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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때 파업이라는 것은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라 여겼다. 내 사진기속 노동자들은 핍박받는 자, 자본을 가진 자들에게 늘 당하고만 사는 자로 남아있었고, 내 글속에도 이들은 파업뿐만 아니라, 혁명을 해서라도 스스로의 권리를 쟁취하는 사람들로 기록되었다. 그것이 1997~1998년이였다.


10년 가까이 흐른 지금. 내 글과 사진에는 어느 새 이들이 생존권과는 별개로 자신들의 밥그릇 찾아먹기와 이기주의로 가득찬 군상들도 그려지고 있다.


노동권 보호가 아니라 "너 죽어야 내가 산다"는 식의 태도, 나라가 어찌됐든 국민들 시선이 어찌됐든 내 월급 인상되는 것에 집착하는 모습에 내가 과거에 썼던 글에 등장하는 이들이 이들과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 되짚어보기도 한다.


항공사 조종사들의 파업등은 너무 어이없어서 거론할 가치도 없고 (영어시험 보지 말자는 조항까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제 막 끝나서 떳떳하게 추석선물까지 챙겨가는 (비정규직이나 납품업체는 물론 국가 수출문제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현대기아차, 쌍용차 직원들의 (웬지 노동자라고 부르기에도 이젠 민망하다) 태도 역시 이야기하자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이젠 발전노조까지 나섰다. 민주노총이 지지성명을 냈다. 이들의 파업은 정당하다고..그런데 이 또한 거부감이 일어나는 것은 왜일까..민노총 성명중에 한 단락을 보자.


"사회 공공적 산업인 발전산업을 민영화하여 사회적 공공성을 거세하고 사적이익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만든 것이 정부가 한 일이다. 한전이 얻은 막대한 이윤은 지금 누구에게 돌아가고 있는가. 날이 갈수록 인상되고 있는 전기세로 국민의 부담은 늘어가지만 전력산업발전을 위한 투자는커녕 주주들의 배만 불리고 있는 것이 지금 발전산업의 현주소다."


맞다. 국민들 부담이 매일같이 늘어만 간다. 줄여야 한다. 그런데 지금 발전노조가 파업하며 요구하는 사항이 이것과 과연 어울리는가. 자신들의 주당 근무시간을 줄여달라는 것과, 해고자를 복직시켜달라는 것과 국민들이 가지고 가는 부담감과 무슨 상관인가. 국가적 손실을 입더라도 자신들이 조금 더 쉬어야 국민들 부담이 적어진다는 건가? 누가 이 말을 해석을 해줬으면 좋겠다.


아마 이들도 항공사 승무원들이 파업을 했을 때 욕했을 것이다. 귀족노동자라고..그런데 자신들은 보지 못한다.


더 많이 가진 자들이, 아니 조금 줄여서 이야기하더라도 살정도의 삶을 누리고 있는 자들이 더 달라고 아우성치는 세상이다. 스스로 '핍박받는 노동자'라고 외치면서 말이다.


없는 자는 아예 목소리조차 못 낸다. 밟히기 때문이다. 조종사는 비행기 안 띄운다고 으름짱놔도 되고, 발전노조는 전력 공급 안하겠다고, 자동차회사는 수출이 되든 안되든 드러눕겠다고 하면 되지만, 진짜 없는 자들은 내세울 무기가 없어서 밟혀도 소리내지 못한다.


(이제는 노동자가 아닌) 노조들이 조금만 사회를 보고 주위를 보면 지지받는 파업이 될 수 있을텐데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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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골퍼 타이거우즈와 골프라운딩이 2001년 130만달러(한화 약 12억원), 세계 2위 갑부 워런버핏과의 점심식사가 2005년 62만달러 (한화 약 5억 9천만원)에 팔려 자선기금에 사용된 적이 있다. 그렇다면 박세리와 골프라운딩을 하고 영화배우 정준호와 바비큐 파티를 한다면 얼마를 내야할까.

온라인 마켓플레이스 옥션(www.auction.co.kr 대표 박주만) 이 손호영, 정준호, 박세리 등 국내 유명 스타들의 데이트가 자선경매로 내놓았다.


국제구호기관 월드비전이 주최하고 SBS가 후원하는 '기아체험 24시간' 기아 돕기 기금마련을 위한 자선경매를 8일부터 9일까지 24시간 진행하는 것.


이번 행사는 영화배우 정준호를 비롯해 프로골퍼 박세리, 사진작가 조세현, 탤런트 김혜자, 가수 손호영 등 유명인들과의 데이트가 경매상품으로 등록된다.


프로골퍼 박세리의 경우 낙찰자 총 8명과 국내 필드에서 골프라운딩, 사진작가 조세현의 경우 낙찰자의 사진촬영을 하여 프로필 포토폴리오로 만들어 준다.


또한, 영화배우 정준호는 3명의 낙찰자와 함께 하는 '사랑의 밥차' 봉사활동과 바비큐 파티를 내놓았으며, 가수 손호영은 총 10명에게 신곡 "YES"의 쇼케이스 관람과 봉사활동을 함께 하는 데이트 상품이 경매로 나오며, 김혜자는 총 10명의 낙찰자와 아프리카 소말리아로 기아어린이 봉사활동을 떠나는 데이트 상품을 내놓을 예정이다.


자선경매는 8일 오후 6시부터 9일 오후 5시까지 23시간동안 옥션 이벤트 페이지를 통해 진행되며, 경매 마감시간에 맞춰 최고 입찰 가격을 제시한 입찰자가 낙찰 받게 된다.


옥션의 박주만 사장은 "기존의 딱딱한 기부문화의 틀을 탈피하여 새로운 소재와 기부문화를 접목시킨 새로운 행사로 자리잡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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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다음 게시판 실시간 검색어......4~5위~~. 지난 번 노현정때처럼 발빠르게 처리했다면 저런 검색어가 뜰 수 있을까?....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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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계 확고한 조연자리를 꿰차려면 이 말은 꼭 들어야 한다.


"한국 영화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000가 나오는 영화와 000가 안 나오는 영화"


이 000에 이름 석자 올릴 정도면 이미 주연급을 능가하는 스타급 파워를 자랑하는 수준이 된다. 그 000가 나온다는 입소문 자체로 크게는 영화 전체, 적게는 그가 나오는 장면에 대한 기대치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지금은 정치권에 몸담고 있지만 1990년대 중반에 명계남이 이 말을 들었다. 오죽하면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에 전태일 아버지 뒷모습 역할까지 맡지 않았던가.


최근 이 말을 누가 가져갈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오달수'라는 인물로 모아지게 된다. (물론 이문식, 성지루, 유해진이라는 걸출한 조연들 역시 있으며, 이들도 저 말을 한번씩 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달수를 검색에서 쳐보면 정작 오달수라는 인물에 대해 인터뷰한 기사보다는 오달수가 어디 조연으로 등장한다는 기사가 더 많다. 즉 주요인물 인터뷰기사 하단에도 "이 영화에는 000, 오달수 등 화려한 조연들이 출현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만큼 그는 현재 충무로 영화판의 중심에 한 발 걸쳐있는 상태다. 음란서생에서 보여준 그의 연기는 그가 어떤 배우인가를 여실히 보여줬다. 그리고 구타유발자에서의 모습은 배우가 느낌이 강할 경우 다시말해 스스로에게 몰입되어있는 경우 화면밖으로 배우가 튀어나올 수 도 있구나라는 것을 알게 해줬다.


그런 오달수가 연극판에서 팬들을 만나려 준비중이다. '임차인'이라는 연극에서 택시기사와 개(환희) 역할을 맡았다. 괴물 목소리까지 낸 사람이 갑자기 개짖는 소리를 내니, 앞으로 사람이외의 소리내기에 인연이 많을 수도 있겠다.


오달수는 내성적이다. 스타들의 화려한 몸짓을 볼 수 없음은 물론 그냥 지나가면 오달수인지도 모를 정도로 평범하다. 하지만 무대는 달랐고, 그런 무대에 서는 그에게 사람들의 기대 역시 달랐다.


임차인 연습무대..그가 무대에 서고 등장하자 이곳저곳에서 웃음보가 터졌다. 웃긴 장면은 아니다. 4장에서 오달수가 과거 주인이였던 여자의 목소리에 일어나는 장면이다. 극의 흐름을 본다면 생각해봐야 할 삶의 한 부분이 시작되는 장면인데 웃겼다. 오달수이기에 가능했다.(그렇다고 그가 웃긴 배우라는 것이 아니다. 뭔가 기대를 하게 만드는 배우라는 것이다)


전에 어느 매체에서 그는 이런 자신에 대한 기대가 부담이 된다고 말했다. 영화를 찍는 도중 자신의 모습에 스탭들의 반응이 없으면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그만큼 사람들은 그에게 뭔가 시원한 웃음 혹은 찐한 느낌을 받길 원했고, 오달수 역시 그것을 충분히 알기에 여지껏 부응해 줬던 것이 아닐까.


그는 "아직도 인터뷰가 어색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과거 어느 인터뷰에서 "영화는 나에게 아르바이트다"라며 연극에 대한 강한 애정을 표시했다. 천상 스타라는 타이틀을 달고다니는 영화인이 아닌 무대에서 관객과 호흡을 같이하는 연극인이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영화에도 나온다.


오달수는 말을 잘 꾸미지도 못한다. 대개 대중을 의식하는 스타들은 아니 준스타급만 되도 인터뷰때 질문을 던지면 그에 맞게 대답을 한다. 신예들은 이러한 것을 잘 못하기에 꼭 옆에 매니저들이 앉아서 거들어주는 모습을 종종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오달수는 상대가 원하는 대답보다는 자신이 하고싶은 말은 한다. 질문을 파악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바른' 답변을 하는 것이다.


연극 '임차인'은 90여명이 들어갈 수 있는 소극장에서 공연된다. 때문에 스크린에서 보지 못했던 오달수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니 다른 모습이 아닌 진정 그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임차인에는 오달수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같이 무대에 오르는 2명의 여배우와 다른 1명의 남자배우 역시 강한 내공을 자랑한다.


오달수라는 인물을 알고난 뒤 내내 아쉬운 것은 그가 연극 아트에 출연할 때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나중에 쓰겠지만, 시나리오보다는 철저하게 배우에게 의존하는 연극 아트야말로 '배우'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이고, 그 자리에서 오달수라는 인물을 좀더 강하게 느낄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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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누구나 들어본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 숫자놀음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 역시 스스로 인정해야 할 일이다.


직업상 '%'마크가 달린 글이나 "000명" 등의 표시가 된 글들을 자주 읽는 편이다. 여기에는 묘한 매력이 있고, 빠져들지 말아야 할 것을 알면서도 쉽게 내치지 못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 여대생 50% 성경험" 이라는 제목의 자료를 놓치고 싶은 기자는 없다. 또 이러한 기자들에 의해 생산된 기사를 클릭하지 않고 넘어가는 네티즌들도 많지 않다. 50%라는 조사결과에 매몰되어 버리는 것이다. 웃긴 것은 내용을 보면 한 200~300백명 정도 대상으로 했거나, 어디 대학신문사에서 조사한 내용을 참조한 것이다.


한 대학의 여대생만 해도 수천명일 것이고, 대한민국 여대생은 수십만명일 것이다. 표본의 정확성을 논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설사 표본이 정확했다고 해도 저 내용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그냥 수치에 의한 흥미성 내용일 뿐이다.


이는 요즈음 연일 기사가 나오는 괴물의 관객수에도 적용된다. 1천만명이 봤다고 해서 반드시 (절대적으로) 휼룡한 영화는 아니다. 1천만명 모두가 만족했을리 없기 때문이다. 만일 1천만명 중에서 9백만명은 "그 영화가 왜 난리인데"하고 봤다가 "에이 별로네"라고 반응을 보였을는지도 모르지 않는가. 아니면 연인과 다른 영화 보러갔는데, 스크린이 온통 괴물에 점령당해 있어 발길을 돌리지 못한 채 불가피하게 봤을지도 모른다. 즉 괴물의 1천만명 돌파 혹은 최고 관객수 갱신에 큰 의미를 두고 '숫자의 마력'에 빠져 이것저것 희한한 해석과 분석이 뒤따르는 것 역시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 숫자때문에 사실을 보지 못하고 있을 때도 많다고 생각된다. 즉 '내'가 중요하게 여기고 '내'가 필요한 것인지를 따지기 전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중요하게 여기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인식이 그러한지 따지게 된다.


앞서 제기한 내용을 다시 생각해보자. 설사 표본을 1만명으로 잡고 여대생의 성의식을 조사해 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치자. 그리고 재차 유사한 설문결과가 나왔다고 치자. 여기에 사람들의 의식은 조금씩 바뀌어 간다. "여대생은 자유분방하다 -> 내 주변 여대생들도 그러할 것이다"등으로 희한한 사고의 연결고리가 생기는 것이다.


숫자나 통계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은 곧 사고의 변화의 일으킨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본 글은 그냥 많이 본 글일 뿐이고, 볼만한 가치가 '있을 수도' 있는 글이지만, 꼭 나에게 100% 유효한 글은 아니라는 것이다. 문제는 그 글을 본 숫자의 표기는 바로 그 글에 "뭔가가 있다"라는 믿음을 심게 해준다..


100만권이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는 많이 팔린 책일 뿐이지, 나에게 반드시 '읽어야 할 필요성'이 있는 책은 아니다.


평균이라는 수치도 그렇다. 평균은 어디까지나 전체를 쉽게 판단하기 위함이지, 절대적으로 맹신되는 수치가 아니다.


통계학서적에서 잘 인용되는 이야기가 있다. 1920년대 중국내전 당신, 직진으로 진격하려는 군대가 강을 만났다. 부대의 장수가 강의 평균 깊이를 물어봤는데 참모다 1m40cm라고 답했다. 이 부대 병사들의 평균키가 1m65cm이므로 걸어서 도하가 가능하다고 판단한 장수는 군사들을 도하시켰다. 결과는 많은 부하가 죽었다. 1m40cm는 평균이었을 뿐이고 1m65보다 더 깊은 곳도 있었고, 부하들의 키 역시 1m65보다 작은 병사들도 있었던 것이다. 숫자에 매몰되어 판단이 흐려진 경우다.


가끔 선거때 하는 여론조사도 마찬가지다. 여론이 그러기에 결과적 숫자가 나온다기보다는 그 결과로 인해 부동층이 여론조사와 유사하게 나눠진다고 난 생각한다. 숫자로 사람들의 인식을 움직이는 것이다.


벗어나려 지금도 노력하는 있지만, 숫자와 통계에서 갇혀있는 순간 사고의 틀 역시 갇혀있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해소리-



ps.영화 관객숫자로 흥행배우, 비흥행배우를 나누는 철없는 한 인터넷언론 기자의 글을 보다 생각이 나서 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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