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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취업을 준비하는 후배 격려차 도서관에 갔다. 커피 한잔을 먹으면서 이력서를 얼마나 집어넣었냐고 물었더니 몇군데 넣지 못했다고 한다. 대부분 대기업이나 공사다. 홍보분야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후배에게 중소기업에는 생각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홍보분야를 뽑는 소규모기업도 알아봤어요. 그런데 몇번 어이없는 경우를 당한 뒤에는 그냥 대기업처럼 대규모 공채를 보는 곳으로 향하려고요"

 

내막인즉 이렇다. 후배는 잡코리아나 인크루트등서 구인광고를 보고 몇 군데 선택을 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대기업보다는 소규모기업에서 실력을 키우고도 싶었고, 가능성 있는 조그마한 기업을 자신이 기여해 커가는 모습을 보고도 싶다고 했다. 능력있는 후배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신중한 후배가 자신이 생각하는 회사에 '문의메일'이나 '문의전화'를 해본 것이 잘못이였다.

 

구인구직사이트에 들어가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수시채용 혹은 중소기업이하의 회사들의 경우 연봉이나 복지가 대부분 '면접시 협의' 혹은 대충대충 기재되어 있는 경우가 적지않다. 이에 후배가 문의 메일과 전화를 한 모양이다.

 

"귀사에 지원코자한데 정보가 너무 부족해 이렇게 문의메일을 보냅니다. 연봉이나 처우, 그 밖의 일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 합니다" 뭐 이런 류의 메일이였다고 한다.

 

그런데 대답은 실망스러웠다고 한다. 아예 답변메일이 오지 않거나, 전화일 경우에는 "회사 기밀이기때문에 응답해 드릴 수 없습니다"의 경우가 많았고, 혹은 '일단 지원서를 내고 통과하여 면접을 보시면 알게됩니다'라는 응답도 적지않았다고 한다.

 

후배가 말했다.

 

"한번은 합격후에 사장과 부장이랑 사람과 다시 연봉이나 처우때문에 협상을 하는데, 너무 어이없는 조건을 제시하더라고요. 제가 수긍하기 어렵다는 말을 하자, 사장은 요즘 젊은 사람들은 너무 연봉이나 처우에만 연연해한다고 하면서 경험을 쌓고 사회초년생으로 겸손함이 있어야 한다나 뭐라나요. 그냥 나왔어요. 그럼 처음부터 그런 정보를 정확히 알려줬으면 서로 좋았을 것 아닙니까. 지원자는 정보를 정확히 알고 그 범위에서 지원할테고, 그렇다면 회사입장에서도 그에 맞춰 뽑은 사람들이니 마음 편할테니까요.'

 

나도 동의하는 바이다. 서로 이력서내고 면접보는 물질적 정신적 시간적 손실을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확한 정보를 제시하지 않고 '그때그때 협의해서 결정하자'고 하는 회사는 처음부터 구직자들에게 신뢰를 얻기 힘들고, 설사 사람을 구하더라도 곧 금방 새로운 구인광고 준비를 해야 한다.

 

전에 어떤 글에서 취업준비생들이 대기업이나 공사, 혹은 공무원을 준비하는 이유가 단지 연봉이나 처우보다는 사회초년생으로 사회에 대한 실망감과 불신을 가지지 않으려는 심리적 안정때문이라고 쓴 것을 봤다. 일면 맞다고 본다. 도전의식이라는 것도 그 도전을 충분히 인정하고 받아줄만한 기업이라야 가능하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사람을 뽑을때부터 알아볼 수 있다.

 

취업률이 낮아지면서 실업률이 높다고 한다. 그런데 중소기업이하의 회사에서는 (주로 생산파트겠지만) 사람 구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 취업사이트에 들어가보면 인사담당자들과 취업준비생들간에 서로 실망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한마디로 사람도 남아돌고 일자리도 남아도는데 서로 다른 곳만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시기에 어이없는 회사들의 구인활동은 취업준비생들에게 또다른 지뢰로 인식되지 않을까 싶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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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녀석들도 하고 싶어 했을까. 아마 위에서 시켜서 했겠지?"

 

군인들이 등장해 꼭짓점댄스을 추는 광고를 보던 친구가 던진 말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는 말에 나에게 들려준 친구의 말이다. (나름대로 기억해서 뉘앙스 살려 쓴 것임)

 

"아들 녀석이 다니는 체육관에서 월드컵때 출거라면서 꼭짓점댄스를 단체로 가르쳐주었는데 (친구 아들 7살) 이 녀석을 포함해 몇명이 제대로 따라하지 못했다나봐. 그랬더니 혼내면서 집에 가서 연습을 해가지고 오라고 했다나봐. 집에 오자마자 인터넷에 들어가더니 꼭짓점 댄스 동영상을 틀어놓고 연습하더라고. 몸치인 아빠를 둔 탓으로 아들이 고생하는거지. 그래서 나도 그거 보면서 아들 녀석 가르쳐주는데, 그게 참 단순한 거 같으면서도 따라하기 힘들더라. 결국 1시간여가 지나니까 아들녀석이 답답한지 울면서 내일 체육관 안간다고 하더라. 그거 왜 강요하는거야"

 

친구의 말을 들으면서 얼마전 후배와 했던 대화도 생각이 났다. 나보고 꼭짓점 댄스를 출 수 있냐는 질문에 "보기는 많이 봤는데, 아직 춰보지는 않았다"라고 대답하니 "아니 그것도 못해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던 것이다.

 

꼭짓점 댄스를 반드시 춰야되는 것은 아니다. 그 춤에 흥을 느끼거나 꼭 필요한 사람들 (정치인들 ^^)만 추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월드컵이 다가오는데 그런 트렌드도 못 따라가냐"는 반응은 당혹스러웠다. 그러나 위의 내 친구와 같은 경우에는 당혹정도가 아니고 '문제'가 있는 것이였다.

 

집단에 속해있고, 집단으로 움직이는 구성원으로서의 개인이 거부할 수 없도록 만들어진 상황하에서 꼭짓점 댄스와 같은 즐겨야 할 행위가 선택이 아닌 강요로 인해 개인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분명 문제인 것이다.

 

친구의 입장에서는 체육관측에 "왜 애들을 괴롭히냐"라고 따지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 순간 그 친구 아들은 단체에서 소외되고 이는 월드컵 기간내내 또래들과 어울리지 못한다는 괴로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반드시' 하나의 집단을 이뤄야 하기에 '개인'이 희생되어 끌려다니기 보다는 '개인'이 즐거움과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하나의 '집단'이 형성되어가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원래 꼭짓점 댄스든 월드컵 응원전이든 이렇게 시작했다고 생각되는데, 지금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 아해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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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완 감독이 배우로 출연했기에 화제가 되었던 짝패(감독 류승완, 제작 외유내강)가 그 모습을 보였다. 8일 용산 CGV서 기자시사회를 개최한 짝패는 서울 액션스쿨과의 공동제작으로 현란한 액션을 보여주기를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오로지 류승완을 위한 영화로 멈춰버렸다.

 

 

‘마약 투약’ 유아인의 법정 구속과 <베테랑2>의 개봉의 미묘한 시기.

시기적으로 재미있다. 프로포폴 등 마약류를 상습 투약한 배우 유아인(본명 엄홍식)이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이 된 9월에 영화 베테랑2>가 본격적인 홍보와 개봉을 한다. 양쪽 모두 굳이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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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패

 

영화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오랜 우정을 쌓아온 친구 왕재(안길강)를 자신의 이익때문에 죽인 필호(이범수)에게 또다른 친구인 태수(정두홍)와 친구 동환의 동생 석환(류승완)이 복수를 하는 과정을 그린 것이다.


짝패는 다소 억지스러운 면이 있지만, 어두운 배경과 현란한 액션, 그리고 아름다웠던 과거의 우정을 회상하는 장면이 주를 이룬다.

 

 

여기에 정두홍과 류승완을 중심으로 한 현란한 액션이 눈앞에 펼쳐진다. 비보이들을 비롯해 야구부등이 등장해 100대 1로 싸우는 장면이나 고급요정 운당정에서 펼쳐지는 라스트 액션은 일단 눈은 즐겁게 한다. 그리고 이범수의 잔인한 변신 역시 기존의 그가 맡은 역과 대비해 의외의 장면들을 선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배우로서 변신해 능청스러운 연기를 자연스럽게 한 류승완을 빛나게 하기 위한 상황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미 '아라한장풍대작전'이나 '바람의 파이터' 등에 배우로서 면모를 보인 정두홍 감독은 액션이외에 감정표출등의 연기에는 쉽게 동화되기 어려웠고, 왕재의 아내로 나오는 김서형은 까메오 수준으로 나와서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조차 짐작하기 어려웠다.

 

짝패는 순도100%의 아날로그 액션을 주장하지만, 허황된 아날로그 액션은 CG로 그려진 액션과 별 차이가 없다. 기대가 컸었기에 실망도 컸지만, 그만큼 류승완과 정두홍의 만남은 영화광들의 기대를 높혀놨던 것은 사실이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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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이 몸살을 앓고있다. 이유인즉 치위생학과 관련 학생들이 학과 신설 및 증설에 관한 반대 글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발단은 단국대 평생교육원에서 구강보건지도자과정을 신설해 운영하면서이다. 치위생학과 학생들은 자신들이 3~4년동안 배운 과정을 몇개월만 수료한 후 똑같은 대접을 받을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고, 이에 대한 항의로 복지부 홈페이지에 항의글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주장하는 내용은 거론하지 않겠다. 내가 전문가도 아니고 대립되는 내용에 대해 오랫동안 관심을 가지고 있던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항의형식에 대해서는 생각해봐야 할 듯 싶다.

 

위의 같은 글이 하루에 수백건씩 똑같은 혹은 유사한 제목으로 공공기관 자유게시판을 도배하고 있는 것에 대해 과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인터넷 시위문화와 사이버 테러. 딱 어느 쪽이라 선을 그을 수는 없지만, 일단 많은 네티즌들이 이용하는 공공적 성격의 홈페이지에서 특정 이익집단이 자유게시판을 점거하고 있다는 사실로 봐서는 사이버 테러쪽에 무게를 두고 싶다.

 

형식의 빗나감은 내용까지도 공감하기 어렵게 만든다. 실제 저 글 중간중간에 현재 치위생학과 학생들의 주자을 단순히 밥그릇싸움으로 치부하는 글들이 보였다. 충분한 공감대를 이뤄내지 못하고, 치위생과 신증설이 곧 국민건강을 해친다고만 주장하는 것이 다른 네티즌들에게는 이상하게 들린 것이다. 그리고 이런 비공감적 상황은 도배된 자유게시판의 모습으로 더더욱 고개를 돌리게 만드는 것이다.

 

아직도 논란이 되고 논의가 되는 것이 네티즌들의 자유와 타인에게 주는 피해간의 점접문제다. 복지부 사이트 관계자가 저 글을 다 지우고 차단한다면 아마 글을 올린 네티즌들은 '통제'의 개념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그러나 복지부사이트를 이용하는 다른 네티즌들에게는 현재의 모습은 '방관'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오프라인에서의 시위가 일정 수준을 넘을 때, 공감을 얻지 못하고 도리어 비판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온라인상에서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다고 볼때 치위생과 학생들의 복지부 도배 시위(?)와 같은 방법은 자제되어야 되지 않을까?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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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과거 대학에 입학해 학생운동을 하는 선배들이 꼭 추천하는 책중 하나가 '다시쓰는 한국현대사'다. 짧게 다현사로 불리는 이 책은 어찌보면 슬픈 책이다.

 

대한민국 현대사를 처참하게 분해시켜 놓기 때문이다. 자랑스러워야 할 대한민국 현대사가 지워버리고 싶고 추잡한 현대사로 바뀌어가기 때문이다. 우리의 우방이라 지칭되면서도 여전히 시대적 화두로 남아있는 미국과 주한미군에 대해서도 강하게 메스를 가한다.

 

이 책이 나온 것이 1988년도였다. 지금으로부터 무려 16년전이다. 지금도 이 책에 대해 강한 반박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내용이 상세하며 전율을 일으킨다. 그런데 웃긴 것은 이 책이 '거짓'이며 '왜곡'이며 '잘못된 미화'라 지칭하는 현대사의 흐름을 우리 후배들은 그대로 초중고때 아직도 배우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반성의 대한민국은 알지 못하고 오로지 자랑스러워야 할 대한민국만 머리속에 각인시킨다.

 

자랑스러움은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러나 반성과 사실에 대한 각인이 없으면 그 자랑스러움은 허상이요, 퇴보의 지름길이다. 더구나가 그러한 자랑스러움은 지배층이 피지배층에 대한 강한 허구적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진실'에 대한 은폐를 통해 피지배층은 오로지 현대사의 지배층의 행동을 정당하게 여기게 된다. 책의 뒷표지에 적힌 짧은 글이 이 책을 가장 잘 설명한다.

 

"진실은 맨주먹뿐인 우리 민중이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강력한 무기이자 현명한 길잡이입니다. 이제 우리는 현대사의 진실을 밝힘으로써 모든 불행의 원천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그같은 불행을 강요한 자들의 씻을 수 없는 범죄 행위들을 역사의 심판대 위에 올려 놓아야 하겠습니다"

 

'다현사'는 아직도 후배들에게 권하는 책중에 하나임과 동시에 토익책보다 먼저 읽어야 할 필독서라 말하고 싶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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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기사를 읽었다.

 

"학생들을 대표하는 총학이 외부 정치단체 등과 연계해 사회 정치적인 사안을 다루기보다 학생들의 의견을 모아 제대로 전달하는 단체가 됐으면 한다"

 

이 글을 읽으면서 일종의 허탈감을 느꼈다. 이 말중 후반에 있는  "학생들의~"은 1990년대 중반 고등학교 학생회에서 나온 발언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 앞의 발언에서 나온 사회적인 부분은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반에 고등학교 학생회에서 거론되었던 말이다.

 

최근 고려대에서 교수를 감금(?)한 사태로 인해 학생들을 출교시켰다. 또 다른 대학에서도 이제는 총학생회가 학생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그러기에 사회에 둔감하기를 바라는 발언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90년대 중반 학번인, 그러기에 사회와 개인의 이질적인 부분이 공존했던 어정쩡한 학번인 내가 앞서 말했듯이 허탈감을 느끼며 동시에 어이없음을 느낀 것은 왜일까.

 

대학은 말 그대로 학문을 배우는 곳이다. 학문은 현실에서 의식을 지배하는 부분을 담당한다. 솔직히 현재 대학에서 이뤄지는 많은 학과들의 교육은 대학과 맞지 않다. 그것은 전문적으로 기술을 가르치는 학교에 위임되어야 할 사항이다. 취업을 위한 대학의 존재는 대학이 아닌 기술학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현실의 상황에, 그에 따른 의식을 배우는 학생들이 현실을 외면하고, 기껏 학내 식당에 관한 불편함이나 스쿨버스 운영등에 대해 논하는 총학생회가 만들어지기를 바라는 주장을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대학에서 배우는 학문이 현실과 괴리될때 그것이 과연 학문이라 칭할 수 있을까.

 

앞서 제시한 기사의 문구는 고려대의 한 학생의 발언이다. 저 학생의 정확한 의도는 대화를 해보지 않아 모르겠지만, 사회 정치적인 사안을 배제하자는 주장에서 이미 저 학생은 '대학생'이 아닌 '고등학생'수준의 공부만 하길 권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대학을 간판따기로 들어온 (뭐 이미 오래전부터 행해졌던 일이긴하지만) 대학에, 이래저래 참견하는 것 조차도 가식적으로 보였다.

 

사회와 괴리된 대학.. 이는 존재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이런 대학의 총학생회는 겨우 1990년대 중반의 고등학교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대학은 사회를 읽고, 사회의 변화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다시 변화할때 그 중심에 서야한다. 그래야 대학이다. 만일 취업을 위해, 간판을 위해, 단순히 텍스트를 연구하는 공부를 위해 대학을 들어왔다면, 그는 '고등학교 4학년' 고등학교 5학년'일뿐이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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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를 먹고사는 연예인들의 과거사를 들어보면 네티즌들은 '정말일까?'라는 의심과 함께 '어 저건 내가 아는 것과 틀리네'라는 반응을 보인다. 과거처럼 오로지 신문과 방송을 통해서만 연예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아닌, 인터넷공간에서 그와 과거를 같이 했던 이들의 정보로 인해 이미 드러날 대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연예인들의 과거에 대한 거짓말이나 숨기려는 모습들은 아직도 이슈꺼리가 된다. 생각해보면 이들은 어디까지나 이미지를 만들어내야 하는 존재들이기에, 스스로도 실체가 어떤 모습인지 모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에서 의사가 되기도 하고, 변호사가 되기도 하고, 공주도 되기도 하며, 쇼프로그램에서 갑자기 여럿 남자나 여자들의 프로포즈를 받는 존재가 되기도 하니, 스스로도 "내가 과거에 어떤 존재였더라'라를 잊을 법도 하다.

 

최근 현영의 나이가 네티즌들의 안주꺼리로 올랐었다. 이미 네티즌들 사이에서 이야기가 되는 상황에서 여걸식스에서 "주민번호 앞자리가 6이에요? 7이에요?"라는 질문에 7로 대답해서였다. (방송이 무섭다. 순식간에 포털사이트 검색순위에 올랐으니). 이미 77년생인 강수정보다 나이가 많은 76년생임이 알려졌는데, 현영은 즉석에서 "아니 80이요"라고 정정을 했다. (네이버는 80년생으로, 다음은 76년생으로, 엠파스는 80년생으로 표시되어 나온다)

 

또 선화공주로 인기가 높은 이보영의 경우 검색등에서 학력에 대한 질문이 종종 보였다. 남녀공학인 대학를 다니다가 서울여대로 편입한 사실과 인터뷰에서 종종 "여중, 여고, 여대만 나와서 남자들과 처음 일한다"는 뉘앙스의 발언이 매치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이를 속이든, 학력을 속이든, 성형을 했든 연예들의 거짓말은 어떻게보면 비난이나 비판하기 어렵다. 음주운전을 하다 걸렸던 김상혁의 경우처럼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안했다"는 식의 거짓말처럼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가 아니라면 비판의 당위성이 사라진다. 단순한 술안주꺼리로만 남을 뿐이다.

 

그런데도 대중들은 비난을 하고 비판을 한다.

 

여기서 잠깐 가수 유승준을 생각해보자. 유승준이 군대를 안 가서 실질적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유승준때문에 갑자기 누가 한명 더 군대에 간 것도 아니고, 대한민국 군인 전체가 가혹행위를 당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 유승준은 대중들의 비난을 받았고, 대한민국에 들어오지도 못하고 있다. 왜일까.

 

인기를 먹고사는 연예인이 그 인기를 가져다주는 대중들의 믿음을 저버렸고, 동시에 상대적 허탈감을 안겨주었다. 실질적인 피해를 없었지만, 상대적인 피해를 안긴 것이다. 그것도 나라의 안정과 직결되는 병역의 의무를 지고 있는 남자들에게 말이다. 이 죄(?)로 유승준은 대한민국 가수라는 직업을 박탈당했다. (이 당시 여성팬들과 예비역들과의 논쟁은 볼 만했다)

 

다시 앞으로 돌아가보자. 그럼 나이나 학력을 속이는 것이 상대적 피해를 대중에게 주었는가?. 이는 딱히 대답하기 어렵다.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고, 유승준처럼 국가적 의무와 직결되는 사항도 아니기 때문이다.

 

연예인들에게 늘 진솔한 모습만을 요구하는 대중들은 실상 없을 것이다. "나 성형 안했어요"라는 여자연예인의 말을 그대로 믿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진솔하지 않는 이미지는 연예인들이나 이를 받아들이는 대중들에게나 무의식적으로 가식된 이미지 양산과 흡수를 일반화, 일상화 시킬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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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개인적으로 글에 대한 욕심이 많은 편이다. 다른 사람의 잘 쓴 글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질투심도 갖는다. 내 스스로 아직 한참 모자름을 알면서도 주제넘게 이곳저곳 글을 쓰며 다닌다. 대학때부터 글을 쉽게 봤다. 신문 8면중에 4면 가까이를 맡으며 매주 수십장 원고지를  3년 가까이 채우다보니,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 인터넷 토론카페 등에서도 다른 이들의 글을 우습게 보고, 나의 글에 대한 무게를 측정하지 못했다. 잘 쓴 글에 대해서는 일부러 머리 쥐어짜며 꼭 '딴지'를 걸어야했다. 그런데 그런 내 생각에 제동을 건 책이 바로 조정래선생의 산문집 <누구나 홀로 선 나무>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조정래선생은 <태백산맥>, <한강>, <아리랑>의 저자이다. 원래 난 산문집을 잘 읽지 않는다. 그냥그런 수필의 너절한 이어짐은 그보다 더 긴박하게 산 주위 사람들의 치열한 삶에 못 미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정래선생의 산문집은 내가 충격과 감동을 느낀 소설의 저자임과 동시에 누구보다도 '글'이라는 것에 무게감을 잘 느끼는 작가란 생각에 책 안을 제대로 보지도 않고 사버렸다. 결과는 한동안 난 글을 못 쓰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한국역사의 슬픔과 뿌리찾기 - 태백산맥.

책을 읽는 동기가 순수해야하다는 말이 있다. 그냥 그 안에서 지적 자양분을 맛봐야 한다는 말이란다. 솔직히 책을 읽는데 '순수'와 '불순'의 정의를 내리는 것은 웃기는 일이지만, 난 태백산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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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홀로 선 나무

 

'글'은 의사소통의 주요수단이자 자신의 주장을 적절히 펼칠 수 있는 도구이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흉기이기도 하고, 살릴 수도 있는 약이기도 하다. 마약과 같은 중독성을 지니기도 했고, 한 사람을 파악하는 데 유효한 기준이기도 하다. 그런 다양성을 지닌 '글'을 난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내 스스로의 현학적 표현을 구사해 다른 사람에게 주입 혹은 내 스스로를 정당화시키기 위한 방편으로 삼았다. 조정래선생의 산문집은 나에게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나 스스로가 나를 혼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떤 음악가가 자신이 곡을 만드는 이유는 더이상 다른 사람들이 곡을 만들 필요가 없게 만들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나 역시도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다른 사람이 더 이상 글에 대해 느끼는 감정의 다양성을 없애기 위해서라고 거만하게 다른 사람에게 말한 적이 있다. 물론 지금도 이런 거만한 생각이 없지 않지만, 이것이 내 삶의 과정중에 펼쳐질 일이 아닌 인생 끝자락의 목표로 바뀐 것이 조금 달라졌다. 그런데 조정래선생은 자신의 젊은 날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나는 대학시절에 나 이후에 소설이라는 문학형식을 없애버리겠다고 기염을 토했었다. 이 기고만장한 객기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는지를 훈련소에서 LMG를 메고 낑낑대며 걷다고 언뜻 깨달았다. 그 깨달음 이후 나는 내가 소설을 쓸 수 있는지 없는지를 점검하기 위해서 나를 수십 번 분해 결합하는 고역을 치렀던 것이다. 그러나 그 가능성 여부를 확인하지 못한 채로 문단에 데뷔, 오 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소름이 끼친 것은 조정래선생의 현 수준에서도 이러한 겸손함은 바뀌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갓 어설픈 글쓰기를 시작한 나의 사고와 태도는 어떠한가?. 이 책은 비단 글쓰는 이들에게만 고하지 않는다. 조정래선생의 생각과 태도는 바로 일그러진 현대인들에게 '바른' 아니 정확히는 '차분하고 치열한 시각'의 기준을 제시한다.

 

내용 자체는 무겁지 않다. 단지 그와 유사한 행위 혹은 인생의 길을 못찾는 이들에게는 어쩌면 무거운 느낌과 하늘 한번 쳐다보고픈 새로운 마음이 생기리라 본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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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서울시장 후보로 뽑힌 오세훈씨가 선대본부장에 원희룡의원이 유력하다는 보도가 나가자마자 한나라당 지지자들중 일부가 벌써부터 반박을 하고 나섰다.

 

한나라당 홈페이지는 물론 오세훈후보와 원희룡 후보 홈페이지에 반대의 글을 남기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의 선대위원장에 반한나라당 성향의 원희룡의원은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오세훈을 지지하지만, 원희룡의원이 선대위원장이 된다면 강금실을 찍겠다" "원희룡이 선대위원장이 된다면 오세훈 역시 반한나라당의 위치에 설 것이다"라는 극단적인 글까지 남기고 있다.

 

글만 본다면 일부의 주장일 수 있지만, 그동안 원의원이 소장파로서 한나라당의 쇄신을 꾸준히 주장했고, 한나라당 내부에서 어떤 대우를 받았는가를 새삼 돌아본다면, 단순한 문제는 아닐 듯 싶다. 이미 많은 언론들이 원희룡의원은 박근혜후보는 물론 한나라당의 주류와 심하게 대치되는 상태라는 보도를 여러번 했고, 이에 따른 네티즌들 역시 "열린우리당에 가 있을 사람이 왜 한나라당에 있는가"라는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미 한나라당 지지자들의 머리속에는 "원희룡 = 반한나라 = 열린우리당"의 등식이 성립되어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젊은 층을 위주로 원의원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적지않지만, '적그성'과 보수성향이 강한 한나라당의 이미지를 본다면 이들도 역시 소수그룹일 뿐이다.

 

이러한 연유로 오세훈후보의 원의원 선택은 열린우리당 서울시장 후보와 맞붙기 전에 자칫 스스로 목을 죄는 꼴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 이미 겨울 내내 놀던 베짱이가 열심히 정책을 준비하 개미들을 물리쳤다는 비꼬인 소리를 듣는 마당에 실질적으로 선거운동을 총괄하는 자리에 (사실이든 아니든) 반한나라당 정서를 가졌다고 평가받는 원의원을 앉힌다는 자체가 불안한 출발을 예고하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한나라당이라는 브랜드로 지지자들을 결집시키고, 원희룡이라는 무기로 반한나라당 지지자들까지도 일부 흡수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평가도 있다. 만일 오세훈후보가 이를 노리고, 혹은 노리지는 않았다고 해도 이같은 효과로 당선이 된다면 이는 분명 대단한 역사적 사실이고, 이후 대권까지도 노려볼 만 하다. 왜냐하면, 역대 그 누구도 여야를 함께 안고 선거에서 이긴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원희룡이라는 카드가 오세훈후보에게 어떤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는지는 정확히 판단하기 어렵겠지만, 적어도 한나라당 지지자들의 결집에는 타격을 입힐 것만은 분명하도 여겨진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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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가 길거리인 만큼 누드 화보 정도의 노출은 없겠지만 실현 가능한 범위내에서 파격적인 패션이 될 것". 폭시측에서 말한 내용이란다. 두 가지가 생각이 난다.

 

2002년 한장의 사진으로 뜬 미나와 맨발의 가수 이은미.

 

미나야 뭐 다들 아는 이야기고..이은미가 얼마전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말했단다.

 

"가수란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노래를 업으로 하는 사람'이라고 나와요. 자기 직업을 노래하는 것으로 택한 이가 가수에요. 그러니까 노래를 부르지 않는, 가수 아닌 애들은 가수라고 부르지 말아야죠. 가장 기본적인 걸 하라고 얘기하는 것일 뿐예요. 레코딩 할 때만 노래하는 사람을 어떻게 가수라고 부를 수 있어요?"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 맞는 말은 이미 오래전 부터 나왔지만 아직까지 바뀔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아직도 쇼프로그램에서 구르고, 제목처럼 온 몸(?)으로 뭔가를 보여주는 가수들이 많은 것을 보니 말이다.

 

제목보고 그리고 첫 문장보고 들어온 사람들을 위해 모사이트에서 독점공개(?)했다는 사진, 서비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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