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피맛골의 해장국 명가 청진옥이 신관을 새롭게 열었다. 반가운 일이다. 1937년 문을 연 이후 피맛골에서 자리를 지켜온 청진옥은 피맛골 재개발 사업으로 9년전 현 르메이에르(아직도 발음이 어렵다) 1층으로 강제(?) 이주했다.
맛은 변함 없었지만, 분위기를 확실히 달랐다. 르메이에르라는 거대한 빌딩의 부속품이 된 듯하기도 하고, 프랜차이즈 해장국집으로 변한 것 같기도 했다.
오래된 맛집은 맛 뿐 아니라 공간이 차지하는 비중도 크다. 단골들은 맛 뿐 아니라 그 공간에 묻어있는 추억을 느끼러 온다. 친구들과, 아들을 데리고, 손자를 데리고 와 자신이 그 공간에서 누구와 밥을 먹고 술을 마셨으며, 어떤 성장 과정의 흔적을 남겼는지 이야기한다. 맛만 느끼는 것은 절반의 기억이다.
청진옥에 대한 나의 기억도 그렇다. 20대 중반부터 찾기 시작한 청진옥은 재야의 종소리를 들은 후 찾아가 새벽 첫 지하철까지 버티던 곳이다. 2002년 월드컵 때 선배들과 축구 이야기를 하던 곳이다. 이후 직장이 용산, 상암동, 강남 등으로 옮기면서 뜸하긴 했지만, 종종 찾아가 깊은 맛을 느꼈다.
피맛골이 재개발 되고 추억이 몽땅 사라질 때, 그 한켠에 청진옥도 있었다. 르메이에르 1층으로 저리잡은 후 찾아갈 때 이질감이 생겼다. 선배들과 후배들과 마셨던 자리가 없어졌기도 했지만, 앞서 말했듯이 청진옥이 무슨 프랜차이즈 같은 느낌이 들었다.
청진옥 신관도 사실 새로운 공간이다. 그럼에도 앞에 반갑다고 한 것은 적어도 그부속품 같은 느낌은 사라졌다. 아마 단골들에게는 과거 추억을 새길 장소는 없어졌어도 새 추억을 만들 공간이 9년만에 만들어졌다는 기대감도 있을거다. 청진옥이 앞으로 100년을 이어 나갈 자리를 찾았다니 믿어보자.
글, 말, 논쟁, 명분, 실리... 조선 시대 지배층을 언급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들이다. 긍정적으로 표현하든, 부정적으로 표현하든, 이 단어들은 어김없이 등장했고, 지금까지도 후손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영화 <남한산성>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의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이 전해질 때, 대다수의 사람들은 “무겁겠다”라고 생각했다. 당연하다.400페이지에 가까운 소설은 어느 한번 빈틈을 허용하지 않았다. 380년 전의 스산한 겨울의 분위기를, 초췌한 백성들의 처참함을, 각기 다른 생각으로 왕과 나라를 생각하는 어느 신하들의 절규를 고스란히 전달했다. 글 하나가 문장 하나가 생명을 부여받았다.
그러나 영화로 옮겨지면서 소설이 보여주는 스펙트럼은 줄어드는 대신, 한 곳에 집중해 밀도감을 높였다. 백성과 병사들의 이야기는 줄어들었고, 왕과 신하들의 이야기 즉 지배층의 스토리에 초점을 맞췄다. 앞서 언급한 글, 말, 논쟁, 명분, 실리가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남한산성>을 중심적으로 가득 채우는 것은 이조판서 최명길(이병헌)과 예조판서 김상헌(김윤석)의 말(言)이다. 순간의 치욕을 참더라도 조선의 명맥을 이어가려면 청나라에 항복을 해야 한다는 명길과 대의를 위해 끝까지 청과 싸워야 한다는 상헌의 논쟁은 영화 지분의 8할 이상이다.
이들의 논쟁이 다른 신하들의 흐름을 잡고, 인조(박해일)의 생각의 방향을 제시하며, 청의 움직임을 예측케 한다. 관객도 마찬가지다. 상헌의 말에 따라가다가, 명길의 말을 이해한다. 그러다가 다시 상헌의 입에 눈길을 보내다가, 명길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된다. 이들의 말은 충돌해 부서졌다가 다시 합쳐지고, 그 과정에서 갈려서 빛을 내다가 굳건한 칼이 된다. 상대를 베기도 하고, 나를 지키기도 하지만 거꾸로 상대의 힘(생각)을 키운다.
과거 어느 이가 통찰력 있는 이들의 논쟁은 무협지 속 고수와 같다는 말을 했는데, 이병헌과 김윤석이 보여주는 최명길과 김상헌의 논쟁이 그러한 느낌을 준다.
영화와 소설 속 명길과 상헌은 분명 왕과 국가를 위한다. 결과적으로 누가 맞고 틀리다를 논할 수 없다. 그건 결과론적인 해석이고, 그 시대를 살지 못한 후손들의 일방적 판단이다. 하다못해 항복문서를 쓰지 않으려 하는 대신들, 즉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부정적으로 남기지 않으려는 이들의 모습도 어느 시점에서 판단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최명길이 후세에 다양하게 평가되거나 김상헌이 이와 대비돼 평가되는 등의 역사적 사실은 논외로 하자)
이들 명길과 상헌의 말의 겨룸에 간간히 의지를 내보이는 인조의 말도 얄팍하긴 하지만, 스스로 힘을 발하긴 한다. 다른 신하들의 말이 공감 안되는 명분과 스스로의 삶을 위한 것으로 비쳐진 것에 비해 그나마 인조의 말은 주체적 이려고 애 쓴다. (이 부분에서 박해일 캐스팅이 안성맞춤이라는 평가도 있다. 나약한 이미지이면서도 자존심은 놓으려 하지 않는 지질함을 잘 드러내는 배우라는 평)
앞서 언급했듯이 이런 말의 부딪침에 포인트를 맞추다보니, 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공간의 스산함과 백성들의 고단함의 표현은 다수 무뎌졌다. 그 때문일까. 서날쇠(고수)와 동생(이다윗)의 존재감은 그다지 부각되지 않았다. 도리어 소설에서는 흐름의 한 축을 맡았던 서날쇠가 영화에서는 존재감이 흐려졌다.
아이러니하게도 고수라는 배우의 존재감이 서날쇠라는 인물의 역할의 방향을 틀어버린 것이다. 소설의 서날쇠는 시대를 보여주고, 백성의 모습을 보여주는 캐릭터였다면, 영화 속 서날쇠는 갑자기 영웅이 되어 있다. 한낱 대장장이가 무관을 손쉽게 제압하고, 군대의 눈을 피해 도망가는 수준이니 말이다.
전체적으로 영화는 ‘상업적으로’ 잘 만들었다. 누구의 말처럼 영화를 본 후에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도 있고, 명길과 상헌의 입장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49일간의 어두운 시대상을, 치욕적인 조선의 역사를 그려낸 영화 치고는 짙은 여운은 의외로 없는 편이다. 보는 이들마다 다르겠지만, <광해>의 경우에는 몇 번을 보더라도 여운을 남기는 포인트가 여전히 존재한다.
이 부분에는 여러 해석이 있을 수 있겠지만, <광해>는 감성을 건드리는 연출이었다면, <남한산성>은 이성을 표현하는연출이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광해>는 인물과 인물이 감정을 섞었지만, <남한산성>은 말과 말이 충돌하고 갈린다. 여운은 감성을 건드릴 때 나온다. 이것이 흥행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예상할 수 없다. 배우들의 호연에 무게를 둘지, 여운에 무게를 둘지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정진석은 노무현 정부 당시 생산된 '국정브리핑 국내언론보도종합 부처 의견 관련 협조 요청'이라는 제목의 국정홍보처 공문을 공개했다.
이 공문은 앞2013년 이노근 전 의원(새누리당)이 공개한 문건으로 “해당 언론사의 인터넷 홈페이지 해당 기사에 부처 의견 실명 댓글 기재”, “각 부처 출입기자에게 관련 기사와 부처 의견을 메일로 송부”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정진석이 이 문건을 가지고 이렇게 말한다.
"노 전 대통령 지시로 주요 언론보도 기사에 공무원들이 적극적으로 (댓글을) 달라고 지시한 문건이다. (수신자) 맨 앞이 국정원이다. 국정원에 댓글을 달라고 했다. 이게 도대체 자유민주주의 국가서 이런 발상이 가능한지 저는 소름이 끼친다. 이게 오늘 현재 이 시각에 문재인 정부서 자행하는 언론장악 기도 음모의 현주소고 대한민국의 우울한 자화상이다”
바보도 이런 바보가 없다. 사람의 글을 이해하지 못하는 멍멍이 인증일까.
이명박 정부는 국정원과 군 사이버사령부가 비공개로 ‘댓글 부대’를 동원해 특정 정치인이나, 진보성향의 문화계 인사, 학자들을 대상으로 인신공격하거나 비하하며 여론을 조성하려 했다.
노무현 정부는 국가부처가 실명 댓글로 언론보도에 대한 정부 정책을 의견을 밝히라고 한 거다.
이것을 같은 급으로 보는거다. 초등학생도 이거 보고 "어 같은 짓이네" 말하지 않을 수준이다. 물타기를 하려고 해도 정상적으로 해야, '앗'하고 놀라는 모습이라도 보일텐데 이건 뭔 바보 인증에 어이없기만 하다.
정진석 자유한국당(이라 쓰고 친일자위당이라 읽는다) 의원이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이해하지 못할 개 짖는 소리를 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명박에게 정치 보복을 받아 자살한 것이 아니라 부부싸움 후 목숨을 끊었다는 것이다. 근거? 친일의 후손이 그 따위 내용을 제시할리 만무하다. 그런데 여당이 반발하자 다시 페이스북에 더 희한한 글을 올렸다. 언뜻 보면 해명처럼 보이지만, 애초 개 짖는 소리에 개 짖는 소리를 더했을 뿐이다.
"저는 ‘노무현 대통령의 비극적 결심이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보복 때문이었다'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서 올린 글일 뿐, 돌아가신 노무현 전 대통령이나 가족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기위한 것이 아니라고 유감을 표명했습니다. 그리고 제 뜻을 권여사께 잘 전달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 박원순 시장의 주장에 반박하려면 근거를 대야하지 않을까. 그러니 개소리란 이야기를 드는 것이다. 애들은 유감이라는 단어 뜻 부터 다시 공부해야겠다.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애통해 할수록 전직 대통령에 대한 수사나 사법처리 또한 신중해야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현직 서울시장이 이명박 전 대통령을 고소 고발하고, 문성근 김미화씨 같은 분들이 동참하는 여론몰이식 적폐청산이 나라에 무슨 보탬이 되겠습니까?"
-> 여론몰이라. 범죄를 저지른 범인의 행각이 다 드러났고, 때문에 잡자는 것인데 여론몰이라. 정진석 같은 친일파 후손들에게 대한 적폐청산을 제대로 못해서 지금 나라가 이 지경이다. 너희 살자고 나라 팔아먹지 마라. 쥐박이 닭 친일자위당이라는 적폐 청산으로 나라는 다시 태어난다.
"한쪽이 한쪽을 무릎 꿇리는 적폐청산은 사회적 갈등과 분열을 증폭시키는 악순환을 반복시킬 뿐입니다."
-> 한쪽을 무릎 꿇리는 정치보복은 너희가 했지, 지금은 제대로 적폐청산을 하는 중이다. 어설프게 물타기 하지 말아야 한다. 정진석은 이 방법이 아직 통한다고 보는 병신 생각을 아직도 하는 걸까.
"노무현 대통령을 사랑하는 분들께 묻고 싶습니다. 정말 이명박 대통령이 정치보복으로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았다고 믿으십니까? 노무현 대통령의 한을 풀기 위해서 또 다른 형태의 정치보복에 나서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 답해준다. 믿는게 아니고 사실이다. 정진석이 뭔가 착각하는데 지금 노무현 대통령 한을 풀기 위해 적폐 청산을 하는 게 아니고 국민을 위해 하는거다. 이걸 정치보복으로 보는 것은 너희 기준에서, 너희가 해왔던 것이 그 짓 밖에 없어서다.
"노무현 대통령은 유서에서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 '누구' 는 사람에게 해당되는 거다. 쥐와 닭. 치일자위당(대한민국 정당 아님)을 대상으로 말하는 게 아니다. 제대로 읽어야.
항 소 이 유 서 본 적 : 경상북도 월성군 내남면 망성동 163 주 소 : 서울특별시 구로구 시흥 1동 한양아파트 11동 1107호 성 명 : 유시민 생년월일 : 1959년 7월 28일 죄 명 :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요 지] 본 피고인은 1985년 4월 1일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에서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고 이에 불복, 다음과 같이 항소이유서를 제출합니다.
[다 음] 본 피고인은 우선 이 항소의 목적이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거나 1심 선고 형량의 과중함을 애소(哀訴)하는데 있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밝혀두고자 합니다. 이 항소는 다만 도덕적으로 보다 향상된 사회를 갈망하는 진보적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려는 노력의 소산입니다. 또한 본 피고인은 1심 판결에 어떠한 논란거리가 내포되어 있는지 알지 못하며 알고 싶은 생각도 없습니다.
자신의 행위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기준으로서 본 피고인이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은 하느님이 주신 양심이라는 척도이지 인간이 만든 법률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법률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는 본 피고인으로서는 정의로운 법률이 공정하게 운용되는 사회에서라면 양심의 명령이 법률과 상호적대적인 모순관계에 서게 되는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으리라는 소박한 믿음 위에 자신의 삶을 쌓아올릴 수밖에 없었으며 앞으로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인간과 인간, 인간집단과 인간집단 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폭력행위는 본질적으로 그 사회의 현재의 정치적·사회적·도덕적 수준의 반영인 동시에 미래의 그것을 결정하는 규정 요인 중의 하나입니다. 따라서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이하 폭행법이라 함) 위반 혐의로 형사소추 되어 1심에서 유죄선고를 받은 본 피고인으로서는 자신이 관련된 사건이 우리 사회의 어떠한 정치적·사회적·도덕적 상태의 반영이며, 또 미래의 그것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규명함과 동시에 사건과 관련된 각 개인 및 집단의 윤리적 책임을 명백히 밝힐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우리 사회가 젊은 대학생들이 동 시대의 다른 젊은이들을 폭행하였다는 불행한 이 사건으로부터 ‘개똥이와 쇠똥이가 말똥이를 감금 폭행하였다. 그래서 처벌을 받았다’는 식의 흔하디흔한 교훈밖에 배우지 못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사건 자체보다 더 큰 비극이라 아니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서 이 항소이유서는, 부도덕한 개인과 집단에게는 도덕적 경고를, 법을 위반한 사람에게는 법적 제재를, 그리고 거짓 선전 속에 묻혀 있는 국민에게는 진실의 세례를 줄 것을 재판부에 요구하는 청원서라 하겠습니다. 거듭 밝히거니와 본 피고인은 법률에 대해 논하려는 것이 아니므로 이 글 속에서 ‘책임’ ‘의무’ ‘과실’ 등등의 어휘는 특별한 수식어가 없이 사용된 경우, 그 앞에 ‘윤리적’ 또는 ‘도덕적’이라는 수식어가 생략된 것으로 간주하여 무방합니다. 그리고 본 피고인이 특히 힘주어 말하고 싶은 단어나 문장에는 윗점을 사용하였습니다.
본 피고인은 우선 이 사건을 정의(定義)하고 나서 그것을 설명한 다음, 사건과 관련하여 학생들과 현 정권(본 피고인이 신봉하는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에 비추어 제5공화국이 합법성과 정통성을 갖추지 못하고 있음을 표시하기 위해 정부 대신에 정권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각자가 취한 행위를 분석함으로써 이 글의 목적을 달성코자 합니다.
이 사건은 학생들에 의해서는 ‘서울대 학원프락치사건’으로, 정권과 매스컴에 의해서는 ‘서울대 외부인 폭행사건’으로 또는 간단히 ‘서울대 린치사건’이라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사건 명칭의 차이는 양자가 사건을 보는 시각을 전혀 달리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현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건의 본질 자체가 달라질 리는 만무한 일입니다. 본 피고인이 가능한 한 객관적인 입장에서 이 사건을 정의하자면 이는 ‘정권과 학원 간의 상호 적대적 긴장이 고조된 관악캠퍼스 내에서, 수사기관의 정보원이라는 혐의를 받은 네 명의 가짜학생을 다수의 서울대 학생들이 연행·조사하는 과정에서, 혹은 약간의 혹은 심각한 정도의 폭행을 가한 사건’입니다.
‘정권과 학원 간의 상호 적대적 긴장상태’를 해명하기 위해서 우리는 4월 민주혁명을 짓밟고 이 땅에 최초의 군사독재정권을 수립한 5·16 군사쿠데타 이후 4반세기에 걸쳐 이어온 학생운동의 반독재 민주화 투쟁혈사(血史)와 아울러 가열되어온 독재정권의 학원 탄압사를 살펴보아야 할 터이지만, 이 글이 항소이유서임을 고려하여, 1964~65년의 대일 굴욕외교 반대투쟁(소위 6·3사태), 1974년의 민청학련 투쟁, 1979년 부산마산지역 반독재 민중투쟁 등을 위시한 무수한 투쟁이 있어왔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데 그치기로 하고, 현 정권의 핵심 부분이 견고히 형성되어 사실상 권력을 장악한 1979년 12월 12일의 군사쿠데타 이후 상황만을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경제적 모순, 사회적 갈등, 정치적 비리, 문화적 타락은 모두가 지난날의 유신독재 아래에서 배태·발전하여 현 정권 하에서 더욱 고도성장을 이룩한 것들입니다. 현 정권은 유신독재의 마수에서 가까스로 빠져 나와 민주회복을 낙관하고 있던 온 국민의 희망을 군화발로 짓밟고, 5·17 폭거에 항의하는 광주시민을 국민이 낸 세금과 방위성금으로 무장한 ‘국민의 군대’를 사용하여 무차별 학살하는 과정에서 출현한 피 묻은 권력입니다.
현 정권은 정식출범조차 하기 전에 도덕적으로는 이미 파산한 권력입니다. 현 정권이 말하는 ‘새시대’란, 노골적·야수적인 유신독재헌법에 온갖 화려한 색깔의 분칠을 함으로써, 그리고 총칼의 위협 아래 국민에게 강요함으로써 겨우 형식적 합법성이나마 취할 수 있었던 ‘새로운 유신시대’이며, 그들이 말하는 ‘정의(正義)’란 ‘소수군부세력의 강권통치’를 의미하며, 그들이 옹호하는 ‘복지’란 독점재벌을 비롯한 ‘있는 자의 쾌락’을 뜻하는 말입니다.
‘경제성장’ 즉 자본주의 발전을 위하여 ‘비효율적인’ 각종 민주제도(삼권분립, 정당, 노동조합, 자유언론, 자유로운 집회결사) 등을 폐기시키려 하는 사상적 경향을 우리는 파시즘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그러한 파시스트 국가의 말로가 온 인류를 재난에 빠뜨린 대규모 전쟁도발과 패배로 인한 붕괴였거나, 가장 다행스러운 경우에조차도 그 국민에게 심대한 정치적·경제적 파산을 강요한 채 권력 내부의 투쟁으로 자멸하는 길 뿐임을 금세기의 현대사는 증명하고 있습니다. 나치 독일, 파시스트 이탈리아, 군국주의 일본은 전자의 대표적인 실례이며, 스페인의 프랑코 정권, 합법정부를 전복시키고 등장했던 칠레·아르헨티나 등의 군사정권, 하루저녁에 무너져버린 유신체제 및 지금에야 현저한 붕괴의 조짐을 보이고 있는 필리핀의 마르코스 정권 따위는 후자의 전형임에 분명합니다.
국가는 그것이 국가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만이 구성원 모두에게 서로 방해하지 않고 자유롭게 행복과 자아실현을 추구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 주기 때문에 존귀합니다. 지난 수년간, 인간다운 삶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을 요구하며 투쟁한 노동운동가, 하느님의 나라를 이 땅에 구현하기 위해 노력한 양심적 종교인, 진실과 진리를 위하여 고난을 감수한 언론인과 교수들, 그리고 민주제도의 회복을 갈망해 온 민주정치인들의 선봉에 섰던 젊은 대학인들은 부도덕하고 폭력적이며 비민주적일 뿐만 아니라 반민중적이기 때문에, 국민이 자유롭게 보고 듣고 말할 수 있는 조건 아래라면 단 한 주일도 유지될 수 없는 현 군사독재정권이 그토록 존귀한 우리 조국의 대리인이 될 수 없음을 주장해 왔습니다. 우리 국민은 보다 민주적인 정부를 가질 자격과 능력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현 정권은 12·12 군사쿠데타 이후 4년 동안 무려 1,300여 명의 학생을 각종 죄목으로 구속하였고 1,400여 명을 제적시키는 한편 최소한 500명 이상을 강제징집하여 경찰서 유치장에서 바로 병영으로 끌고 갔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정 구석구석에 감시초소를 세우고 사복형사를 상주시키는 동시에 그것도 모자라 교직원까지 시위진압대로 동원하는 미증유의 학원탄압을 자행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한 번도 이러한 사실을 시인한 적이 없으며, 1982년 기관원임을 자칭한 괴한에게 어린 여학생이 그것도 교정에서 강제추행을 당하는 기막힌 사건이 일어났을 때조차, 최고위 치안당국자는 국회 대정부 질의에 대하여 “교내에 경찰을 상주시킨 일이 없다. 유언비어의 진원지를 밝혀내 발본색원 하겠다”고 태연하게 답변하였을 정도입니다.
현재 학원가를 풍미하고 있는 정권, 특히 경찰에 대한 불신과 적대감은 이와 같은 정권의 학원탄압 및 권력층의 상습적인 거짓말이 초래한 유해한 결과들 중의 한 가지에 불과합니다.
이솝우화의 양치기 소년의 거짓말은 양떼를 잃어버리는 작은 사건을 낳는 데 그쳤지만, 주 유왕(周 幽王)이 미녀 포사(褒似)를 즐겁게 하기 위해 거짓봉화를 올린 일은 중국 대륙 전체를 이후 500여 년에 걸친 대 전란의 와중에 휩쓸리게 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양치기 소년의 외침을 외면한 마을사람들이나 오랑캐에게 유린당하기까지 주(周)왕실을 내버려 둔 제후들을 어리석다 말하지 않습니다. 정권의 주장이라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지 않으려는 학생들의 불신은 과연 누구의 책임이겠습니까?
더욱이 야만적이고 부도덕한 학원탄압은 전국 각 대학에서 목숨을 건 저항을 유발하였고, 그 결과 일일이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은 학생들이 생명을 잃거나 중상을 당했습니다. 서울대학교에서만도 고 김태훈, 황정하, 한희철 등 셋이나 되는 젊은 생명이 희생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은 83년 12월의 소위 자율화조치 이후에도 주전선(主戰線)이 교문으로 이동하였다는 단 한 가지를 제외하면 거의 변함없이 계속되어 왔으며, 특히 지난해 9월 총학생회 부활을 전후하여 더욱 강화되었던 수사기관의 학원사찰, 교문 앞 검문검색, 미행과 강제연행 등으로 인해 양자 간의 적대감 또한 전례 없이 고조된 바 있습니다. 즉 소위 자율화조치 이후에도 ‘학원과 정권 사이의 적대적 긴장상태’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사건은 바로 이와 같은 조건 하에서 수명의 가짜학생이 수사기관의 정보원이라는 혐의를 받을만한 행위를 하였기 때문에 거의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난 예기치 못한 사건입니다. 이들의 의심을 받게 된 경위 및 사건경과는 이미 밝혀진 바이므로 재론할 필요가 없지만, 여기에서 가짜학생에 대해서는 약간의 부연설명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들이 실제로 정보원인지 그 여부는 극히 중요한 정치적 관심사임에 분명하지만 사건의 법률적·윤리적 측면과는 거리가 있는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학생들이 연행·감금·조사 또는 폭행한 것은 결코 정보원이나 단순한 가짜학생이 아닌 ‘정보원 혐의를 받고 있는 가짜학생’이었으므로, 조사 결과 그들이 정보원이었다고 해서 폭행까지도 정당할 수는 없으며, 또 아니라고 해서 학생들의 일체의 행위가 모두 부당했다고 말할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본 피고인이 이 문제에 대해 재론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정보원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이와 같은 이유에 의해서 입니다.
갖가지 목적으로 학생처럼 위장하고 캠퍼스를 배회하는 수많은 가짜 학생들, 이들은 소위 대형화·종합화된 오늘날의 대학에서, 졸업정원제·상대평가제 등 대학을 사회현실에 대한 비판의식이 마비되어 제 한 몸 잘사는 일에만 관심이 있는 전문기능인의 집단양성소로 전락시키기 위해 독재정권이 고안해 낸 각종 제도가 야기한 바, 대학인의 원자화·고립화 등 비인간화 현상을 틈타 캠퍼스에 기생하는 반사회적 인간집단으로서, 교내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절도·사기·추행·학원사찰의 보조활동(손형구 경우처럼) 등과 복합적인 관련을 맺고 있음으로 해서 대학인 상호간에 광범위한 불신감을 조성하고 대학의 건강한 공동체문화를 파괴하는 암적 존재입니다.
현 정권은 이들이 대학인의 일체감을 파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교내에 사복경찰을 상주시킴으로써 야기된 숱한 문제들마저 이들에게 책임 전가시킬 수 있다는(여학생 추행사건 때처럼) 잇점 때문에 가짜학생의 범람현상을 방관 또는 조장하여 온 것입니다. 따라서 학생들이 이들에 대해 평소 품고 있는 혐오감이 어떠한가는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일입니다.
이들이, 이들 가짜들이, 혹은 복학생들의 소규모 집회석상에서, 혹은 도서실에서, 법과대학 사무실에서, 강의실에서, 버젓이 학생행세를 하면서 학생활동에 대한 정보 수집활동을 하다가 탄로 났을 경우, 법이 무서워서 이를 묵과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올바른 일이겠습니까? 상호적대적인 분위기 속에서, 바로 그들을 보냈으리라 추정되는 수사기관에, 정보원 혐의를 받고 있는 가짜학생의 신분조사를 의뢰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물론 대학의 교정은 개방된 장소이므로 은밀한 사찰행위뿐만 아니라 예전처럼 수백 수천의 정·사복 경찰이 교정을 온통 휘젓고 다닌다 할지라도 이는 전혀 비합법 행위는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본 피고인은 이러한 행위가 도덕적으로 바람직하다고 하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반면 이러한 부도덕한 학원 탄압행위에 대한 학생들의 여하한 실질적 저항행위도, 비록 그것이 윤리적으로 정당한 일이지만, 현행 법률에 대한 명백한 침해가 될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정의로운 사회에서라면 존재할 수 없는 법과 양심의 상호적대적인 모순관계가 필연적으로 발생합니다. 그 누구도 이 상황에서 법과 양심 모두를 지키기란 불가능합니다.
이 사건이야말로 우리 사회 전체가, 물론 대학사회도 포함하여, 당면한 정치적·사회적 모순의 집중적 표현이라는 학생들의 주장은 바로 이와 같은 논거에 입각한 것입니다.
법은 자기를 강제할 수 있는 힘을 보유하고 있지만 양심은 그렇지 못합니다. 법은 일시적 상대적인 것이지만 양심은 절대적이고 영원합니다. 법은 인간이 만든 것이지만 양심은 하느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본 피고인은 양심을 따랐습니다. 그것은 법을 지키는 일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양심의 명령을 따르는 일이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본 피고인뿐만 아니라 모든 학생들이, 이 사건에서만이 아니라 그 이전의 어느 사건에서도 그랬습니다.
지난해 9월, 10일 간에 걸친 일련의 사건은 이렇게 하여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자체로서 그리 복잡하지 않은 이 사건은 서울대생들의 민한당사 농성사건, 주요 학생회 간부들의 제적·구속, ‘학생운동의 폭력화’에 대한 정권과 매스컴의 대공세, 서울대 시험거부 투쟁과 대규모 경찰투입 등 심각한 충격파를 몰고 왔으며, 공소 사실을 거의 전면 부인하는 피고들에게 유죄를 선고함으로써 일단락된 바 있습니다.
사건 종료 다음날인 9월 28일, 전 학도호국단 총학생장 백태웅과 뒤늦게 프락치사건 대책위원장을 겸직한 사회대 학생회장 오재영군 등이 지도한 민한당사 농성은 자연발생적·비조직적으로 일어난 이 사건을 부도덕한 학원사찰 및 정권의 비민주성을 비판하는 조직적 투쟁으로 고양시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비록 가짜 학생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의 법률적·윤리적 과실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 때문에 학원사찰의 존재라는 별개의 정치적 문제를 덮어둘 수는 없는 일이므로, 이 투쟁은 그 자체로서 완전히 정당한 행위였다고 본 피고인은 생각합니다.
이 일이 있은 다음 날인 9월 29일 저녁, 학교 당국은 이정우·백기영·백태웅·오재영 등 4명의 총학생회 주요간부를 전격적으로 제명 처분하였으며, 본 피고인은 9월 30일 하오 경찰에 영장 없이 강제연행 당한 후 며칠간의 조사를 받고 구속되었습니다.
본 피고인이 가장 먼저 연행당한 것은 미리 도피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도피하지 않은 것은 필요를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고, 필요를 느끼지 않은 것은 도망칠 만큼 잘못한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본 피고인은 경찰·검찰에서의 조사 및 법정진술시 기억력의 한계로 인한 사소한 착오 이외에 여하한 수정·번복도 한 바 없었으며 오직 사실 그대로를 말했을 따름입니다.
어쨌든 서울시경 국장은 10월 4일 소위 ‘서울대 외부인 폭행사건’의 수사결과를 도하 각 신문·TV·라디오를 통해 발표하였는데, 그에 의하면 4명의 외부인을 감금·폭행한 이 일련의 사건이 복학생협의회 대표였던 본 피고인 및 학생대표들의 합의 아래 의도적이고 조직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10월 4일 이전에 경찰에 연행된 몇몇 학생들 중(본 피고인을 포함) 어느 누구도 이 발표를 뒷받침해 줄 만한 진술을 한 바 없으며, 이후에 작성된 구속영장·공소장 및 관련학생들의 신문조서들이 모두 이 발표의 기본선에 맞추어 만들어진 것임은, 만일 이 모든 서류를 날짜별로 검토해 본다면, 누구의 눈에나 명백한 일입니다.
한마디로 10월 4일의 경찰발표문의 본질은 모종의 정치적 목적을 위한 견강부회·침소봉대·날조왜곡 바로 그것입니다. 그 목적이란 다름이 아니라 학생운동을 폭력지향적인 파괴활동으로 중상모략 함으로써 이 사건의 정치적 성격은 물론 현 정권 자체의 폭력성과 부도덕성을 은폐하려는 것입니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이 사건이 비조직적·우발적으로가 아니라, 학생단체의 대표들에 의해 조직적이고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어야 했습니다. 그래야만 몇몇 관련 학생뿐만이 아니라 학생운동 전체를 비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총학생회장, 학도호국단 총학생장, 프락치사건 대책위원장, 복학생협의회 대표 등은, 그가 구체적으로 어떤 인간이며 어떤 행위를 실제로 했는가에 관계없이 선전을 위한 가장 손쉬운 희생물이 되어야만 했던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수법은 지난 수십 년간 대를 이어온 독재정권들이 기회 있을 때마다 상투적으로 구사해 온 낡은 수법을 그대로 답습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현 정권은 막 출범한 서울대 학생회의 주요 간부의 활동을 실질적으로 봉쇄하는 동시에, 60만 대군을 동원해도 때려 부술 수 없는 학생운동의 도덕성을 훼손시키는 데에 어느 정도는 성공한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마치 자신이 더 도덕적인 존재가 된 듯한 자기만족조차 조금은 맛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검찰 역시 사실을 밝혀내는 일보다는 경찰의 발표를 뒷받침하기에만 급급하여 대동소이한 내용의 공소를 제기하고, 그것에만 집착하여 왔습니다. 사건 발생 후 1개월도 더 지난 작년 11월, 관악경찰서 수사과 형사들이 김도형·손택만 군 등 무고한 학생들에게 가혹한 고문을 가함으로써 공소사실과 일치하는 허위자백을, 형사들 자신의 표현을 빌자면 ‘짜내었다’는 사실이 그 증거입니다. 즉 경찰은 본 피고인들이 ‘폭행법’을 위반하였다는 증거를 바로 그 ‘폭행법’을 위반하여 관련된 학생들을 고문함으로써 짜낸 것입니다. 그 짜내어진 허위자백이 증거로 채택된다는 사실을 못 본 체 하더라도 ‘법 앞에서의 평등’이라는 중대한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전혀 정당한 윤리적 기초를 갖지 못하였기 때문에 양심인으로서는 복종의 의무를 느낄 필요가 없었던 지난날의 긴급조치나 현행 ‘집시법’과 달리 이 ‘폭행법’은 지켜져야 하며, 또 지켜질 수 있는 법률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각인은 현 정권에 대한 정치적 견해에 따라 이 법 앞에서 불평등한 위치에 놓여 있습니다. 본 피고인은, 과문한 탓인지 모르겠으나, 학생들을 상습적으로 폭행·고문하는 각 대학 앞 경찰서의 정보과 형사들이 그 때문에 ‘폭행법’ 위반으로 형사소추 당했다는 비슷한 이야기조차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5월 19일, ‘민주화운동 청년연합’이 주최한 광주항쟁 희생자 추모집회에 참석하였다가 귀가하는 길에, 그녀 자신 제적학생이면서 역시 고려대학교 제적학생인 서원기씨의 부인 이경은씨가 동대문 경찰서 형사대의 발길질에 6개월이나 된 태아를 사산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부부는 이 법의 보호 밖에 놓여 있음이 누구의 눈에나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고소장을 접수하고서도, 검찰은 수사조차 개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본 피고인 역시 여러 차례 수사기관에 연행되어 조사받는 과정에서 폭행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이 법의 보호를 요청할 엄두조차 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누구에게도 협박 또는 폭행을 가한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본 피고인은 폭력범으로 유죄를 선고받고 말았습니다. 본 피고인이 굳이 지난 일을 이렇듯이 들추어냄은 오직, 흔히 이야기되고 있는 바 검찰의 정치적 편향성의 존재를 환기하기 위한 것입니다. 즉 이 사건을 담당한 경찰관 역시 앞에서 밝힌 바 현 정권의 정치적 음모와 무관하지 않았음을 지적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결론적으로 검찰이 주장하는 바 공소사실의 대부분은 불순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경찰이 날조한 사건 내용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으로서, 한편에 있어서는 정권과 매스컴이 공모하여 널리 유포시킨 일방적인 편견의 기초 위에 서 있으며,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경찰이 고문수사를 통해 짜낸 관련 학생들의 허위자백에 의해 지지되고 있는 공허한 내용으로 가득 찬 것입니다.
그러나 본 피고인이 이 사건에서 드러난 학생들의 과실과 본 피고인 자신의 법률적·윤리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하여 이렇듯 정권의 부도덕을 소리 높이 성토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가짜학생에 대한 연행·조사가 윤리적으로 정당하다손치더라도, 이들에게 가한 폭행까지를 정당화 할 의향은 없습니다. 조사를 위한 감금은 가능한 한 짧아야 하며 폭행이 있어서는 안됩니다. 물론 현상적으로 폭력처럼 보인다고 해서 그것이 본질상 다 폭력의 영역에 속할 수는 없지만, 무력한 개인에게 다중이 가한 폭행은 비록 그것이 경찰에 대한 이유 있는 적대감의 발로인 동시에 그들이 상습적으로 학생들에게 가해 온 고문을 흉내 낸 것이라 할지라도 학생운동의 비폭력주의에서 명백히 이탈한 행위라고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또 폭행을 가한 당사자들이 스스로 나서서 책임을 감당하지 않은 것 또한 비록 그것을 어렵게 만든 당시의 특수한 정치적 사정이 개재됐다 손 치더라도, 학생들이 가진 윤리적 결함의 표현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자신 폭행과 절대로 무관하며 사건 전체와도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하여 틀림이 없을 총학생회장 이정우 군이 스스로 모든 책임을 떠맡아 항소조차 포기했다고 하는 아름다운 행위가, 그 누구도 선뜻 폭행의 책임을 감당하려 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한 윤리의 공백상태를 어느 정도는 메워 주었다고 본 피고인은 확신합니다.
본 피고인은 역시 언행이나 조사를 지시한 사실이 없지만(지시할 필요가 없었으므로), 만일 그럴 필요가 있었다면 언제라도 기꺼이 직접 그들을 연행·조사하였을 것입니다(그것이 위법임은 물론 잘 알지만). 본 피고인은 복학생 협의회의 사실상의 대표로서 개인적으로 비폭력의 원칙을 준수해야 할 소극적 의무에 부가하여 학생운동의 전체수준에서도 이 원칙이 관철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적극적 의무 또한 완수해야 할 위치에 있습니다. 따라서 문제의 9월 26일 밤 전기동, 정용범 양인이 구타당하는 광경을 잠시 목격하고서도 그것을 제지하려 하지 않았던 본 피고인에게는 다른 학생들보다 더 큰 윤리적 책임이 있음에 분명합니다(법률적 측면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또한 임신현, 손형구의 경우에도 본 피고인이 사건에 접했을 때는 이미 감금 및 조사가 진행 중이었으므로 어떠한 지시를 내릴 필요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본 피고인 자신도 조사를 위한 감금에 명백히 찬동했으며, 또 잠시나마 직접 조사에 임한 적도 있기 때문에 법률을 어긴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며, 그에 따른 책임이라면 흔쾌히 감수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의 경우, 가능한 한 짧은 감금과 비폭력이라는 원칙을 관철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며, 실제로 이 원칙이 관철되었으므로 본 피고인은 아무런 윤리적 책임도 느끼지 않습니다.
어쨌든 상당한 정도의 법률적·윤리적 책임이 자신에게 있음을 떠맡기 위해 이정우 군처럼 처신할 수도 있었을 것이며, 그 또한 나쁘지 않은 일이었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이미 밝힌 바와 같이 너무나도 명백한 정권의 음모의 노리개가 될 가능성 때문에 본 피고인은 사실과 다른 것은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결코 시인하지 않으리라 결심하였고, 또 그런 자세로 법정투쟁에 임해 왔습니다. 그래야만 본 피고인은 자신이 느끼고 있는 책임감이, 공소사실을 기정사실화시키기 위해 우격다짐으로 요구하는 그것과는 성질상 판이한 것임을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울러 본 피고인은 이 사건의 재판이 갖는 정치적 의미가 무엇이며, 이 사건을 우리 사회의 도덕적 진보의 계기로 삼으려면 사법부가 본연의 윤리적 의무를 완수해야 함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 사건은 누적된 정권과 학원 간의 불신 및 적대감을 배경으로 하여 수명의 가짜학생이 행한, 전혀 비합법적이라 할 수 없지만 명백히 부도덕한 정보수집행위가 본질적으로 부도덕하지 않으나 명백히 비합법적인 학생들의 대응행위를 유발함으로써 빚어진 사건입니다.
지난 수년 간 현 정권이 보여준 갖가지 부도덕한 행위들―학원 내에 경찰을 수백 명씩이나 상주시키면서도 온 국민에게 거짓증언을 한 치안당국자의 행위, 소위 자율화조치라고 하는 아름다운 간판 위에서 음성적인 학원사찰을 계속해 온(이에 관해서는 법정에서 상세히 밝힌 바 있음) 수사기관의 행위, 불순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 사건조차 서슴지 않고 날조·왜곡한 행위 등―은 같은 뿌리에서 돋아난 서로 다른 가지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이 재판은 사건의 진정한 원인을 규명하여 그에 대한 처방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행위 중 비합법적인 부분만을 문제 삼아 처벌하기 위한 것입니다. 아마도 사법부 자체는 이처럼 부도덕한 정권의 학원 난입 행위를 옹호하려는 의도가 없을는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사태의 전후 맥락을 모조리 무시한 채 조사를 위한 연행·감금마저(폭행 부분이 아니라) 형사처벌의 대상으로 규정한 1심의 판결은, 지금 이 시간에도 갖가지 반사회적 목적을 위해 교정을 배회하고 있을 수많은 가짜학생 및 정보원의 신변안전을 보장한 ‘가짜학생 및 정보원의 안전보장 선언’이 아니라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본 피고인은 결코 학생들의 행위 전부에 대한 무죄선고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반복되는 말이지만, 부도덕한 자에 대한 도덕적 경고와 아울러 법을 어긴 자에 대한 법적 제재가 가해져야 하며, 허위선전에 파묻힌 국민에게는 진실의 세례를 주어야 한다는 것, 사태의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지 않고서는 우리 모두의 도덕적 향상은 기대될 수 없는 것을 주장할 따름입니다.
법정이 신성한 것은 그것이 법정이기 때문이 결코 아니며, 그곳에서만은 허위의 아름다운 가면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때로는 추악해 보일지라도 진실의 참모습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오늘날의 사법부가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正義)를 세우며, 또 그 정의가 강자(强者)의 지배를 의미하지 않는다면, 1심의 재판 과정에서 매장당한 진실이 다시금 생명을 부여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본 피고인은 믿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아마도 이 사건으로 인하여 그렇지 않아도 쉽게 허물어버리기 어려울 만큼 높아져 있는 현재의 불신과 적대감의 장벽 위에 분노의 가시넝쿨이 또 더하여지는 것을 보아야 할 것이고, 언젠가는 더욱 격렬한 형태로 폭발할 유사한 사태를 반드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지난 5년 간 현 정권에 반대했다 하여 온갖 죄목으로 투옥되었던 1,500여 명의 양심수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이 ‘신성한 법정’에서 ‘정의로운 재판관’들에 의해 유죄선고를 받았습니다. 야수적인 유신독재 치하에서도 역시 그만큼 많은 분들이 전대미문의 악법 ‘긴급조치’를 지키지 않았다 하여 옥살이를 하였습니다.
긴급조치 위반사건의 보도 또한 긴급조치 위반이었으므로 아무도 그 일을 말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변론을 하던 변호사도 그 변론 때문에 구속당했습니다. 지금에 와서 긴급조치가 정의로운 법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그리고 그때 투옥되신 분들이 ‘반사회적 불순분자’ 또는 ‘이적행위자’였다고 말하는 이도 거의 없지만, 그분들을 ‘죄수’로 만든 법정은 지금도 여전히 ‘신성하다’고 하며, 그분들을 기소하고 그분들에게 유죄를 선고한 검찰과 법관들 역시 ‘정의구현’을 위해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누군가가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사법부가 정의를 외면해 왔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법정이 민주주의의 처형장으로 사용되어 왔다”는 뜻일 것입니다. 누군가가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사법부가 정의를 세워왔다”고 말한다면, 그리고 그가 진정 진지한 인간이라면, 그는 틀림없이 “정의란 독재자의 의지이다”고 굳게 믿는 인간일 것입니다.
본 피고인은 그곳에 민주주의가 살해당하면서 흘린 피의 냄새가 짙게 배어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곳에서만은 진실의 참모습을 만날 수 있다는 의미에서의 신성한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 싶습니다.
본 피고인은 자신에게 유죄를 선고하는 재판관이 ‘자신의 지위가 흔들리지 않는 한도 내에서만 정의에 관심을 갖는’ 그런 정도가 아니라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를 세우는’ 현명한 재판관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실을 밝히는 일이야말로 정의가 설 토대를 건설하는 일이라 믿습니다.
이상의 논의에 기초하여 본 피고인은 1심판결에 승복할 수 없는 이유를 간단히 언급하고자 합니다. 본 피고인은 판결문을 받아보았을 때 참으로 서글픈 심정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무려 7회에 걸쳐 진행된 심리과정에서 밝혀진 사건의 내용과 거의 무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본 피고인이 그토록 진지하게 임했던 재판의 전 과정이 단지 예정된 판결을 그럴듯하게 장식해 주기 위해 치러진 무가치한 요식행위에 지나지 않았음을 뒤늦게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우선, ‘판결이유’의 ‘범죄사실’ 제1항 중 “······임신현이····· 구타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피고인 유시민은 성명불상 학생들에게 위 임신현의 신분을 확인·조사토록 하고···”라는 부분은 형식논리상으로조차 성립할 수 없었습니다.
본 피고인에게 지시를 받은 학생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면, 어떻게 그가 성명불상일 수가 있습니까? 그리고 본 피고인이 한 번도 이를 시인한 바 없으며, 백수택 군 등 여러 학생들의 진술은 물론이요, 임신현 자신의 법정진술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할지라도, 본 피고인이 임신현이 연행 구타되던 현장에 있었음을 증명하기란 불가능한 일인데, 하물며 본 피고인이 성명불상의 누군가에게 어떠한 지시를 내렸다는 일이 어찌 증명 가능하겠습니까? 사실 본 피고인은 그때 그곳에 있지 않았습니다.
다음, ‘범죄사실’ 제2항 중 “·····위 김도인은 피고인 백태웅과 피고인 유시민 앞에서····· 구타하여 동인(손형구를 말함)에게 전치 3주간의·····다발성 좌상을 가한·····” 부분 역시, “백태웅과 유시민에게 조사받는 동안 한 번도 폭행당한 일이 없다”고 한 손형구 자신의 법정진술에조차 모순됩니다.
그리고 ‘범죄사실’ 제3항 중 “피고인 유시민은·····동일(9월 26일을 말함) 21:00경부터 익일 01:00까지 피고인 윤호중, 같은 오재영 및 백기영, 남승우, 오승중, 안승윤 등과 같이·····(정용범을)·····계속 조사하기로 결의하고·····” 및 ‘범죄사실’ 제4항 중 이와 유사한 대목 역시, 본 피고인이 당시 진행 중이던 총학생회장 선거관리 및 학생회칙의 문제점에 관해 선거관리 위원들과 장시간에 걸쳐 논의한 사실을 왜곡해 놓은 것에 불과하며, 이는 오승중, 김도형 등의 진술에 의해서도 명백히 밝혀진 일입니다. 이 몇 가지 예는 특히 현저하게 사실과 다른 부분을 지적한 것에 불과하며, 판결문 전체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의 유사한 모순점을 내포하고 있음은 두말할 나위조차 없습니다. 이는 사건 전체가 본 피고인 및 학생대표들의 지휘 아래 의도적으로 진행된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정권의 의도를 반영하는 현상으로서, 기실 판결문의 내용 중 대부분이 침소봉대·견강부회·날조왜곡된 지난해 10월 4일 경찰발표문을 원전(原典)으로 삼아 구속영장·공소장을 거쳐 토씨 하나 바꾸어지지 않은 그대로 옮겨진 것에 대한 증거입니다.
1심판결은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사건과 관련된 각 개인 및 집단의 윤리적 법적 책임을 명확히 함으로써 우리 사회 전체의 도덕적 향상에 기여해야 할 사법부의 사회적 의무를 송두리째 방기한 것이라 판단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거듭 밝히거니와 본 피고인이 이처럼 1심판결의 부당성을 구태여 지적한 것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타당한 이유에 의한 유죄선고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현재 마치 '폭력 과격 학생'의 본보기처럼 되어 버린 본 피고인은 이 항소이유서의 맺음말을 대신하여 자신을 위한 몇 마디의 변명을 해볼까 합니다.
본 피고인은 다른 사람보다 더 격정적이거나 또는 잘난 체 하기 좋아하는 인간이 결코 아니며, 하물며 빨간 물이 들어 있거나 폭력을 숭배하는 젊은이는 더욱 아니기 때문입니다. 본 피고인은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장 평범한 청년에 지나지 않으며 늘 ‘불의를 보고 지나치지 말라’, ‘이웃의 아픔을 나의 아픔처럼 생각하라’, ‘거짓말 하지 말라’고 가르쳐 주신, 지금은 그분들의 성함조차 기억할 수 없는 국민학교 시절 선생님들의 말씀을 불변의 진리로 생각하는, 오히려 조금은 우직한 편에 속하는 젊은이입니다.
본 피고인은 이 변명을 통하여 가장 순수한 사랑을 실천해 나가는, 조국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실천하는 행위, 곧 민주주의의 재생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투쟁 전체를 옹호하고자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인 1978년 2월 하순, 고향집 골목 어귀에 서서 자랑스럽게 바라보시던 어머니의 눈길을 등 뒤로 느끼면서 큼직한 짐 보따리를 들고 서울 유학길을 떠나왔을 때, 본 피고인은 법관을 지망하는 (그 길이 여섯이나 되는 자식들을 키우시느라 좋은 옷, 맛난 음식을 평생토록 외면해 오신 부모님께 보답하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또 그 일이 나쁜 일이 아님을 확신했으므로) 아직 어린티를 벗지 못한 열아홉 살의 촌뜨기 소년이었을 뿐입니다.
모든 이들로부터 따뜻한 축복의 말만을 들을 수 있었던 그때에, 서울대학교 사회계열 신입생이던 본 피고인은 ‘유신 체제’라는 말에 피와 감옥의 냄새가 섞여 있는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유신만이 살길이다’고 하신 사회선생님의 말씀이 거짓말일 수도 없었으니까요. 오늘은 언제나 달콤하기만 했으며, 생각하기만 해도 가슴 설레던 미래는 오로지 장밋빛 희망 속에 감싸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진달래는 벌써 시들었지만 아직 아카시아 꽃은 피기 전인 5월 어느날, 눈부시게 밝은 햇살 아래 푸르러만 가던 교정에서, 처음 맛보는 매운 최루가스와 걷잡을 수 없이 솟아나오던 눈물 너머로 머리채를 붙잡힌 채 끌려가던 여리디여린 여학생의 모습을, 학생회관의 후미진 구석에 숨어서 겁에 질린 가슴을 움켜쥔 채 보았던 것입니다. 그날 이후 모든 사물이 조금씩 다른 의미로 다가들기 시작했습니다. 기숙사 입구 전망대 아래에 교내 상주하던 전투경찰들이 날마다 야구를 하는 바람에 그 자리만 하얗게 벗겨져 있던 잔디밭의 흉한 모습은, 생각날 적마다 저릿해지는 가슴속 묵은 상처로 자리 잡았습니다. 열여섯 꽃같은 처녀가 매 주일 60시간 이상을 일해서 버는 한 달치 월급보다 더 많은 우리들의 하숙비가 부끄러워졌습니다. 맥주를 마시다가도, 예쁜 여학생과 고고 미팅을 하다가도, 문득문득 나쁜 짓을 하다가 들킨 아이처럼 얼굴이 화끈거리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이런 현상들이 다 ‘문제학생’이 될 조짐이었나 봅니다.
그리고 그 겨울, 사랑하는 선배들이 ‘신성한 법정’에서 죄수가 되어 나오는 것을 보고 나서는, 자신이 법복 입고 높다란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을 꽤나 심각한 고민 끝에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말았습니다.
다음해 여름, 본 피고인은 경제학과 대표로 선출됨으로써 드디어 문제학생임을 학교 당국 및 수사기관으로부터 공인받았고, 시위가 있을 때면 앞장서서 돌멩이를 던지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점증하는 민중의 반독재 투쟁에 겁먹은 유신정권이 내분으로 붕괴해 버린 10·26정변 이후에는, 악몽 같았던 2년간의 유신 치하 대학생활을 청산하고자 총학생회 부활운동에 참여하여 1980년 3월 ‘총학생회 대의원회 의장’이라는 중요한 직책을 맡게 되었습니다.
잊을 수 없는 그 봄의 투쟁이 좌절된 5월 17일, 본 피고인은 갑작스러이 구속학생이 되었고, ‘교수와 신부를 때려준 일’을 자랑삼는 대통령 경호실 소속 헌병들과, 후일 부산에서 ‘김근조 씨 고문살해사건’을 일으킨 장본인들인 치안본부 특수수사관들로부터 두 달 동안의 모진 시달림을 받은 다음, 김대중 씨가 각 대학 학생회장에게 자금을 나누어 받았다는 허위 진술을 해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구속 석 달 만에 영문도 모른 채 군법회의 공소기각 결정으로 석방되었지만, 며칠 후에 신체검사를 받자마자 불과 40시간 만에 변칙 입대 당함으로써 이번에는 ‘강집학생'이 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입영 전야에 낯선 고장의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이면서 본 피고인은 살아있다는 것이 더 이상 축복이 아니요 치욕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날 이후 제대하던 날까지 32개월 하루 동안 본 피고인은 ‘특변자’(특수학적변동자)라는 새로운 이름을 가지게 되었으며, 늘 감시의 대상으로서 최전방 말단 소총중대의 소총수를 제외한 일체의 보직으로부터 차단당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리고 영하 20도의 혹한과 비정하게 산허리를 갈라지른 철책과 밤하늘의 별만을 벗 삼는 생활이 채 익숙해지기도 전인 그해 저물녘, 당시 이등병이던 본 피고인은 대학시절 벗들이 관계한 유인물 사건에 연루되어 1개월 동안 서울 보안사 분실과 지역 보안 부대를 전전하면서 대학생활 전반에 대한 상세한 재조사를 받은 끝에 자신의 사상이 좌경되었다는, 마음에도 없는 반성문을 쓴 다음에야 부대로 복귀할 수 있었으며, 동시에 다른 연대로 전출되었습니다.
하지만 본 피고인은 민족 분단의 비극의 현장인 중동부 전선의 최전방에서, 그것도 최말단 소총중대라는 우리 군대의 기간부대에서 3년을 보낼 수 있었음을 크나큰 행운으로 여기며 남에게 뒤지지 않는 훌륭한 병사였음을 자부합니다.
그런데 제대 불과 두 달 앞둔 1983년 3월, 또 하나의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난해 세상을 놀라게 한 ‘녹화사업' 또는 ‘관제 프락치공작'이 바로 그것입니다. 인간으로 하여금 일신의 안전을 위해서는 벗을 팔지 않을 수 없도록 강요하는 가장 비인간적인 형태의 억압이 수백 특변자들에게 가해진 것입니다. 당시 현역 군인이던 본 피고인은 보안부대의 공포감을 이겨 내지 못하여 형식적으로나마 그들의 요구에 응하는 타협책으로써 일신의 안전을 도모할 수는 있었지만, 그로 인한 양심의 고통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처럼 군사 독재정권의 폭력 탄압에 대한 공포감에 짓눌려 지내던 본 피고인에게 삶과 투쟁을 향한 새로운 의지를 되살려준 것은 본 피고인과 마찬가지로 강제 징집당한 학우들 중 6명이 녹화사업과 관련하여 잇달아 의문의 죽음을 당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동지를 팔기보다는 차라리 죽음을 택한 순결한 양심의 선포 앞에서 본 피고인도 언제까지나 자신의 비겁을 부끄러워하고 있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순결한 넋에 대한 모욕인 탓입니다.
그래서 1983년 12월의 제적학생 복교조치를 계기로 본 피고인은 벗들과 함께 ‘제적 학생 복교추진위원회’를 결성하여 이 야수적인 강제징집 및 녹화사업의 폐지를 위해, 그리고 진정한 학원 민주화를 요구하며 복교하지 않은 채 투쟁하였습니다.
이때에도 정권은 녹화사업의 존재, 아니, 강제징집의 존재마저 부인하면서 우리에게 ‘복교를 도외시한 채 정부의 은전을 정치적 선동의 재료로 이용하는 극소수 좌경 과격 제적학생들’이라는 참으로 희귀한 용어를 사용해 가면서, 어용 언론을 동원한 대규모 선전 공세를 펼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9월 여러 가지 사정으로 복학하게 되었을 때 본 피고인은 ‘민주화를 위한 투쟁은 언제 어디서나 어떤 형태로든 계속되어야 한다’는 소신에 따라 ‘복학생협의회’를 조직하였습니다. 그러나 불과 복학한 지 보름 만에 이 사건으로 다시금 제적학생 겸 구속학생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본 피고인의 이름은 ‘폭력학생’의 대명사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본 피고인은 이렇게 하여 5.17폭거 이후 두 번씩이나 제적당한 최초의, 그리고 이른바 자율화 조치 이후 최초로 구속 기소되어, 그것도 ‘폭행법’의 위반으로 유죄선고를 받은 ‘폭력과격학생’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본 피고인은 지금도 자신의 손이 결코 폭력에 사용된 적이 없으며, 자신이 변함없이 온화한 성격의 소유자임을 의심치 않습니다. 그러므로 늙으신 어머니께서 아들의 고난을 슬퍼하며 을씨년스러운 법정 한 귀퉁이에서, 기다란 구치소의 담장 아래서 눈물짓고 계신다는 단 하나 가슴 아픈 일을 제외하면, 몸은 0.7평의 독방에 갇혀 있지만 본 피고인의 마음은 늘 평화롭고 행복합니다.
빛나는 미래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 설레던 열아홉 살의 소년이 7년이 지난 지금 용서받을 수 없는 폭력배처럼 비난받게 된 것은 결코 온순한 소년이 포악한 청년으로 성장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 시대가 ‘가장 온순한 인간들 중에서 가장 열렬한 투사를 만들어 내는' 부정한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본 피고인이 지난 7년간 거쳐 온 삶의 여정은 결코 특수한 예외가 아니라 이 시대의 모든 학생들이 공유하는 보편적 경험입니다. 본 피고인은 이 시대의 모든 양심과 함께 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에 비추어, 정통성도 효율성도 갖지 못한 군사독재정권에 저항하여, 민주제도의 회복을 요구하는 학생운동이야말로 가위 눌린 민중의 혼을 흔들어 깨우는 새벽 종소리임을 확신하는 바입니다.
오늘은 군사독재에 맞서 용감하게 투쟁한 위대한 광주민중항쟁의 횃불이 마지막으로 타올랐던 날이며, 벗이요 동지인 고 김태훈 열사가 아크로폴리스의 잿빛 계단을 순결한 피로 적신 채 꽃잎처럼 떨어져 간 바로 그날이며, 번뇌에 허덕이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부처님께서 세상에 오신 날입니다.
이 성스러운 날에 인간 해방을 위한 투쟁에 몸 바치고 가신 숱한 넋들을 기리면서 작으나마 정성들여 적은 이 글이 감추어진 진실을 드러내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될 것을 기원해 봅니다.
모순투성이이기 때문에 더욱 더 내 나라를 사랑하는 본 피고인은, 불의가 횡행하는 시대라면 언제 어디서나 타당한 격언인 네크라소프의 시구로 이 보잘것없는 독백을 마치고자 합니다.
지난 토론회 당시 언급한 문재인의 동성애 발언이 '논란'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지속적으로 거론된다.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찬반으로 나눌 수 없다는 개인적인 입장을 뒤로 하고 보면, 이번 일을 마주한 성소수자 일부의 입장은 이해하기 어렵다. (일부라 한 것은 내 주변에서는 차별 반대에 무게를 둔 이들도 있어서다.) 이들이 주장과 행동에 '잘못'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개인의 선택이다. 그런데 방향은 틀렸다.
성소수자들의 상황을 보자. 그 전에 오늘 밝인 문재인의 입장은 이렇다. (기사에서 문재인 발언만 그대로 옮긴다)
"그 분들이 주장하는 가치와 저는 정치인으로서 현실적인 판단을 해야 하기 때문에 좀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차이로 그분들에게 아픔을 드렸다. 다만 그날 (토론회에서) 질문 받았던 것은 ‘군대 내 동성애’에 대해서였기 때문에, 그 부분에 찬성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이다. 동성애에 대한 생각은 명확하다. 허용하고 말고, 혹은 찬반의 문제가 아니라 각자의 지향이고 사생활에 속하는 문제다"
"지금 성 소수자들이 요구하는 가치기준에 비춰보면 제가 말씀 드린 게 많이 부족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 정치인으로 지금 정치 상황 속에서 저의 입장 밝히는 것이다. 거기서 있을 수 밖에 없는 간극에 대해서는 이해를 구한다. 성 소수자 국민들이 아직 우리 사회적 차별에 고통을 겪고 있고, 성적인 지향 때문에 차별 받지 않고 당당하게 자기 생활을 할 수 있는 세상을 바라고 있다"
"군대는 동성 간 집단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동성애가 허용된다면 많은 부작용들이 있을 수 있다. 군대 내 동성애를 허용하는 것은 아직 이르다. 우리 사회가 동성혼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로 가야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는 상황이다. 지금 상황에서 동성혼 합법화에 반대한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실제 당시 토론회에서도 돼지준표의 질문은 이 부분에 대한 것이었다. 여기서 하나 짚어보자. 속칭 문빠들이 말하듯이 문재인의 발언에 발끈하느이들은 "동성애=에이즈"를 말하는 돼지준표에게 가지 않고, 문재인에게 더 집착하는가. 단지 대통령 당선권에 있는 후보와 그렇지 않은 후보의 차이일까.
아니다. 그들도 안다. 말하면 들어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말이다. 어린 아이들은 뭔가를 요구할 때 상대를 봐가면서 한다. 어른도 마찬가지다. 내 말을 무시하거나, 들어주지 않는 사람, 오히려 면박을 줄 사람에게는 가지 않는다.
노무현 정부 때 폭포수처럼 터트리던 이들이 박근혜 때 왜 잠잠했는가. 억눌린 게 아니라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도를 넘어간 이들도 잠잠해졌다. 노무현 대통령에게 대놓고 개기던 검찰과 언론이 박근혜 때는 침묵하고 기었던 것을 봐라.
성소수자들은 이 부분에서 문재인을 공격하기보다는 공론화위 매개체로 삼아야 한다. (보기에 따라 다르지만 이번에 일부 성소수자들의 행동과 말은 비판이 아니라 공격이었다). 소통할 수 있는 사람임을 안다면, 비난을 위한 항의가 아니라 소통을 위한 대화를 요구했어야 했다. 그래서 그들의 기습시위는 다수의 지지를 얻지 못한 것이다.
비판도 기술이다. 앞서 말했듯이 그들도 문재인이 들어줄 것을 안다. 잘못된 방법은 자칫 들어주는 사람뿐 아니라, 다른 대중들의 반발만 살 뿐이다.
영화 속 내용이 개봉 시점과 절묘하게 결합했다. 2년 전부터 만들었다고 하니, 지금의 대선 상황을 고려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보는 내내 지금의 상황을 떠오르면 피식 웃음이 이어져 나온다. '특별시민'은 선거에 대한 이야기다. 내 기억 속에 정치와 정치인을 다루는 영화는 종종 봤어도, 선거 자체를 다루는 영화는 이것이 처음이다. (기억이 안 나는 것일 수도 있다)
영화는 서울시장 3선에 도전하는 변종구(최민식)와 그에 맞서는 야당 후보 양진주(라미란) 간의 대결 구도를 기본 클로 한다. 여기에 변종구 측 선거대책본부장 심혁수(곽도원), 양진주 측 선거 전문가 해외파 임민선(류혜영), 선거전에 갓 입문한 광고 전문가 박경(심은경)의 이야기를 담았다
서울시장 선거판을 다뤘다는 설정은 듣기만 해도 깨끗하지 않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맞다. 추잡하다. 대체적으로 변종구 측은 조작을 통해 네거티브 전략을 구사한다면, 양진주 측은 어쩌다 던져진 꺼리를 활용한다. 그러다보니 번본히 변종구 측에 당하는 입장이긴 하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이 둘은 당선을 목표로 구사할 수 있는 전략을 다 구사하려 한다. 이 시점에서 눈 여겨 볼 대상은 임민선과 박경이다. 임민선은 선거 전문가이긴 하지만, 해외파로 한국 선거는 처음이다. 박경은 선거전 자체가 처음으로, 정치에 대한 순수한 마음이 살아 있다. 이들은 라이벌 관계의 선거 캠프에 있고, 나름 상대를 엿먹이는 선거전략을 구사하지만, 후보들은 진정한 정치인으로 남아있길 바란다. 여기서 충돌이 일어난다.
깨끗하고 네거티브 없는 선거는 언제나 등장하는 구호지만, 역대 그 어느 선거에서도 지켜지지 않았다. 후보는 깨끗하게 걸어가더라도, 그 주위에서 선거를 치르는 사람들은 똥물을 밞고 서 있다. 이들은 선거 후 자신들에게 돌아올 몫을 알기에 이 똥물을 밞고 서서, 후보를 어깨 위로 들어올린다.
그런데 그 무리에 '깨끗하고 공정하며 네거티브 없는 선거'를 바라는 사람이 있다면 어찌될까. 버티지 못한다. 임민선과 박경이 그랬고, 그래서 그들은 결단은 이해하면서도 수긍하기는 힘들다.
이들의 대척점에 서 있는 심혁수는 대한민국 선거판을 제대로 대변하는 인물이다. 후보와 갈등이 있더라도 일단은 당선시켜놓기 위해 똥물이 아니라 핏물이라도 밞을 인물이다. 그리고 이러한 '심혁수 현실판' 인물들이 지금 대선판에 깔렸다.
재미있는 것은 임민선과 박경의 모습은 현실의 대선을 바라보는데 있어서 자극을 주지 못하지만, 심혁수의 모습은 다르다. 심혁수의 행동과 생각은 현실 대선의 과정에 이래저래 끼워 맞춰 해석케 했다.
영화는 중간에 '과실로 인한 죽음'이라는 너무 극적인 두 가지 설정을 제외하고는 꽤 자연스럽게 이어져 간다. 나름의 반전도 존재한다. 그리고 미디어에 의해 얼마나 사람들이 쉽게 조작되고 흔들리는지도 보게 된다.
특히 엔딩은 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다. 뻔한 결말이 아니라서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적잖은 개인적 해석을 하게 했다. 입 다물게 하고 모든 것을 먹어치우겠다는 모양새다.
참고로 변종구의 당은 새자유당이다. 여기서. 피식웃었다. '새누리당+자유한국당'을 합친 느낌이다. 영화 관계자는 새누리당이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꿨을 때 소름이 돋았다고 한다. 그리고 양 후보가 각각 아들과 딸의 문제가 공론화된다. (물론 딸의 문제는 조금 다르지만) 현재 문재인과 안철수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16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 개최된 콜드플레이(coldplay) 콘서트는 고민되던 공연이었다. 새월호 3주기인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작 콜드플레이가 이런 눌린 마음 일부를 날려줬다. 첫 곡이 끝나고 두번째 곡인 '옐로우'(Yellow) 중간 크리스 마틴은 관객들에게 10초간 침묵으로 추모하자고 제안했다. 무대 스크린에는 노란 리본이 그려졌다. 크리스 마틴의 손목에는 노란 밴드가 보였다. 순간 울컥했다.
'가족의 탄생'의 작가 도진기는 이 작품을 쓸 당시인 2014년에는 현직 판사였다. 물론 현재 도진기 작가는 올해 2월 판사직을 내려놓고, 변호사가 됐다. 작가에게 또다른 직업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소설에 분명 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현직 판사가 추리 소설을 쓰니, 법에 기반한 트릭과 추리는 의외의 놀라움을 안긴다. 일단 <가족의 탄생>의 줄거리는 아래와 같다.
진구는 불의의 교통사고로 아내 유정을 잃은 교준에게 어떤 의뢰를 받는다. 상당한 자산가인 장인어른의 유산이 아내의 두 언니들에게 상속되지 않도록 막아달라는 것이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장인어른의 돈에 눈이 먼 처형들이 아내를 살해했다고 교준은 확신하고 있다. 이미 단순 교통사고로 마무리되어 재조사가 쉽지 않다는 점, 유정의 죽음이 처형들의 상속분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점에서 진구는 난색을 표했지만 교준의 확고한 태도에 의뢰를 받아들인다. 본격적인 조사를 위해 교준과 장인어른이 살고 있는 부산으로 간 진구와 해미는 처형 측 변호사로 온 고진과 만난다. 고진과의 두 번째 인연이 크게 달갑지 않은 진구에게 고진은 엉뚱하게도 조사한 정보를 공유해줄 것을 부탁하며 부산을 떠난다. 진구는 가족들의 속사정에 집중하고, 고진은 가족 밖에서 조사를 시작한 가운데 교준의 외동딸 아름이의 친부임을 주장하는 남자가 나타난다. 그리고 고진은 범인을 알아냈다며 가족 모두를 한 자리에 불러 모은다.
<가족의 탄생>은 여러 번의 반전을 안긴다. 그리고 그 반전은 단순히 ‘그럴 거 같다’가 아닌, 법에 기반해 촘촘하게 여러 상황들을 엮여 나간다. 법조계에 있기에 가능한 상황들을 만들어낸 것이다. 물론 몇몇 과거 서평들을 읽어보니 도진기 작가들의 팬들은 이 작품에 대해 그다지 후하지 않은 점수를 줬다. 특히 극 초반에 도진기 작가답지 않은 설정이 있다는 것이다. 이는 개인적으로 추후 더 많은 도진기 작가의 소설을 읽고 판단할 문제다.
살인사건의 축으로 가족 간에 서로 속이려 하고, 못 잡아먹어 안달인 상황이긴 하지만 내용 자체는 꽤 유쾌하게 흘러간다. 변호사 고진과 탐정 진구가 주거나 받거니 하는 상황이 자칫 막장극이 가질 수 있는 무거움과 식상함을 상쇄한다.
진구와 고진, 해미를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의 특성도 제법 잘 부여했다. 유정의 죽음을 어떻게 해석하고 접근하는지만 봐도 인물들의 성격을 알 수도 있지만, 작가는 그들이 입은 옷, 각각의 상황에 태도를 매우 상세하게 서술해, 향후 어떤 태도를 보이더라도 ‘그럴 수 있다’라고 인지하게 했다. 물론 이는 독자 입장에서는 어떤 것을 추리할 수 있게 만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분명하게 드러난 인물들의 성격은 후반부에 빛을 발한다. 고진과 진구가 가족들을 불러모으고 추리를 할 때, 이들이 보여주는 태도가 읽는 이로 하여금 수긍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가족의 탄생>이란 제목은 사실이 밝혀지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보통 책의 제목은 흐름을 읽는데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전체를 포괄해 압축해 보여주기도 한다. 그런데 <가족의 탄생>은 이 두 역할이 아닌, 결론의 역할을 한다.
재미있는 것은 프롤로그와 막간, 그리고 에필로그다. 책의 내용과 상관없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집어넣었다. 특히 프롤로그를 읽고 살인사건과 막장 가족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접하니, 머릿속에서 잠시 이야기 흐름이 투 트랙으로 흘러가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크게 거부감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또 진구와 고진이 이야기를 나눌 때 과거의 사건, 즉 작가가 고진 시리즈와 진구 시리즈에서 다뤘던 내용을 주석으로 달았다. 사실 이 부분은 셜록 홈즈와 같은 탐정 시리즈물에서 이미 종종 사용되어 왔던 내용이다. 작가가 인터뷰에서 국내에 셜록 홈즈와 같은 캐릭터를 만들고 싶다고 했는데, 책의 형식은 이를 따른 듯 싶다. 작가의 팬이고 꾸준히 그 시리지를 읽어온 사람에게는 여러 사건을 떠올리며 고진과 진구의 성격을 좀 더 떠올릴 수 있겠지만, 나처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그냥 그려러니 하고 넘어가도 무관하다.
인간의 탐욕을 부른 상황, 가족이 형성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등은 사실 느끼지 못했다. 작가도 고려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단, 법을 어떻게 이용할 수도, 혹은 법에 어떻게 이용당할 수도 있는지를 보여주는 점에서는 꽤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서로가 수치라고 한다. 그런데 제 3자의 입장에서 보면 둘 다 수치다. 하나는 막말과 거짓으로 인해 살아있는 거 자체가 수치고, 다른 한 쪽은 내부에 대해 할 말을 외부로만 방향을 설정한 수치다. 물론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전자는 쪽팔림 모르는 인간으로서 '진짜' 수치고, 후자는 아쉬움이다.
지난 1일 KBS 아나운서협회는 정미홍이 '전 KBS 아나운서'로 호칭하는 것에 대해 "KBS를 떠난 지 20년이 지난 한 개인의 일방적인 발언이 '전 KBS 아나운서'라는 수식어로 포장되어 전달되는 것은 현직 아나운서들에게는 큰 부담이자 수치이며, 더욱이 국민의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의 직함을 내건다는 것은 적절치 않은 표현이라 여겨집니다"라며 다른 호칭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이 소식을 접한 정미홍은 3일 자신의 SNS를 통해 "저는 몇 달 전에 이미 KBS 아나운서라는 호칭을 쓰지 말아달라, KBS 출신이라는 게 수치스럽다고 선언한 바 있습니다"라며 "저는 공영방송이라면서 역사와 사실을 왜곡하고 진실을 보도하지 않으며 외면하는 KBS 출신인 게 정말 부끄럽습니다. 아나운서 후배들에게 한마디 전합니다. 너희들은 나 같은 선배를 가질 자격이 없다. 내가 너희들의 선배임이 참으로 수치스러울 뿐이다. 부디 역사와 작금의 현실에 대해 공부 좀 해서 지력을 쌓길 바란다"고 반박했다.
KBS 아나운서의 성명에 '수치'라고 말을 한 것은 KBS 구성원들이 현재 공영방송 운운할 수 있나라는 점이다. 사실 그들 아나운서들이 세월호나 박근혜에 대해 전달한 과정은 발언의 강도나 적절성 여부를 떠나면 정미홍과 뭐가 다를까. 정미홍은 온오프라인에서 떠들었지만, KBS는 공공재인 전파를 사용해 떠들지 않았던가. 할 말이 있을까.
정미홍을 비난하려면 그들도 공영방송으로 돌아왔어야 했다. 국민은 같은 레벨로 인식하는데, 스스로는 부인하며 수치라 하면 누가 받아들일까.
정미홍에 대해서는 할 말이 그다지 없다. 존재하지 말아야 할 인간이 대한민국에서 전직 아나운서 어쩌구 하면서 존재하는 거 자체가 문제니 말이다. 이 애는 어찌되었든 죽어도 정신 못 차릴테니 여기서 그의 악행과 막말을 굳이 더 운운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는 듯 싶다.
정미홍이란 애는 변하지 않겠지만 KBS는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 뒤에 자사 출신들의 부역자들과 부끄런운 애들을 한꺼번에 정리하고 청산하는 게 옳지 않을까.