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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연습장에서 단원들을 보고있으면 ''대학 동아리''가 생각이 난다. 너무 젊고 발랄하며 활동적이라 5년차 ''기성 극단''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습에 돌입하자 스스로에 맡은 역할에 몰입하는 모습은 거꾸로 오랜 전통의 극단 같았다.

 

 

5천명 가까운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젊은 극단 화살표의 젊은 감각의 신파극 ''보고싶습니다''가 장기 공연에 돌입한다.

 

''보고싶습니다''는 맑고 지고지순한 여자와 주먹을 쓰지만 순정파인 남자의 사랑, 부모오 자식의 사랑, 남매간의 사랑 등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과 사랑의 이야기다.

 

신파극이기 때문에 ''눈물''이 나오는 장면만 연출되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그 어느 연극보다도 역동적이고 빠른 전개가 이뤄진다. 화살표단원들이 말하는 것처럼 유쾌한 웃음과 진한 감동이 적절히 잘 섞여서 관객들을 끌어들인다.

 

연출을 맡은 정세혁 화살표 대표는 "신파라는 말이 구시대 유물같은 느낌을 주지만, 눈물샘을 자극하는 이 장르를 좋아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보고싶습니다''에서 보인 ''퓨전 신파극''은 이를 좀더 현대적으로 꾸민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2002년 12월 단막극으로 시작해 2003년, 2004년 공연 당시 10개월간 5만 관객, 객석점유율 97%의 기록을 세운 연극 ''보고싶습니다''는 사다리아트센터 세모극장에서 9월 15일부터 12월 31일까지 공연된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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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싶습니다'가 정말 재미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았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재미있다'. 젊은 층에게는 사랑을, 중년층에게는 향수를 준다. 배우들의 열연을 몰입도를 높게 만들며, 끊임없이 이어지는 긴장감은 연극 이상의 느낌을 준다.

 

몇 가지 포인트를 알고 들어가면 더 쉽게 다가갈 것이다.

 

1. 박카스

2. 프로포즈

3. 사이다향

4. 날씨

5. '보고싶다'라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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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 페라리팀 이적 이후 5년 연속 대표 드라이버이자  페라리팀 사상 최다 승리를 거둔 드라이버.그의 존재 없이는 지금의 F1을 말할 수 없다. 그 경이적인 드라이빙 테크닉, 레이스를 꿰뚫어 보는 냉정한 판단력,어떤 차를 타더라도 빠른 속도를 내는 천재성, 승리에 대한 질리지 않는 집념. 게다가 하늘이 내린 운까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천재의 재능을 가졌으면서도 승리를 위한 부단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 스타일. 노력하는 천재인 그는 작년 페라리팀에 16년만의 컨스트럭터 타이틀을 안겨 주고, 드디어 올해는 드라이버 타이틀 획득을 노리고 있다
 
"슈마허는 아직 걸음마도 배우기 전부터 수영을 아주 잘하는 아기였어요. 처음 카트를 탔을 때는 내가 줄로 묶어 끌고 다녔었는데, 너무 재밌어 해서 엔진을 단 카트를 선물했더니 전혀 무서워 하지도 않고 행복해 하더라구요. 슈마허가 4살때의 얘기죠"


어린 시절 슈마허는 독일의 만하임 케어핀으로 이사를 가, 그곳에서 카트와 첫 인연을 맺게 된다. 그의 아버지가 회상하는 대로 슈마허가 4살 때 받은 엔진 달린 카트 선물은, 슈마허가 장차 세계 모터 스포츠의 영웅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된다.

그 시절, 슈마허의 부친은 손재주가 좋아 고카트(Go Kart) 정비사로 일하게 되는데 덕분에 슈마허와 그의 가족들은 카트의 세계를 처음 접하게 되고 그 매력에 흠뻑 빠져 든다.

 

1980년, 슈마허는 벨기에 니벨레스(Nivelles)에서 열린 세계 카트 선수권 대회를 관전하면서 당시 최고의 레이서였던 아이르톤 세나(Ayrton Senna)의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는다.

 

그 때부터 레이서의 꿈을 꾸게 된 슈마허는 1984년 15살의 나이로 독일 쥬니어 카트 선수권에 출전해 당당히 우승을 차지함으로써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또한 1987년에는 유러피언 챔피언십 우승을 차지하기도 한다. 그는 독일의 포뮬러 포드에 입문하면서부터 본격적인 카 레이싱의 길로 접어든다. 몇몇의 스폰서가 대회마다 우승을 거두는 젊고 가능성있는 그를 주목해 슈마허는 좋은 조건으로 스폰서를 얻게 된다. 선수로서 풀 시리즈를 뛴 첫 해에는 10전 중에서 9승을 따내는 쾌거를 올린다.

 

이를 눈여겨 본, 빌리 베버(당시 F3 팀을 운영하고 있었으며, 훗날 슈마허의 매니저가 됨)는 슈마허에게 F3 머신 테스트를 제안하게 된다.


이 테스트에서 슈마허는 7, 8 랩을 주행할 때 이미 베버팀의 정규 드라이버보다 1.5초 이상 빠른 기록을 내어 이를 지켜보던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F3 진출 첫해 가장 강력한 라이벌은 칼 벤들링거와 하인즈 프렌첸이었다. 하지만 다음 해에 슈마허는 시리즈를 모두 평정한다. 이들은 모두 훗날 F1 드라이버로 진출하여 또다시 만나게 된다. 베버는 슈마허를 F1으로 가는 통상적 관문인 F3000에 진출시키지 않는 대신에, 메르세데스 쥬니어 팀(스폰서)에 배치하여 소버(Sauber)팀의 스포츠카를 몰고 F3 시절의 라이벌들과 경쟁하도록 했다.

 

여기서 슈마허는 니어스 파크와 마스에 의해 레이스카 운전에 대한 집중적인 교육을 받게 된다. 특히 이 기간 중 슈마허는 훗날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는 부드러운 스타일의 드라이빙 기술을 익힌다. 조단(Jordan)팀의 드라이버인 버트란트 가쇼(Bertrand Gachot)가 수감되는 사건으로 슈마허는 조단팀에 입단하는 기회를 잡는데 테스트에서 슈마허의 랩타임 기록은 매우 뛰어났다고 한다

 

조단 팀은 3년간의 계약을 원했다. 그러나 슈마허 측은 아주 신중하게 계약에 임해 결국 임시 계약을 했다. 그는 조단 팀의 유니폼을 입고 벨기에의 스파에서 화려하게 데뷔한다. 경험 많은 팀 메이트보다 7그리드나 앞서며 예선을 마친 것이다.

다음 해에는 스파에서 우승을 낚았다. 1994년 세계 챔피언에 등극한 슈마허는 1995년에도 또 한번 챔피언에 올라 세계선수권 2연패를 이룬 최연소 선수가 되었다.

 

1996년 슈마허는 페라리 팀으로 이적하게 된다. 아이르튼 세나의 비극적인 죽음 이후 슈마허는 F1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굳힌다.

 

화려한 명성을 증명해주듯 1997년에는 경제전문 포브스지가 발표한 97년 고액 소득 운동선수 40인 중 4위에 오르기도 한다. 1위는 농구의 황제 마이클 조던(총7천8백30만달러)이었으며, 슈마허는 3천5백만달러(한화 약 4백억)이었다. 

 

슈마허가 가장 좋아하는 그의 애마는 세계 최고의 스포츠카 페라리의 360 모데나. 올해 5월 우리나라에서 열린 수입차 모터쇼에 선보이기도 한 페라리 360 모데나는 3600cc, 4백마력의 엔진에 최고시속은 2백 95km로 시속 100km까지 가속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4.5초. 주문 계약한 뒤 1년을 기다려야 출고될 정도로 인기있는 모델이라고 한다.

 

독일이 고향인 슈마허에게 독일의 대표적인 기업인 메르세데스팀이 현재의 페라리 팀보다도 고액의 오퍼를 내고 있지만, 슈마허는 페라리에서 오랫동안 달성하지 못한 드라이버 챔피언 획득을 목표로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이적은 생각하고 있지 않다고 한다.

 

단순히 서킷을 일주하는 속도 뿐만 아니라 기후, 코스의 상황,자신과 상대 차량의 상태를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

이 모든 것이 다른 드라이버를 훨씬 능가하고 있는 슈마허이지만, 아이르튼 세나 이후 강력한 경쟁자의 부재는 재능이 뛰어난 그에게도 이로운 것만은 아닐 것이다. 슈마허는 과연 최고의 드라이버인가? 시간이 말해줄 것이다. 그의 왕좌를 노리는 경쟁자들도 날로 늘어나고 있다. 여기에 그가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그의 커리어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생년월일 : 1969년 1월 3일
 
출신 : 독일
 
현주소 : 스위스 로잔느
 
혈액형 : O형
 
신장 : 174Cm
 
체중 : 74.5Kg
 
가족관계 : 처 Corinna, 장녀 Gina-Marie(97년생),장남 Mick(99년생)
 
취미 : 고카트 , 휴양
 
스포츠 : 축구, 달리기, 마운틴 바이크
 
음악 : 락(Rock), 댄스 음악
 
좋아하는 가수 : 마이클 잭슨, 티나터너, 휘트니 휴스톤
 
좋아하는 음식 : 이탈리아 요리
 


주요경력

1984년  -  독일 카트 쥬니어 챔피언
 
1987년  -  독일, 유럽 카트 챔피언
 
1988년  -  독일, 포뮬러 챔피언
 
1989년  -  독일 F3 선수권 시리즈 3위
           -  마카오 F3 선수권 챔피언
 
1990년  -  메르세데스 쥬니어 팀 참가
           -  독일 F3 선수권 챔피언
 
1991년  -  전일본 F3000선수권 스포트참전 2위
           -  F1데뷔(벨기에 GP/조단)
           -  베네통으로 이적(이탈리아 GP/5위)
 
1992년  -  벨기에 GP에 첫 우승
        -  1승/시리즈 3위(베네통)
 
1993년  -  1승/시리즈 4위(베네통)
 
1994년  -  8승/시리즈 1위 월드 챔피언(베네통/사상최연소기록 : 25세)
 
1995년  -  9승(사상최다기록)/시리즈1위 월드 챔피언(베네통)
 
1996년  -  3승/시리즈 3위(페라리)
 
1997년  -  5승 / 시리즈 순위없음(시리즈 2위 기록말소/페라리)
 
1998년  -  6승/ 시리즈 2위(페라리)
 
1999년  -  2승/시리즈 5위(7전 결장/페라리)
 
2000년  -  1996년 페라리팀 계약 이후 5년째(2002년까지 페라리팀 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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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근감이 있으면서도 거부감이 일어나는 영화.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이면서도 일어나면 안될 것 같은 상황을 만드는 영화. 이런 영화는 보면 생각이 안난다. 너무 친근해서 영화라기보다는 일상의 생활같고, 너무 일어나면 안될 것 같은 상황이 벌어져서, 경험과 연결되는 사고의 카테고리안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차라리 SF라면 작정하고 경험과 차단된 사고의 카테고리안에 집어넣을텐데 말이다.

 

 

29살 싱글들의 고민과 재미 그리고 방향....뮤지컬 싱글즈.

“난 내가 서른이 되기 전에 인생의 숙제 둘 중 하난 해결할 줄 알았어. 결혼하거나 일에 성공하거나. 그런데 이게 뭐냐고.”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 올려지고 있는 뮤지컬 ‘싱글즈’의 나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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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장진영

 

영화 '연애 그 참을수 없는 가벼움' (이하 '연애참')은  바로 그런 영화다. 영화를 보는 내내 친구들과 장난쳤던 상황과 연결되어 영화라는 생각이 안 들었다. 휼룡한 영화는 정말 자연스럽게 만든 영화라고 생각하는 나에게 이런 점에서는 괜찮은 영화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문제는 그 자연스럼움이 주인공들간의 스토리가 아니라, 김승우와 그 친구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몇몇 에피소드만이 그렇다는 것이고, 또한 점점 스토리의 진도가 나아갈 수록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려운 영역까지 침범하고 있다는 점이다. 초반이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였다면 갈수록 정말 참을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김승우의 연기는 과거 신귀공자에서의 모습에서 한발자욱도 나아가지 못했다. 해변의 여인은 보지 못했지만, 연애참과 동일한 수준이라면 아쉽게도 김승우의 한계는 거기까지라고 말하고 싶다. 도리어 김승우의 이 발전하지 못한 연기력때문에 장진영의 변화는 돋보였다. 주변효과인지 몰라도 그렇게 보였다.

 

장진영의 연기는 '국화꽃향기'때 가장 돋보였다고 생각했었는데, 여기서는 그 반대의 느낌으로 같은 생각을 가지게 했다. '연애참'을 슬프다고 한 사람도 있다. 그렇다면 전적으로 그것은 장진영의 힘이다. 답답하다고 느꼈다면 전적으로 김승우의 공적(?)이다.

 

영화가 끝나고 불이 켜졌을 때 다른 사람들의 입과 움직임을 보면 전체적인 평가가 나온다. '어~'가 나오거나 서둘러 일어나는 모습이 다수이면, 그 영화는 꽝이다. 아무소리가 안나거나 움직임이 적으면 괜찮은 영화다. 개인적이 분류방법이다. 아쉽게도 연애참은 '어~'가 많았다.

 

봐도 괜찮을 영화다. 아래 다른 영화에서도 말했지만, 시간이 되면 봐도 될 영화라는 것이다. 돈내고 극장가서 거대한 스크린앞에서 앉아서 볼 영화는 아니다. 비디오가 출시되거나 내년 설이나 추석을 기다릴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볼 영화라는 것이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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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헌혈원 노조 파업관련 메일을 받았습니다. 파업때문에 헌혈을 하러 갈때 반드시 확인을 하러 가라는 내용입니다.

 

그 전 낮에 전화를 받았습니다. 피가 많이 모자라니, 꼭 헌혈에 동참해 달라는 것입니다. 등록헌혈 회원인데, 몇 개월전 잘못 헌혈을 해 팔이 부은 후 한동안 안했더니 전화가 온 것입니다.

 

며칠 전 뉴스를 봤습니다. 피가 많이 모자라서 혈액대란이 일어날 지도 모른다는 내용입니다. 피가 없어 수술을 받지 못하는 환자가 속출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며칠 전에도 글을 썼지만, 왜 요즘 파업에 대해서 자꾸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게 될까요. 대학 다닐 때 느꼈던 파업의 이미지와 왜 지금은 많이 다를까요.

 

부당한 대우을 받기에 그들이 파업을 할 수 있습니다. 당연한 권리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파업이라는 것이 결국은 자신이 일하는 공간내에서 '정당한 대우'를 받기 위함일 것입니다. 자신이 일하는 공간...그 공간 역시 사회에 속해져 있습니다.

 

법적으로 정당한 권리라고 해서 반드시 도의적으로 정당한 권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꼭 지금 파업해야 하는 극단적 상황이 아니라면, 조금 밀어두고 생각하고 논의해야 되지 않을까요.

 

헌혈부족 등이 파업의 정당성을 발목잡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앞서 말한 사회적인 책임은 느껴야 할 것입니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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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포토는 다양한 사진들을 한꺼번에 볼 수 있어 유용한 공간이다. 물론 다른 포토관련 사이트들도 돌아다니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많은 회원수를 자랑하는 포털사이트이기에 더 다양한 느낌을 가진 사진들을 대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네이버 포토에는 정신없는 두 공간이 있었다. 여자친구 사진을 올리는 곳과 모델 사진을 올리는 공간이다. 당연히 이 공간에 처음 취지와는 다르게 클릭수를 높혀보려고 일본 AV사진을 비롯한 온갖 야동성 사진과 싸이 등에서 긁어온 사진들이 판을 치기 시작했다.

 

 

네이버· 다음...노현정 기사에는 댓글도 달지 마라? |

노현정 아나운서가 양가 상견례를 한 모양이다. 기사가 이곳저곳에 뜨기 시작했다. 그런데 포토기사를 읽다가 어이없는 상황을 봤다. 물론 최근 노현정에 대한 네티즌들의 악플이 존재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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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네이버 포토에 들어가보니 이 두 카테고리가 사라졌다. 남자친구 올리는 공간은 있는데 여자친구는 사라지고 없다. 네이버가 극단적으로 아예 카테고리를 폐쇄한 것이다.

 

그러나 그게 해결책이 될까. 가끔 포털들이 게시물을 삭제하거나 카테고리를 정리하는 것을 보면 약간은 어리석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해결책은 아닐텐데 말이다. 포토가 네이버 서비스 전면에서 어느날 사라진 것도 무관치 않을 것이다.

 

 

벌써 네티즌들은 자동차란에 레이싱모델 등의 사진을, 셀프카메라에 기존과 유사한 펌사진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럼 그 카테고리까지 없애면?. 아마도 사람, 삶이라는 공간에 올라갈지 모른다. ^^

 

인터넷상 거대권력이 된 포털. 언제나 사람들은 권력과 싸우기 좋아한다. 그게 실체없이 더 치열해졌다는 것이 과거와 조금 다를 뿐이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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