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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이 5일부터 세 번째 여름 휴가에 나선다. 코스피와 코스닥은 바닥을 향해 가고, 경제는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정치를 저질로 만들어 놓은 후 떠나는 즐거운여행이다. 그런데 여행 기사 중에 재미있는 내용이 있다.

 

윤 대통령은 휴가 기간 독서 등으로 휴식을 취하며 국정운영 방향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또 휴가 기간을 활용해 국민들과 소통 기회도 늘려나간다는 계획이다

 

일단 국민과 소통이야 어디 시장 가서 술과 안주를 먹는 것이 다일 테이니 넘어가고, 가장 눈길을 끈 부분은 독서.

 

정치인에게 독서 리스트 공개는 일종의 메시지다. 특히 대통령일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한 나라의 리더가 어떤 책을 읽냐를 보면, 리더의 생각이 보인다.

 

 

‘서민 코스프레’ 실패한 김건희, 그리고 김정숙 소환한 전여옥의 비루한 판단.

이번엔 리투아니아 명품 순례다. ‘서민 코스프레’가 지겨웠고, 어차피 자신은 한국 기자들 데리고 다니지 않으니, 안 걸릴 것이라 생각한 모양이다. 혹자는 그런다. 왜 이렇게 김건희가 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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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마어마한 독서량을 자랑했던 김대중 대통령은 정치, 경제, 사회 서적을 비롯해 해리포터 시리즈등 판타지 문학을 여름 휴가철에 읽었다. 특히 브래들리 트레버 그리브의 누구에게나 우울한 날은 있다란은 사진 에세이도 읽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파인만의 여섯 가지 물리 이야기’, ‘코끼리를 춤추게 하라’, ‘5일 트랜드’, 최장집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열독했다.

 

 

 

이명박은 여름 휴가를 떠나기 전 청와대 참모들에게 리처드 탈러와 캐스 선스타인이 쓴 책 '넛지'를 선물했다. 박근혜는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의 '한국인만 모르는 다른 대한민국'을 여름 휴가철에 읽은 뒤 참모들에게 추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수시로 책을 추천했다. ‘소년이 온다’,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 ‘국수등 한국 근현대사와 북한에 관한 책들을 여름 휴가철에 읽었다.

 

그런데 윤석열은 집권 3년차 동안 독서에 대한 이야기가 없었다. 이에 대한 기사는 이렇게 나와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들과 달리 집권 후 한 번도 여름 휴가철 독서 목록을 공개하지 않았다. '보여주기식 독서'를 하지 않겠다는 취지다

 

대부분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이게 무슨 소리야???”. 뭐 쉽게 해석하면 책을 읽지 않았다로 추측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오마이뉴스가 재미있는 기사를 냈다.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이 지난해 5월 출범한 이후 올 3월 현재까지 10개월 동안 단 한 권의 책도 구입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10일 오마이뉴스가 대통령비서실을 상대로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제출받은 답변서에 따르면, 대통령비서실은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도서 구매 내역은 없다라고 밝혔다

 

윤석열은 대북정책이든, 국내정치든, 외교든 “보여주기식으로 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나름 멋진 말이다. 보여주기식보다는 내실을 다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윤석열 입에서 나오면 이렇게 의미가 바뀐다.보여줄 것이 없다”로 말이다. 윤석열에게 휴가란 차기 국정을 위한 구상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 편안하게 술 마시는 자리일 뿐인 듯 싶다.

 

- 아해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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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그리스 로마의 인문학 산책>을 읽고 엉망인 번역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그 이후에는 번역된 책에 대해 선뜻 손이 가지 않았고, 지금도 유효하다.
 
그러다 조앤 디디온의 <내 말의 의미는>이란 책을 우연히 알게 됐다. 조앤 디디온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그가 쓴 글을 오랜만에 접하려고 책장을 넘겼다. 번역은 김희정 번역가가 했다. 나름 꽤 많은 번역을 했다기에 약간(?)의 믿음을 가지고 책을 펼쳤다.
 

 

번역 엉망, 도대체 왜?... <그리스 로마 인문학 산책>

과거 몇 번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한국의 번역 영역은 정말 제대로 존중받아야 하고, 키워야 한다고. 이는 글을 읽는 사람들은 누구나 공감할 거다. 앞의 몇 장 읽었을 때, 번역이 제대로 안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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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앤 디디온 내말의 의미는

 
머리말은 비평가인 힐튼 앨스가 썼다. 그 머리말을 읽으면서부터 뭔가 이상했다. “아 또 책을 잘못 집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이 문장을 읽으면서, 갸우뚱해진 고개는 아예 꺾였다. 불과 여섯 번째 페이지에 있는 글이다. 조앤 디디온이 1968년에 발표한 ‘앨리시아와 대안 언론’이라는 글의 일부 내용을, 힐튼 앨스가 소개한 후 쓴 글을 이렇게 번역했다.

 

“이 글이 뛰어난 이유는 여러 가지다. 단호하고 짜증 난다는 듯한 특유의 어투와 <이스트 빌리지 아더>와 같은 제목이 불러일으키는 향수 말고도 이 글의 큰 장점은 그녀가 작가 정신을 펼쳐 보이는 뒷부분에서 드러난다.”

 
이후 책을 접었다. 누군가는 “원문을 충실하게 옮긴 것일 수도 있으니, 원문을 찾아봐야 하는 거 아니냐”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원문의 문제가 아니다. 어쩌면 저 내용이 원문을 충실하게 옮긴 것일 수도 있다. 문제는 이를 읽는 이들은 ‘한국 독자’라는 점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그게 그게 아니다. 그런데 걔는 그게 맞대. 그게 뭐냐고? 그 있잖아, 그래. 그거”
 
이것을 영어로 번역하면 어찌 될까. 한국인들은 읽는데 무리가 없다. ‘그’의 대상에는 그 어떤 것이 들어가도 상관없다. 어떤 이들은 그냥 “어제 새로 만난 친구 이야기인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런데 영어로 직역하면 과연 외국인들은 이해를 할까? 그런데 번역하는 이들이 지금 그렇게 하고 있다.
 
위의 조앤 디디온의 <내 말의 의미는>의 머리말을 옮긴 글을 보면, 답답함이 느껴진다. 차라리.
 

“이 글이 뛰어난 이유는 여러 가지다. 단호하고 짜증 난다는 듯한 특유의 어투가 우선 그렇다. 그리고 <이스트 빌리지 아더>와 같은 제목으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도 글의 뛰어남을 보여준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글의 큰 장점은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있다. 글의 뒷부분에서 드러나는 그녀의 작가 정신이 그것이다.”

 
원문과 동일한 번역이 아니더라도, 한국 독자를 위한다면 차라리 이렇게 쓰는 것이 낫지 않을까.
 
이전에도 언급했지만, 한국의 번역문학, 번역문화는 좀 더 냉정하게 평가받을 필요가 있고, 더 치열하게 발전시켜야 한다. 영화 자막 하나에 광분하는 이들이 정작 책의 이상한 번역은 넘어간다. (아니면 제대로 읽지 못해 찾지 못하는 것일수도). 그렇게 해 놓고 책 광고에는 굉장히 ’위대한 책‘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 등의 미사여구를 동원한다. 책임감이 결여된 행동이다.
 
아무튼 <내 말의 의미는>은 6페이지까지의 글을 읽고 이후를 포기했다. 물론 그 이후에 자연스러운 문체가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책을 전체적으로 조명하는 머리말이 저 정도라면, 그 이후는 보나마다다.
 
- 아해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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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세대니 어쩌구 해도 모든 것의 마지막은 확실히 글이다. 영상을 만드는 사람들도 기획 단계에서 글을 쓰고, 의사 전달을 해야 하며, 마지막도 글로 정리를 해야 한다. 글은 그 존재가 만들어지고 나서부터 어찌되었던 사람과 가장 가까이에서 존재하며 활용된다.

 

인터넷이 생기고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전달하는 플랫폼이 다양화되면서 글을 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전에는 글을 써서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것 자체가 권력이었다. 신문이나 잡지, 방송 등이 권력을 갖는 이유가 이 때문이었다. 매체와 유통을 같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얼빈>(김훈)┃안중근의 ‘빛나는 청춘’을 그려내다

젊은 세대에서 김훈의 소설이 별로 인기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너무 정적이라는 이유에서다. 극장가에서도 탄탄한 스토리를 기반으로 한 영화보다는 개연성이 떨어지더라도 크고 화려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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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들의 문장 강화
글을 잘 쓰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해 추천하는 책이다.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보다는 그들이 하는 이야기에 집중하면 좋을 듯 싶다.

 

그런데 인터넷은 이를 무너뜨렸다. 사람들은 카페에, 블로그에, 기사 하단 댓글 창에 자신의 의견을 쏟아냈다. 더 나아가 트위터, 페이스북을 통해 의견을 개진하고, 새로운 사실을 알렸다. 기자, 작가 등만 하던 일이 대중화 된 셈이다.

 

이런 현상 자체는 매우 긍정적이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고,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사이에 사람들의 사고와 행동은 어떤 형식으로든 진화되기 때문이다. 의견이 공유되고, 사고의 교정도 가능하다.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 백성이 글을 손쉽게 익히면 지배층이 무너진다는 우려를 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손쉽게 글을 쓰게 된 상황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누구나글을 쓰며 의견을 공유하는 세상이 왔지만, ‘제대로글을 쓰는 사람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의 의견 공유는 자칫 진보가 아닌 퇴보로 향한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개인적인 생각으로 긴 글, 즉 호흡이 긴 글을 쓰지 못하기 때문이다. 페이스북과 트위터에서 단문으로 글을 소화하는 것이 익숙해지다 보니 나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펼쳐 상대를 설득하거나 반박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있다. 느끼는 대로 쏟아내고, 배설한다. 결국 글 역시 감정을 그대로 드러내기만 했지만, 그 감정을 조절하지는 못한다.

 

10대 때 논리에 대해 빈약한 교육을 받은 이들이, 이후 성인이 되어 쓰는 글 조차도 단문 위주의 가벼운 관심끌기 식이니 글쓰기 실력이 늘리 없다. 그들이 글을 잘 쓰기 위해 서점에서 구입하는 글쓰기 기술 책을 아무리 읽어도 이해되지 못하는 이유다.

 

 

글 그리고 글쓰기,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냐고? 글이 뭘까

여러 자리에서 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가 있다. 글을 쓰는 직업인지라 (물론 지금은 내 글을 자주 쓰기보다는 주로 다른 이의 글을 고치고 있다) 종종 내가 있는 자리에서는 글 이야기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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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다시 다른 문제로 이어진다. 긴 글을 읽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성인 1명이 1년에 책을 10권을 채 읽지 못한다는 등의 통계적 문제가 아니다. 인터넷상에 있는 그다지 길지 않지만, 두 세 번 스크롤 해야 하는 글도 소화해 내지 못한다. (?) 기사 댓글에는 너무 길어 읽지 못하겠다거나 제목만 읽고 댓글을 다는 사람도 넘쳐난다.

 

이를 극복할 방법? 지름길이 없다. 그냥 다시 많이 읽고 쓰는 수밖에. 내 기억에는 그 때 오락꺼리가 없기 때문에 무엇인가 읽는 거 자체가 큰 오락이었고, 무엇인가 쓰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다. 펜 하나가 아쉬워 아끼고 썼고, 공책 하나 사기가 힘들어 달력을 묶어서 쓰거나, 공책 껍데기까지 썼으니 말이다.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토토가등을 통해 80~90년대 음악만 즐길 것이 아니라, 그때 뭔가 읽고 쓰고 했던 것도 그 시대를 한번쯤 생각해보면 어떨까해서이다. 제대로 쓰기 위한 교육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 아해소리 -

 

ps. 이 글은 2015년에 쓴 글이다. 그런데 지금도 유효하다. 아니 오히려 더 제대로 글을 쓰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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