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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괴물'을 재미있게 봤다. 한국에서 보기 드문 블록버스터라는 점도 인정한다. 매끄러운 CG와 배우들의 개성 강한 연기도 영화에 대한 몰입도를 한껏 높혀줬다. 하지만 뭔가 부족했다. 영화를 보기 전에 기대치를 너무 높혀놨는지 몰라도,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그 정도로 칭송을 받을 영화는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족감이 영화에서가 아니라 영화 외적인 부분에서 오기는 처음이였다.

 

 

가장 아름다운 피아노 연주 - 영화 '피아니스트'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피아니스트'. 2002년도에 제작되었으니, 영화 제작속도가 빨라진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오래된' 이야기를 하는 것일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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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괴물

 

모두가 만족하는 영화란 없다. 봐서 자신에게 재미있으면 그게 최고의 영화일 것이다. 영화 괴물이 어느 사람에게는 최고일 수도 있고, 어느 사람에게는 최악일 수도 있다. 나에게는 그저 볼만한 영화 수준이였다.

 

단, 영화 개봉 전에 언론이나 평론가들의 띄우기 멘트는 다소 오버한 감이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것은 관람하는 이들이 실질적으로 영화를 느끼기에 도리어 악영향을 미쳤다. 이는 나중에 관객들의 평가 글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동안 언론이나 평론가들의 멘트와 느낌이 그대로 녹아있다. 즉 이미 영화를 보는 시각의 틀이 만들어져, 마치 자신은 이 영화를 최고라 말하지 않으면 안되는 듯한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어느 네티즌은 말했다. 단기간에 100만, 200만, 300만을 넘어선 것을 보면 정말 재미있는 영화이고, 관객들의 평가는 정확하다고...관객들은 재미없으면 안 찾는다고...맞다..재미있는 영화고, 관객들은 냉정하다.

 

그러나, 이 점은 분명히 하자. 영화 초반에 관객몰이를 하는 것은 영화 자체보다 '기대감'과 '스크린 수'에 좌우한다. 언론플레이와 기타 홍보 그리고 엄청난 스크린 장악으로 인해 이는 예견된 일이다. 정말 괜찮은 영화라면 이 수준이 초반과 똑같이 지속되어야 한다. 아니, 더 불어나야 한다. 본 사람이 그 감동과 느낌을 가지기 위해 다시 봐야 하기 때문이다.

 

영화 '왕의 남자'가 한국 최고의 영화라 불리어질 때, 그 뒤에는 일명 '왕남 폐인'이라 불리며 몇 번씩 가서 봐준 관객들이 있어서 가능했던 것이다.

 

영화 '괴물'은 볼 만한, 재미있는 영화이기는 하지만, 아직 최고 혹은 한국영화 역사를 바꿀 정도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라는 등의 평가는 이른 것 같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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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현대를 사는 사람들이 과거의 일들을 청산할 수 있을까. 과거 조상들이 행했던 잘잘못을 우리가 평가하고, 그 역사에 개입된 외세를 비롯한 제 3자들에 대한 사과와 반성을 반드시 받아야 할까.

 

 

<광복절 경축사> 2017년 문재인 대통령 vs 2022년 윤석열

한동안 블로그 글을 접었다. 정치 이슈를 많이 쓰던 입장에서 저런 어이없는 불량품(윤석열)을 내놓은 국민의힘이 대선과 지선에서 연이어 이기는 것을 보면서 어이없어서였다. 영화 리뷰나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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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때 이현세의 남벌은 일본이라는 국가에 대한 적대심을 한껏 부풀리게 했다. 1940년대 타국을 침략했던 그 모습을 그대로 1990년대로 끌고 왔으니 당연했다. 조상들이 당했던 감정을 그대로 만화를 보는 이들에게 주입시켰다. 수작이였다.

 

2006년 한반도를 봤다. 상황설정도 다르고, 과정도 다르며, 결론도 다르지만..결국은 똑같은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게다가 최근 일본과의 빈번한 마찰은 한반도를 통한 감정이입에 더욱 몰입할 수 있게 만들었다.

 

 

배우 개개인들의 연기는 평가할 요소가 아니다. 누구는 차인표가 너무 느끼한 눈빛을 보냈다고 하고, 안성기의 연기가 지난 피아노 치는 대통령에서 한 발자욱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고 말하며, 조재현의 오버가 너무 심하다고 말하는 이도 있지만, 이는 영화 한반도를 이야기할 때는 개입될 수 없는 부분이다.

 

강우석의 영화에 대한 비판시 배우들과의 관계에 대해 평론가들은 대략 이런 이야기를 한다.

 

"어느 때부터인가 강우석의 거대담론에 배우들은 따라가게 된다'

 

즉 영화에서는 강우석의 논리만 존재할 뿐, 배우들의 생각은 개입될 수 없다는 것이다. 강우석이 만들어놓은 틀 안에서 배우들은 충실히 이행해서 강우석의 생각을 적절하게 표출하기만 하면된다는 것이다.

 

영화 한반도에서 배우들의 모습을 평가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강우석의 거대담론에 휩싸여 하나의 스토리가 엮여져 가는데, 배우들의 하나하나 모습을 평가할 수도 없고, 평가해봐야 한반도를 이해하거나 즐기는데 전혀 도움이 안된다.

 

이야기를 평론가들의 목소리쪽으로 가보자. 그렇다고 왜 한반도는 평론가들에게 별 5개 만점에 3개를 넘지를 못할까. 중립적이고 뭔가 사람들에게 바른생활을 강요하며 문제제기를 영화가 할 수는 있어도 감히 문제를 풀수는 없다는 평론가들의 사고방식이 개입된 것은 아닐까.

 

영화를 보고 난 뒤 한 평론가의 말이 떠올랐다. (씨네21 발췌)

유지나 세월이 하수상하니 자본욕망도 비분강개할 만하다 ★★☆
황진미 평론가들이 싫어한다고 재미있을 거란 편견을 버려~ ★★
이동진 메시지에 ‘올인’한 영화. 그 메시지가 위험하고 투박한 영화 ★★
박평식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분개하세? 저돌성과 단순성! ★★★
김은형 과도한 주의, 주장에 개인이 사라진다 ★★☆
김봉석 말이 너무 많다 ★★

 

세 가지만 지적하자. 황진미는 틀렸다.

 

역시 평론가들이 싫어하면 재미있다

 

이동진은 영화의 메시지를 가볍게 봤다. 아쉽게도 이동진은 한반도에서 열심히 메시지만 찾다가 극장을 나온 듯 싶었다. 김은형은 주의 주장의 사회 지배성을 무시했다. 주의 주장과 개인이 어떻게 맞물리는지 대학에서 사회학을 좀더 공부해야 했다.

 

한반도가 100% 잘 만들었다고 보기 힘들지만, 평론가들이 저 정도로 급을 낮출 정도는 아니다. 그들이 불편할 수도 있었겠다. 평화로운 대한민국에서 갑자기 일본이라는 공공의 적을 문화적 파급효과가 높은 영화가 아주 대놓고 설정해버렸으니 말이다. 한반도를 높이 쳐주는 순간 그 평론가는 극단적 민족주의자로 찍혀 앞으로 영화평론하기 힘들테니 말이다. 이해한다.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음을...어쩌면 이들은 '캐리비안의 해적'류의 영화정도만 평하는 것이 편할 것이다. 어떻게 평하든 비판 받거나, 평단에서 평가받을 일은 없을테니 말이다.

 

이제 영화로 가자. 난 사람들이 한반도를 한번은 봐야한다고 생각한다. 처음에 이야기한 역사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조금은 생각하게 해주지 않을까라는 생각에서다.

 

역사는 '우월'과 '차별'의 반복이고, 그 연속성 사이에 공통점을 찾아내어 이 둘의 중간지점을 설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미국과 일본은 1등 국민으로, 우리를 2등 국민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어이없게도 이러한 정신적 피해를 동남아국가 등을 3등 국민으로 스스로 인식해 차별을 우월로 바꾸어 버리는 국민들도 있다. 그리고 같은 2등 국민이라고 하더라도, 그 안에서 다시 2.1등과 2.9등으로 나누어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회사안에서 직급이나 경쟁사회에서 1,2등의 실질적인 급의 차이가 아닌, 오로지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간다는 그 자체를 '몇 등 국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말이다.

 

이런 차별을 없애는 길은 역사를 아는 것이고, 앞서 말했듯이 반복을 없애고 중간지점을 설정하는 것이다.

남벌과 한반도는 비록 극단적인 상황설정이긴 하지만, 그 극단성이 각각의 매체에서 내보일수 있을 정도의 어느 정도 적절한 수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해소리-

 

ps....한 관객의 영화평 "영화는 재미있으면 된다. 그러면 끝이다. 그 안에서 메시지를 느끼든 한 순간 분노를 느끼고 그날밤 J-pop을 들으며 잠을 자든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선택이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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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보다 늦게 영화 '다빈치코드'를 봤다. 책으로 읽은 내용이 너무 재미있었는지, 영화로 인해 내 감정이 반감되는 것이 싫어 일부러 영화를 보지 않았었다.

 

이런 실망감은 과거 영화 '태백산맥'부터 시작됐다. 책에서 얻은 기쁨·슬픔·감동 등의 감정들이 영화에서 전혀 살아나지 못했고, 도리어 내가 책을 잘못 읽은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때문에 이후 원작이 뛰어나서 영화화 되는 내용들은 웬만하면 보지 않았다.

 

영화 '다빈치 코드'를 보게 된 것은 한 장면이 궁금해서였다. 친구가 나에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많은 생각을 하게됐다고 말한 것이 생각이 나서였다. 또 어느 정도 다빈치 코드에 대한 영화평을 봤기에 큰 기대감없이 보게됐다.

 

결과는 큰 기대감없이 봤기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가 말한 마지막 장면 역시 그다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뭔가 의미를 부여하려는 감독의 의도는 알겠지만, 그 의미가 뭔지 생각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책 '다빈치 코드'를 읽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었다. 과연 종교란 무엇인가. 종교를 위한 인간이 희생된다는 것이 정당한 일인가. 지금도 세계에서 그 위세를 떨치고 있는 기독교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 세계 존재할 수 많은 종교를 거대 종교들은 자신들의 잣대로 평가할 권리가 있는가.

 

어떻게 보면 예수가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다는 내용이 중요한가. 신성성이라는 것이 인간과 달라야 한다는 발상 자체가 웃기는 일이다. 인간을 제대로 된 길로 인도하는 것이 인간이면 안되는 것인가.

 

'다빈치코드'가 '잘'된 작품인 이유는 이러한 문제제기를 직설적으로 했기 때문이다.그리고 아쉬운 것은 영화가 이런 문제제기를 못 살리고 단순히 흥행에만 초점을 맞춘 듯이 제작되었다는 점이다.

 

훗날 누군가 다시 다빈치코드를 영화화한다면, 그 영화는 영화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 논란에 불을 한번 더 붙힐 수 있는 명작이었으면 한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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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김은진 기자의 평을 보자. "뮤지컬 '네버엔딩스토리'는 흥행 문법에 충실한 신작이다"

 

신작은 신작이지만, '네버엔딩스토리'에 있는 흥행 문법은 모르겠다. 뮤지컬 '만'의 문법이 있어서 내가 못찾은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7월 14일 스타트한 네버엔딩스토리를 본 이후 그 문법이 궁금했다.

 

네버엔딩스토리는 스스로 7가지의 키포인트를 내세웠다.

 

대한민국 뮤지컬 부흥기를 알리는 신호탄 / 로맨틱 코미디 뮤지컬 / 완벽한 사운드 재현한 LIVE / 강력한 락과 감미로운 팝뮤직의 절묘한 조화 / 화려한 조명과 안무로 최고의 비쥬얼 실현 / 국내 최고의 뮤지컬 배우들이 모였다 / 1인 다역의 또 다른 볼거리

 

하나 하나 짚어볼 필요 없이 뭉뚱그려 말하자면 위에서 말한 키포인트중 단 하나도 공연 내내 볼 수 없었다. 억지로 끼워맞추고 찾는다면 모를까, 뮤지컬을 펼쳐지는 내내 은근히 풍겨나왔어야 할 키포인트는 분명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준비가 부족했던 것일까. 아니면 장소가 잘못 선택된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어디서 이유를 찾아야 할까.

 

10여년 동안 그럭저럭 뮤지컬, 퍼포먼스 공연, 연극, 콘서트 등을 봐오면서 그 자체를 충실히 즐겼다고 생각하는 나로써는 이해하지 못했고, 어이가 없었다. 결국 열심히 준비한 배우들과 스탭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끝까지 보지 못하고 1막 끝나고 쉬는 시간에 공연장을 나와버렸다. 몇 년전 세종문화회관에서 아주 불가피한 상황으로 인해 오페라 '사랑의 묘약'을 끝까지 보지못하고 나왔던 이래로 처음이였다.

 

약간만 따져보면...

 

스토리와 의도를 모르겠다. 공연이 시작된 후, 미리 팜플렛을 읽어보지 않았거나 내용에 대해 전혀 듣지 못했던 사람들에게도 초반 5분안에 공연에 몰입시켜야 좋은 공연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1막이 끝나도록 산파적이고 인위적인 웃음을 주려는 것까지는 알겠는데, 이것을 이어가려는 스토리와 여기서 말하려는 의도를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관객이 스토리를 머리속에서 계산해서 찾아야 하는 공연이라면, 가혹하지 않은가.

 

지금까지 뮤지컬 본 것중 사운드가 가장 약했다. 왜 라이브를 고집했을까 싶었다. 올 1월에 방한해 공연을 펼쳤던 렌트 오리지널팀의 경우에도 라이브로 공연을 이끌었다. 아쉽게도 콘서트나 할 법한 올림픽공원 경기장에서 하는 바람에 (소극장 공연을 콘서트 공연장에서 한 셈) 약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이는 공연장의 문제였지 사운드 자체로 따지면 충실하게 들려줬다. 그러나 이보다 더 작은 공연장에서 보여준 네버엔딩 스토리의 사운드는 울림이나 느낌을 강하게 주지도 못했고, 음량으로 따져도 지금 공연하고 있는 루나틱정도의 공연장에서나 펼쳐져야 어울릴 법한 수준이였다.

 

한국적 뮤지컬의 맛은 무엇보다도 상황을 배우들의 움직임이 아니라 대사로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브로드웨이 오리지널팀들이 들어와 공연하는 것을 보면, 스크린을 통해 한글 자막이 나온다. 무대의 움직임보랴 스크린 보랴 정신없는 사이에 스토리를 흘러간다. 그러나 한국인들이 꾸미는 뮤지컬은 이 둘을 합쳐서 느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관객들에게는 메리트가 있다. 아쉽게도 네버엔딩 스토리는 대사 전달도 불분명했고, 배우들의 움직임과도 연계가 되지 않았다. 음악이 울리고 조연급 배우들이 배경 뮤직을 깔아주는 상황에서 분명 주연급 배우의 대사가 강조되어야 함은 기본인데, 네버엔딩스토리는 모두에게 평등한 음량을 제공했다. 덕분에 불분명한 대사전달이 그나마 어디에 귀를 가져대 댈지 어려운 상황이 되어버렸다.

 

내 자리가 2층 뒷자리라 그랬을는지 모른다. 하지만, 어떤 공연이든지 가장 뒷자리, 혹은 가장 낮은 급수 (대게 A석이나 B석)에 앉은 이로부터 박수를 받아야 성공한 공연이라고 생각하는 나로써는 이해하지 못했다. 같이 보러 간 사람들조자 "나만 그런 줄 알았다"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배우는 말하고 춤추며 움직이는데, 관객들은 그 말을 못듣고 그 움직임이 왜 나오는지 모른다면, 그 어떤 수식어를 붙힌 공연이라도 '최악'이라는 평가를 내릴 수 밖에 없다.

 

배우들의 노래 역시 좋은 평가를 주지 못하겠다. 그들이 말한 것처럼 국내 최고의 뮤지컬 배우들이라면 그들이 노래 부르는 동안 관객들은 공감하며 소름이 돋아야 한다. 그들의 목소리에 감정이 수시로 이동해야 한다. 그들의 노래가 끝나면 자연스럽게 박수와 함성이 나와야 한다. 14일 공연때 제대로 박수와 함성이 나온 것은 2층 가운데 구역밖에 없었다 (왜일까). 배우들의 목소리는 무대안에 갂혀버렸고, 관객들의 자리에까지 뻗치질 못했다. (일전에 한번 공연평을 한 해피투게더의 경우에는 공연 중간중간, 그리고 끝나자 그 소극장이 울릴 정도로 박수를 관객들이 쳐댔다. 공연은 그래야한다)

 

네버엔딩 스토리를 좋게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 주관적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1막 공연이 끝난 후 적잖은 사람들이 공연장을 빠져나간다면, 객관적으로 평가해도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제 시작한 공연이다. 그러나 시작부터 스스로가 키포인트라 말한 부분을 책임지지 못할 정도라면 변신하지 않는 한 끝은 안봐도 뻔하다. 예를 들어 음악이 끝까지 뻗지 못한다면, 과감히 2층은 관객들을 들여보내지 말고, 1층만 사용해 조금이라도 음악이 관객과 호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초반 관객들의 입소문이 곧 중후반 공연, 그리고 장기공연으로 갈 수 있는가를 판단하기 때문이다.

 

네버엔딩스토리, 대한민국 뮤지컬 부흥기를 알리는 신호탄으로서는 아직 98% 부족하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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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돈을 투자해 만든 영화가 관객에게 단 하나의 장면, 단 하나의 대사라도 기억시킨다면 성공한 것이다. 그 영화는 연인들의 대화에서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지속적으로 회자되고, 어느 글이나 표현을 함에 있어 인용되기 때문이다.

 

고전 영화들이 아직도 아름다운 이유는 어쩌면 영화 자체보다도 그 영화의 장면과 대사를 인용한 무수히 많은 드라마와 CF, 글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어느 사람은 한번도 그 영화를 제대로 보지도 못했는데, 마치 그 영화를 몇 번이나 본 것처럼 착각한다.

 

 

"8등신 몸매 와~"…보도자료 만들기 쉽죠잉?

어찌보면 지금은 홍보의 시대다. 과거에는 기업이나 특정 상품 홍보에 국한 되었던 것이 지금은 연예인 등 유명인은 물론 개인까지도 홍보에 나서야 한다. 오죽하면 취업 잘하려면, 자기 홍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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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온플럭스

 

지루한 날에 영화 <이온 플럭스>를 봤다. 피터 정의 원작을 오래 전에 잠깐 본 적이 있어서 어설프게나마 줄거리는 알고 있었다. 여기에 원작을 제대로 표현한 영화는 거의 없다는 '마이너스 관람지수'를 포함해, 단지 지루함을 덜어내려고 봤다.

 

기억에 남는 것은 위에 제시된 사진처럼 여주인공 (샤를리즈 테론)의 몸매와 현란한 동작정도였다. 이미 포스터나 스틸사진들 그리고 몇몇 영화평를 보며 이와 같은 결과를 예측하기는 했지만, 정말 그것만 남을 줄은 몰랐다.

 

 

1999년 이와 유사한 경험이 있었다. <앤트랩먼트>에서 스틸 컷에서 캐서린 제타존슨의 멋진 몸매때문에 영화에 대해 기대감(?)을 한층 올렸던 적이 있다. 스토리가 엉망이면, 일면 볼꺼리라도 제공되어야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러나 <앤트랩먼트>는 틀렸다. 볼꺼리는 부수적인 것이였고, 스토리가 머리 속에 더 강하게 남았다.

 

<이온플럭스> 역시 일면 이런 부분을 기대했다. 그러나 결과는 여지없이 깨졌고, 스틸 컷에서 봤던  여주인공의 몸매와 올림픽에서 볼 법한 기계체조를 보게됐다. 한 마디로 5분정도면 충족시킬 수 있는 시각적 재미의 동일효과를 1시간을 넘게 투자해 얻은 것이다.

 

분명 원작을 기본으로 했을텐데, 뭐가 모자랐을까. 혹 너무 여주인공의 S라인을 강조한 나머지, 다른 요소들을 너무 죽여놓은 것은 아닐까.

 

지루함을 덜어내려 본 영화가 더 나를 지루하게 만들었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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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오락성 영화다. 의미를 주고자 하면 한없이 줄 수 있고, 의미따위는 집어던지고 보자면 그냥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좋은 영화다. 초등학교때 종종 책이나 TV에서 보던 권선징악형 만화라고 보면 가장 무난하다.

 

돌연변이 인간들에게 극한 공포감을 느끼는 아주 평범한 인간들. 사실 현실에서도 느끼지 않는가. 미친 도사견 한 마리가 도심 한 가운데 풀려 돌아다닌다면, 총이나 방어할 무기가 없는 한, 사람들은 무한한 공포를 느낀다.

실제 있었던 일이지만, 극장에 뱀 한마리가 풀려있다는 말을 들으면 극장안은 순식간에 공황상태에 빠진다. 뱀 한 마리에 말이다.

 

그런데 그런 류의 인간이 수십명이 나와 아주 평범한, 총밖에 쏠 줄 모르는 인간들과 대치한다. 정말 공포스럽지 않은가.

 

제목을 달때 난 전쟁의 시작이라는 말이 이상하게 머리에 떠올랐다. 영화는 3편으로 끝나고 최후의 전쟁일지 모르지만, 실상은 정말 돌연변이들이 많이 나타날 여지가 있는 세상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우리와 아주 조금 다른(?) 장애를 안고 사는 이들에게도 이질감을 느끼고 사는데, 정말 X맨과 같은 이들이 나타난다면 어떻게 반응할까.

 

조금 더 편하자고 만들어 놓은 모든 것들이 우리를 변화시키고 있으니 말이다.

 

- 아해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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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우성과 엄정화가 나오는 '결혼은, 미친 짓이다 (이하 결미)'는 야한 영화다. 화면 자체도 야한 내용이 자주 뿌려지지만, 내용 역시 받아들이기 힘들정도로 야(夜)하다. 온통 밝고 아름다운 삶으로 치장되어야 할 세상에 '결미'는 받아들여지기 힘든 상황을 참으로 밝게 그렸다. 아마도 기혼자가 이 영화를 본다면, 자신의 배우자를 한번 더 쳐다볼 지도 모른다. 그리고 "당신도 혹시?"라는 농담반 진담반의 말을 던질런지도 모른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

 

처음 결미를 봤을 때, 가장 마음에 와 닿은 대사는 이거였다.

 

누구와 결혼을 할까 고민하는 엄정화에게 감우성이 던진 말이다. "일단 나를 포함해서 가난한 놈들은 모두 빼"

 

결혼을 목전에 두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말은 어처구니가 없는 대사다. 돈이 뭐가 문제냐고, 일단은 사람은 사랑해야 하지 않냐고 반박할 것이다.

 

사실 원론적으로도 맞고, 실제 결혼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봐도 맞다. 돈이 없어서 하는 고민과 사람이 싫어서 하는 고민은 다르다. 전자는 돌파구라도 있지만, 후자는 막막한 터널이다. 때문에 결혼한 많은 사람들이 (물론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지만) 결혼은 사람이 일단 좋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미혼인 상태에서 결혼을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이들, 즉 현재 자유로운 삶을 영유하고 있는 이들의 경우에는 이 말은 절실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특히 요즘처럼 여성이 어느 정도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독립을 과거에 비해 손쉽게 이룰 수 있는 시점에서, 자신이 현재 누리고 있는 자유로운 삶이 결혼과 동시에 없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경제적인 부분을 심각하게 고민하게 된다.

이런 부분은 한 결혼정보회사에서 언제 결혼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많은 남성들이 "경제적으로 안정될 때"라고 답한 것에서 볼 수 있다.

 

현대에서 결혼은 상대적인 것, 즉 상대가 무엇인가를 나에게 요구할 것인지를 직감적으로 판단해야 순조롭게 이뤄진다는 것을 감안하면, 남성들은 여성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알고, 그 요구사항을 충족시켜야 자신이 원하는 여성과 결혼한다는 것을 느끼며 저런 대답을 한 것이다.

 

어쨌든 '가난한 놈'에 대한 감우성의 대사는 원론적으로 틀리고 현실적으로 맞다는 이중성을 과감히 내보였고, 그에 대한 근거를 엄정화가 부분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결미는 또한 여성의 이중심리 또한 보여준다. 결혼하고 싶은 남자와 연애하고 싶은 남자를 동시에 소유하고픈 마음말이다.

엄정화는 본 남편에게는 현실을 맡기지만, 감우성에게는 자신이 꿈꿔왔던 어릴 적 꿈을 맡긴다. 주위 결혼한 친구나 후배들에게서 간혹 이런 것을 느낀다.

 

"내가 바랬던 결혼생활은 이런 것이 아닌데..난 어떤 결혼생활을 하고 싶었는가 하면 말이지~ "로 연결되는 말들은 현실의 여성들은 말로만 끝냈지만, 결미에서의 엄정화는 행동으로 옮겼다.

 

어떻게 보면 남자가 바람피는 대다수는 욕망의 분출에서 시작하지만, 여자가 바람피는 대다수는 현실속 결혼에서 탈피해 위에서 말한 '동화속 결혼'을 꿈꾸기 위해 시도하는 것일런지도 모른다. (거꾸로도 존재하겠지만)

 

어쨌든 결혼은 미친 짓이라고 말한다. (누가? 기혼자들이..) 영화처럼 나도 모르게 배우자가 바람피고, 정신적으로 다른 이에게 의지하며, 혹은 다른 사람의 배우자가 자신에게 뭔가를 심하게 갈구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현실속에서 알게된다면 정말 미친 짓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이 미친 짓때문에 태어나고, 사회가 이 미친 자들에게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더 이상하고 생각되지 않는가.

 

또 살아가는 것 자체가 미친 짓일런지도 모르는데, 그 안에서 미쳐봐야 얼마나 또 미치겠는가.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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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피아니스트'. 2002년도에 제작되었으니, 영화 제작속도가 빨라진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오래된' 이야기를 하는 것일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연히 다시 보게 된 이 영화는 여전히 힘이 있었고, 삶이 있었다.

 

영화 피아니스트

 

내용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1939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활동하던  유대계 피아니스트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에드리언 브로디)의 이야기다. 제 2차 세계대전중에 스필만이 허기와 추위, 고독과 공포속에서 삶의 끈을 끝까지 놓지 않으며, 결국은 그의 선율을 전쟁이 끝난 후에도 많은 사람에게 들려주게 된다.

 

영화 전체의 줄거리와 그에 따른 개개의 감정은 이야기하기 어렵다. 지루할 수도 있겠고, 전쟁과 삶, 죽음 등에 대한 개개의 실체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느끼지 못한 이들에게는 지루한 하나의 드라마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속에서 나오는 피아노의 울림은 다르다. 난 피아노의 선율이 아름다운 것은 인정하지만, 각각의 곡들에 대해 감흥을 쉽게 받지 못한다.

 

어떤 상황에서 내 감정에 부합된 곡이 울려나오면, 그때그때마다 그 곡에 심취될 뿐이다. 물론 다시 그 곡을 구해서 듣는다고 해도 그 심취된 느낌을 다시 가지지는 못하곤 한다.

 

음악은 상황이라는 생각이 든다. 연인과 헤어질 때, 길거리에서 들은 음악은 평생 가슴을 저미게 만든다. 어떤 일을 성공시켰을 때 우연히 라디오에서 듣게되는 음악은 힘들때마다 버팀목 역할을 해준다. 바다에 가서 푸르름과 광대함에 넋을 잃는 순간 귀에 들려오는 음악은 늘 설레게 만든다.

 

이런 면에서 스필만이 영화 후반에서 독일장교앞에서 보여준 연주는 '삶'이라는 상황과 맞물려 강한 느낌을 줬다. 처음 극장에서 이 영화를 봤을 때, 이 마지막 연주장면은 전율에 가까웠고, 수년이 지나 다시 본 그 장면은 현재의 나를 보게 만들었다.

 

솔직히 화면 자체도 이런 느낌을 강하게 주기위해 인위적으로 설정됐다.

 

폐허가 된 건물속에서 한줄기 달빛이 들어오며, 그 안에서 한 피아니스트가  전쟁속 적 앞에서 생존을 위해 연주를 해야하는 모습. 하지만 눈에 보이는 이 인위적인 연출은 가슴이 설레이고 몸에 떨림을 느끼는 것에 방해가 되지 않았다. (뛰어난 연출과 뛰어난 연기다)

 

그 곡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극장에서 나올때도 찾아본다고 한 것이 아직도 그대로다.

 

그러나 분명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지금껏 내가 본 피아노 연주중에 '영화 피아니스트'의 그 장면은 단연 가장 아름다운 연주임은 분명하다.

 

살기 위한 연주만큼 절실하고 아름다운 것이 과연 존재할까.

 

- 아해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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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소극장 연극을 봤다. 소극장 연극은 보는 동안은 즐거움을 보고나서는 유쾌함을 느낀다. 내용도 내용이려니와 배우들의 표정 하나하나를 읽을 수 있고, 더불어 숨소리까지 느껴지기 때문이다. 대형 극장에서 펼쳐지는 공연들을 보러갈때 '나'는 수동적 관객이 되지만, 소극장에서는 나 역시도 극에 참여하는 인물이 된다. 소극장에서는 나의 동작, 나의 환호가 그대로 배우들에게 전달되고, 다른 보는 이들에게도 전파되어 극을 움직일 수 있지만, 대극장에서는 이런 행위가 불가능하다.

 

연극 해피투게더

 

16일 저녁에 본 연극 해피투게더는 정말 유쾌상쾌했고, 여러모로 기억에 남는 연극이 될 듯 싶다. 내용의 줄거리는 어렵게 돈을 모아 이곳저곳에 기부해 온 한 할머니의 집에 도둑이 들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다. 보다보면 재미도 있고, 찡한 기분도 느낄 수 있다. 일단 배우들의 감정몰입이 상당했고, 그것이 그대로 보는 이들에게 전달됐다는 점이 뛰어났다.

 

극중인물들은 하나같이 자식을 버렸거나 버림을 받은 이들이 주축을 이룬다. 사회적인 상식으로는 이들은 전부 불행한 사람들이다. 때문에 즐거움을 느끼는 것 조차 가련해보이고, 슬퍼보인다. 그런데 비록 연극이지만, 이 상황에서 이들은 그것 하나하나를 진짜 기쁨으로 풀어나가려 하고, 보는 이들에게 이를 설명한다. 왜 그들이 슬프지만 기뻐하며, 사람들에게도 왜 기쁘게 살아가야 하는지 말이다.

 

 

세상 사람들중 불행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살아갈 수는 없다. 권력이 있든 돈이 있든, 스스로 행복감을 무한하게 느낀다는 사람조차도 스스로때문에 혹은 주위환경때문에, 아니면 타인의 영향으로 어쨌든 불행을 느끼게 된다. 바로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행복'이라는 단어가 존재함을 가끔 잃어버리는 듯 하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영화  '파니 핑크'에서 이런 장면이 나온다. 주술사 오르페오는 주인공 파니에게 술이 절반쯤 들어있는 잔을 들어보이면 묻는다 "잔이 반이 차 있어, 반이 비어 있어?" 파니가 답한다 "비어있어" 그 때 오르페오는 파니에게 말한다. "왜 지금 네가 갖고 있는 것들은 생각하지 않지? 그것조차 없는 사람들이 있어"

 

맞는 이야기다. 어떻게 세상을 보느냐에 따라 스스로에게 부여된 불행을 줄이느냐 늘이느냐가 결정된다. 연극 해피투게더는 그 불행이 줄어들게 하는 방법을 설명해준다. 정말 해피하게 말이다. ^^.

 

만일 스스로가 여유가 없다면 한번쯤 권하고 싶은 연극이다.

 

- 아해소리 -

 

ps1. 이 연극의 또 하나의 특징은 시간을 준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7시 30분에 연극이 시작한다면 반드시 7시 29분까지는 죽어도 입장해야 볼 수 있다. 여타 공연처럼 10~20분 딜레이 되는 경우가 절대 생길 수 없고, 생겨서도 안된다. 그 이유는 공연을 보면 알게 된다. 이런 공연이 무한히 생기기를..

 

ps2. 실제 바깥풍경을 세트로 이용하는 과감성을 보인다. 아마 해피투게더가 가지고 있는 결정적인 웃음 체크포인트가 아닌가 싶다. 다시 생각해봐도 기발한 아이디어다.

 

ps.3. 위에서 이야기한 바깥풍경을 이용한 과감성때문에 에피소드도 많이 생길 듯 싶었다. 만일 주위에 의사등장 장면에서 정말 엠블란스라도 지나가면 그야말로 금상첨화.^^...16일 공연때는 진지한 장면에서 커다란 나방 한마리가 공연장을 휘집어 놓았다. 그대로 진지하게 공연하는 배우들과 나방 피하고 잡는 관객들의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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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코드'에 국내영화가 밀린다고 말한다. 물론 여기에 빠지지않고 등장하는 것이 스크린쿼터제. 하지만 아무리 봐도 그것과는 무관하다. 관객들의 호기심, 그리고 이미 엄청난 판매량을 자랑한 소설이 있기에, 예상된 일이였을 뿐이다.그 와중에서도 200만명을 돌파한 '사생결단'은 예고편과 대략의 내용 그리고 출연진만 살펴봐도 일단 구미가 당기는 영화다.

 

'사생결단'은 어둡다. 어두운 세상의 어두운 사람들을 그리다보니 밝은 대낮 씬이 나와도 어둡게 보인다. 아니 도리어 밝은 분위기는 영화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선글라스는 어둠속 사내들이 밝은 빛을 피하기 위한 몸부림으로 보인다.

 

마약을 파는 자와 그 파는 자를 잡는 자. 그 사이에 거래가 이뤄진다. 그 거래가 참 통쾌하다. 겉으로는 그 둘의 거래는 영화속에서 단 두 사람의 거래로 보였지만, 사회에서 무수히 일어나는 조직간, 사람간의 부도덕한 거래를 그대로 옮겨놓고 관객에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통쾌하다. 그 장면을 그렇게 직접적으로 와닿게 보여주는 것이 통쾌했다. 그리고 현실을 생각하면 씁쓸했다.

 

영화를 보고나서 나오는 길에 어느 한 여자관객이 친구에게 말했다 "마약은 끔찍할 것 같아. 추자현 몸에 벌레 기어가는 것 봐. 그런 느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 끔찍해"

 

틀렸다. 마약은 달콤하다. 달콤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찾는 것이다. 그보다 더 고달픈, 더 끔찍한 느낌으로 살아가는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찾는 마약은 그 어느 것보다 달콤하다. 마약에 빠진 추자현은 슬픔 몸으로나 살지만, 마약을 팔며 현실에 존재한 사람들은 죽게된다.

 

누군가 말했다. '사생결단'이라는 제목을 참 잘 지었다고. 아마 그 영화를 보고 그 제목이 정말 잘 지어졌다고 생각한다면, 그도 지금 살아가는 것이 '사생결단'의 의지를 은연중에 가지고 있을 것이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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