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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영화의 세계적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와 영화 ‘클로버필드’, 미국 인기드라마 ‘로스트’ 등을 연출한 J.J.에이브럼스의 만남으로 큰 관심을 모으고 있는 영화 ‘슈퍼에이트’(SUPER8)가 20분짜리 영상이 공개됐다.

'슈퍼에이트'의 영상 공개가 기대되는 이유는 하나다. 슈퍼 감독들이 만나서 제작하고 있는데, 정작 그 실체는 제대로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포스터 한 장과 짤막한 티저 영상만이 공개됐다.

‘슈퍼에이트’는 1979년 미국 제 51구역(외계인을 연구하는 곳으로 알려진 군사 기밀 기지)의 외계인 몬스터 관련 영화를 캠코더로 촬영하던 아이들이 실제로 외계인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번에 공개된 장면은 미확인 물체의 등장 정도다. 영화 제작을 꿈꾸는 아이들은 어설프지만 열정적으로 영화를 찍어내려 기차역에서 분주하게 움직인다. 지나가는 기차를 배경으로 영화를 찍으려던 아이들은 기차와 자동차가 부딪치는 엄청난 사고를 겪는다. 이후 마을 주유소가 의문의 물체에 공격을 당한다. ‘슈퍼에이트’ 스페셜 영상은 이 정도의 짧은 줄거리 안에 SF와 호러, 그리고 스펙터클을 모두 담아냈다. 특히 기차 사고 장면은 여느 블록버스터 영화를 능가했다.

‘슈퍼에이트’는 J.J.에이브럼스가 각본 연출 제작을 맡고 스티븐 스필버그가 제작에 참여했다. 특히 다코타 패닝의 여동생 엘르 패닝이 출연해 뛰어난 연기력을 선보인다.

6월 전세계 개봉이라고 하는데, 기대된다.

- 아해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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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쿵푸팬더2'가 공개됐다. 영화를 국내로 들여온 이들은 전 세계 개봉 전 리뷰를 22일로 엠바고를 제시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나서 생각난 것은 굳이 22일까지 가지 않아도 될 듯 싶었다. 예고편과 온라인에 오픈된 시놉시스, 주요 목소리 연기자 등을 총합하면 어떤 그림이 스크린에 펼쳐질지만 모르지, 사실상 내용은 대략 흐름이 잡힌다. 영상을 글로 직접 표현하기에는 사실 어려운 상황에서, 영화 홍보사의 말하는 '22일 엠바고 리뷰'는 사실상 무의미하다.

영화의 중심 이야기는 주인공 '포'의 출생 비밀이다. 많은 동화책과 만화책, 애니메이션을 섭렵한 이들이라면 1편에서 '포'의 아빠가 팬더가 아니라 거위라는 점에서 "아 누가 버린 팬더 (혹은 어쩔 수 없이 버려야했던 팬더)를 거위가 데려다 키우는구나"라고 이미 눈치는 챘을 것이다. 그러나 2편에서는 이를 디테일하게 들어간다. 그 과정에서 귀여운 '베이비 포'의 모습도 공개된다.

1편이 '포'가 용의 전사가 되어 '타이렁'을 제거했지만, 2편에서는 악랄한 악당 '셴 선생'을 상대로 한다. '셴 선생'은 강력한 무기를 앞세우고 위대한 쿵푸 사부를 하나씩 제거한 후 중국을 점령하려 한다. 물론 공작새가 캐릭터로 나오기에, 사실상 '타이렁'보다는 그 무게감은 덜하다. 그러나 교활한 머리와 잔인한 태도는 '타이렁'을 능가한다. 게다가 그는 '포'의 출생의 비밀과 관련이 있다.

3D 효과는 사실상 호불호가 갈릴 듯 싶다. 분명 3D 효과는 있었지만, 관객들이 대부분이 3D에 익숙해 있기에 '쿵푸팬더2'라고 해서 새로울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규모 전투 장면은 확실히 볼만 하다.

동서양 톱스타들의 목소리 연기도 귀를 휘어잡는다. 잭블랙, 더스틴 호프만, 안젤리나 졸리, 성룡, 데이비드 크로스에 악당 '셴 선생'을 연기한 게리 올드만과 '점쟁이 할멈'을 목소리 연기한 양자경까지 별들의 잔치다. 영화를 보다가, 이들의 목소리 연기가 아닌 실제로 모아놓고 영화를 만들어보면 어떨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또하나의 흥미꺼리. 영화는 재미교포 여인영 감독이 총괄 연출을 맡았다. 미국 메이저 스튜디오에서 한국인이, 여자가 감독을 맡은 것은 '쿵푸팬더2'가 처음이다.

- 아해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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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이야기를 하다보면 "아직도 1년 반이나 남았다니"라며 한숨을 쉰다. 좌충우돌 방향도 방향도 없는 MB정부가 신뢰를 잃은지 오래긴하지만, 최근 일련의 사태는 정점을 찍는 것 같다.

얼마전 전주국제영화제에 갔다가 온 도시에 내걸린 'LH 본사 이전'에 대한 깃발을 봤다. 과거에 여의도 광장이나 시청 앞에서 집회가 있었을 때, 펄럭이던 깃발을 보던 것 같았다. 아니 그보다 심했다. 그런데 결국 LH 본사는 진주로 가면서 전주의 민심은 폭발했다.

LH 본사 이전은 경남과 전북의 갈등을 부추겼고, 동남권 신공항은 대구경북과 부산경남의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거기다가 이번에 과학벨트가 사실상 대전 대덕연구지로 결정되었다는 소문은 충청과 대구경북, 그리고 광주전남의 지역간 갈등을 남기게 될 상황이다.

물론 세 사업의 성격은 다르다. 동남권 신공항 사업과 LG본사 이전 사업은 지역균형발전을 고려한 것이다. 때문에 지역간 갈등의 예고되었다. 정부는 그 갈등 조절을 실패한 것이다. 그런데 전형적인 국책사업인 과학벨트마저 지역 갈등을 초래한 것은 MB정부의 무능력함은 대놓고 보여준 셈이다.

여권과 한나라당 소속 지자체장들마저 정부에 등을 돌리고 있는 상황이다. 1년 반이나 남았는데, MB 정부의 레임덕은 이미 시작된 것이다. 그 누구도 아닌 스스로 자처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런 꼴을 1년 반이나 봐야한다는 것이 무섭다.

- 아해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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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민주화항쟁은 매년 돌아오지만, 사실 모두가 기억하는 일은 아니다. 특히 시대가 변해서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현 시기에는 더더욱 그렇다. 대학생 때 왠지 광주민주화항쟁을 아는 것을 의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확실히 사회에 나오면서 이를 기억하기는 어렵다. 아마 지금도 광주 시민과 일부 대학생만 기억하는 역사로 생각하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물론 아직도 진상이 밝혀지지 않았다. 심증은 있는데 물증은 없는 일도 많다. 발포 명령권자가 누군지도 공식적으로 밝혀지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광주민주화항쟁은 항상 무거운 주제였다. 그런데 광주민주화항쟁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한 연극이 있다. .

현재 서울 남산예술센터에서 상연 중인 연극 ‘푸르른 날에’은 광주민주화항쟁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다룬다. 이 날의 사건에 휘말린 어느 남녀의 사랑과 그 후 30여 년에 걸친 인생 역정을 보여 준다.

이야기는 차밭이 보이는 암자에서 수행 중인 승려 ‘여산’(5.18 당시 오민호)이 조카이자 딸인 ‘운화’의 결혼 소식을 듣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의 기억은 30년 전 전남대를 다니던 야학선생 시절로 돌아간다. 당시 민호는 전통찻집 아르바이트생인 윤정혜와 사랑에 빠져 있었고, 정혜의 동생 기준은 민호를 친형처럼 의지하고 있다. 그러다 광주민주화항쟁이 터지고 그 소용돌이 속에서 정혜는 민호를 떠나보내고, 도청을 사수하던 민호와 기준은 운명이 갈린다.

살아남기 위해 비겁한 자가 된 민호는 고문 후유증과 함께 정신이상을 겪으며 삶을 포기한다. 결국 민호는 속세의 자신을 버리고 불가에 귀의한다. 민호와 정혜 사이에 생긴 딸 운화를 친형 진호가 거두지만, 세월이 흘러 운화의 결혼에 이르러서는 결국 끊을 수 없는 속세와의 인연에 마주하게 된다.

연극은, 기존에 5,18 광주를 다룬 많은 작품과 달리 무거운 소재를 가볍고 유쾌한 방식으로다룬다. 연출을 맡은 고선웅도 이 연극에 대해 “명랑하게 과장된 통속극”이라고 정의할 정도다.

배우들의 연기는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짧은 거리를 다리 벌려 뛰어다니는 모습이나 민호가 과장된 모습으로 시민군을 말리는 장면 그리고 3m 기다란 탁자에 마주 앉아서 찻잔과 청첩장을 내던지듯 건네는 모습은 웃음을 자아낸다.

그러면서도 연극은 ‘그날의 일’이 남긴 상처가 아직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적절하게 상기시켜낸다. 친구를 팔아 살아남았지만 그 비굴한 삶을 스스로 이기지 못하는 민호의 모습이나 딸의 결혼식에 과거의 인물들이 나오는 모습은 ‘민호의 오늘’에 과거와 현재가 공존함을 보여 준다. 서정주의 시와 송창식의 노래가 등장하는 마지막 장면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제시한다.

2011년 연극 무대 위에서의 광주민주화항쟁이다.

- 아해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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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덴만의 영웅' 석해균 선장이 2억 원에 육박하는 병원비를 두고 고민에 휩싸였다고 한다. 아주대 병원에 따르면 현재 석 선장의 병원비는 1억 7500만원에 달한다. 이를 아주대 병원이 삼호해운 측에 중간 정산해달라고 요구했지만, 삼호해운 측은 병원비를 낼 수 없는 형편이라고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삼호해운은 지난달 21일 부산지법에 법정관리를 신청해 '재산보전처분명령'과 '포괄적금지명령'을 받아 법원의 허가 없이 채무변제나 자산처분을 할 수 없다. 삼호해운은 석 선장 치료비를 보험 처리하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보험사가 규정에 따라 병원비를 먼저 지급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석선장은 현재 두 차례 더 수술을 받아야 하기에 재활치료까지 고려하면 최소 두 달은 더 입원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병원비는 2억 원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현 상황에서 강제 퇴원 이야기까지 나왔다. 물론 아주대는 이에 대해 부인했다. 그러면서 석 선장 개인이 병원비를 납부하는 것이 아닌, 석 선장이 가입한 선원보험에서 처리할 문제라며 여론의 포화를 교묘하게 피해가고 있다.

그런데 이같은 상황을 보니 아주대와 현 MB정권이 한심해 보였다. 우선 아주대는 그동안 석 선장을 치료하면서 누른 광고 효과가 막대하다. 아주대 병원이로 이송된 1월 29일부터 의식을 완전히 회복한 2월 28일까지 한달간 신문 방송 인터넷 매체에 거의 매일 병원이 노출되다시피했다. 병원 홍보팀장도 "1000억원을 들여도 이 정도의 홍보효과를 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광고기획사 오리콤이 대강 산정한 내용에도 약 1290억원의 광고비로 환산됐다.

그런데 2억 원의 병원비 때문에 논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2억 원이 적다는 것도 아니고, 병원비를 무조건 내지 말라고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 정도 광고효과를 누린 아주대가 석 선장의 완치때까지 기다리지 못하는 것은 물론, 삼호해운의 사정까지 봐주지 못할 정도인가이다.

현 정권도 마찬가지다. MB는 지난 3월 5일 아주대를 방문해 "석 선장이 빨리 걸어나와야 이번 작전도 끝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선물한 예복을 퇴원 후 입고 청와대를 방문해달라고 말했다. MB 말대로 하면 아직도 아덴만 작전은 끝나지 않은 상황이고, 거기에 아주대가 초를 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을 어렵게 살려놓은 것은 인정하자. 그리고 아주대 병원이 자선봉사 기업이 아님도 인정하자. 그러나 적어도 인술을 펼치는 곳이라면, 상업성과는 거리를 어느 정도 유지해야 하지 않을까. 더구나가 그들을 비롯해 정권까지도 '영웅'으로 추앙한 사람이라면 말이다.

- 아해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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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체 위기에서 극적으로 갈등 봉합한 카라가 오는 6월 11일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국내 팬미팅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팬 카페 회원을 우선으로 하며, 그동안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무료로 개최한다고 한다.

 

카라 사태는 지난 1월 19일 일어났다. 당시 박규리를 제외한 멤버들이 DSP에 전속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그러나 반나절 뒤에 구하라가 박규리와 뜻을 같이 하기로 해서 사실상 3인만 DSP와 부딪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사태는 지난 4월 28일 해결될 때까지 100일 간 지속됐다.

 

 

논란의 카라, 불안함이 활동 부진으로 이어지나

카라가 야심차게 ‘맘마미아’를 내놓았다. 왜 ‘야심차게’라는 말을 붙였느냐. 니콜과 강지영의 탈퇴, 그리고 새 멤버 영지가 들어온 이후 첫 앨범이기 때문이다. 또 스태프들도 바뀌었고, 대

www.neocross.net

카라

 

일명 '카라 사태'라 불린 이번 일은 비단 이들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카라 멤버들은 사실상 이 분쟁에서 사라졌다. DSP와 카라 부모님과의 분쟁이었고, 이는 곧 가요계 전체로 퍼졌다. 백지영 소속사 측이 카라 3인의 입장을 대변하는 보도자료를 뿌려 논란이 되었고, 이는 다시 연예제작자협회와 젋은제작자연대의 충돌로 이어졌다. 코어콘텐츠미디어의 김광수 대표가 전면에 나섰고, 이에 오픈월드 장석우 대표가 맞받아쳤다. 중량급 연예계 관계자들의 충돌이 이어진 것이다.

 

팬들 역시 사분오열 됐다. 구하라와 박규리를 옹호하는 팬들과 나머지 3명의 팬들을 옹호하는 팬들로 나뉘어진 것이다. 한 쪽은 DSP를 공격했고, 다른 한 쪽은 나간 멤버들을 배신자 취급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런 상황에서도 일본 활동은 이어졌다는 것이다. 뭐 계약상의 문제이긴 했지만 국내 팬들은 이에 분개하기도 했다. 일본 팬 위주로 국내 팬은 무시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팬미팅이 어떤 영향을 미칠까. 우선 효과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연예인들이 기획사와 갈등을 갖는 것은 이미 여러차례 봤고, JYJ처럼 극단적으로 가는 경우가 아니면, 대개 흐지부지 끝났기 때문이다. 카라 역시 분쟁이 있을 당시는 첨예했지만, 이미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그 강도는 덜한 상황이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는 팬들의 입장이다.

 

과연 이들이 방송에 나와 방긋방긋 웃으면 서로의 친밀감을 자랑할 때, 그 모습을 대중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그것도 그 분쟁의 시간이 수년이 아니라, 이제 경우 100일이 갓 지난 상황인데 말이다.

 

- 아해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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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유럽이 제국주의 마수를 아프리카로 뻗아나가던 시절 남아프리카에 살다가 유럽으로 끌려가 인종 전시를 당했던 코이코이 여인인 '사라 바트만'을 다룬 연극이 다시 무대에 오른다.

지난 2003년과 2004년 연출가 이석호에 의해 만들어진 창작 희곡 '사라 바트만'은 한국과 남아공은 물론 모잠비크, 케냐 등 아프리카 3개국 순회공연을 펼쳤었다. 이 공연이 8년 만에 '사라 바트만과 해부학의 탄생'이라는 이름으로 5월에 무대에 오른다. 이 공연은 다시 아프리카 순회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그럼 '사라 바트만'이 누구인가.

지금으로부터 200여년전 남아공의 케이프타운 인근에 사끼 바트만(Saartje Baartman)이라는 흑인여인이 살고 있었다. 이 여인은 엉덩이가 불룩 튀어나온 특이한 신체구조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이에 주목한 한 영국인 의사 윌리엄 던롭(Willliam Dunlop)은 자신을 따라 유럽에서 순회전시를 하면 돈을 많이 벌 것이라고 유혹한다. 1810년 ‘사끼 바트만’은 스무살의 나이에 이 의사와 함께 대서양을 건넌다.
 
유럽여성들의 신체와 비교해 특이한 둔부를 가진 사끼 바트만은 그 둔부 하나로 당시 제국주의 유럽 인종학자들의 지대한 관심을 끌게 된다. 이들 학자들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신체적 차이에 대한 호기심, 나아가 성적 관음증의 대명사가 된 사끼 바트만은 런던, 파리, 암스텔담 그리고 기타 유럽의 여러 도시에서 나체의 몸을 보여주는 인종전시를 당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이름도 부르기 쉬운 ‘사라 바트만(Sara Baartman)’으로 바뀌게 된다.

1810년경 사라 바트만의 '이상한 쇼(Freak Show)'는 영국과 프랑스에서 대성공을 거둔다. '이상한 쇼'는 1400년경 프랑스왕실에서부터 기원한다. 당시 프랑스 왕실은 '다른 것'은 반드시 왕실로 가져와야 한다는 명령을 내렸다. 동물은 물론 사람도 그 대상이 되었다. 프랑스 왕실의 이러한 취미는 대중들에게 전달되어 '이상한 쇼'로 발전한다.

사라가 처음 전시되었던 런던 윌슨스뮤지컬 근처는 이미 이런 쇼가 번성하던 곳이었다. 이곳에서는 신체부위가 크거나 작은, 그리고 불구의 사람들이 그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밥법이를 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기형의 동물들에게 여자 옷을 입혀 전시하고 돈을 벌기도 했다. 현재도 이 곳에서는 포르노쇼 극장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남아프리카 코이코이(Khoi Khoi)부족이었던 사라에게 붙여진 애칭은 '호텐토트(유인원)의 비너스'. 영국의 식민지 개척으로 당시 많은 서구인들이 인류학자, 여행가의 이름으로 빈번히 남아프리카를 왕래했다. 이들은 유목민이었던 코이코이 부족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가장 '우수한 원숭이(유인원)'쯤으로 생각하고 이들의 생식기관에 관심을 가졌다. 특히 신체의 특정부위를 과장되게 묘사해 서구에 퍼뜨림으로써 사람들에게 성적 관심을 가지도록 자극했다.

엄청나게 큰 가슴과 툭 튀어나온 엉덩이를 코이코이 부족의 특징으로 묘사한 그림은 그것을 말해준다. 사라의 나체가 영국과 프랑스에서 대성공을 거둔 것은 이 때쯤. 실제로는 사라의 신체가 서구인들에 비해 기형적이지 않았다는 것이 관련 사가들의 증언이다.
 
한편 영국 재판부는 사라에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지만 사라는 돌아가서 노예가 되거나 질병에 대한 면역 상실로 죽게될 것을 두려워해 그것을 거부했다. 사라는 사리를 분간할 줄 아는 영리한 여자였다. 그러나 무려 5년동안 비인간적으로 이어지는 노역과 수모를 이기지 못한 사라 바트만은 1815년 1월1일 새벽, 자신의 스물여섯번째 생일을 눈앞에 두고 끝내 프랑스 파리에서 숨을 거둔다. 먼 이역 땅에서 변변히 돌보아주는 사람 하나없는 애절한 죽음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비운은 숨이 멎은 뒤에도 끝나지 않는다.  

그녀의 시신은 당시 프랑스의 유명한 해부학자인 조르쥬 쿠비에(George Cuvier)에게 양도된다. 조르쥬 쿠비에는 그녀의 시신에서 생식기와 뇌를 분리해낸 다음 '인간이 멈추고 동물이 시작되는 지점'을 찾아내는 연구에 몰두하게 된다. 그후 사라 바트만의 유해는 뇌와 생식기가 분리된채 박제되어 장장 187년 동안 프랑스의 인류학박물관에 소장 전시된다.

연극 사라 바트만의 공식 블로그의 주소는 http://blog.naver.com/jhimine

- 아해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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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대일로 만나는 자리는 아니었지만, 공연장에서가 아닌 자리에서 인순이라는 사람을 몇 번 봤다. 무대나 무대 밖에서나 그녀는 언제나 자신감이 넘쳤다. 에너지가 눈에 보였고, 그녀는 그것을 사람들과 공유하려 했다. 5월 7일과 8일 인순이는 세종문화회관에서 콘서트를 개최했다. 전국 투어의 일환이다. 2시간이 넘게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것을 던졌다.

"어버이날에 이렇게 오랫동안 자리에 앉아있어줘서 고맙다"라고 인사를 할 정도로 팬을 챙기는 인순이는 50대 중반이다. 그러나 안무팀에 전혀 밀리지 않는 관록을 자랑한다. 언제가 그녀는 말했다. 지금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그도 그럴 것이 그녀에게 삶은 의외로 가시밭길이었다. 바로 그녀에 대한 편견때문이었다. 혼혈은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에는 더더욱 그렇다. 아직도 그녀에 대해 50대 이상의 장년층은 아직혼 혼혈이 아닌 '튀기'라 부를 정도다. 이는 비단 대중들 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의 시선이었다.

18년 전인 1993년 한 언론에 실린 기사의 일부다. "혼혈여가수 인순이 씨가 오는 13일 경기도 송탄 미 공군기지 혼혈아센터에서 2만6000달러(약 2000만원)를 혼혈인협회에 기증할 예정이어서 눈길"이라고 적혔다. 지금 같으면 여러 시민단체는 물론 네티즌들에게도 난리가 날 말이다. 가수면 가수지, 혼혈 여가수가 무엇이냐고. 그러나 그때는 그랬다. 그리고 그 길을 인순이는 고스란히 받았다.

인순이가 걸어온 길을 조금 살펴보자. 이는 모 기사의 인용이다.

인순이는 18세 때 먹고 살기 위해 노래를 시작했다. 1978년 ‘희자매’로 데뷔한 인순이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녀들이 가지 않은 군부대가 없었다. ‘희자매’외에도 ‘숙자매’ ‘바니걸스’ ‘펄 시스터즈’ 등이 대중들의 큰 관심을 받았다. 이런 분위기는 80년대 초반 대학가요제 등의 인기로 달라졌다. 방송에서 ‘자매’들은 사라졌다. 이들의 터전은 행사장이나 밤무대로 바뀌었다. 해체한 팀도 많았지만 인순이는 꾸준히 노래를 불렀다. 80년대 중반 솔로로 나선 인순이는 신중현의 명곡 ‘떠나야 할 그 사람’과 ‘밤이면 밤마다’를 불러 반짝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혼혈가수’였다. 방송이나 신문뿐만 아니라 그를 소개하는 모든 글은 ‘혼혈가수’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혼혈’에 대한 아픔은 고스란히 딸에게도 이어졌다. 1994년 박경배 경희대 대학원 교수와 결혼한 인순이는 미국에서 딸을 낳았다. 혼혈이라는 우리 사회의 차별이 걱정되어 미국 시민권이라는 안전장치를 마련해주고 싶어서였다.

시대가 바뀌면서 어린 가수들에게 밀려 점점 묻히는 듯 했던 인순이는 1993년 KBS 1TV에 음악프로그램 ‘열린 음악회’가 생기면서 다시 대중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립싱크 위주로 점점 변질되어가던 음악 순위 프로그램에 지쳐있던 시청자들은 ‘진짜’ 노래하는 가수들이 나오고 다양한 음악들이 선보이는 ‘열린 음악회’에 빠졌다. 그리고 그곳을 인순이가 평정했다.

‘밤이면 밤마다’ 등으로 객석을 휘어잡던 인순이는 어느새 프로그램 마지막을 장식하는 메인 가수로 자리 잡았다. 아무리 인기 있던 어린 가수들이 나와도 인순이가 등장하는 날에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그런 인순이가 2004년 대형 사고를 쳤다. 2004년 6월 초 래퍼 조PD와 함께 부른 곡 ‘친구여’로 MBC 음악캠프에서 1위를 차지했다. 젊은 층이 인순이에게 열광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인순이는 당시 젊은 가수들에게 밀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배꼽 티와 핫팬츠를 입기 위해 등산을 하는 열정을 보이기도 했다. 이런 모습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인순이가 지금 가장 행복한 이유는 그의 노래가 히트해서도, 그의 인지도가 높아서도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가 고스란히 몸으로 받아냈던 편견이 어느새 지워지고, 그를 그냥 인순이로 봐줘서일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그는 후배들의 사랑도 받고 대중들의 사랑도 받는다.

최근 인순이가 '나는 가수다' 제의를 거절했다고 들었다. 한쪽에서는 잘했다고 하고, 한쪽에서는 아쉽다고 말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만일 인순이가 '나는 가수다'에 나왔다면, 임재범과 더불어 후배 가수들 다 죽이는 꼴이 될 듯 싶었다. 그 끼와 가창력 그리고 여유는 단연 으뜸이니 말이다.

- 아해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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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한 요금제. 사실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이 요금제는 매력적일 수 밖에 없다. 와이파이 존이 아무리 많아도 사실 전국이 연결되어 있지 않고, 서울에서도 와이파이는 들쑥날쑥 뜬다. 지하철 역에서 와이파이 잡히다가도 역 간 이동 중 와이파이는 사라진다. 간혹 앱을 받다가도 대용량이라고 3G 상태에서는 사라진다. 그러니 마음 놓고 와이파이를 켜놓을 수 없게 되고 무제한 요금제는 유용하게 사용된다.

당장은 방통위나 SKT도 폐지할 의향은 없다고 말한다. 울며 겨자먹기로 SKT를 따라갔던 KT와 LGU+는 눈치만 보는 중이다. SKT에서는 이미 자신들의 마케팅 실수를 인정했다. 사용자들의 과다하게 트래픽 사용을 예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KT 3월 무선데이터 사용자 분포를 보면 상위 1% 사용자가 전체 데이터 사용량의 40%를 쓰고, 사우이 10%가 전체 93%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SKT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이다. SKT의 실수 인정은 받아들이더라도, 그 실수를 이제 다시 소비자에게 전가하려는 태도는 어떻게 봐야할까.

물론 이에 대해 일부 언론은 '현명한 스마트폰 요금제 사용자와 도덕적 헤이에 빠진 사용자들 중 누구를 고려해야 하는가'라며 이분화 시키고 있다. 누가 현명하고 누가 모럴 헤저드인가.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고 이를 마치 새로운 세상을 열게 한 듯 광고를 한 것은 이통사들 아니었던가. 그 광고에 따르면 도리어 스마트폰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이들이 바보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소비자를 그런 위치로 만들어놓고, 이제는 사용하고 나니 트래픽 증가를 예측 못했다고 해서 책임을 소비자들에게 전가하려는 태도는 어이없음이다.

일부에서는 모듈형 요금제도 검토 중이라 말한다. 음성통화, 문자메시지, 무선데이터 사용량을 분리시켜 사용자가 선호하는 대로 고를 수 있는 요금제라 한다. 일면 타당한 대책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이통사들이 자기들의 수익 증대를 위해 요금제 등을 내놓았다가, 불리해지면 뒤로 빠지는 이런 행태에 언제까지 소비자가 당할 것인지에 대해서부터 논의해야 하지 않을까.

혹자는 공공재인 전파를 가지고 국민에게 순이익 3조의 엄청난 수익을 걷어들이는 것부터 바로잡아야 된다고 주장할 정도니 말이다.

- 아해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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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상 1기와 2기로 나누자. 김건모, 백지영 등까지 포함되어있던 1기 때의 논란이 2기 때는 거의 없어졌다. 심사의 룰이 바뀌기도 했지만, 기존에 빠진 가수들보다 더 묵직한 느낌의 가수들이 자리했기 때문일 것이다. 김건모와 백지영이 약간 예능의 느낌을 선사했다면, 임재범, BMK, 김연우의 합류는 음악성의 탄탄하게 보강된 느낌이다. 그러니 시청자들의 입장에서 이 '아름다운 선물'에 대해 뭐라 딴죽을 걸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완전히'라는 표현 대신 '거의'라는 표현을 쓴 이유는 프로그램과 시청자가 만나는 접점에서 일어나는 논란은 해결됐지만, 프로그램과 음반 제작자들의 충돌은 이제 시작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는 밤 11시. 멜론 실시간 차트 1위는 박정현이 부른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다. 이소라가 부른 '넘버원'이 5위며, 임재범의 '빈잔'이 7위며, 임재범의 '너를 위해'가 8위다. 김연우의 '미련'이 10위며, 김범수의 '제발'이 16위, BMK의 '그대 내게 다시'가 17위, BMK '꽃피는 봄이 오면' 18위, 윤도현의 '마법의 성'이 21위다. 1위부터 10위까지에 5개가 들어갔다. 흔히 상위권이라 지칭되는 20위 권 내에서도 8개가 이름을 올렸다.

음반 제작자들의 반발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나가수'에 나오는 가수들의 실력을, 관록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예능 프로그램을 등에 지고 나온 음원이 음원 순위를 싹쓸이하며 수익을 올린다는 점에서 공들여 앨범을 만든 이들의 노력이 무시당한다는 것이 이들이 반발하는 이유다. 기존에 인기있는 아이돌 그룹도 밀리는 판에 어느 신인이 음원을 출시할 것이며, 이럴 경우 가요계의 침체는 한층 더 심화될 것이라 주장한다.

그럼 MBC는 어떤 입장일까. 한마디로 문제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네티즌들도 음반 제작자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한다. 기껏 하나의 예능프로그램에 밀리는 앨범을 제작하면서 무슨 할 말이 있냐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생각하자면 음반 제작자들보다는 누리꾼들의 비판에 더 귀가 쏠린다. 간단하다. 이미 천편일률적인 음악 밖에 들려주지 못하는 가요계에 더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것이다. 똑같은 작곡가, 작사가의 느낌에서 얼굴만 다른 아이돌이 나와 노래를 부르니, 그것에 과연 귀가 쏠리겠는가. 그러다보니 진짜 노래를 부르는 진짜 가수들의 목소리에 시청자들은 귀를 정화시킨다는 표현까지 써가며 다가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노래를 방송 뿐만 아니라, 다시 찾아서 듣고 싶은 열망이 음원 차트에 반영되는 셈이다.

그러나 정작 피해자는 다른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천편일률적인 아이돌 그룹의 음악이 아닌, 진짜 노래를 들고 가요계에서 활동하고픈 신인 가수 혹은 보컬리스트들이다. '나가수'는 이들까지도 매장시키고 있는 셈이다. 찾아보면 이들의 노래 실력도 현재 '나가수'에 나오는 이들 못지 않고, 더 키워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가수들도 있다. 그러나 이들까지도 기존의 가요계와 똑같은 레벨로 평가받으며 매장당하고 있다.

물론 이들에 대한 해법은 사실상 없다. 그들이 '나가수'에 의해 피해를 입고는 있지만, 이들의 대항력이 아이돌 그룹 소속사나, 대형 기획사처럼 탄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도 지금은 어쩔 수 없이 피해를 입는 반(反) '나가수' 입장에 서는 수 밖에 없다.

이처럼 이들까지 포함해 현재 가요계 구도가, 음원 구도가 어느 순간 '나는 가수다'와 '나는 가수이고 싶다'의 대결로 나뉘어지고 있다. 현재는 '나가수'의 압도적인 승리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려되는 것은 이들이 대중에게 던져준 메시지를 가요계에서 수익 계산만 하는 이들이 '적대적'으로만 다가가면 악의적인 비난을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무엇을 바꿔야 할지에 대한 고민은 안하고 말이다.

- 아해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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