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문화제를 폭력사태로 만든 것은 누가봐도 정부입니다. 제대로 된 답변 대신 무조건 자기들 말만 들으라고 하면 과연 누가 듣겠습니까. 국민들과 수많은 전문가들, 그리고 일부 제정신 차린 언론과 재외국민들조차도 의문점을 제기하는데, 정부는 이 의문점에 대해 제대로 대답하지는 못하고 무조건 자기 주장만 합니다. 국민은 불안에 떨며 생존권을 주장하는데, 정부는 '미국산 소는 안전하다'라고만 외쳐댑니다. 왜 안전한지를 설명하지도 않고, 그 수많은 논리적 주장에 대해서는 정확한 답변을 하지는 않은채 텔레토비처럼 계속 같은 말만 읇어댑니다.
어느 네티즌은 그래도 도로로 나간 시위는 아니라고 말합니다. 또다른 네티즌은 경찰이 어쩔 수 없이 폭력진압을 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제 생각은 다릅니다.
국민들은 목에 피가 나도록 외치고 있는데 이명박 대통령과 당사자들은 귀를 막고 들으려 하지 않고 있습니다. 듣지를 못하니 그에 대한 적절한 답변를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국민들은 귀를 막고 있는 손은 떼어주려 하는 것입니다. 누군가 그 손을 떼어준다면 국민들은 절대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야당은 당리당략에만 빠지고 의원 스스로는 살길만 찾아가는 이들이 대다수이며, 소수 의원들의 목소리는 이들 다수에 묻혀 힘을 받지 못합니다. 여당은 그다지 할말이 없고요. 자신들을 뽑아준 국민보다 대통령 눈치보기 바쁘니까요. 이들은 도리어 대통령이 귀막고 있는 사이 '인의 장막'까지 칠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은 말 잘듣는 대한민국 정부를 보면서 흐뭇해만 하고 있고요.
그러니 이명박이를 대통령으로 만든 '죄많은' 대한민국 국민들이 직접 귀에서 손을 떼고 목소리를 들려주려 청와대로 향한겁니다. 그랬더니 바로 범법자라는 딱지를 붙입니다. 이미 위장전입 등의 죄와, BBK 등 아직도 풀리지 않는 (특검이 풀어줬다고 정말 믿습니까. 광운대 동영상과 수많은 인터뷰를 부정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바보대통령을 가졌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네요) 의문을 가지고 있는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만든 순간 우리는 공범이 되어버리고 만 국민들에게 아예 다시한번 "당신들은 범법자야"라고 낙인을 찍은 것이지요.
도로를 점거하고 정치 구호를 외치는 시위대에 "촛불만 들어라"라고 외치는 사람들에게 전 다시 요구하고싶습니다. 대통령 귀를 막고 있는 손을 당신들이 떼어달라고요. 그리고 대통령이 국민의 소리를 듣게 해달라고요. 17번째나 수십만명의 국민들이 모여서 정말 '평화적인' 촛불집회를 했습니다. 평화적인 목소리를 냈고, 집회가 아닌 축제의 장으로 만들며 대통령에게 '평화적인' 요구를 했습니다. 대화를 요구했고, 근거있는 답변을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귀를 막고 있는 손은 그대로였습니다.
누군가 대통령 귀를 막고 있는 손을 뗀다면 사람들은 다시 도로에서 나와 손에 촛불만 든 채 '축제'를 개최할 겁니다.
간혹 '진실'을 은폐하려는 사람들은 '진실'을 아는 순간 더 혼란에 빠질 수 있기에 '거짓'을 말해야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런 내용은 대부분 불순하다. 무엇인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사람들에게 '진실을 아는 고통'에서 해방시켜주겠다고 으름짱을 놓기도 한다. 하지만 진짜 그 고통으로부터 벗어나야 할 때도 있다. 특히 종교에 관해서는 더더욱 그렇다.
연극 '순교자'는 이같은 말에 부응하면서도 진실에 대한 '은폐'가 아닌 또다른 '진실'에 대한 접근을 말하고 있다. '순교'라는 종교적 가치에 대해 '진실'과 '거짓'을 충돌한다. 진실을 아는 순간 많은 사람들의 고통이 잇따를테고, 거짓이 그대로 유통되면 몇몇 사람들만 고통스러워 하면 된다.
세종문화회관과 서울시극단이 세종문화회관 개관 30주년과 한국 신연극 100주년을 기념해 무대에 올린 연극 '순교자'는 최근 급격히 가벼워진 연극계에서 보기 드문 무거운 연극이다. 그리고 그 무거움 안에서 연극은 '진실'과 '거짓'에 대해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혼란스럽게 한다.
배경은 6.25전후 쇠락한 평양의 중앙교회다. 육군본부 정보국장 장 대령은 육군특무부대로 평양에 파견된 이 대위에게 한국전쟁 당시 평양에서 공산당에서 감금된 14명의 목사를 조사하라고 말한다. 이중 12명은 처형당했고 2명은 살아남았다. 연극은 '산 자'와 '죽은 자'의 삶과 죽음에 대해 진실을 밝혀내려고 한다. 진실이 따로 있음을 직감한 이 대위는 다양한 방법으로 살아남은 신목사에게 진실을 요구하지만 신목사는 '진실'에 대해 고민한다. 또 '순교자'가 되어야 할 '죽은 자'들에 대해 장 대령 역시 '진실'을 말하기 꺼려한다. 그러나 당시 이들을 처형한 공산당 정 소좌는 목사들의 죽음에 대해 밝히면서 그들이 신앙을 부정했다고 말한다. 도리어 살아남은 신 목사 진정한 신앙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다시 신목사에 의해 부정된다.
연극 '순교자'는 1969년 한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른 김은국의 동명소설을 무대로 옮긴 것으로 인간 본연의 모습에 대해 적나라하게 이야기한다. 극은 이 대위가 상황에 대해 독백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극의 무게감과는 별개로 관객들의 집중도는 후반으로 갈수록 떨어지는 편이다. '목사들의 죽음'에 대한 극적 반전도 다소 떨어지는 상황이다. 정 소좌의 발언이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기는 하지만 이미 어느 정도 추측이 가능한 상태로 끌고간 상황에서의 반전이기에 후반부 '추모 기도' 장면이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또 중간중간 제대로 대사가 전달이 안되는 것도 아쉽다.
그러나 최근에 보기 드문 생각하는 연극임에는 틀림없다. 연극이 무대 위 배우를 통해 세상사와 인간을 이야기해야 하는 예술이라면 연극 '순교자'는 이에 충분히 부응했다고 여겨진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대통령 담화를 할 정도면 그 자체로 국민들에게 뭔가 믿음을 줘야 한다. 말투도 그렇고 내용도 그렇고 담화 내내 '신뢰'라는 것이 느껴져야 '정상'이다. 그런데 5월 22일 이명박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는 기존의 내용만 반복하는 '앵무새' 수준을 보여줬고, 도리어 국민에 대한 협박 비슷한 느낌마저 줬다.
괴담을 퍼지게 한 것은 현 정부다. 미스터리한 내용의 발표만 잇따라 발표하고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지도 못한 채 미봉책 비슷한 협상으로 귀막고 눈막으려 한 것은 정부다. 그것을 국민에게 책임 전가를 하는 대통령의 모습에서 난 미국의 일개 '주지사'의 모습을 봤다.
30개월 이상 소를 수입하겠다고 말해 일본의 20개월 미만의 소만 수입하는 처지와 비교되는 점. 미국에서도 식용을 금지하는 광우병 특정위험물질의 수입을 허용하는 것. 미국에게는 30개월 미만도 된다며 캐나다는 죽어도 30개월 미만만 하려는 희한한 외교 협상, '국민여론을 이유로 재협상할 수 없다'며 미국의 입장만 대변하는 공무원들의 처신 등등으로 인해 국민에게 불안감을 안겨주며 '괴담 양산'에 힘썼던 것은 정부라는 것이다.
거기에 대통령이 당황했다는 것은 국민들이 '촛불'을 들기 전까지는 자기 밑의 공무원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몰랐다는 것으로밖에 해석이 안된다. '광우병 괴담'에 당황할 것이 아니라 "왜 내 밑의 애들은 이리도 일 못하냐"에 더 당황했어야 했다.
2. 청계광장에 나온 어린학생들 보고 가슴 아팠다.
말이 틀렸다. "무엇보다 제가 심혈을 기울여 복원한 바로 그 청계광장에 어린 학생들까지 나와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것을 보고는 참으로 가슴 아팠다"는 잘못된 말이다. "제가 만든 그 청계광장에까지 나와 촛불집회를 하는 어린 학생들에게까지도 죄송스럽다"라고 말했어야 했다. 가슴이 왜 아팠을까. 자신들의 잘못된 협상에 대해 그냥 눈감아주지 않아서 가슴 아팠던 것일까. 아니면 그 어린 학생들을 적절히 통제하지 못한 것이 가슴 아팠던 것일까.
정말 그 어린 학생들의 목소리에 가슴이 아팠다면 이따위로 변명하면서 어쨌든 미국 눈치만 보려 하지 말았어야 했다. 내가 보기에는 아무래도 그 어린 학생들이 사는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가슴이 아팠던 것이 아니라, 자신이 만든 청계광장이 더렵혀지는 것에 대해 가슴이 아팠던 것 같다.
뒤의 FTA 문제나 경제문제는 넘어가기로 하자. IMF불러온 자신들의 실정은 기억하지 못한채 무조건 10년동안 나라 경제 망했다고 주장하는 한나라당이니 이는 더이상 말하기도 입만 아프다.
아무튼 오늘 이명박의 대국민사과는 사과가 아니라 일단 "입닥치고 쇠고기 먹고 내가 만든 청계광장은 더럽히지 마라"라고 국민 협박하는 수준이었다.
아무리 봐도 걸작이다. "노무현은 조중동이랑 싸우고, 이명박은 초중고랑 싸우고". 그런데 초중고랑 싸우던 이명박이 자기 편 안든다고 몇몇 언론 대상으로 '생떼'를 부리고 있다. 이젠 초중고랑 싸우는 것도 사실 격 높은 행동이라고 해줘야겠다. 하는 수준이 '유치원'이하로 내려가고 있으니 말이다.
경향신문은 19일자 신문에서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권력의 언론통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언론통제 시도가 위험 수위를 넘어서면서 국민의 알권리를 중대하게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학계와 언론단체, 일선 언론인들로부터 잇따르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보인 경향신문에 대해 정부가 사실상 정부 광고 배정 등 차별적 대응을 검토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나온 보도다. 이명박이 한 나라의 지도자가 아닌 기업가 수준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기업들이 언론을 통제할 때 쓰는 가장 유용한 방법인 '광고 통제' 방법을 들고 나왔으니 말이다.
인수위 때는 아예 각 언론사 간부들의 성향을 조사했다. 한나라당의 뿌리가 군사정권에 있다는 증거를 보여줬다. 기자 출신이라 언론에 대해 '좀' 안다는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은 국민일보 편집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부동산 투기 의혹 기사를 막으려 했다. 물론 개념없는 국민일보 윗선들은 기자들이 취재해 온 것을 다음날 내보내지 않았다가 거센 항의를 받자 겨우겨우 눈치보며 내보냈다. 최시중이 위원장으로 있는 방통위는 대통령 비난 댓글을 삭제해달라고 다음에 요청했다.
광우병 문제를 거론한 PD수첩에 대해서는 민·형사상 소송 제기를 검토하겠다고 발표하고 EBS '지식채널'은 결방 압력을 넣었다.
노무현 정부가 기자실 폐쇄한 것은 '애교 수준'이다. 적어도 기사를 못 쓰게 하고 방송을 못하게 하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은총을 얻고 있는 메이저 언론사들은 침묵한다. 딱 5공때 수준이다. 말 잘듣는 멍멍이 노릇해서 회사 키우고, 국민들 우롱하고. 말 안듣는 '언론'들은 죽임 당하고.
문제는 국민이 그때와 다르고 소통의 방법도 다르며, 이미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거친 국민들이 대통령을 그다지 높은 직위로 인식하지 않으며 정부에 대해 거침없이 비판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즐긴다고' 생각했던 글쓰는 작업도 거의 중단 상태가 되어버렸다. 글로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다는 자만심조차 끝없이 추락하고 말았다. 내 글을 쓰기도 싫었지만 다른 이의 글도 읽혀지지 않았다. 세상이 돌아가는 것이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일시적인 흥분과 분노, 소모적인 논쟁만 머리속에서 맴돌았다.
일회성 정보에 지쳐가고, 일회성 글쓰기에 지쳐가고, 일회성 만남에 허탈해하고, 일회성 웃음에 어이없어하고, 일회성 사고에 바보가 되어버린 기분이 들었다.
논쟁과 사고에 기인한 글쓰기는 사라지고, 소모성 자료와 버려질 정보를 기반한 글쓰기만 남아있었다. 결국 내 글은 사라지고 다른 사람의 글만 남게 됐다.
슬럼프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해답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아주 가까운 친구가 해답을 줬다. 그 친구는 별 의미없이 던진 말이라고 하지만 나에게는 '정답'처럼 여겨졌다.
"네가 전에 썼던 글들 다시 읽어봐"
내가 과거에 글을 잘 썼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열정적으로 뭔가에 빠져있고, 논쟁한 후에 옮겨적은 글들이 내 블로그에 내 일기장에 내가 기록한 모든 것에 남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일회성에, 소모성에 지쳐있다는 것은 아직 그것들에 익숙치 않다는 것이고 다시 조금이라도 그 이전을 떠올릴 수 있다면 슬럼프를 벗어날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고 여겨졌다. 그런데 그게 글쟁이인 내게는 역시 내가 쓴 과거의 글이었다.
이번 주내 슬럼프에서 벗어나 보려 한다. 글을 다시 써보려 하고, 다시 논쟁의 공간으로 들어가려 한다.
웃긴 말일지 모르지만 난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집권 3개월만에 이정도로 민심을 화나게 하는 이명박 정부를 보면 한심하기도 하지만 적절한 타이밍에 들어섰다. 전 세계가 경쟁관계로 들어서고 정부과 국민이 똘똘 뭉쳐야 하는 상황에서 그 동안 사실 우리는 안이했다.
평화롭고 자유로움은 늘 즐기면 좋겠지만, 이런 상황이 이어지면 사람들은 진지함을 잃어버리고 생각하기 귀찮아진다. 정부가 뭘 잘못해서 욕을 해도 잘 들어먹히고 동시에 대통령 이하 정부가 무게만 잡는 권위가 없다보니 편하다. 그런데 이 편안함은 바로 나태함으로 이어지고 내가 무엇인가를 찾아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게 된다.
아마 김대중-노무현 정부이후 또다시 비슷한 정부가 들어섰다면, 즉 제대로 된 민주주의와 자유를 배우지 못한 상황에서 어질어질한 상태까지 간 국민이 아마 그로기 상태가 되어 국가대 국가의 경쟁에서는 밀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국민의 나태함을 일깨어주고 있다. 아주 제대로 말이다.
일단 3개월만에 국민들의 마음을 잘 뭉치게 했다. 그것도 과거처럼 20~30대처럼 젊은 층뿐만 아니라 10대의 어린층까지도 길거리로 나오게 했다. 4년 후, 그리고 5년 후 선거에 참여해 정권을 평가할 세대를 길거리로 끌어낸 것이다. 사회에 대해 정치에 대해 무관심한 세대를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 대해 새롭게 느끼게 해줬고 중국에 대해 더 새롭게 느끼게 해줬으며 국가가 정치를 잘못하면 국민에게 어떻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되는지 제대로 알려주고 있다. '가진 자'들을 위한 정책이 어떻게 나올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으며 대통령의 결정 하나가 국민들을 어떻게 죽일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
지도자 하나가 국민들을 어떻게 불안하게 만드는지 제대로 학습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은 대통령이 만만하다보니 이야기를 잘 들어주다보니 넘어갈 일이, 이제는 귀 틀어막은 지도자 만나서 답답한 상황을 배우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이 생각이라는 것을 하게 되고 나에게 끼치는 영향에 대해 계산을 하게 된다. 내가 잘못 투표하면 어떤 재앙이 일어나는지도 보고 있다.
지도자에 대해, 선거에 대해, 자유에 대해, 권위에 대해, 대화에 대해, 사회에 대해, 정치에 대해 국민들에게 제대로 이명박 정부가 공부시켜 주고 있다.
그래서 이명박 정부를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3개월이면 족하다. 앞으로 4년이상을 더 공부시켜주지 않아도 될 듯 싶다. 이제 적당히 하고 공부시킨 것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언제까지 국민들의 한숨을 바탕으로 국가를 이끌어갈 생각인지 궁금하다ㅣ
주변 사람들이 옥션 소송을 걸어야 되는지 말아야 되는지 묻고 있다. 알아서 할 문제지만 본인이 정말 피해를 입었다면, 그리고 향후 피해를 입을 것 같은 하고 그렇지 않다면 굳이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나중에 받을 금액이 최대 200만원정도라는 '근거없는' 이야기를 '근거'로 소송을 걸려고 한다.
이번 사태를 보면 1차적인 문제는 역시 옥션이다. 보안을 철저히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창을 완벽하게 막는 방패는 보지 못했다. 전산망은 더더욱 그러하다. 이는 단지 옥션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인 문제로 떠올라야 하는데, 별로 그다지 그런 문제점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이 역시도 저 '200만원'을 옥션을 통해 받을 수 있다는 일부 개념 상실 네티즌들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번 일로 난 도리어 내가 가입한 사이트의 비번도 바꾸고 일제 점검도 했다. 그러면서 느낀 것은 과연 내 '개인 정보'에 대해 난 얼마나 소중히 아꼈는지 되돌아보겠다. 조그마한 상품 하나 준다고 내 정보를 그냥 준 것은 아닌지, 서류에 사인을 하거나 할 때 정말 개인정보에 대한 약관이라도 꼼꼼히 읽어보았는지 돌아보게 됐다.
어느 네티즌은 '왜 탈퇴한 네티즌의 개인정보까지 아직 가지고 있냐'고 댓글을 달았다. 약관 제대로 읽고 체크했는지 본인부터 돌아보라. 거래가 있을시 일정 기간 동안 업체는 그 개인정보를 가지고 있도록 약관에 되어 있다. 그런데 그거 보지도 않고 바로 '승인 체크'를 한 것이다. 무슨 배짱일까.
옥션 사태에 대해 옥션은 물론 비판받아야 하지만 그 비판의 몫을 스스로 일정부분 스스로 나눠가질 생각을 네티즌도 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