 축구를 좋아하다가 만난 한 남자와 여자가 우여곡절끝에 결혼했다. 그런데 여자가 뜬금없이 또 결혼을 하겠다는 선포를 한다. 지금의 남편도 사랑하지만, 또 사랑하는 남자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래서 두집살림을 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선포한다. 첫번째(?)남편은 팔짝 뛰지만, 여자를 사랑하기에 이혼도 못하고 여자가 다른 남자와 또다시 결혼하는 것은 본다. 두번째 남편은 이러한 상황을 순순히 받아들인다.

 

아이를 낳고 여자는 첫번째 남편이 누구의 아이냐고 추궁하자 여자는 당당히 말한다. "이 아이는 내 아이다".

 

두집 살림. 흔히 남자들에게 겨냥된 말이였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는 여자에게 지칭되며 그것도 숨기는 것 없이 공개된 형태도 이뤄진다.

 

"사랑은 하나고 결혼도 한 사람과 이뤄지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라는 사회의 기본 통념에 대한 도전이라는 평도 있었지만, 정확히는 남성중심의 '살림 차리기'행태가 여자로, 그리고 공개적으로 이뤄지는 쪽으로 이동된 것 뿐이다. 그런데 소설에서 그리고 읽은 이들의 평가에서 '미친 짓' 혹은 '현실에서 이뤄질 수 없는 일'로 드러나는 것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저자가 쓰는대로 따라가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일면 수긍되는 면도 있었다. 사랑은 정말 한 명에게만 일 어나는 감정일까.(몇년전 CF처럼 사랑이 이동하는 것이 아닌 분산되는 것)

 

결혼이란 사회적 제도는 정말 필요하며, 그것이 감정을 구속시킬 수 있을까.이 소설이 던지는 문제다. 그리고 난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생각해봐도 답이 나오지도 않았다.  빈번히 이혼이 일어나고, 결혼을 하지 않는 독신들이 늘어나는데 사랑과 결혼이 전통적(?) 의미로 사람들에게 계속 남아있을까하는 점이 쉽게 자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랑과 결혼. 아무래도 부부클리닉을 다시 봐야겠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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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이야기는 아니다. 며칠 전 친구와 포장마차서 술을 마시다 옆 테이블에 앉아계시던 한 시각장애인 안마 아저씨의 넋두리다.

 

수년간 강남의 한 안마시술소에서 일을 했다는 그 아저씨는 생존과  반듯하게 자라고 있는 딸을 위해서, 퇴폐업소라는 것을 알지만 그곳서 일했다고 한다. 성매매특별법이 발효되고 난후, 아저씨는 안마시술소 업주들 입장에서 정부를 비난했다고 한다. 어쩔 수가 없었다.

 

건전한 안마시술소가 현실적으로 거의 없는 마당에 아저씨가 살아가는 '자본'을 마련해주는 공간이였기 때문이다. 당시 군포에서 시각장애인 안마사들이 안마시술소 업주들이 잡혀간 것에 대해 경찰서 앞에서 시위를 하는 뉴스도 나오곤 했던 때였다.

 

그런데 아저씨는 2005년 가을을 넘기면서 안마시술소에서 쫓겨났다고 했다. 강남지역에 안마시술소는 점점 늘어나는데, 그곳어 진짜 '안마'를 하는 시각장애인들은 모두 길거리로 나오고 있다고 한다. 아예 처음부터 퇴폐적 행위를 아가씨들이 하기 때문이고, 손님들도 시각장애인 안마사를 찾지 않는다고 한다.

 

아저씨는 다른 지역으로 옮겨갔지만 다시 일을 그만두고 이제는 다른 살 궁리를 찾아보고 있다고 한다. 아저씨의 딸은 이제 고등학생이라고 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술 한잔 권하고 바로 일어나셨다. 딱 세잔만 마시고 나가셨다.

 

안마는 정확히 안마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으면, 현재 안마시술소라고 내건 퇴폐업소도 자격증 소지한 안마사를 채용하지 않으면 '퇴폐업'과 별도로 불법 안마행위로 고소당할 수 있다.

 

안마사 자격은 의료법 제61조 제1항 보건복지부령 제30호 제3조의 요건을 갖춘자에 한하여 발급되며 시각장애인만이 취득가능하며, 자격취득을 위해선 고등학교에 준하는 시각장애특수학교(맹학교)나 보건복지부장관이 지정하는 안마수련기관에서 교육과정을 이수하여야 한다.

 

그런데, 이 시각장애인들이 그들이 한때 살고자 억지로 보호해주었던 안마시술소 업주들에게 쫓겨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업주들은 퇴폐업과 더불어 불법행위를 자행해도 그 아무도 제재를 가하지 않고 있다.

 

시각장애인들이 퇴폐업소에서 그들의 삶을 영위해야하며, 그곳에서조차 버림받는 사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될지 의문이 들었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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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연쇄살인사건이 오늘로써 공소시효가 만료된다. 내일부터는 범인이 전면에 등장해 "내가 죽였소"라고 외치고 다녀도, 법적으로 그를 구속할 수 있는 방법이 없게된다. '공소시효' 이 제도가 해석하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살인 등 특정범죄에 대해서는 필요가 없는 것 같다. 여하튼 범인을 못잡고 끝난 '화성연쇄살인사건'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가슴 아픈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내가 기억하는 '화성연쇄살인사건'…그리고 2009년.

2006년 4월 2일 화성연쇄살인사건 공소시효 만료와 함께 난 < 내가 기억하는 '화성연쇄살인사건' >이라는 글을 올렸다. 현재는 1994년 행정구역 편입으로 안산시에 살게되었지만, 지금 그 자리는 당

www.neocross.net

 

살인의 추억 화성연쇄살인사건

 

화성연쇄살인사건이 한창 일어날 때, 나 역시 화성에 살았다. "여자 혼자 다니지 마라" "빨간 색 옷 입지 마라" 등등의 말로 분위기가 흉흉해졌고, 중학교, 고등학교 학생들은 오후 3~4시만 되면 모두 집에 돌려보냈다. 그것도 절대 혼자서는 못 가게 하고, 반드시 동네별로 묶어서 보낸 것으로기억한다.

 

화성군 (지금은 시로 승격)은 가본 사람은 알지만 굉장히 넓은 지역이다. 지금도 서울시보다 넓지만, 당시에는 현재 안산시, 수원시, 군포시 등으로 편입된 지역까지 포함되어 있으니 그 규모가 어떨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때문에 화성연쇄살인이 발생하고, 이후에 최근 여대생살인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현장을 가본 사람들은 "이러니 어떻게 미연에 방지할 수 있나"라는 말을 내둘렀다.

 

 

내가 살았던 곳이 화성이긴 해도, 화성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난 지역과는 다소 동떨어진 곳이였다. 그런데 단지 화성에 산다는 이유로 다른 시에 가면 나에게 "무섭지 않느냐"라는 질문을 하곤했다.

중학교 수련회를 제주도로 갔는데, 관광 오신 어른들이 "어디서 왔으냐" "화성에서 왔다" "아니 그 무서운데 어떻게 사느냐"라는 질문이 몇번이나 이어졌다.

 

동네 선배가 군에서 휴가나와 들려준 이야기는 더 어이없었다. 최전방에서 근무했던 선배는 북한쪽에 선전방송을 하는데, 북한군과 방송으로 말을 주고받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북한군이 "너는 어디 사냐"라는 질문에 "화성에 산다"라고 하니, "아 그 살인사건 일어나는데"라는 답변이 돌어왔다고 한다.

 

화성연쇄살인으로 인해 난 굉장히 무서운 지역에 사는 간큰 학생이 된 셈이다.

 

오랫동안 잊고있던 이 사건이 다시 떠오른 것은 도보여행중에 본 영화 '살인의 추억'때문이다. 그리고 연이어 쏟아진 기사들로 어릴 적 내가 살면서자세히는 몰랐던 내용들도 알게 되었다.

 

나에게는 직접적인 관계는 없었지만 다양한 기억을 남긴 화성연쇄살인사건. 그러나 이 사건의 범인은 공소시효와 관계없이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

 

미결사건의 선례는 또다른  가해자와 피해자를 양산하며 '해결못한 완전범죄'는 모방범죄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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