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오락성 영화다. 의미를 주고자 하면 한없이 줄 수 있고, 의미따위는 집어던지고 보자면 그냥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좋은 영화다. 초등학교때 종종 책이나 TV에서 보던 권선징악형 만화라고 보면 가장 무난하다.


돌연변이 인간들에게 극한 공포감을 느끼는 아주 평범한 인간들. 사실 현실에서도 느끼지 않는가. 미친 도사견 한 마리가 도심 한 가운데 풀려 돌아다닌다면, 총이나 방어할 무기가 없는 한, 사람들은 무한한 공포를 느낀다.


실제 있었던 일이지만, 극장에 뱀 한마리가 풀려있다는 말을 들으면 극장안은 순식간에 공황상태에 빠진다. 뱀 한 마리에 말이다.


그런데 그런 류의 인간이 수십명이 나와 아주 평범한, 총밖에 쏠 줄 모르는 인간들과 대치한다. 정말 공포스럽지 않은가.


제목을 달때 난 전쟁의 시작이라는 말이 이상하게 머리에 떠올랐다. 영화는 3편으로 끝나고 최후의 전쟁일지 모르지만, 실상은 정말 돌연변이들이 많이 나타날 여지가 있는 세상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우리와 아주 조금 다른(?) 장애를 안고 사는 이들에게도 이질감을 느끼고 사는데, 정말 X맨과 같은 이들이 나타난다면 어떻게 반응할까.


조금 더 편하자고 만들어 놓은 모든 것들이 우리를 변화시키고 있으니 말이다.


- 아해소리 -



영화관련 몇몇 블로거들의 글....


http://blog.naver.com/kdh44u/500057718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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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daum.net/kangdante/8558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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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우성과 엄정화가 나오는 '결혼은, 미친 짓이다 (이하 결미)'는 야한 영화다. 화면 자체도 야한 내용이 자주 뿌려지지만, 내용 역시 받아들이기 힘들정도로 야(夜)하다.


온통 밝고 아름다운 삶으로 치장되어야 할 세상에 '결미'는 받아들여지기 힘든 상황을 참으로 밝게 그렸다. 아마도 기혼자가 이 영화를 본다면, 자신의 배우자를 한번 더 쳐다볼 지도 모른다. 그리고 "당신도 혹시?"라는 농담반 진담반의 말을 던질런지도 모른다.


처음 결미를 봤을 때, 가장 마음에 와 닿은 대사는 이거였다.


누구와 결혼을 할까 고민하는 엄정화에게 감우성이 던진 말이다. "일단 나를 포함해서 가난한 놈들은 모두 빼"


결혼을 목전에 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말은 어처구니가 없는 대사다. 돈이 뭐가 문제냐고, 일단은 사람은 사랑해야 하지 않냐고 반박할 것이다.


사실 원론적으로도 맞고, 실제 결혼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봐도 맞다. 돈이 없어서 하는 고민과 사람이 싫어서 하는 고민은 다르다. 전자는 돌파구라도 있지만, 후자는 막막한 터널이다. 때문에 결혼한 많은 사람들이 (물론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지만) 결혼은 사람이 일단 좋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미혼인 상태에서 결혼을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이들, 즉 현재 자유로운 삶을 영유하고 있는 이들의 경우에는 이 말은 절실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특히 요즘처럼 여성이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독립을 과거에 비해 손쉽게 이룰 수 있는 시점에서, 자신이 현재 누리고 있는 자유로운 삶이 결혼과 동시에 없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경제적인 부분을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다.


이런 부분은 한 결혼정보회사에서 언제 결혼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많은 남성들이 "경제적으로 안정될 때"라고 답한 것에서 볼 수 있다.


현대에서 결혼은 상대적인 것, 즉 상대가 무엇인가를 나에게 요구할 것인지를 직감적으로 판단해야 순조롭게 이뤄진다는 것을 감안하면, 남성들은 여성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알고, 그 요구사항을 충족시켜야 자신이 원하는 여성과 결혼한다는 것을 느끼며 저런 대답을 한 것이다.


어쨌든 '가난한 놈'에 대한 감우성의 대사는 원론적으로 틀리고 현실적으로 맞다는 이중성을 과감히 내보였고, 그에 대한 근거를 엄정화가 부분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결미는 또한 여성의 이중심리 또한 보여준다. 결혼하고 싶은 남자와 연애하고 싶은 남자를 동시에 소유하고픈 마음말이다.


엄정화는 본 남편에게는 현실을 맡기지만, 감우성에게는 자신이 꿈꿔왔던 어릴 적 꿈을 맡긴다. 주위 결혼한 친구나 후배들에게서 간혹 이런 것을 느낀다.


"내가 바랬던 결혼생활은 이런 것이 아닌데..난 어떤 결혼생활을 하고 싶었는가 하면 말이지~ "로 연결되는 말들은 현실의 여성들은 말로만 끝냈지만, 결미에서의 엄정화는 행동으로 옮겼다.


어떻게 보면 남자가 바람피는 대다수는 욕망의 분출에서 시작하지만, 여자가 바람피는 대다수는 현실속 결혼에서 탈피해 위에서 말한 '동화속 결혼'을 꿈꾸기 위해 시도하는 것일런지도 모른다. (거꾸로도 존재하겠지만)


어쨌든 결혼은 미친 짓이라고 말한다. (누가? 기혼자들이..) 영화처럼 나도 모르게 배우자가 바람피고, 정신적으로 다른 이에게 의지하며, 혹은 다른 사람의 배우자가 자신에게 뭔가를 심하게 갈구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현실속에서 알게된다면 정말 미친 짓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 미친 짓때문에 태어나고, 사회가 이 미친 자들에게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더 이상하고 생각되지 않는가.


또 살아가는 것 자체가 미친 짓일런지도 모르는데, 그 안에서 미쳐봐야 얼마나 또 미치겠는가.



-아해소리-



* 아래는 결미에 대한 블로거들의 글



http://blog.daum.net/namiand/75398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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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naver.com/jy200277?Redirect=Log&logNo=9612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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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피아니스트. 2002년도에 제작되었으니, 영화 제작속도가 빨라진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오래된' 이야기를 하는 것일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연히 다시 보게 된 이 영화는 여전히 힘이 있었고, 삶이 있었다.


내용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1939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활동하던  유대계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에드리언 브로디)의 이야기다.


제 2차 세계대전중에 스필만이 허기와 추위, 고독과 공포속에서 삶의 끈을 끝까지 놓지 않으며, 결국은 그의 선율을 전쟁이 끝난 후에도 많은 사람에게 들려주게 된다.


영화 전체의 줄거리와 그에 따른 개개의 감정은 이야기하기 어렵다. 지루할 수도 있겠고, 전쟁과 삶, 죽음 등에 대한 개개의 실체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느끼지 못한 이들에게는 지루한 하나의 드라마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속에서 나오는 피아노의 울림은 다르다. 난 피아노의 선율이 아름다운 것은 인정하지만, 각각의 곡들에 대해 감흥을 쉽게 받지 못한다.


어떤 상황에서 내 감정에 부합된 곡이 울려나오면, 그때그때마다 그 곡에 심취될 뿐이다. 물론 다시 그 곡을 구해서 듣는다고 해도 그 심취된 느낌을 다시 가지지는 못하곤 한다.


음악은 상황이라는 생각이 든다. 연인과 헤어질 때, 길거리에서 들은 음악은 평생 가슴을 저미게 만든다. 어떤 일을 성공시켰을 때 우연히 라디오에서 듣게되는 음악은 힘들때마다 버팀목 역할을 해준다. 바다에 가서 푸르름과 광대함에 넋을 잃는 순간 귀에 들려오는 음악은 늘 설레게 만든다.


이런 면에서 스필만이 영화 후반에서 독일장교앞에서 보여준 연주는 '삶'이라는 상황과 맞물려 강한 느낌을 줬다. 처음 극장에서 이 영화를 봤을 때, 이 마지막 연주장면은 전율에 가까웠고, 수년이 지나 다시 본 그 장면은 현재의 나를 보게 만들었다.


솔직히 화면 자체도 이런 느낌을 강하게 주기위해 인위적으로 설정됐다.


폐허가 된 건물속에서 한줄기 달빛이 들어오며, 그 안에서 한 피아니스트가  전쟁속 적 앞에서 생존을 위해 연주를 해야하는 모습.


하지만 눈에 보이는 이 인위적인 연출은 가슴이 설레이고 몸에 떨림을 느끼는 것에 방해가 되지 않았다. (뛰어난 연출과 뛰어난 연기다)


그 곡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극장에서 나올때도 찾아본다고 한 것이 아직도 그대로다.

그러나 분명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지금껏 내가 본 피아노 연주중에 '영화 피아니스트'의 그 장면은 단연 가장 아름다운 연주임은 분명하다.


살기 위한 연주만큼 절실하고 아름다운 것이 과연 존재할까.



- 아해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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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소극장 연극을 봤다. 소극장 연극은 보는 동안은 즐거움을 보고나서는 유쾌함을 느낀다. 내용도 내용이려니와 배우들의 표정 하나하나를 읽을 수 있고, 더불어 숨소리까지 느껴지기 때문이다. 대형 극장에서 펼쳐지는 공연들을 보러갈때 '나'는 수동적 관객이 되지만, 소극장에서는 나 역시도 극에 참여하는 인물이 된다. 소극장에서는 나의 동작, 나의 환호가 그대로 배우들에게 전달되고, 다른 보는 이들에게도 전파되어 극을 움직일 수 있지만, 대극장에서는 이런 행위가 불가능하다.


16일 저녁에 본 연극 해피투게더는 정말 유쾌상쾌했고, 여러모로 기억에 남는 연극이 될 듯 싶다. 내용의 줄거리는 어렵게 돈을 모아 이곳저곳에 기부해 온 한 할머니의 집에 도둑이 들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다. 보다보면 재미도 있고, 찡한 기분도 느낄 수 있다. 일단 배우들의 감정몰입이 상당했고, 그것이 그대로 보는 이들에게 전달됐다는 점이 뛰어났다.


극중인물들은 하나같이 자식을 버렸거나 버림을 받은 이들이 주축을 이룬다. 사회적인 상식으로는 이들은 전부 불행한 사람들이다. 때문에 즐거움을 느끼는 것 조차 가련해보이고, 슬퍼보인다. 그런데 비록 연극이지만, 이 상황에서 이들은 그것 하나하나를 진짜 기쁨으로 풀어나가려 하고, 보는 이들에게 이를 설명한다. 왜 그들이 슬프지만 기뻐하며, 사람들에게도 왜 기쁘게 살아가야 하는지 말이다.


세상 사람들중 불행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살아갈 수는 없다. 권력이 있든 돈이 있든, 스스로 행복감을 무한하게 느낀다는 사람조차도 스스로때문에 혹은 주위환경때문에, 아니면 타인의 영향으로 어쨌든 불행을 느끼게 된다. 바로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행복'이라는 단어가 존재함을 가끔 잃어버리는 듯 하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영화  '파니 핑크'에서 이런 장면이 나온다. 주술사 오르페오는 주인공 파니에게 술이 절반쯤 들어있는 잔을 들어보이면 묻는다 "잔이 반이 차 있어, 반이 비어 있어?" 파니가 답한다 "비어있어" 그 때 오르페오는 파니에게 말한다. "왜 지금 네가 갖고 있는 것들은 생각하지 않지? 그것조차 없는 사람들이 있어"


맞는 이야기다. 어떻게 세상을 보느냐에 따라 스스로에게 부여된 불행을 줄이느냐 늘이느냐가 결정된다. 연극 해피투게더는 그 불행이 줄어들게 하는 방법을 설명해준다. 정말 해피하게 말이다. ^^.


만일 스스로가 여유가 없다면 한번쯤 권하고 싶은 연극이다.


ps1. 이 연극의 또 하나의 특징은 시간을 준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7시 30분에 연극이 시작한다면 반드시 7시 29분까지는 죽어도 입장해야 볼 수 있다. 여타 공연처럼 10~20분 딜레이 되는 경우가 절대 생길 수 없고, 생겨서도 안된다. 그 이유는 공연을 보면 알게 된다. 이런 공연이 무한히 생기기를..


ps2. 실제 바깥풍경을 세트로 이용하는 과감성을 보인다. 아마 해피투게더가 가지고 있는 결정적인 웃음 체크포인트가 아닌가 싶다. 다시 생각해봐도 기발한 아이디어다.


ps.3. 위에서 이야기한 바깥풍경을 이용한 과감성때문에 에피소드도 많이 생길 듯 싶었다. 만일 주위에 의사등장 장면에서 정말 엠블란스라도 지나가면 그야말로 금상첨화.^^...16일 공연때는 진지한 장면에서 커다란 나방 한마리가 공연장을 휘집어 놓았다. 그대로 진지하게 공연하는 배우들과 나방 피하고 잡는 관객들의 모습으로..^^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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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코드에 국내영화가 밀린다고 말한다. 물론 여기에 빠지지않고 등장하는 것이 스크린쿼터제. 하지만 아무리 봐도 그것과는 무관하다. 관객들의 호기심, 그리고 이미 엄청난 판매량을 자랑한 소설이 있기에, 예상된 일이였을 뿐이다.그 와중에서도 200만명을 돌파한 사생결단은 예고편과 대략의 내용 그리고 출연진만 살펴봐도 일단 구미가 당기는 영화다.


사생결단은 어둡다. 어두운 세상의 어두운 사람들을 그리다보니 밝은 대낮 씬이 나와도 어둡게 보인다. 아니 도리어 밝은 분위기는 영화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선글라스는 어둠속 사내들이 밝은 빛을 피하기 위한 몸부림으로 보인다.


마약을 파는 자와 그 파는 자를 잡는 자. 그 사이에 거래가 이뤄진다. 그 거래가 참 통쾌하다. 겉으로는 그 둘의 거래는 영화속에서 단 두 사람의 거래로 보였지만, 사회에서 무수히 일어나는 조직간, 사람간의 부도덕한 거래를 그대로 옮겨놓고 관객에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통쾌하다. 그 장면을 그렇게 직접적으로 와닿게 보여주는 것이 통쾌했다. 그리고 현실을 생각하면 씁쓸했다.


영화를 보고나서 나오는 길에 어느 한 여자관객이 친구에게 말했다 "마약은 끔찍할 것 같아. 추자현 몸에 벌레 기어가는 것 봐. 그런 느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 끔찍해"


틀렸다. 마약은 달콤하다. 달콤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찾는 것이다. 그보다 더 고달픈, 더 끔찍한 느낌으로 살아가는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찾는 마약은 그 어느 것보다 달콤하다. 마약에 빠진 추자현은 슬픔 몸으로나 살지만, 마약을 팔며 현실에 존재한 사람들은 죽게된다.


누군가 말했다. '사생결단'이라는 제목을 참 잘 지었다고. 아마 그 영화를 보고 그 제목이 정말 잘 지어졌다고 생각한다면, 그도 지금 살아가는 것이 '사생결단'의 의지를 은연중에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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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완 감독이 배우로 출연했기에 화제가 되었던 짝패(감독 류승완, 제작 외유내강)가 그 모습을 보였다. 8일 용산 CGV서 기자시사회를 개최한 짝패는 서울 액션스쿨과의 공동제작으로 현란한 액션을 보여주기를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오로지 류승완을 위한 영화로 멈춰버렸다.


영화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오랜 우정을 쌓아온 친구 왕재(안길강)를 자신의 이익때문에 죽인 필호(이범수)에게 또다른 친구인 태수(정두홍)와 친구 동환의 동생 석환(류승완)이 복수를 하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짝패는 다소 억지스러운 면이 있지만, 어두운 배경과 현란한 액션, 그리고 아름다웠던 과거의 우정을 회상하는 장면이 주를 이룬다.

여기에 정두홍과 류승완을 중심으로 한 현란한 액션이 눈앞에 펼쳐진다. 비보이들을 비롯해 야구부등이 등장해 100대 1로 싸우는 장면이나 고급요정 운당정에서 펼쳐지는 라스트 액션은 일단 눈은 즐겁게 한다. 그리고 이범수의 잔인한 변신 역시 기존의 그가 맡은 역과 대비해 의외의 장면들을 선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배우로서 변신해 능청스러운 연기를 자연스럽게 한 류승완을 빛나게 하기 위한 상황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미 아라한장풍대작전이나 바람의 파이터 등에 배우로서 면모를 보인 정두홍 감독은 액션이외에 감정표출등의 연기에는 쉽게 동화되기 어려웠고, 왕재의 아내로 나오는 김서형은 까메오 수준으로 나와서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조차 짐작하기 어려웠다.


짝패는 순도100%의 아날로그 액션을 주장하지만, 허황된 아날로그 액션은 CG로 그려진 액션과 별 차이가 없다.


기대가 컸었기에 실망도 컸지만, 그만큼 류승완과 정두홍의 만남은 영화광들의 기대를 높혀놨던 것은 사실이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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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는 우리를 가르칠 수 있습니다.
계몽하고 영감을 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되려면,
우리가 그런 목적으로 사용해야합니다.
그러진 않는 한,
TV는 바보상자에 불과할 뿐입니다…!
굿 나잇 앤 굿 럭.

- 굿 나잇 앤 굿 럭 中 ‘에드워드 머로우’ -

'굿 나잇 앤 굿 럭'...영화에 대해 잠깐 소개를 해야겠다. 영화의 배경은 1950년대 초반이다. 레드 콤플렉스가 미친 듯이 세상을 뒤집던 시대다. 미국의 조셉 맥카시 상원의원의 어이없는 발언들과 행동으로 사람들은 숨죽이며 살아야했고, 진실을 기록하고 말해야 하는 언론들 역시 자신의 펜대를 부러뜨리고 혹은 목소리를 죽여가며 보도를 했던 시대였다. 이영화는 이때 이런 매카시즘에 맞서 언론의 힘을 보여줬던 에드워드 머로우 뉴스팀의 이야기를 그렸다.


우리는 TV를 바보상자라 부른다. 능동적으로 정보를 습득해야 하는 글쟁이들의 공간인 신문과 잡지와는 다르게 TV는 수동적으로 있어도 모든 정보를 아주 다이나믹하게 사람들에게 주입시켜준다. 때문에 아차하고 스스로의 정신을 놓는순간 시간 가는줄 모르고 빠져들게 된다. 그런데 이런 '바보 상자'인 TV에 대해 머로우는 그것을 탈피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다. 아주 간단하게 말이다. 우리가 바보상자가 아닌, 인간에게 유용하게끔 인간이 그러한 목적을 가지고 사용하면 된다는 말을 하고 있다.


우리는 시청자의 입장에서 TV프로그램을 비판하지만, 실상 그 비판과는 달리 무의식적으로 흥미만을 쫓고 있다. TV에서 우리는 무엇인가를 얻길 바라지만, 그 무엇인가에 대한 선택권을 스스로 가지려 하지 않고, TV프로그램 제작자에게 맡기고, 다시 그것을 비판한다. 철저히 수동적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한 TV의 영향 등이 아닌 '진실을 말하는 용기'와 그에 따른 사회적인 변화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TV저널리즘을 놓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솔직히 영화평을 잘 할 줄 모르는 내가 이 영화의 시사회를 보고와서 이렇게 끄적이고 싶었던 이유는 바로 '1950년 초반'의 논리와 주장이 신기하게도 '2006년'의 상황에 적용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TV저널리즘의 영향력과 폐단에 대해 작년 말과 올해 초에 절실히 접했다. 황우석 교수 사건이 그것이다. PD수첩과 YTN의 보도는 TV가 접근해야 갈 방향과 언론윤리가 어디까지 지켜져야 하는지를 일반인들에게 알려주었고, 그 영향력이 세상을 어떻게 이끌고 가는지도 보았다. 바보상자가 세상을 흔들어 놓은 것이다.


영화가 1950년대 초반에 말한 '진실을 향한 힘'이 2006년에도 유효하다는 것은 바로 이 점이다. 우리가 TV를 어떻게 이용하고, 그 안의 내용을 어떻게 받아들여 해석하는지에 따라 세상을 보는 관점이 달라지고, 무의식적으로 그 내용에 이끌려 갈때 자신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상황이 일어나는 것이다. 때문에 TV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이가 진실에 어떻게 접근하고 시청자들에게 어떻게 전달하느냐의 중요성을 과거나 지금이나 무게감을 갖게 된다.


언론의 자유가 그 어느때보다 높아졌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권력으로부터의 자유다. 자본으로부터는 아직 그 자유를 허락받지 못했다. PD수첩때 광고가 떨어져나가는 모습을 보며 MBC가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는 추측까지 나온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거기서 우리 언론들은 진실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또 진실을 말하기 더더욱 어려워진 것은 '대중의 평가'다. 아직도 황우석교수 사건은 유효하다.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황교수가 펼쳐놓은 무의식의 굴레는 여전히 위력을 발휘한다. '진실'을 말하더라도 그들에게는 먹히지 않는다. 1%의 거짓이 99%의 진실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진실'에 접근하는 용기에 대한 평가가 필요한 것이다.


'굿 나잇 앤 굿 럭'을 여건이 된다면 볼 필요가 있다. 매카시즘과 유사한 상황이 대한민국에서도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의 영웅주의적 사상이 세상을 이분시키는 상황도 우리는 접해봤고, 한쪽의 입을 철저히 막는 상황도 접해봤다. 또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국민 전체가 혼돈으로 빠지는 상황까지도 접했다. 바로 1950년대 미국의 모습이고, 2006년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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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메일을 봤네요. 지난 토요일 SBS 반전드라마에서 홍수현씨가 동방신기 멤버와 키스한 것을 가지고, 동방신기 일부 팬들이 홍수현씨에 대한 적대적(?)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팬카페차원에서 방지하는 공지를 카페회원 전체에게 돌렸네요.


개인적으로 동방신기에 대해 이래저래 말하고픈 생각은 없지만, 이번 팬카페 차원에서 이러한 조치를 취하고자 하는 모습은 한편으로는 그동안의 팬클럽문화가 얼마나 잘못되었는가를 보여주는 것같아 씁쓸하고 한편으로는 좀더 발전적으로 나갈 수 있는 방향타를 스스로 잡는 것 같아서 좋게 보이네요.


어차피 스타는 이미지고 팬은 그 이미지를 추종하며 삽니다. 배용준씨가 일본에서 거의 신적으로 추앙받는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그가 찍은 스캔들은 썩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 것도 (대신 외출은 엄청난 흥행결과를) 여자를 이해하는 배용준씨의 '배역'이 먹힌거지 배용준씨 자체가 먹힌 것은 아니거든요.


이미지를 추종하는 팬이 그 이상을 요구하고 막는다면 그때부터는 팬이 아니죠.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스토커일런지도)


동방신기가 역대 아이돌스타들과 어떤 차이를 보일런지는 모르고, 실제 그의 팬들이 어떤 모습들로 다른 팬 혹은 안티들과 같이 갈런지는 모르지만, 일부라도 이런 자정적 모습을 보여주려는 것은 앞으로 팬문화의 변화를 엿볼 수 있을 듯 싶습니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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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방송된 MBC '강력추천 토요일'이 방송도중 그 어떤 공지도 없이 광고방송을 내보내 물의를 빚고있다.


방송이 끝난후 '강력추천 토요일' 게시판에는 수천건의 비판성 글이 올리며 제작진의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이날 시청자들의 비판을 받게된 이유는 프로그램의 마지막 코너인 '무한도전' '거꾸로 말하기' 게임도중 MC 유재석이 박명수에게 어떤 단어를 제시하려는 순간 프로그램이 종료된다는 공지를 내보내지 않고 바로 광고방송으로 바뀌어 시청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든 것이다.


네티즌은 "무슨 긴급 속보라도 나온 줄 알았다"는 등 당혹스러웠다며 "프로그램을 너무 키워줬다" "MBC는 사과방송 내보내라" "MBC 방송비평프로그램인 TV속의 TV에 고발하자" 등등 비판의 글을 게시판에 속속 올리고 있다.


소중한 전파를 타고 전국적으로 방송되는 프로그램의 이러한 태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될지 모른다는 네티즌들의 지적에 이어 MBC가 어떻게 대처할지 사뭇 궁금하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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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ccidental cheerleader upskirt 2008.03.13 05: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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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텔레비젼에서 심형래 영화감독님의 파워인터뷰라는 프로그램을 봤습니다. 신지식인 1호로 선정된 이후 영화의 참패로 온 국민의 비난과 질타를 받아온 그지만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전국민을 반성케 만들었습니다.

그가 공룡쭈쭈라는 영화를 만들었을때, 한국에는 전세계적으로 흥행한 쥬라기 공원이라는 영화가 상륙해 있었습니다. 국민들은 물론 영화인들까지 그의 영화를 쓰레기 같은 영화니 비주류 B급영화니 하며 우롱하고 심지어 그에게인신공격까지 해댔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때 쥬라기 공원을 보면서 왜 우리는 저런 영화를 못만들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수십년간 스크린 쿼터라는 울타리 안에서 돈되는 영화만 만들려고 하고 최고의 스타만을 고집한 영화계는 어차피 따라갈 수 없는 헐리우드식 영화라고 생각하고 현실에 안주할때 심형래 감독은 스스로 미국을 꺾어 보이겠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공룡 쭈쭈 이후 13년이 흐른 지금 그의 영화기술은 놀라울 정도로 발전했습니다. 디 워 라는 영화의 흥행여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최소한 미국의 영화기술에 대적할 만한 사람은 제가 보기엔 심형래 감독이 국내에서 유일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영화 한편을 만들었다고 해서 제가 그를 높게 평가하고 영화계가 반성해야 한다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닙니다. 그는 말합니다... 디 워 라는 영화의 완성과 성공보다는 그러한 헐리우드식 블록버스터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고 기술을 보유한 것이 더욱 자랑스럽다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수십년간 스크린쿼터로 국가가 보호해 주며 육성했던 영화계가 못했던 일을 심형래 감독이 13년이라는 단기간에 그것도 혼자 해낼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요?

심형래 감독은 호랑이를 잡기위해 호랑이 굴로 들어갔다라고 표현했습니다. 미국영화가 호랑이라고 가정한다면 지금껏 국내 영화계는 국가에서 호랑이로부터 보호 해달라고 말만 했을뿐 누구도 나서지 않았습니다. 나아가 호랑이를 잡겠다고 생각하는건 어리석은 짓이라며 그런 사람을 바보라고 했습니다. 심형래 감독이 혼자 무기를 만들어 호랑이와 싸울 준비를 하는동안 영화계는 언제까지나 정부가 지켜줄 수 있다고 믿으며 자신들만의 울타리 안에서 안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영화계를 바라보면서 과연 언제까지 스크린 쿼터를 사수해 줘야 할까 라는 의문이 듭니다.



수십년간 스크린 쿼터로 인해 대미무역에서 손해를 본 것은 국민입니다.

하지만 반사이익을 누린것은 몇몇 스타급 배우들과 메이저 영화사들 뿐입니다. 그러한 극소수의 이익을 위해서 언제까지 스크린 쿼터를 지켜줘야 하는 것입니까?

영화인 여러분( 영화인 전체가 아닌 몇몇 스타와 메이저 영화사)

이제 그만 국민들 밥그릇에서 숫가락을 빼주세요!!

그리고 1인 시위에 나서는 배우들이여 당신들 스스로 우리 영화가 헐리우드 영화에 못미친다고 말하면서 왜 출연료와 대우는 그들에 버금가기를 바라는 것입니까!! 단지 스타라는 이유만으로 국민들에게 동정표를 구하기에는 너무 양심없는 짓 아닐까요??


/출처 : 미디어다음 아고라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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